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귀신’인가? 1985년에 수입 개봉된 홍콩 영화 〈강시선생(彊屍先生)〉은 〈천녀유혼(天女幽魂)〉과 더불어 80년대 한국 사회에 중국 귀신 열풍을 몰고 왔다. 86년까지 1년여 간에 수입된 아류작들과 한국에서 제작된 강시 관련 영화 만도 합해서 25편에 달했고, 한동안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두 발로 제대로 걸어 다니는 학생들이 없을 만큼 강시 걸음 흉내내기는 사회적 논란거리를 낳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강시라고 하는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이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졌지만, 유관위 감독의 〈강시선생〉은 기존 공포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코미디와 중국이 자랑하는 무협영화의 특징을 함께 잘 혼합함으로써 ‘코믹액션 호러물’이라는 새로운 중국영화의 장르를 개척하는 한편으로 색다른 재미를 더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울러 세계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시선생〉은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귀신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의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강시는 원한을 미처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시체가 썩지 않고 살아나서 산 사람을 해치는 존재로서 설정되어 있다. 강시에게 물린 사람은 함께 강시가 되어버리는 전염성을 보여주어 귀신의 위력을 한층 높여놓은 반면, 적절한 방법으로 그려진 부적을 그 이마에 붙일 경우 강시는 꼼짝 못하거나 사람의 조정을 받아 움직일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귀신은 민간신앙의 주류를 이루었다. 근대화 이전 중국을 지배했던 유학사상이 조상신 외에 귀신에 대한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데 비해, 민간신앙에서 귀신은 대단히 인격적인 표현을 갖고 있는 신이며 동시에 일상 생활에 관여하여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자신이 단지 귀신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입장에만 서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귀신에 대응하기 따라서는 화(禍)를 피하고 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을 달래거나 내쫓는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 방법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논어(論語)」를 보면 공자의 제자인 번지(樊遲)가 앎(知)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사람의 의리에 힘쓸 것이요,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면(敬而遠之) 가히 앎에 이르느니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귀신에게 한편으로는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자세를 취해왔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귀신이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해석 불가능한 불행한 사건의 배후에는 여지없이 귀신이 등장했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로부터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로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만든 것 또한 귀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인들은 그들이 막연히 상상하고 입에 회자시켰던 귀신을 직접 만나보는 경악할만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다. 중국인들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공포를 제공했던 일본군의 잔학한 행위들은 막연히 가져왔던 귀신에 대한 공포를 현실화시킨 일임에 틀림없었다. 일본군, 그 공포의 대상 장원(姜文) 감독의 영화 〈귀신이 온다(鬼子來了)〉는 제목과는 달리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깊이 도사리는 영적인 존재로서의 귀신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귀신은 물리적으로는 중국인을 잔혹히 학살했던 일본군을 비유하는 한편, 일본군과 공존하는 속에서 느껴야 했던 중국인의 심리적 공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정월의 중국의 어느 산골 마을. 가난하지만 순박한 한 시골마을의 촌부 마다산 앞으로 혼란과 두려움의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행복한 정사(情事)를 끊게 만드는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 ‘나’는 권총을 들이대며 마다산에게 두 개의 자루를 자신이 돌아오는 날까지 보관해둘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루에는 일본군 병장과 중국인 통역관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군이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인 포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보호(?)와 감시를 해야하는 아이러니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주지만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귀한 밀가루로 만두를 해 먹이고, 추울까봐 이불을 덮어주고는 자신은 추위에 떠는 극진한 돌봄은 오직 ‘나’라는 알 수 없는 존재와 일본의 보복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다. 적대국 포로를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풀어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 자신과 마을이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와 그에 따른 결과를 알 수 없는 현실은 여지 없이 귀신의 농간처럼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 옛날 그들의 선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느새 자신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귀신을 달래보거나 쫓아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된 날짜가 지나도 ‘나’가 나타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일본군 포로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마다산을 앞세우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서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며 생명을 아끼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이 점은 영화 끝 무렵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일본군 중좌의 행동이나, 자신이 살려준 일본군 포로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주인공 마다산의 상황과 대조를 이루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처럼 공포를 안겨준 일본군과 포로교환의 조건으로 곡식을 받는 계약을 체결하지만, 귀신(일본군)의 말을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 전쟁은 끝나고 일본군은 무장해제를 당한 상태지만 살육의 현장을 보았던 마다산은 분노에 몸을 떨며 도끼를 들고 복수하기 위해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곧 인민해방군에게 잡히고 만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일본군과 싸웠던 인민해방군의 손에 잡혀서 자신이 살려준 일본 군인의 손에 참수형을 당하는 마다산. 그의 목이 땅 바닥에 떨어져 구르지만 뜻밖에도 싱긋 미소짓는 그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게으르규의 소설 ‘25시’에 나오는 선량한 농부 모리츠처럼 양쪽 모두에게 배척받고 죽어가는 힘없는 한 인생의 회한 맺힌 미소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부질없는 인생임을 깨닫는 깨달음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판단이야 관객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지만 〈귀신이 온다〉라는 영화가 중국인들의 쉽게 간과해 버릴 수만은 없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가 이 영화에 대해서 중국인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상영을 불허하고, 감독인 장원에게 2년 간의 제작 금지 명령을 내렸다고 하지만, 선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것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감독의 열망만큼은 쉽게 수그러뜨릴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서 2000년 제53회 칸느영화제는 심사의원 대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잊고 싶은 비극, 그러나 일본은 있다 1937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 사이에 벌어진 일본군의 난징대학살(南京大屠殺)은 공포의 정점을 이룬 것이었다. 흔히 ‘난징 사건’으로 불리는 참혹한 인간 살육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찌에 의해 자행된 6백만 유태인의 대학살사건과 더불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저지를 수도 없는 악마적인 행위로 기록된 사건이었다. 난징을 점령하기 위해 일본군은 전투와 상관없는 민간인을 30만 명이나 죽였고, 난징 점령 후에도 약 4만 2천명에 달하는 시민들을 살해하였다. 어린이와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행한 무차별 사격과 생매장, 그리고 휘발유를 뿌려서 태워 죽이는 등 일본군의 잔학상은 히틀러가 유태인에게 드러냈던 광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 버려진 시체들로 가득 찬 장강(長江)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의 역사 속에 등장한 새로운 귀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미래에 대한 장미빛 희망으로 들뜬 오늘날의 중국. 거리에 넘쳐나는 일본제 자동차와 가전제품들. 여전히 중국 속에 일본은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일본과 거리를 얼마나 띄울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인들에게 일본은 존재한다. 어떤 방식인가 하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강진구/ 크리스천 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