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이 북한핵 해결구도에 있어 외교 교섭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7월 12-15일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을 북한에 파견한 데 이어 16일 리자오싱 외교부장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북중 협의 결과를 전달하고 다자대화에 대한 중국 및 북한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미국 행정부 관리들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식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시사했다는 워싱턴 포스터 보도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1일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일련의 중국의 중재노력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통보, 제 2 핵시설 건설 정보 등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우선 3자회담을 한 뒤 한국, 일본 등이 참가하는 5자회담으로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엿보이고 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막을 수 있는 지구상의 가장 효과적인 국가는 중국이라는 것을 보여 준 사안이다.
이번 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3박4일간 중국방문 내용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판단하고자 한다.
외교력 부재 노출시킨 한국 외교 현실
노 대통령의 방중결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집약할 수 있다. 노 대통령 주변에 중국통과 중국 내 ‘라오펑어유(老朋友)’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정점으로 한 제4세대 최고지도부와 골고루 안면을 트면서 양국간의 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고 경제적 실익을 거둘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양국 정상은 IT BT NT 등 미래기술 분야의 협력은 물론 중국의 전력산업, 자원 개발,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도 건설, 서부대개발 사업 등 ‘10대 협력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5년 뒤 교역규모를 1,000억 달러까지 확대키로 합의했다. 청두(成都)에 한국 총영사관을 설치하는 데도 합의, 한국은 서부 대개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반면, 중국은 한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서구 및 일본 자본의 후속 유치 유인책을 마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처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입장이 상당히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이 중국과 코드를 맞추는 데 힘쓴 반면, 중국은 완벽한 ‘투구’로 완승을 거둔 것이다. 특히 오는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3’회의 기간 중 열릴 한국, 중국, 일본 3국간 정상회의에서 ‘한 중 일 경제협력 공동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을 주목해 해라. 이는 중국이 추진해 온 한․중․일 자유무역지대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한 일본, 남북한 등을 아우르는 자유무역지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이번 방중외교에서 석연치 않은 것은 무엇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의 한 국의 전략과 전술의 부족을 드러낸 점이다. 더욱이 외교 안보 홍보팀 내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면을 보여 국제적인 망신까지 자초했다. 중국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외교 안보 팀은 들떠 있었다. (한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확대 다자 회담을 위해 한․중 양국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며. 한중 정상회담 후 이는 당사자 회담 등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외교적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 해프닝이다.
7월 8일 발표된 한중 공동성명 4항을 보면 “양측은 북경회담으로부터 시작된 대화의 모멘텀이 지속돼 나가고, 정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하였다”고 돼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중국 측은 한국 측이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완화를 위해 취해 온 긍정적인 조치들을 평가하고, 한국 측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는 것을 지지하였다”고 돼 있다. 여기에 중국의 입장과 의도가 녹아져 있었다.
이는 곧바로 중국 외교부 쿵취안 대변인의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나타났다.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당연히 당사자에 해당한다. 북핵 문제가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중요 사안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일본과 러시아도 당사자라고 볼 수 있다. 즉 중국이 기존의 3자 회담에 한국․일본․러시아가 추가로 참여하는 6자회담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움직임으로 다이빙궈 외교부 수석 부부장의 대북특사설이 나왔다. 결국 다이 부부장이 12일 북한에 특사로 파견돼 베이징에서 우선 3자회담, 후속 다자회담을 개최토록 하는 로드맵으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압박했다. 어쩌면 결과론적으로 노 대통령이 북한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며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적인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이제 노 대통령의 대북해법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노 대통령의 북핵해법은 자칫 우왕좌왕한 것으로 비쳐졌다. 지난 5월 미국 방문 때 ‘위험 증대시 대북 추가조치 검토’에 합의했고 6월 일본방문에서는 ‘대화와 압력’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미국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대북 유화책을 더욱 선호하고 있었음이 이번에 중국 카드에 이끌려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자신감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북한의 태도가 대미 강경논조를 유지, 또는 확대하는 듯하면서도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됐음을 군데군데 감지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계속해서 대북강경 노선을 고집할 경우 차제에 어떻게 대응하겠느냐이다.
중국 카드를 이용해 실리를 찾아라
중국은 압력보다는 대화를 중시해 왔다. 미국과 일본과는 판이하게 다른 입장이다. 대북 압력은 북한의 신경을 돋궈 오히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기운을 송두리채 빼앗을 수 있다는 논리다. 중국을 이끌어 가는 제4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중국의 요지부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혁세대인 제4세대 지도부는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세력균형이론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는 마오쩌둥의 1인독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적당한 갈등은 균형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극단은 파국으로 이를 수 있다고 중국지도부는 역사적으로 체득했다.
물론 후 주석 등 제4세대 지도부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장쩌민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제3세대의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이 미덥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재적인 위험요소인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불을 보듯 뻔하고 대만도 핵무기 개발을 서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관측통들은 현재 북한의 핵보유 저지에 더욱 다급한 측은 바로 중국이며, 따라서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진단했다.
후 주석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조선(북한)의 안보 우려도 진지하게 고려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고 한 점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이는 미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군사위협을 빌미로 동북아 지역에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추진하는 데에 대한 견제구이다. 즉 북한이 안보 우려를 해소해 군사위협이 사라진다면 미국의 MD 구축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한미 군사동맹에 묶여있는 한국을 중국의 입장에 동조시키면 한미 간의 균열을 가져오며 일본의 군사대국화도 막을 수 있는 고도의 수가 함께 고려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치열한 신경전에 북핵문제가 볼모가 되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로 실질적으로 ‘중국위협론’에 따른 중국 봉쇄에 나서기 위한 방안, 즉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시켜 나가는 반면, 중국은 뻔히 보이는 수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북한카드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란 것도 중국 측의 고단수가 숨어 있다. 동북아시대를 열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부시 행정부가 의도하는 대(對)중국 포위망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 북핵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외관계에 있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미국, 일본, 중국을 만날 때마다 상이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외교대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련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현재 외교안보팀이 정확하게 백신들을 마련하지 않고 어중간한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쌓아 놓은 외교력까지 깎아 먹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어느 때는 외교적으로 모호함을 견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있어 자신의 틀을 갖고 자주적이면서도 주변 강대국들의 체면을 세워 줄 수 있는 냉정함이 요청된다. 방중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한국은 줄타기 외교의 전형을 보여줬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 인상을 주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북핵문제에 대한 자주권도 생각해 볼 시점이다.
노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 말을 생각해 보자. “미래를 향해 뛰고 있는 중국을 우리가 동북아 경제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를 갖춰 나간다면 중국의 개방과 성장은 우리에게 더 큰 시장, 더 큰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며 나아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앞당겨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적 미숙과 혼선에 따른 논란으로 인해 정상외교가 상처를 입게 된 것은 아쉽지만 한편으로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은 중국카드가 대북, 대미 관계에 있어 적잖은 위력이 있음이 재차 드러난 점이다. 중국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미국을 다룰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단기,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한중 간 기본인식은 같을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명시적 지지입장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북한을 배려해야 하는 중국 입장을 통해 한국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다. 경수로사업 중단 거론,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추진 등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기류에 중국의 입을 빌려 평화적 해결과 대화 유지를 역설한 것도, 공동성명을 통해 “정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는 것으로 북한이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하다. 중국 측에 북핵문제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제공한다면 북한의 결단도 빨라질 수 있다.
함태경/ 국민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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