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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20 통권 76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쿵푸(功夫), 축구로 다시 태어나다
-소림축구 少林足球

쿵푸영화- 중국적인, 너무나 중국적인
중국인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외국인의 눈에 비친 중국 영화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쿵푸영화를 통해 드러난다. 마치 무용을 하듯 부드럽고 현란한 몸 동작하며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자태를 흉내낸 우아한 동작들은 무술이라기 보다는 무용에 가깝다. 사실 서양인들에게 쿵푸는 예술 혹은 서커스의 한 장면처럼 비취지기도 한다.

쿵푸란 광둥(廣東)성이나 푸젠(福建)성 등 중국 남방 출신 사람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권법(拳法)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기본적인 직립자세를 비롯하여 개구리 ∙ 용 ∙ 뱀 ∙말 등 5가지 동물의 자세를 흉내 내어 순발력이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위협적인 몸 동작을 연출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쿵푸영화에 꼭 등장하는 것이 소림사(小林寺)인데, 그것은 여러 권법 가운데서 소림사 권법이 명나라 때 군인들의 무술 훈련으로 사용할 만큼 유명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중국에 선(禪) 불교를 전한 달마대사가 이 소림사 권법을 전했다는 말도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오히려 쿵푸의 가치를 중국에 전래된 불교의 역사에 기대어 권위 있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동양의 무술들이 그러하듯이 쿵푸 또한 단순히 적을 제압하는 기술보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수련법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 또한 쿵푸영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수련의 정도가 높을수록 높은 수준의 쿵푸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인격의 정도와도 상당 부분 비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쿵푸영화가 헐리우드의 액션영화와 같이 각종의 무기를 써 가면서 무차별적인 공격 일변도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차별화 된다. 우리가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칼을 쓰는 무협영화와 쿵푸영화는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쿵푸영화는 권법을 썼던 전통과 사찰에서 수행해왔던 수련법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쉽게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검술을 지향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승려들이 들고 다녔던 죽장(竹杖)을 쓰는 정도에 불과하다. 쿵푸가 주로 맨손과 발을 이용하여 왔다는 점은 영화에 있어서 다양한 변용을 가능케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즉 칼을 쓰는 무협영화가 근대화 이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적 제한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약간의 멜로성 사랑 얘기가 첨부되거나 설사 초시간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편과 저쪽 편의 칼 싸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반면, 쿵푸는 코믹, 액션은 물론 멜로 드라마나 범죄영화 등으로의 다양한 접목과 변용이 자유롭다 하겠다.

특히 쿵푸의 변용은 도시적이며 현대적인 배경 속에서도 잘 어울린다. 사실 현대적인 쿵푸의 이미지에 우리가 익숙해진 것은 몇 사람의 걸출한 쿵푸 액션스타가 빛을 발휘한 덕분이다. 물론 쿵푸 스타의 대명사는 단연 리샤오룽(李小龍, 이소룡)이다.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된 〈황비홍(黃飛鴻)〉과 그 속편들이 있었지만, 칼이 아닌 맨손으로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주는 바람에 세계인들에게 쿵푸의 현란한 이미지를 심어준 이는 〈당산대형(唐山大兄)〉, 〈용쟁호투(龍爭虎鬪)〉 등에서 열연한 리샤오룽이었다. 그러나 그는 1973년 7월 〈사망유희(死亡遊戱)〉 촬영 도중 갑작스런 사망으로 전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의 뒤를 이어 나온 쿵푸영화는 청룽(成龍)으로 이어지는 코믹 액션물과 80년대 리리엔제(李連杰 이연걸)로 연계되는 전통 무협극의 리바이벌 작품으로 양분하게 되었다. 청룽과 리리엔제가 세련되고 때로는 심각하며 화려한 쿵푸를 보여주었다면, 이들 사이에서 또 한 사람 저우싱츠(周星馳. 주성치)는 전혀 다른 모습의 쿵푸를 통해 쿵푸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인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과장과 가벼움의 미학
우리나라에서는 청룽이나 리리엔제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했지만, 앞의 두 사람이 이미 헐리우드와 손을 잡고 떠난 자리에 저우싱츠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가 찍은 영화만도 40여 편에 이를 만큼 그의 관록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저우싱츠 영화에 흐르는 쿵푸의 면모는 단연 코미디풍이지만 그 안에는 극도의 과장법과 전혀 심각할 수 없는 가벼움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쿵푸 연기를 하는 자신의 캐릭터 역시 과장과 가벼움의 이미지와 통하도록 촌티가 줄줄 흐르거나 약간 모자란 사람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을 굳혀 놓았다.

