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지난호보기
2001.10.20 통권 72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중국이 성장을 위해 겪었던 경험의 비유
햇빛 쏟아지던 날들(陽光燦爛的日子)

그리스도인 영화 비평가들이 다루기 쉽지 않은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첫째는 선교의 목적으로 만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수려한 화면의 전개를 통해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 만든 예술영화가 그것이다. 

예수의 삶을 다룬 영화들은 이단적 성격을 가지고 성경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한 그것의 공과(功過)를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기본적인 스토리란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는 성경에 다름 아니고, 비록 배우의 연기나 연출의 미숙함이 엿보인다 하더라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설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할 수 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실제 화면상 촌스러워 보이는(성경으로 읽었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예수님의 기적 장면이, 막상 예수를 모르던 선교지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 때 이 예수 영화의 본래적 연출 목적은 능히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평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노릇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연출 목적이 철저한 상업주의 정신에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예수 영화는 전도와 선교라는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 같은 예술영화에 대한 평이 쉽지 않은 이유는 청교도적인 삶이 비평의식의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의 귀중함을 알기 때문에, 영화를 보더라도 오락영화나 인생을 즐기는 데 사용하기 보다는 하나라도 더 교훈이 되고 교육적 가치를 찾는 데 비중을 두어 온 삶의 습관이 이뤄놓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저 인생의 모습을 관조할 수 있는 영화나 화면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길 만큼 여유로움을 누린다는 것은, 봐야할 영화가 많은 그리스도인 비평가들에게는 다소 사치스러운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계를 하나의 영적 전쟁터로 생각하는 풍토 속에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에 익숙치 않은 면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다 표면적 예술미 배후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면 비평은 더욱 어려워진다. 뚜렷한 메시지가 없는 가운데 드러나는 화면 하나 하나를 놓고 상징성이나 비유가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대륙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지앙원(姜文)의 94년도 작품《햇빛 쏟아지던 날들》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새롭게 낯선 것임에 틀림없다.

나른한 오후에 즐기는 오수(午睡)같은 영화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거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중국에는 새로운 세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70년대 중반의 중국 베이징(北京), 죽의 장막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채 동서 냉전의 날카로운 대립이 계속되고 있던 그 시절, 열 여섯 나이의 마소군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법한 십대 사춘기 시절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겪는다. 어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이성에 대한 관심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맞물려 일탈의 경계를 오르내린다. 

 “난 항상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부러웠었다. 드디어 나도 그 부류가 된 것이다.” 

주인공 마소군의 이같은 독백은 현실적으로는 아버지의 장기간 출장으로 인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은 자유로움으로 실현되었지만, 의미상으로는 이제 어른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생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몇몇 또래끼리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옆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하고, 학교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어 수업시간에 도망가기 일쑤다. 그의 또래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다르게 마소군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기웃거린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영화 속 새로운 세계는 자물쇠를 따는 일로 시작한다. 무엇이든 잠긴 것이면 열고 싶어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열쇠를 다듬어 감춰진 것을 열어보는 일이 시작된다. 그동안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던 아버지의 사물함을 열어서 훈장을 가슴에 달아보기도 하고, 수첩을 훑어보고 콘돔을 풍선처럼 불어 가지고 놀기도 한다. 아예 집 밖을 벗어나서 자물쇠를 따고 남의 빈 집에 들어가 실컷 노는 자기만의 여가문화(?)를 즐기는 주인공의 행동은 분명 외형적으로는 일탈적이고 범죄에 가까운 것이지만, 감독은 이것을 통해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망의 욕구를 보여주는 심리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청소년기란 흔히 말하는대로 아동과 성인의 중간단계로써, 사회적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가족을 떠나서 새로운 자아 혹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웃의 다른 세계를 기웃거리는 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영화의 상당 부분을 마소군이 여자 친구인 미란을 쫓아다니고 만나는 부분에 할애하고 있다. 자기보다 연상인 미란을 누나라 부르면서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애태우는 주인공의 모습이 화면 가득 넘친다. 그러나 관객은 청소년기의 사랑이 성적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며, 제대로 된 맛을 내지 못하는 설익은 풋과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사와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속 깊은 영화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한 청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외도 혹은 심리 현상을 다루는 영화로만 국한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표면만을 바라본 셈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영화의 예술적 영상의 표피 아래에는 60, 70년대 중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겪어왔던 방황과 실수,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한 몸부림이 짙게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뚱(毛澤東) 및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회담하고 함께 ‘상하이(上海)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서서히 죽의 장막 너머의 중국의 실체는 빛 속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을 전후로 그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마오의 사상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문을 열려는 시도와 호기심,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 문화대혁명의 폭거적 실체 속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70년대 중국의 모습을 지앙원 감독은 마소군이라는 16세 청소년의 행동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멘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대사로 처리했다. “청년들은 군대가고 도시는 비어있었다.” 무언가 완전히 자리잡힌 것이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같은 전에 없었던 상황은 새로운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 마소군은 그것이 서랍이든 남의 집이든 잠겨지고 닫혀진 것은 모조리 열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망원경으로 자신이 다니는 학교와 먼 세상을 훔쳐보거나 지붕 위를 걸어다니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동경을 뜻한다. 자신을 가둬놓았던 폭압적 사회주의 체계 속으로부터 벗어나, 그동안 퇴폐적이라 일컬었던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몰래 문을 따고 들어간 집의 여주인이 걸어둔 미모의 사진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현실 속에서 끝내 만난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일들은, 결국 오늘날의 중국이 개혁 개방 정책 이후 자본주의와 손잡으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마소군은 옆 동네 건달들을 벽돌로 잔인하게 내려칠 만큼 문화대혁명 시절의 소아기적 행동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른으로 성장한 주인공과 친구들이 외제차를 몰며 베이징 시내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70년대의 미숙과 혼돈이 이제는 성숙과 발전으로 귀결되었음을 알리는 중국 현대사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엿보게 한다.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지앙원 감독의 영화관에 따른 것이다. 그는 배우로서는 꽤 관록을 쌓았지만, 지금가지 단 두 편의 영화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중국의 역사와 정치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특이한 연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제53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영화《귀신이 온다(鬼子來了)》를 만든 바 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말엽에 중국의 한 농촌에서 겪었던 일본군과의 갈등과 타협의 역사를 때로는 코믹하면서도 비장감 넘치는 장면들로 엮은 것이다. 지앙원 감독의 정치적 혹은 역사적 사고방식은 중국 정부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햇빛 쏟아지던 날들》을 포함한 그의 영화들은 모두 중국 대륙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심지어 《귀신이 온다》에서 ‘중국 인민을 우매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7년 간 영화 출연 및 연출 정지명령을 받기도 했다. 

 《햇빛 쏟아지던 날들》은 분명 메시지를 중심으로 보아왔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선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단순히 예술적 감각만으로도 소화해 내기 쉽지 않은 상징과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역사의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아름답고 은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감독의 재주만큼은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현대사를 읽고 영화를 봐야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강진구/ 영화평론가․크리스천문화커뮤티케이션 연구소장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