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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20 통권 81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조승기 감독의 ‘첨언밀어(甛言蜜語)’
상처받은 영혼들은 어떻게 사랑할까?

사랑과 커뮤니케이션
사랑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 가운데 대인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을 중심으로 언급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란 근본적으로 말하는 화자(話者)와 듣는 청자(聽者) 사이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원리와 구조를 다루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는 물론 화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청자에게 전달되어 청자가 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따른 온당한 피드백(feedback)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한번 소통된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원활하게 반복될 때 화자와 청자간에는 의미 있고 유익한 삶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원리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학생들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강의하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시험 답안지에 엉뚱한 답안을 쓰는 일도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이다. 주일 예배시간에도 커뮤니케이션의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 설교가 청중의 귀에 잘 들어오지 못하거나 자꾸 딴생각이 든다면 이 역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으로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결과로 귀착되곤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란 감정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적절한 언어적 수단이 남녀 서로간에 제대로 소통되지 못할 경우에는 오해와 다툼 그리고 끝내 헤어짐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반면, 서로를 향한 마음의 진실함이 온전히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결혼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요건들을 살펴보면 성공하는 남녀간의 애정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피드백(Feedback)이다. 피드백이란 내가 말하고 표현한 것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일을 말한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사랑하는 혹은 좋아하는 표현을 했을 때 피드백이 없다면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반응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채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나오는 피드백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만 그 다음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결정될 수 있다.

두번째는 적절성(Appropriacy)이다. 아무리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폭발직전에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적절성이 필요하다. 이 때의 적절함이란 자신의 메시지가 때와 장소 같은 주변상황에 대한 적절성을 포함하여, 상대방의 생활배경이나 경험 그리고 평소 잘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들을 고려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는 효율성(Efficiency)이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것을 말한다. 짧은 시간 안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면 두 사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은 대단히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효율성을 기대하기 위해서 사랑의 메신저들은 누구를 통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무작정 오래 만나고 함께 있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최소의 시간내에 최대한의 서로에 대한 지식과 감정을 나누고 전달하기 위한 전략도 필요한 법이다.

네번째는 융통성(Flexibility)이다. 대개의 경우 융통성에 반대되는 사람을 우리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말한다. 융통성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순간 순간 바뀔 때마다 적절하게 대치하는 능력을 말한다. 남녀가 관심 있는 만남을 지속하려 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예상된 반응이 않을 때 당황하지 않고 새롭게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능력이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법이다. 유머 감각은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상처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不在)를 낳는다
조승기 감독의 1977년 작품인 〈첨언밀어(甛言蜜語)〉는 이미 전해에 발표된 진가신 감독의 흥행작 〈첨밀밀(甛蜜蜜)〉의 아류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꿀처럼 달콤한 말들의 향연은 아닐지라도 남녀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한 음악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 있다. 〈첨밀밀〉에는 대만의 유명한 여가수 등려군의 첫 히트곡인 ‘첨밀밀’이 영화속 남녀 주인공의 만남의 장면에 흐르고 있다면, 〈첨언밀어〉에는 미국의 올드 팝송이라 할 수 있는 ‘Sealed  With A Kiss’가 보는 이의 귀에 맴돌 만큼 자주 들려진다. 그러나 사실 〈첨언밀어〉는 〈첨밀밀〉과는 다른 영화다. 〈첨밀밀〉이 상해로부터 시작하여 홍콩과 뉴욕에 도달하는 남녀의 운명적 행로와 만남의 행복을 그렸다면, 〈첨언밀어〉는 도시에서 온 실연한 여성과 섬 바닷가에 사는 언어장애를 가진 시골 청년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의적이며 타의적인 사랑의 불소통(不疏通)을 그리고 있다.

남자에게 채였지만 여전히 남자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 채 섬으로 도망을 나온 여주인공이 묵게 된 민박집에는 동네의 싸움꾼이자 언어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 금수가 살고 있다. 삐삐와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도시적 이미지의 여주인공은 바닷가에서 샌드백을 두들기고 거친 남자 주인공의 자연적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며 평행선을 타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통역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쉽지 않은 여주인공의 모습은 한집에 머물지만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 즉 두 사람간의 평행적 만남을 예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한 관심은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남자주인공은 여성이 자신에게 어떻게 피드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부족했다. 여자는 섬을 떠났다가 다시 나타나 남자 주인공이 운영하는 가게 2층의 민박을 이용한다. 남자 주인공은 이를 기뻐하며 여주인공이 원하는 일을 해주고 싶어한다. 비록 그것이 여자가 맘에 든다고 말한 소방대원을 쫓아가서 여자와 사귈 것을 재촉하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지만 말이다. 여자의 잠자는 모습에 반해서 볼에 입을 맞출 때 여자는 모르는 척 잠자는 시늉을 하고, 남자에게 선물을 주는 등 연인 관계의 초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피드백이 전달되지만 남자에게는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적절성과 효율성을 모두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아름다운 바닷가와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를 향해 매달린 샌드백은 남자 주인공이 지닌 고독과 남성성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여성에게는 실연당한 사람이 새로운 남성을 이해하고 새로운 사람을 향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닷가라는 공간과 여주인공이 도시를 떠나 잠시 나와있는 시간이야말로 남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적절성을 잃어버린 커뮤니케이션은 성사되기가 힘든 법이다. 시간은 흘러 영화는 3년 뒤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때서야 비로소 여주인공의 마을을 읽어버린 남자가 전화를 하고 육지로 찾아 나서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 여자는 이미 결혼했고 평소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동네 불량배의 칼에 찔리는 비극을 맞게 된다. 영화는 이 소통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말을 못하는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의 전화 속으로 주제가인 ‘Sealed  With A Kiss’를 하모니카로 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슬픈 결말일 뿐이다.

비록 두 남녀의 사랑은 행복으로 연계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두가지의 의미 있는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는 사랑은 사람을 분명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영화 첫장면부터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일로 삼던 남자주인공은 사랑을 하게 되면서부터 공격적 행동을 삼가하게 된다. 비록 자기를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른 상황에서 조차 남자주인공은 인내할 줄도 안다. 사랑이 사람의 습관을 행동양식 전반에 끼치는 변화의 긍정적 속성을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결정적으로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한 데에는 두려움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거나 자기가 채일 수 있다는 두려움은 남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제한시켜 버리고 말았다.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과소 평가해버리고 만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요일 4:18)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강진구 |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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