최근 개봉되어 홍콩과 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큰 관심을 모은 〈소림축구〉 역시 위와 같은 맥락안에서 읽혀질 수 있는 저우싱츠 특유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소림축구〉의 면모를 밝히는 데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 영화는 축구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월드컵 때문에 모든 이해를 축구를 통해 하려는 의식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선교와 신앙 문제까지도 월드컵 특수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소림축구〉가 축구경기를 소재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축구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축구의 전술인 팀워크, 아니면 숭패와 연관된 인생의 의미 등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저우싱츠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약간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의 등장이다. 소림사 여섯 제자(형제)들의 캐릭터는 쿵푸는 뛰어나지만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하나같이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로 나타난다. 이들이 축구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배운 전통적인 소림무예를 펼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빈둥거리지 않으면 고작해야 슈퍼마켓,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들은, 과거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다리가 부러진 뒤에 부랑자로 떠돌아 다니는 ‘황금 발’ 명봉(우멍다 분)을 만나는 바람에 축구를 통해 자신의 쿵푸를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즉, 축구는 하지만 보여주는 것은 쿵푸일 뿐이다.

둘째, 특수효과가 곁들인 과장된 이미지는 철저히 진실보다는 허구가 주는 오락성에 집요할 만큼 전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쿵푸가 가진 정신적인 세계를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을 웃기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가벼움의 의도가 서려있다 하겠다. 돌풍을 일으키고 잔디구장을 파헤치며 사람을 나뒹굴게 만드는 축구공 차기는 직접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뿐이지 영락없는 저우싱츠식의 과장된 쿵푸 효과들이다. 마치 무협만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소림축구〉의 축구 장면은 과장의 극치를 이룬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관객들에게 ‘내가 축구를 한다면 어디까지 뻥(과장)을 칠 수 있는지 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인생들이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이 묘사된다는 점이다. 화려한 무술을 지녔지만 소외된 ‘따라지 인생’들의 행복찾기는 한국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소위 잘 나가고 잘난 사람들을 향한 복수극이다. 중국의 무협 영화가 그렇듯이 ‘복수’라는 주제는 중국인들에게 ‘정의’라는 단어와 동의어처럼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축구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예전의 황금발로 통하던 명봉의 복수가 이루어지고 소림사 후예들을 비웃었던 세상을 향한 정의도 이루어지는 셈이다.
 

웃는 가운데 생각할만한 것들
우리는 저우싱츠의 영화들이 홍콩은 물론 중국인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재미’라는 어휘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동병상련에서 오는 심리적 일체감과 아울러, 영화 속 주인공의 성공이 가져다 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홍콩이나 중국 본토인 모두 자본주의 물결이 몰고 온 물질의 풍요로움의 한 가운데서 심한 부의 불균형과 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현 체제 방식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자본주의의 모순상이 점차 일상화되어 가는 모습을 중국인들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저우싱츠는 대신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함께 가난했을 때는 알지 못했지만 부의 편차가 생기고 돈이 없을 경우 전혀 대접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소림사의 무술권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림사의 제자들은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용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소림사에서 갈고 닦은 무예가 인격수양과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방편으로 사용되기보다는, 거리에서 차를 쉽게 주차시키고 길을 걷다가 바나나를 밟아도 멋지게 공중회전을 하며 사뿐이 안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소림축구〉는 축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전통을 지키려다 소외된 사람들의 새로운 부흥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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