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사라면 누구나 가져야 되는 안식년!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교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의 안식년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유럽 선교사들에 비하면 아주 미흡하다. 대부분 선교단체 소속이나 총회 소속으로 나간 선교사들은 4년이나 5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안식년을 갖는 반면에, 교회 소속으로 나간 선교사들은 파송한 교회가 선교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안식년을 갖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도 교회 파송 선교사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안식년을 가지라고 하지 않으면 가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안식년을 갖는 선교사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선교지에 나와 1년이 지나면서 나의 몸과 선교지의 기후가 맞질 않아 몸에 찬바람이 들어오는 병에 걸렸다. 내가 있는 지역은 4계절이 우리나라의 봄, 가을 같은 날씨여서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결코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특히 겨울을 지낼 때는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솜바지는 물론이고 바지를 서너 벌씩 끼워 입어야만 겨울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4년 반을 지내고 사정상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나에게 안식년이 없는 대신 하나님께서 지역을 옮겨 주시는가보다 생각했다. 옮긴 선교지도 역시 따뜻한 지역이었지만 습도가 높아서 체감온도가 먼저 있던 지역보다는 몇 배나 더 낮아, 겨울이 되면 먼저 있던 지역보다 훨씬 추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습한 추위가 뼈 속을 파고들어 와 뼈 마디마디가 시려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고통스런 나날들이었다. 게다가 허리디스크가 있어 늘 허리에 통증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으니 그 고충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파송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선교지를 방문하셔서 그러한 상황들을 알게 되었고 건강이 좋질 않으니 좀 쉬라고 하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니, 나도 안식년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구나 싶어 정말 꿈만 같았다.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건강진단을 했다. 그런데 건강진단상 별로 그렇게 문제 될 만한 것은 없었고, 단지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고 골다공증 증세가 조금 보이니까 그것만 조금 조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몸이 아파서 통증을 느끼는 데도 진단결과 아무 이상이 없고, 몸으로 찬바람 들어오는 것 역시 사진으로 나타나질 않고 특별히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긴 건강이라는 것이 진단으로만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특별히 치료하는 시간을 갖질 않아도 되었다. 대신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내게 안식년을 주셔서 성경을 공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선교지에 있으면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갈급했던 것은 성경 말씀이었다. 선교지에서는 본국하고 달라서 공부할 기회가 많질 않고, 선교사들끼리도 같은 단체가 아니면 서로 만나서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안식년을 갖게 되면 성경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성경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에 에스라 성경 연구원을 알게 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곳은 숙식이 제공이 될 뿐 아니라 10개월 동안 신․구약 42권을 공부하고 월~금요일까지 수업을 한다. 에스라에 입학하기 전에 에스라의 선배에게 에스라에서 공부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 선배가 말하기를 “교회를 섬기면서 공부하는 분들은 조금 벅차 하니까 에스라에서 공부할 동안은 사역을 내려놓으시고 전적으로 성경 연구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습니다.”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만, 나 자신도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던 중 중국어문선교회를 들렀을 때 예전부터 친분관계가 있던 정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국내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10여 년 사역을 해 오시는 분이다. 그가 내게 요청하기를 안식년 동안에 안산 중국인 교회에 와서 좀 섬길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조금은 망설이면서 대답하기를 너무 멀어서(학교에서 안산 중국인 교회까지 총 소요 시간이 3시간이었다) 조금 곤란하다고 했더니, 그럼 가끔 와서 설교를 하라고 해서 그럼 그것은 할 수 있겠다고 대답하고 안산 중국인 교회를 가게 되었다. 교회를 갓 개척한 상태이어서 여러 가지로 체계가 잡히지 않은 데다가 사역자들은 몇 명 있었지만 정작 중국어로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은 정 선교사 한 분뿐이었다. 참으로 딱한 형편을 보면서 내 마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 먼 곳까지 계속 와야 되나 아니면 가끔 와서 도와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마침 학교에서는 요나서를 배우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뜻은 요나가 니느웨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인데,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갖고 고집을 부리면서 하나님과 평행선을 걷고 있는 요나(참고 거꾸로 읽는 요나서, 저자 : 이진섭)를 보면서 한국에 와서 성경 연구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중국인들을 주께로 잘 인도하는 것인데, 공부라는 것을 핑계삼아 요나와 같이 내 마음대로 주어진 현재의 사명을 회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매 주일 안산에 가서 중국인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중국인 교회를 섬기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은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한순간 순간들이었다. 주일에는 안산 역에 나가서 전도를 해 사람들을 데려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면 사역자들이 직접 저녁을 해서 주고,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기도회까지 마치고 나면 어떤 때는 저녁 9시가 되어 그야말로 진이 쏙 빠져 돌아갈 힘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3시간을 갈까 정말 꿈만 같을 때도 있었다. 특히 설교가 있는 날은 허리가 안 좋은 관계로 더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갈수록 중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낙으로 힘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다음 주일이 되면 오늘은 중국인들이 얼마나 와서 예배를 드릴까라는 기대감으로 다시 먼길을 향해 가곤 했다.
어느 날은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30여 명밖에 되질 않아 그 인원 수만큼 저녁을 준비했는데, 밥을 먹을 때가 되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사역자들은 쫄쫄 굶었던 기억도 난다. 쫄쫄 굶어서 배는 고팠을지라도 그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더라도 밥 먹는 시간만큼이라도 기억해서 찾아와 식사를 하고 간다는 것이 그저 고맙기도 했다. 밥만 먹으러 왔던 사람들이 언젠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예배를 드릴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났는데 어느 형제가 내 설교를 듣고 나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는 고백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기뻤다. 비록 유창한 중국어는 아니더라도 나의 어눌한 중국어의 설교가 그의 가슴을 흔들었구나.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후로 그 형제는 예배 중간에 절대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었고 예배시간 전에 도착해서 우리의 하는 일도 기쁨으로 도와 주었고, 자기 회사의 친구들을 전도를 해서 주일 날 그들을 데려와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 양육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석해서 나와 함께 성경 공부를 했다. 그리고 비자 만기가 되어 대륙으로 가게 되었는데 대륙에서도 매 주일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또, 한 형제는 안산에서 전도를 하다가 만났는데 자기가 한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교회 사람들은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순순히 저를 따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매주일 나하고 성경 공부를 했고 세례까지 받았다.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헛되게 보내지 않았음을 지금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엔 솔직히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날이 갈수록 그들의 신앙이 조금씩이나마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힘든 가운데서도 중국인을 섬기게 하신 것은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안식년에 한국에 와서 중국인 사역을 계속하지 않았다면 그간에 배운 중국어도 많이 잃어버렸을 것인데 하나님은 내게 기회를 주셔서 중국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중국어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셨고, 전도를 통해서 영혼도 구원하게 해주시고 전도한 영혼들을 양육도 하게 하셨다. 안식년에 중국인을 잘 섬길 수 있었던 것은 1년 동안 같이 사역했던 동역자들이 겸손함으로 서로를 잘 섬겼기 때문이다. 특히 설날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는 한국에 있는 근로자 사역하시는 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중국인을 섬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빌려 나를 파송한 교회와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안식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전적으로 도와주었고 주일에는 중국인을 마음껏 섬길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기 때문에 위의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영광을 우리 주님께 돌려 드린다.
주애화 / 중국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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