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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4.20 통권 75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자유와 우울의 연가(戀歌)- 북경녀석들(북경雜種)

그 날을 기억하네 내 마음은 결코 순결하지 않아
나는 바람 속으로 나아가네
가슴에는 원망이 가득하고
언젠가 상처받게 될 걸, 스며드는 이 아픔
우리는 분노의 근원을 찾아야 하네
나는 지나간 것은 생각하지 않아 확실치 않은 과거
바람은 더욱 세게, 고통은 더 심하게
내 마음 속에는 사랑만이 남아 있어
오, 나 자신밖에 의지할 수 없어

나는 바람 속으로 나아가네 그 길이 아무리 멀더라도
왜 분노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나는 지나간 것은 생각하지 않아
몇 년 동안의 바람, 변하며 갈 수밖에
수많은 사람들의 상심, 계속되는 혁명
내 마음 속에는 사랑만이 사랑만이
오, 나 자신밖에 의지할 수 없어

분노의 근원을 찾아야해 나는 바람 속으로 나아가네
희망과 고통으로 상심을 대시해야 해
나는 바람 속으로 나아가네 최후의 원망을 끌어내야 해
나는 바람 속으로 나아가네
앞으로 앞으로 바람을 맞고 앞으로 나아가네

-영화 속 추이젠(崔建)의 노래 ‘최후의 원망’ 중에서-


베이징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젊음들
장위안(張元) 감독의 영화 〈북경녀석들〉은 급속히 개방화되고 도시화된 중국 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젊은이들의 존재와 그들의 새로운 문화를 보여주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형식에 있어서 이 영화는 추이젠(崔建)이라는 중국 최고의 록아티스트를 내세워 록밴드 주변 인물들의 개별적인 삶들이 조각조각 붙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형태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우고 그가 경험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차례대로 늘어놓는 단순한 형식을 취하지 않고, 마땅히 주인공이라 할만한 사람이 없는 가운데, 또한 특별히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만한 어떤 내용도 나타나지 않는 매우 특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에 있어서도 그간 중국 대륙의 영화들이 잘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다. 도시의 주변부에서 별 다른 직업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충동적 성(性)과 사랑, 그리고 강한 사운드의 록밴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중국 영화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동안 중국 영화라면 떠오르는 거대한 자연을 드러내 중국 특유의 영상미나, 수천 년 전통문화를 들춰내어 보여주던 예술감각, 아니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주는 교육적이며 교훈적인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른 영화라 할 수 있다.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대단히 어려운데, 그것은 이 영화가 전통적인 서술구조의  양식, 즉 기승전결이라는 일련의 형태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추이젠을 중심으로 하는 베이징의 한 가난한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는 공연을 코앞에 두고 그동안 빌려쓰던 연습장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다. 밴드의 맴버들과 아는 사이인 친구들 역시 모두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나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가자는 여자친구 모모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낙태를 권유하고, 모모는 그의 곁에서 도망쳐 버린다. 가자는 모모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다 다투며 여전히 모모를 잊지 못한다. 작가 활동을 하던 또 다른 친구는 사기 당한 돈을 되찾기 위해 폭력배들을 동원해 보려 하지만, 술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그것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뚜렷한 직업도 없이 나이든 아내로부터 세 번째 출산 소식을 들어야 하는 한 친구처럼, 가자의 귀에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는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희망의 메아리로 들리기보다는 무거운 가슴을 더욱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다가선다.
 

