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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20 통권 90호     필자 : 시아웨이동 프린트   이메일 
[중국은 지금]
유행, 그 창백한 얼굴


변화
중국에 돌아올 때마다 늘 ‘변화’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느끼곤 한다. 4년 전 귀국 당시, 나는 우리 집 대문을 찾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집이 있는 방향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가장 난처했던 일은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가려는지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빌딩 숲과 거리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점에서 [17세에 늙기 시작한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강 훝어 보았더니 문장은 그런대로 매끄러웠지만 억지 멋을 부린 면이 적지 않았다. 내용은 그저 부모님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근심’이란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청소년기에 나 역시 이런 심리적 경험을 했었지만 나는 ‘늙다’라는 기발한 단어를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번뇌’라는 단어 정도였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아주 다르다. 10여 년 전후의 일이지만 마치 현대에서 고대를 회고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가 빠른 거야’라는 추이졘(崔建)의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는 오히려 지금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만약 이 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말하라면 바로 ‘변화’ 이 두 글자가 아닐까?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늙으리라...

서점에서 눈에 가장 띄는 곳에 놓여있는 책들은 모두 화려한 베스트셀러들이다. 그 중에는 ‘청춘시리즈물’이라 불리는 소설이 적지 않다. 작가들은 모두 아주 젊다. 나는 국내 문단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편인데, 이런 ‘청춘글쟁이’들은 한 사람도 모른다. 손가는 대로 몇 권을 골라 뒤적여 보았는데,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대동소이했다. 그 솔직담백하고 원초적인 서적들에 《상해보패(上海宝贝)》조차 밀려 나버렸다. 나는 귀국 전에 《해외 캠퍼스(海外校園)》의 편집인과 국내 유행문화에 관한 글을 쓰기로 약속하였었다. 그러나 이런 ‘청춘시리즈물’들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 책을 사지 않았다. 

강호 제일의 고수
나는 IT업종에 종사하는 동생에게 현재 국내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놀이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동생은 컴퓨터게임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나의 예측을 약간 벗어나는 대답이었다. 나 역시 10년 전에는 컴퓨터게임을 즐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집안에 잔뜩 쌓여있는 게임 CD에 먼지가 내려 앉아 있다. 

동생은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게임은 과거의 소프트웨어 게임이 아니고 인터넷게임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즐기고 그 중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바로 게임의 제왕이요 강호 제일의 고수라고 했다. 강호 제일의 고수가 되려면 테크닉 외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장시간동안 네트워크에 접속하여야만 비로소 등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몇몇 대형 포털사이트는 네트워크 게임만으로도 벌써 큰돈을 벌어 들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다른 투자가 있다. ‘제일 고수’의 검, 비문, 심지어 의복 등이 모두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생의 말로는 10만원을 들여 ‘제일 고수의 검’을 사들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진짜 검이었다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어떻게 가상의 물건이 거래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농담이 진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0만원을 들여 가상의 검을 사서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엔 얼마나 큰 신념이 필요할까?

컴퓨터 한 대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국내 개인 컴퓨터 보급률은 아직 낮은 편이다. 그래서 PC방이 아주 많다. PC방은 세계 정보화 추세에 발맞추려는 국가정책에 부합하는 신생산물이라 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가 고개를 들면 누구라도 곧 ‘PC방’을 볼 수 있다. PC방 사업은 아주 폭발적이고 24시간 영업을 한다. 성인, 대학생,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떼를 지어 모여든다. 인터넷게임을 즐기기 위해 학생들은 학업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터넷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기도 한다. 

