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中 –마틴루터 킹- 나라도 쓰시겠다면 나를 보내소서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가장 흥분되었던 것은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꿈 즉, 비전이었다. 이전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에 대한 비전, 그것은 이미 세상에서 얻고 싶었던 성취감과 욕망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사람을 얻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 -사람 낚는 어부- 그 비전을 향해 주님은 나를 이끌어 가셨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은 내가 주님을 믿기 전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관심이 없는 나라였다. 복음으로 변화된 나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선교에 눈을 뜨게 되면서,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나라도 쓰시겠다면 나를 보내소서”라고 헌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곳을 보게 하셨고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중국을 품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음을 보면서 나도 함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 거대한 대륙의 잠재성 –무엇보다 13억의 인구- 을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1년의 짧은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기로 결심했고 난생 처음 중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현지에서 나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했다. 중국의 어느 대학에서 유학하며 아침에는 중국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자유시간을 가지며 개인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평범한 일상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남들이 알 수 없는 일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온 다른 학생 2명과 선교사님 1분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겉으로는 유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몰래 우리의 과업(?)을 진행시켜 나갔다. 학교 기숙사 안에서 살았던 우리는 매일 새벽 5시에 눈을 떠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다른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학교를 돌며, 눈을 감을 순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뜨거운 기도를 드렸다. 여호수아처럼 “건물 하나 하나에 주님이 역사 하시기를, 이 건물에서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 문이 열리게 하소서. 학생들 마음을 가리고 있는 마르크스의 혼미한 사상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게 하소서.”
운동장를 돌 때에는 “언젠가는 이곳에 주님을 믿는 학생들이 이곳을 가득 매어 주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소서. 점심시간 때마다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소서.” 아침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만토(빵-학생들의 아침식사)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며 소리낼 수 없지만 마음속에선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오후에는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그들의 기숙사로 찾아갔다. 처음엔 5마디의 문장을 외워가서 20명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쉽게 복음을 전할 순 없지만 몇 번 만나면서 어느 정도 관계 형성이 된 친구들에게는 날을 잡아서 “예수 영화”를 보여주며 반응을 묻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친구들의 마음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친구는 냉정하게 공산당에 입당한 후라 더 이상 종교를 가질 수 없기에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 몇 달을 만나면서 기도했던 친구인데 그런 말을 들었을 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인정하며 열심히 기도했을 때,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몇 달 전 한 친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였다.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나에게 4장의 긴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대략은 이러했다. “나는 점점 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며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있고 무엇보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그 친구는 싱가폴에서 열심히 유학중이다.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도 지속적으로 현지 사역에 관심을 가지며 내가 어떤 모습으로든지 도우려고 한다. 그 때 내가 있었던 그 지역은 지금 20명 이상의 제자들이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오는 선교사들의 기도편지는 늘 나를 흥분시키며 그때 현장에서 드렸던 기도의 비전을 상기시킨다. 중국 정부는 올 5월에도 좀더 강력하게 종교법을 제정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지금 그 땅엔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흐르는, 그런 강물 같은 영적인 부흥이 있다.
어떤 지역은 캠퍼스에 현지인 전임사역자가 세워져서 그들에게 이미 지도력이 이양되고 있다. 중국은 방학을 하면 학생들은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려고 대부분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짜에 맞추어 기차표를 끊는다. 그러나 우리의 현지인 제자들은 성경 강해에 참여하기 위해 방학을 하고 5일이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제자는 졸업을 하고 직장에 취업을 한 후에도 전도해서 직장동료를 교회에 데리고 온다. 매년 신년이 시작하기 전에 금식기도를 하는데 처음엔 두려워했던 제자들이 함께 금식하며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여름마다 중국 안에서 순회전도(다른 지역으로 전도하러 가는 것)를 할 때 함께 하는 제자들이 늘고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현지 제자 중에 주변국으로 단기선교를 갔다 온 친구들도 있다. 내가 아는 모 지역은 여자 선교사 한 분이 홀로 몇 년을 열심히 사역하셨다.
그러나 그 지역을 떠날 때 그 선교사님에게 남아 있는 제자는 자매 2명이었다.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떠나고 난 후 그 제자 2명중 한 명이 캠퍼스 전임 사역자로 헌신했다. 지금 그 지역은 몇 십 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다. 내가 그 현지인 사역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현지인 사역자는 나이가 30대 초반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에 잘 믿는 형제는 별로 없고 결혼에 대한 조급한 마음은 없는가?”라고.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물론 집에서(아직 가정이 믿지 않는다) 결혼하라고 성화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 하지만 만약 내 주위에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뜻이 독신이라면 나는 평생 주님을 위해 혼자 살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그녀는 주저함 없이 말했다. 내가 지금도 1년에 한 두 번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 내가 아는 한 그녀는 평생 그럴 사람이다.
하지만 부흥이 일어나는 만큼 영적 전쟁도 심해지고 있다. 사단은 점점 더 이 영적인 부흥을 방해하려고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떤 지역은 선교사들 대부분이 몸이 아파 갑자기 한꺼번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또한 현지인 제자 중에 이단으로 빠지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얼마전 한 지역은 동방번개(중국의 이단)의 일원이 가장하고 몇 년 동안 우리 모임에 참석해 몇 명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을 한꺼번에 빼간 일이 발생해 지금까지도 팀 안에 큰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있어 기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JMS, 통일교 등 현지의 가난한 학생들을 돈으로 유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리고 늘 우리를 긴장시키는 것은 보안의 어려움이다. 공안에게 취조 당한 일도 몇 번 있었다.
이 모든 위기 앞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신다고 확신한다. 그 모든 영적인 전쟁과 견고한 진 앞에 오직 기도만이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드렸던 우리의 꿈, 비전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때가 오면..(이 시는 현장에 있는 어느 선교사의 기도입니다.)
아침 일곱 시 캠퍼스 곳곳에서 찬양이 울려퍼지고 주일에 수업이 없어지며 성탄절도 휴일이 되어 예수탄생을 기뻐하는 새벽송이 울리게 하소서. 마침내 그 때가 오면 모택동 사상 필수과목대신 성경개론을 들로 공산당 입당 신청서가 아닌 세계 복음화 봉사단 신청서를 쓰며 캠퍼스 곳곳에 전도하는 학생들이 보이고 전임 사역자로 헌신하는 현지인 학생들 무릎꿇고 기도하는 학생들의 모습들, 목청껏 찬양하며 회개하는 모습들 자녀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들이 곳곳마다 보이게 하시고 다른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 중국이 되게 하소서.
정은경 | 중국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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