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태어나면 제주로 보낸다’는 우리나라 옛 속담이 있다. 예로부터 ‘서울(도시)’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곳이었나 보다. 사람들에게 도시는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까? 필자는 1960년대, 서울의 그늘에 가려 발전이 느린 소형 지방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서울에 사는 친척집으로 나를 데리고 갈 때마다 설레임으로 한강철교를 건넜던 것을 기억한다. 큰 도시 서울, 같은 빌딩이라도 서울에 있는 것이 더 세련되어 보였고, 그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 서울 말씨가 귓속으로 들어오고, 도시 깍쟁이 같은 표정에 약간 기가 눌리면서도 그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내가 살던 곳도 사실 지방이라 하지만 도시였는데, 서울은 무엇인가 선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두 얼굴의 도시 일반적으로 도시는 2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양면성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도시는 악하다고 보고, 어떤 학자는 도시는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하비콘은 도시를 복음화하기 원한다면 도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빙크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세상’을 선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그 세상 속에 존재하는 도시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시며, 그리스도가 그의 승리를 측하하는 곳으로 보여지게 될 것이다. 폴 히버트 박사도 두 가지 얼굴을 가진 도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갈수록 도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도시화 현상 미래학자들이나 도시선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도시화 현상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윌리암 캐리가 열었던 해안선 선교 시대에는 전 세계의 2.4%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로 시작된 내지선교 시대에도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 중 4.5%에 불과하였고, 20세기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도 도시 인구는 9%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세기 후반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도시 인구는 미전도종족 선교가 진행되는 오늘날에는 50%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처음 4반세기 내에 6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한수아, 1998). 2000년 현재 백만이 넘는 도시는 400개가 넘으며, 300개 이상이 미복음화된 도시로, 21세기에도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미전도지역인 제3세게 지역에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미션저널, 2001)
소위 제3세계 속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선교지가 많이 있다. 또한 복음에서 소외된 대부분의 미전도종족이 제3세계에 있기 때문에, 제3세계 선교지에서 늘어나는 도시화 현상을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게 된다. 21세기의 남은 과업으로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미전도종족 선교와 도시화는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어서, 개척 선교사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다.
선교적 기회의 땅, 도시 복음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21세기 도시들은 마치 선교의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내보내기도 한다. 즉, 도시에는 언제나 사람이 가득하다. 농촌지역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해 들어오고, 반면 부유한 사람들은 복잡해진 도시 생활을 벗어나 쾌적한 환경을 찾아 외곽으로 이주하는 등 끊임없이 ‘인구이동’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도시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발생되는 희로애락의 교차,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선과 악의 교차라고 할 수 있겠다. 도시선교 학자들이 지적하는 도시의 문제들, 예를 들면 빈곤, 부패, 실업, 공해, 식수 부족, 교통 문제, 주택 ∙ 상하수도 문제, 가진 자들만을 위한 편중된 정책, 청소년 문제, 마약과 매춘, 가정 파괴 등등 크고 작은 문제들로 산적해 있는 도시가 주는 인상은 부정적이다. 반면에 도시는 삶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의 땅으로서의 긍정적인 면도 제공한다. 개개인의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폭넓은 선택의 장, 다양한 문화, 고용의 기회가 도시 안에 있다.