더 무서운 것은 PC방에서 인터넷 접속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없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들은 거리낌 없이 음란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이들이 받는 정신적, 심리적 현상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PC방에 흠뻑 빠진 아이들은 가출은 물론,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급기야 죽음에 이른 참극도 여러 번 발생했다. ‘PC방의 유행’은 가히 ‘미쳤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수지가 맞지 않아도 유행한다
핸드폰은 또 하나의 시대 풍조이다. 핸드폰은 통화도구일 뿐만 아니라 현재 유행하는 오락이기도 하다. 문자메시지만 주고받는 것은 이미 구시대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핸드폰소설이 유행하고 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사실 짧은 문자메시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짧은 문자메세지의 내용이 마이크로 소설로 변했을 뿐이다. 나는 운 좋게 몇 편의 핸드폰 소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실망하고 말았다. 그것은 일개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창작이라 할 수도 없는 것들로, 대부분 읽은 적이 있거나 들어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핸드폰소설이 어떤 이유로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첫째, 글자 수의 제한을 받는다. 이런 소설에 어떤 문학적 가치가 있을 리 없다. 둘째, 그렇게 작은 화면은 보기에도 불편하다. 셋째, 이런 소설을 보는데도 돈을 내야한다. 이 비용이 책 한 권 값보다 훨씬 비싸다. 이외에도 수지가 맞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라면 셀 수 없는데도 그것이 바로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정말 오묘하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핸드폰은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좋은 핸드폰을 지닐수록 폼이 난다. 핸드폰의 가격 또한 몇 천원부터 몇 만원까지 다양하다. 현재 중국 노동자들의 평균소득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비싼 가격이다. 여기에 핸드폰 월 사용료를 더한다면 핸드폰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물건임에 틀림없다. 노동자 월 평균소득이 아직 천 여원 밖에 더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핸드폰 보급률은 뜻밖에도 미국보다 높다. 이것은 정말 땅을 칠 노릇이다. 월 사용료를 못내 사용정지 중이면서도 핸드폰은 여전히 허리에 당당하게 꿰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허영’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인터넷은 과연 지식의 바다이다. 그러나 지식의 파도를 잘 타지 못하면 혼탁한 파도에 휩쓸려 삼켜지고 만다. 작가 장웨이전은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지금과 같은 물질적 욕망의 팽배보다 그 옛날 약간의 궁핍이 나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표현한다면 PC방에 흠뻑 빠져있는 아이에게도 ‘어쩌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사실 키포인트는 ‘우리의 마음속에 신앙이 있는가?’이다. 신앙이 올바르면 취하고 버릴 것을 안다. 선악을 알게 되면 풍요는 바로 축복이지 냄새나는 욕망의 산물이 아니다. 인터넷 역시 시간을 죽이는 미친 짓이 아니라 지식이 오고가는 정보의 바다가 되는 것이다.

유행,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유행’이란 사실 단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매년 새로운 것이 유행한다. ‘유행’이란 말뜻 그대로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다. 젊은이들은 그 속에서 청춘을 낭비한다. 그래서 뭐가 뭔지 곤혹스럽고, 그래서 신체 나이보다 먼저 늙어버리고, 그래서 ‘늙어버린 청춘’을 한탄한다. 현실 속에서 유행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적어도 유행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마치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헨리밀러(HENRY MILLER)는 정욕에 대해 대담하게 묘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많은 새내기 작가들이 그를 스승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단지 외형적인 모습(육체의 표현)만 배우고, 밀러의 정신적인 측면은 아주 소홀히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러는 《심령의 지혜》라는 글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천년 동안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진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형식만을 추구해 왔으며, 지식으로부터 지혜를 뽑아내려고 시도했지, 자연을 받아들이거나 또 그 법칙에 따라 생활하진 않았다.’(중국인민대학출판사, 2004년 1월 제1판, p.32)

그는 다양한 ‘형식’을 제기하였는데, 회백색의 창백하고 생명이 없는 ‘유행’ 역시 그중 한가지다. 밀러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진실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절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쫒아 다니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의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불타오른다. 그것은 밝게 빛나는 인생이다.”(p.34)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는 삶은 밝게 빛나는 삶이다. 회백색의 유행색들은 구름이나 연기처럼 금방 사라지고 만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도서 1장 8절~11절)라고 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 유행하는 놀이나 물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왔다. “오직 땅 만이 영원하도다."(전도사 1장 4절)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시간동안 우리들이 발밑의 대지를 잊고, 욕망의 날개에 맡겨 바람 부는 대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비상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단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글쓴이는 안후이(安徽) 출신으로 현재 뉴저지주에 거주하며, 통계분석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작가이다.  

출처/www.oc.org
번역/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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