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에 고생을 하곤 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그 정도가 심해 초등학교가 임시휴교까지 하게 되었다. 황사로 하늘은 맑지 않았지만 봄 햇살이 따뜻했던 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안산역에 내렸다. 서울의 구로, 가리봉처럼 안산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안산시 원곡본동은 중국인들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이방인들이 인근 공단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원곡본동은 ‘국경 없는 거리’, ‘국경 없는 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한국인 근로자의 빈 자리를 채우며 IMF 한파가 불어닥친 1997년 말, 경제 여건이 어려워져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자 안산 인근의 반월 ∙ 시화공단에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교적 교통이 좋고 임대료가 저렴한 원곡본동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자리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조차 없는 그들이 매일 새벽 안산역 뒷편에 열리는 인력시장에라도 가서 일자리를 찾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마침 이곳에 집단으로 거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도 실직과 함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고, 이 때부터 원곡본동 일대는 외국인 노둥자들의 터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재 원곡본동에는 약 2만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3천 명 내지 7천 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와 같은 통계는 2002년 1월 법무부 통계와 안산 인근의 기업체 현황을 근거로 추산해 본 것이다. 이외에도 안산역 주변이나 시흥 인근지역 공단에도 어느 정도의 중국인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인(한족)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골목 곳곳마다 중국어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들이다. 중국 식당은 물론 중국 음식 재료를 판매하는 식품점, 노래방, 그리고 쉽고 싸게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국제전화 전용방도 눈에 띄었다. 또 한 가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으면 10만원 이상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을 중국어로 쓴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걸려있다. 쓰레기를 분리하거나 돈을 주고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중국인들을 위한 원곡본동 동사무소의 배려인 것 같았다. 또한 이곳에는 월세가 부담스런 가난한 나그네들이 5천 원 정도면 하룻밤 잠을 잘 수 있는 ‘고시원’도 60여개나 된다고 한다.
힘든 멍에를 매고 안산, 시흥 일대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대부분은 화학, 염색, 기계가공, 전자회사 등 소위 3D업종 기업체에 근무한다. 이들 중에는 용역회사를 통해 알선 받은 기업체에서 일당 또는 장기 일당을 받는 형태로 일하거나 건설현장에서 하루 벌이 노무자로 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화공단에 들어서자 매캐한 화학약품 냄새와 여기저기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말로만 들었던 공단지역에 직접 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환경이 열악하다. 작업 중이라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군데 군데 외국인 근로자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이곳에 안산 공단 근로자 선교에 힘쓰고 있는 공단선교센터(대표 김한나 목사)가 자리잡고 잇다. 공단선교센터는 1998년 IMF로 경제가 어려웠을 때 기업을 통한 선교 사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공단 내 직장 선교회 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낯선 나라, 게다가 공단이라는 삭막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공단선교센터 김한나 목사는 중국인들은 물론 이 지역 외국인 근로자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를 겪는다고 말한다. 가장 빈번한 것은 회사가 근로자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하여 임금을 체불하는 것이며, 불법체류로 인해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없어 돈을 분실하거나 사기 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이외에도 의사 소통의 부자유로 인해 업주와 외국인 근로자들 간에 빚어지는 잦은 불화, 휴일이나 명절에도 쉬지 않고 작업하기 때문에 과로는 물론 각종 직업병에 시달리며, 심리적 불안에 의한 긴장으로 근육통, 위통, 요통 등 육체적 질병을 많이 겪고 있다. 교회에 나오는 중국인들 대부분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안녕 다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기도제목으로 내놓는다고 하니, 이들이 건강상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단선교센터에서는 주일 예배 외에도, 주중에 바쁜 근로자들을 위해 중국인 전임 사역자가 전화를 걸거나 직접 기업체를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음력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체육대회나 잔치를 열어 그들을 위로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공단선교센터는 앞으로 선교사나 자원봉사자들, 외국인 근로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쉴터를 마련하고 또 신학교를 운영해 미래의 지도자들을 육성할 비전을 가지고 있다.
복음으로의 초대 외로움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올바른 신앙으로 자랄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일 것이다. 현재 안산에는 안산 제일교회 등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중국인 예배가 드려지고 있으며, 공단선교센터나 외국인노동자센터, 예수사랑선교회 산하 예수사랑의집에서 무료급식, 의료, 이 ∙ 미용 봉사 등으로 중국인들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중국인 근로자들이 하루 평균 10~12시간 이상 근무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거나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주일 예배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며, 작업이 끝난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곳이 많다. 확실한 통계는 아니지만 안산에 있는 중국인 중 기독교인은 중국인 예배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인원을 참고하면 대략 500~7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방한 중국인 사역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이 선교라는 인식이 강해 국내에서 이뤄지는 선교 사역에 대한 관심과 재정 후원은 그리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방한 중국인 사역을 원하는 곳이 있어도 실제로 중국어가 가능한 사역자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방한 중국인 사역은 우리나라에 온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나아가 중국 교회 지도자로 발굴, 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시간적인 제약을 받는 중국인 근로자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지역에서 부담 없이 오가며 편히 쉴 수 있는 문화센터를 마련해 중국어로 된 잡지, 신문, 일반 서적 또는 신앙 서적이나 시청각 선교자료를 비치, 대여하고, 탁구대나 당구대 등 오락기구를 설치하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그들과의 만남을 용이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실제적으로 필요로 하는 한국어, 컴퓨터 교육이나 기타, 피아노 등 악기 교습, 신앙 ∙ 법률 ∙ 건강 등의 전문상담, 의료, 이 ∙ 미용봉사 뿐만 아니라 개인 경건훈련과 공동체 훈련까지 모두 이뤄질 수 있다면 그 열매는 놀라울 것이다. 안산의 중국인 근로자들을 돕기 위해 중국어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섬기고 품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중국어 예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찾아가 함께 교제하며 친구가 되어주고 또 중보기도로, 재정으로 돕는 손길도 매우 귀한 사역이 될 것이다. 참된 평안을 주신 주님 주일 오후 3시, 시흥의 한 중국인 교회에 참석했다. 주일이지만 대부분 공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열 명 정도가 예배에 참여했다. 올해 스물 다섯 살인 한 청년은 산둥성 칭다오(靑島) 출신으로, 1999년 한국에 왔고 지금은 인쇄기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00년 공간에 있는 중국인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돈을 버는 것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현실은 힘들고 외롭지만 그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주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토요일에는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성경과 한글을 배우고 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즐겁고 기다려진다고 했다. 내년 12월에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며 돌아가서도 계속 믿음 생활을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 청년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 말씀으로 잘 양육되어 중국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자가 되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낯선 한국 땅에서 따뜻한 가족의 품을 그리워 할 중국인들. 우리가 봄날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때 삭막한 공장 한 쪽에서 고달픈 노동과 외로움을 삭이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싸하게 아파왔다. 살면서 종종 우리는 큰 일보다 작은 일데 더 감사하고 감동한다. 누군가 보내주는 따스한 사랑의 눈길,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다. 이 한국 땅에 이방인으로 와있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 외로움들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과 동일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그들이 알기를 바란다. 또한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우리에게 넘쳐 이 땅을 찾아온 외로운 이방인들에게 위로로 흘러가길 바란다.
중국인들이 마음 놓고 그들의 마음을 나누고 교제하며 편안히 안식할 수 있는 선교센터와 문화공간이 안산지역에 많이 세워지길 바라며,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그들이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취재 ∙ 글 | 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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