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쓰촨성(四川省) 청뚜(成都)에서 시작된 반일 시위는 점점 거세어져서 4월 16일 상하이 중심가에서 벌어진 시위는 투석 등 폭력양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날의 시위에는 5만 여 명이 모여 일본 총영사관에 보도블록을 깬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페인트로 얼룩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시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항의도 점점 격렬해지고 있는데 중국은 일관되게 ?원인제공자는 바로 귀국?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시위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86년 전에 있었던 오사운동(5·4 運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이 시위의 원인을 제공한 점이 같고 시위의 양상이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침략을 시작하여 칭다오(靑島)점령, 21개조 요구, 니시하라차관(西原借款) 및 중일공동방위협정 체결 강요 등 일연의 압박조치들로 중국의 목을 조였습니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의 학생들은 이와 같은 침략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켰고 이것은 중국민중 전체의 애국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켰고, 6월에는 학생과 노동자와 상점의 동맹파업인 삼파투쟁(三罷鬪爭)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오사운동은 중국교회에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1850년), 의화단 사건(義和團, 1900년) 등으로 서서히 형성되던 반기독교의 기류는 오사운동을 고비로 더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1922년에는 세계기독교학생연맹(KSCF)대회의 베이징 개최를 반대하기 위해 비기독교학생동맹이 결성되었고, 1925년의 5월 30일에는 반제국주의와 관련된 반교(反敎) 사건으로 꼽히는 5?30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사운동은 신문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는데 신문화운동은 종교에 대한 거센 비판을 야기하였습니다. ?현대세계에서 종교는 그 필요성을 가지고 있나??, ?새 중국은 종교가 필요한가??이런 주제의 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신문화운동의 비종교전통은 중국공산당에 계승되어 중국공산당이 중심이 된 비기운동(非基運動)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중국교회사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오사운동 때 일본과 군벌정부를 향했던 규탄의 파편이 교회에도 튀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주요한 원인은 잘 아는 대로 교회가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중국정부는 반일 시위가 중국정부를 향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사운동 때와 같은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항일 시위가 반교시위로 연결될 가능성은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은 기독교국가가 아니며, 중국교회는 중국정부 수립 이후 외세와 절연된 애국애교의 중국적 기독교가 되기 위해 자의든 타의든,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물결은 바위에 부딪혀야 더 거세지고 강한 힘을 가지고 다시 달려드는 법인데 지금의 중국교회가 과연 바위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가 하는 점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의 사태가 86년 전과는 달리 교회에 유익을 가져다주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모리슨(Robert Morrison, 馬禮遜)선교사의 1807년 9월 4일 마카오 상륙을 기점으로 계산해서 중국 기독교 200년이 되는 해를 앞두고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번 여름호는 단기선교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중국단기선교를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 특집이 계기가 되어 중국단기선교를 떠나는 분들이나 단체도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유관지ㅣ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호서대 겸임교수,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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