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눈물 속에서 레슬리 모습을 봤습니다.
이 영화 찍으면서 많이 힘들었다던 레슬리 생각에 처음으로 공포영화를 울면서 봤습니다.
정말 당신은 빈틈이 없군요.
짐인지 레슬리인지 착각을 할 정도로 아직도 당신의 슬픈 눈빛이 눈에 선하네요.
저렇게 살아있는데 저렇게 웃고 있는데 어딘가에 레슬리가 있을 것만 같은데 레슬리의 마지막 영화라니요?
레슬리의 연기는..언제나 기대 이상입니다.
다신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게요.
<이도공간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한국인 팬이 남긴글>
한국인에게 장국영은 특별하다
지난 4월 1일, 장국영이 홍콩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스포츠신문들과 TV의 연예 담당 프로그램에서는 이 사건을 보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홍콩에 특파원을 급파하는가 하면 경제나 정치 뉴스를 주로 담당한 홍콩주재 기자들은 난데없이 연예부기자가 되어야 했다. 서울에 있는 본사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국영 팬클럽 회원들의 애도하는 모습을 취재하는가 하면 주말저녁 영화프로그램들은 장국영의 추모특집 영화들을 서둘러 방영하기도 했다. 1956년 9월 12일생이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47세. 항상 미소년같은 이미지를 가진데다 여전히 왕성한 연예활동을 하는 배우겸 가수로서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한국의 젊은 팬들, 특히 20대 전후의 여성들이 중심인 장국영 팬클럽 회원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임을 갖는 한편으로 서울 근교의 한 사찰을 빌려서 천도재(薦度齋)를 올리기도 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른다는 이 불교의식에 참가한 2백여명의 팬들은 헌화에 이어 편지낭독 등의 순서를 가지며 스타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이같은 추모행사가 열리게된 배경이 장궈룽의 마지막 영화로 기록된 <이도공간>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계획된 일종의 마켓팅전략의 일환일지 모른다는 일부의 비판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외국 영화배우의 죽음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이토록 안타까워했던 전례가 없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한국인이 홍콩의 중국인들 못지 않게 장국영의 죽음과 관련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그동안 한국에서 개봉된 그의 영화들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이 대단히 호의적이었다는 점이다.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에 이어서 개봉된 천녀유혼(倩女幽魂,1987)이나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 그리고 해피투게더(春光乍洩, 1997)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 가운데 상당수는 예외없이 수입되었고 그 때마다 큰 관심을 끌었었다.
둘째,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우며 부드러운 이미지가 여성 팬의 모성애 본능 혹은 연인취향을 자극했다는 점을 아울러 들 수 있다. <영웅본색>에서 그는 주윤발과 같은 싸움꾼으로 나오지 않는다. 암흑가를 배경으로 만든 갱스터 무비에서 조차 그는 난폭해질 수 없는 입장이다. <천녀유혼>에서 자매 귀신의 사랑의 대상이 될 때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물정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를 것 같은 얌전한 선비의 모습은 그가 다른 영화 속에서도 보여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이미지의 반영이며 그의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항상 옆에서 그를 도와주고 싶은 연민의 감정과 아울로 애정을 기울이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은 배우의 인기도를 밝히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바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 7월 20일까지 영화 전문 채널인 OCN이 무비스트, 씨네21 등 영화 전문사이트와 함께 네티즌 3만 9천655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100대 배우'를 5명씩 고르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는 외국 배우로서는 장국영(5천842표/3.3%)이 10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위치를 찾고 싶은 혼돈의 인간상
장국영의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은 그의 전형적인 부드러움과 연약함, 그리고 남에게 나쁜짓을 할 줄 모르는 착함과 순수함이 초자연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발휘되고 있는 장국영 다운 영화로 볼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인 짐(張國榮 분)에게 찾아온 젊은 여인 얀(林嘉欣 분)은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 귀신을 본다며 의사에게 치료해달라고 호소한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단지 인간의 뇌에 담긴 정보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서가 불안할 때 발현될 수 있는 정신현상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의사 짐. 짐은 얀에게 이것이 주변에서 귀신 이야기를 듣는 바람에 생긴 일이며, 스스로 만들어낸 사건임을 주지시키지만, 그 역시 귀신을 경험하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얀이나 짐 모두에게 일어난 귀신 소동은 모두 과거 자신의 아픈 상처가 치료되지 않은 상태로 잠복해 있다가 기억되면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영화는 매우 복잡할 수 있는 정신현상을 과거에 대한 상처가 일으키는 환상이라는 서구의 합리적인 접근에서 점차 극히 동양적인 정서인 원한의 관점으로 옮겨오고 있다. 즉 짐이 영화 끝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귀신은 그가 십대 때 첫사랑의 상처를 입고 죽은 여자친구였던 것이다. 촬영기법이나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 공포영화지만 장국영이 지금까지 나왔던 귀신영화가 그렇듯이 무조건적인 무서움으로 일관하지는 않는다.
<천녀유혼>이 중국 무술과 멜로드라마가 깊이 관여한 귀극(鬼劇)이었다면 <이도공간>은 죽은 여자에 대한 남자의 미안함과 슬픔이 배어나는 심리극이며 공포물과의 혼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혼령에게 쫓겨 빌딩 옥상에서 죽기를 소원하면서 "지금까지 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서양의 공포물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매우 동양적인 표현이다. 인간미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잔인한 살인으로 일관하는 할리우드의 공포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란 뜻이다. 단순한 복수나 무조건적 응징으로 결론을 짓지 않고 회한과 용서라는 카타르시스가 대단원을 장식하게 된다. 혹 이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은 장국영의 자살과 연관시키면서 영화 속 장면처럼 장국영이 자살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 장국영은 자살하지도 귀신에 의해 죽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장국영의 자살과 영화 <이도공간>과의 연관성을 무시하려고해도 그럴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라고 고백한 대사가 그의 삶과 그의 영화 인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삶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혼돈에 빠져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불행한 어린 시절과 스타가 되고 난 뒤에도 가족이라는 기본적인 사랑의 터전을 이루고 살지 못한 인생은 그가 고독과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음을 뜻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가족 없이 일의 성취감만을 통해 얻는다는 것은 인기의 부침(浮沈)이 심한 연예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 그는 지난 2000년도에 자신이 쌍성(雙性)연애자, 즉 양성연애자임을 공식적으로 고백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장국영은 세 명의 연인이 있었는데 그 중에 둘은 여성이며 또 한명은 이번 자살 사건을 통해 알려진 남성이었다.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 실연을 당했을 겪는 아픔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동성애자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훨씬 심하다고 한다. 아무리 자유와 개방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사회의 편견을 초월해서 사랑을 나눠야하는 만큼 그것이 실패했을 때의 상실감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성정체감으로부터 소외되고 가족과 단절한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실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은 이미 <패왕별희>에서 동료 경극배우를 사랑하는 여성적인 인물 데이를 통해서나 <해피투게더>에서 고독한 영혼을 가진 동성애자 보영 역에서 익히 보아왔던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였다. 그는 연기를 통해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고독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감각을 일깨우는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성공은 했지만 그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만한 어떤 능력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는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착하지만 유약한 존재였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여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33:20)라는 한 말씀을 해주는 사람이 옆에만 있었더라도 그의 인생과 영화는 변했을텐데.
강진구 /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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