이처럼 도시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단지 두 개의 얼굴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도시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면들에 적합한 선교적 방법과 대응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남은 과업에 동참하는 우리들의 자세이다. 도시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라면, 그것은 선교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선교적 기회’의 땅이라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간결한 명제에서 도시선교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연구가 필요한 도시선교 지역적으로 도시화 현상이 각각 다르게 일어난다고 해도, 앞으로 갈수록 전세계의 도시화 현상은 심화될 것이며 사람들은 도시 속으로 계속 흘러 들어 올 것이다. 이러한 도시화 현상에 대해 모두 공감하지만, 우리의 약점은 도시를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도시의 중요성과 전략적 시각에 대한 훈련 부족으로 인해 도시 내에서 구체적으로 사역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급격한 도시화 현상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시에는 복음이 들어가는 ‘문(gate)’ 의 기능이 있다. 그 문을 열면 ‘복음의 접촉점(point of contact)’ 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이 숨겨져 있다. 더욱이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는 사회 속의 도시는 더욱 그런 ‘문’ 의 역할이 확대된다. 도시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존재하는 종족집단과 계급, 계층 및 여러 형태의 사회 집단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집단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느냐를 이해할 때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도시선교전략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도시 속의 무형 도로들 기회를 찾아 사람들이 이동하고 정착하고 발전하면서 도시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게 되었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가들은 다종족이 모여서 이루고 있다. 다종족 사회에서는 원거주지를 떠난 종족들이 먼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자리를 잡은 동향 사람들 옆에 터전을 마련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향을 떠나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 또 먼저 이주한 사람들과 연결을 맺으며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동질집단’으로 구분될 만큼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채 도시의 한 쪽에서 살게 된다. 이러한 ‘동질집단’들은 도시 안에서 마치 샐러드처럼 각각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섞여 살게 된다. 그 결과 도시 속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 간의 도로들(연결망)이 건설되는데, 이 도로들은 선교하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이어져 있고 뻗어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하나님의 다리’ 라고 표현한 맥가브란 박사의 통찰력은 도시 속에서 더 분명한 이해를 준다.
복음은 ‘하나님의 다리’ 를 통해 그들의 고향으로 들어가고, 도시 속의 ‘동질집단’ 속으로 건너가게 된다. 더욱이 창의적인 접근 지역이나 제한 받는 선교지역에서 ‘다리’ 의 기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한 국가들에 남아있는 과업인 미전도종족은 계속 ‘다리’ 를 통해 도시로 흘러 들어오고, 그 도시는 미전도종족을 만날 수 있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미전도종족하면 문명과 동떨어진 깊은 오지에 사는 종족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전도종족의 올바른 개념은 ‘복음에서 소외된 사람들’ ,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몰라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 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보다는 복음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 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도시 속으로 이동해 오는 미전도종족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하나님이 보내주신 기회인 것이다. 따라서 도시 내에서 선교의 분명한 타깃으로 미전도종족을 찾아내고, 그들을 복음화하는 전략적 사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에 나타난 관문도시 선교전략 성경도 도시가 선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 세계선교가 시작된 ‘안디옥’ 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잇는 중간 역할을 갖고 있었으며, 사도 바울을 파송한 ‘도시’ 였다. 본격적인 세계선교가 도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과 도시와의 관계를 논한 학자들과 논문은 수도 없이 많은데, 이는 선교에 있어서의 도시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점들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도시를 중심으로 사역을 진행하였지만, 모든 도시를 전부 타겟으로 삼지 않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로마 정부의 중심지, 헬라 문명의 중심지, 유대인 세력의 중심지, 세계적 상업 중심지들을 그의 주요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알렌, 1993). 그가 택한 도시들은 주변으로 복음이 확산되어 갈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관문도시(Gate Way City)였다. 이런 점에서 고향을 떠난 미전도종족을 만날 수 있고, 또 고향에 있는 미전도종족을 향해 들어갈 수 있는 현대의 ‘관문도시’는 미전도종족 선교의 중요한 요소(factor)임을 인식해야 한다.
종족과도시선교연구소(IMPAC)팀들이 티벳족 복음화를 위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의 중요성을 다양한 각도로 리서치한 결과를 보면, 청두시는 티벳 지역으로 들어가는 교통중심지이며, 티벳족에게 경제적 영향력만이 아니라 교육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관문도시 청두는 미전도종족인 티벳족과의 다양한 만남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날의 비전을 위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그 날’ 에 능히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선교는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가 미전도종족 선교의 기회를 주고 있음을 인식하자. 도시는 선교하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지혜로운 자들의 발길로 인해 미전도종족의 관문이자 기회의 땅인 ‘도시’ 의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것을 믿는다.
조명순 | 선교사 ∙ 미전도종족선교연대(UPMA) 총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