〈북경녀석들〉을 읽는 세 가지 방법
중국에서는 이 영화가 당국의 허락 없이 외국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상영이 불허되는 소동을 빚었지만, 막상 로카르노 영화제에서는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방황과 자유에 대한 욕구가 동양의 록밴드의 연주와 어울려낸 새로운 조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의 맥을 짚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는 장위안 감독의 영화세계를 알아야 하며, 둘째는 추이젠이라는 중국의 록 아티스트의 실체를 파악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개방된 자유에 관한 중국 사회의 감춰진 현실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장위안 감독은 지난 호에 소개된 〈귀신이 온다〉를 연출한 장원(姜文) 감독과 더불어 영화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로 중국 제6세대 영화 감독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국두〉, 〈붉은 수수밭〉, 〈귀주이야기〉로 토속적이고 서정성 높은 영화를 보여주었던 장이모(張藝謨) 감독이나 〈패왕별희〉의 첸가이거(陳凱歌) 감독이 5세대에 속한다면, 분명 6세대 감독은 그 표현 양식과 주제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5세대가 농촌과 자연, 전통을 주목했다면, 6세대 감독은 도시와 인간, 현대성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표현 방법도 6세대는 TV와 뮤직비디오의 영향을 받은 세대답게 감각적이고 음악에 대한 비중을 높여놓았다. 이같이 5세대와 다른 면모는 장위안이 만든 다른 영화들에서도 나타나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던 1996년 작 〈동궁서궁(東宮西宮)〉은 현대의 동성애에 대한 고찰이 엿보이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진싱파일(Jin Xing Files)〉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중국 최고의 현대무용가 진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였다.

즉 그의 일련의 영화들은, 지금은 유명 인물로 통하지만 과거 같으면 중국 사회에서 소외되었거나 비판받았을 만한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현대사회에서 역시 소외된 젊은이들의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대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둘째, 추이젠이라는 록 아티스트를 영화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 영화의 추이젠과 록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부여받기 위한 시도란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록의 황제’ 혹은 ‘중국 록의 신화’ 로 통하는 추이젠은 진싱과 마찬가지로 조선족 출신의 현대 중국 문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조선족 출신의 인물들을 자주 등장시키는 장위안 감독의 생각 속에는 역시 한족 출신의 주인공을 통해 중국 문화의 중심을 칭송하기보다는, 주변부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통해 중심부에 대항하고 공격하려는 저항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추이젠은 베이징 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였지만, 록음악에 심취한 이후 1980년부터 그룹을 결성, 중국에서 최초로 록을 노래하고 연주한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1899년 그의 첫 공식앨범 〈이우소요우(一無所有)〉의 타이틀곡인 〈이우소요우(아무 것도 없다)〉는 뜻밖에도 같은 해 6월 중국의 민주화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던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시위대들이 일종의 데모가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오우소요우〉의 가사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중국인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이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추이젠 자신도 텐안먼 사태 때 시위 현장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 그가 부르는 록이라는 노래 형식이 지닌 저항 정신이 현실비판적 가사와 더불어 억압된 정치 현실에 대해 도전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체성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그래서 영화 〈북경녀석들〉의 원제목은 ‘북경순종(北京純種)’ 이 아닌 ‘북경잡종(北京雜種)’ 이며 보수적 사회 문화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추이젠과 손을 잡은 것이다.

셋째는 중국 정부가 늘 감추려 애를 쓰면서도 살아 꿈틀대는 중국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현실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급속히 성장한 중국 경제는 도시를 중심으로 일부 국민들에게는 경제의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지만, 여전히 농촌의 살림은 어렵고 도시 빈민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비판과 대안의 토대가 바로 정치적 자유를 통해 나타나야 하는데, 현 정치 체제 하에서는 그러한 자유가 허용되고 있지 않는 형편이다. 거기다 처음에 정치에 대한 자유로 시작한 중국 젊은이들의 욕구는 개방화 시대를 맞아 전통적 가치로부터 벗어나려는 문화의 욕구로 함께 발전해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영화 〈북경녀석들〉의 색깔은 파란색이 주를 이룬다. 파란색의 의미는 이미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가 유럽연합을 기념하여 만든 ‘세 가지색 연작’ 즉 〈블루〉, 〈화이트〉, 〈레드〉에서 나타냈듯이 ‘자유’ 를 뜻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추이젠의 영화 중간에 나와서 노래한 〈최후의 원망〉에 나오는 ‘바람’ 은 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에서 불리었던 ‘자유의 바람’ 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어디를 뒤져봐도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에 대한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어떤 대상과도 사랑하고, 때로는 실연의 상처 때문에 마약도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의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혹시라도 정치에 대한 자유의 추구가 문화적 방종으로 치닫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를 갈망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이 더욱 필요한 이유이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강진구 | 영화평론가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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