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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8.20 통권 71호 필자 : 싱푸쩡(邢福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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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특집/ 중국교회의 위기, 이단문제 | | | 중국교회의 정통과 이단 | | |
정통과 이단 교회 역사에서 정통과 이단의 관계는 줄곧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이단이란, 외형은 기독교를 표방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정통 기독교와 상반된 신앙적 주장을 하는 개인 또는 집단을 뜻한다.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제기되는데, 과연 누가 정통과 이단을 판단할 권위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대공회의(大公會議)를 거쳐 정통과 이단의 명확한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교리의 대부분은 바로 이 당시의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다.
중세 로마교황청의 권력이 극도로 팽창됨에 따라 종교재판소(Inquisition)가 설립되었고 매우 엄중한 방식으로 이단을 처벌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교황청의 무제한적인 권력에 도전하는 한편, 여러 종파가 파생되는 국면에 전개되어 객관적으로 신학 다원화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근대에 생겨난 신흥 종파들에 대해, 각 종파들은 여전히 초기 교회 때 규정한 교리로 이단이나 극단이냐를 판별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이 보급되자. 단순히 초기 교회의 정의만을 가지고 어떤 교파가‘이단’이라고 공개적으로 규탄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여러 신학교에서는 ‘이단연구’라는 과목명을 ‘사이비▪이단 교파’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이단을 판정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지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교회 역사와 이단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네 차레에 걸쳐 중국에 들어왔는데, 기독교와 중국과의 만남은 모두 교회사에서의 이단과 연관이 있다. 중국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로 알려진 ‘경교(景敎)’는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를 말하는데, 즉 네스토리우스(Nestorius)를 따르는 추종자를 의미한다. 네스트리우스는 지나치게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여 결국 대공회의 재판에서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AD 5세기 초 당나라 태종 정관년(貞觀年)에 중국으로 들어온 알로펜(Alopen)은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사였던 것이다.
명청(明淸)대에 예수회 선교사들은 온갖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학문적으로 포교하는 노선으로 중국에서 선교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테오리치의 ‘조절노선’은 나중에 도미니크회와 프란시스회의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로마교황청이 중재에 나서 중국인의 조상에 대한 제사 풍속은 우상숭배라고 판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예의(禮儀)논쟁’으로, 강희제의 노여움을 사 결국 금교령이 내려졌고, 중국으로 들어오려는 기독교의 두 번째 노력은 이로써 종결되었다.
19세기 드디어 개신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물론 중국으로 들어온 각 개신교 교파들은 서로 다른 신학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나, 경건 운동이 선교의 주 원동력이 됨으로 인하여 중국에 온 선교사들 사이에는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공통된 과제였다. 19세기 후반, 일부 선교사들이 중국선교에 어려움을 느끼자 조절노선을 시도, ‘유교’, ‘제사’등의 문제에서 융통성 있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절대다수 선교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1910년대 이후부터 ‘개신교 선교의 일치’는 복음주의(基要派)와 자유주의의 신학 논쟁으로 인해 와해되었다.
신구(新舊)신학의 논쟁은 나아가서 중국 교회의 다원화 국면을 확립하였다. 두 파 사이에는 경계선이 분명하여 서로 공격하고, 심지어는 정통성을 따져 상대방이 진리를 떠난 이단이라고 질책하였다. 이것은 20세기 초 중국 교회에 ‘권위’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다소 어지러운 논쟁이 전개되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의 논쟁 외에, 중국으로 파견된 일부 선교회도 신학 전통에 따라 주류 교파들에 의해 이단으로 여겨진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은사 중심의 오순절 교회 및 그 영향을 받아 생겨난 중국 자생 교파인 ‘참예수교회(眞耶蘇敎會)’, 예수가정(耶蘇家庭)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 밖에 제칠일안식교 역시 교리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일부 교회에서는 정통 교회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삼자의 줄로 묶여진 중국 교회 종파 공산화 이후 전체주의 정치체제로 말미암아 정부 당국이 종교정책에 전면 개입하였고, 일원화된 지도체제(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가 교회 내에 확립되었다. 그리하여 종파가 난립하고 혼란스러웠던 국면에 어느 정도 변화가 일게 된다. 이러한 정치 형세의 변화는 중국 교회의 이단과 정통에 대해 두 가지 영향을 가져왔다.
첫째, 교회의 일원화된 지도체제로 말미암아 더욱 강력한 통제가 이뤄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권위는 당국의 지도 아래 새롭게 확립되었다. 권위가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통’에 대한 거절을 의미한다. 즉 여기서 ‘정통’이 언급하는 내용은 순수한 교리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가 내포 되어 있는 것이다. ‘반제국주의’라는 대전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제국주의의 독소’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았다. 서로 다른 신학전통의 종파들, 심지어 공산화 전 이단이라고까지 불리웠던 참예수교회, 예수가정 및 안식교 등도 과거 자신들을 반대했던 복음주의파와 함께 기독교계의 혁신운동에 참가하여 자신들의 전통을 대폭 수정, 반제국주의 애국이라는 대전제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1958년 연합예배 이후 명목상의 종파조차 없어졌다. 바꾸어 말하자면 표면상으로는 교회의 권위가 확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소위 ‘정통’의 여부가 정부의 정치적 요소에 부합되느냐 아니냐에 달리 있게 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당국을 의지하던 교회의 권위는 달라진 정치 형태로 인해 혁명 진행상의 걸림돌이 되었고, 중국 교회는 문혁 기간에 결국 ‘비제도화(deinstitutionalized)의 길을 걷게 되었다.
둘째, ‘비제도화’는 권위의 붕괴와 실추를 의미한다. 문혁 당시 기독교는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리와 형식을 잃었지만, 신앙은 정치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문혁 후반기에 일부 지역에서 기독교는 이미 부흥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교회의 공개적인 활동이 가능해졌을 때 여러 지역에서는 이미 ‘기독교 열풍’현상이 나타났다. 중국 교회의 역사적 전통 및 신앙의 권위(정치권위가 아닌)는 과거 기나긴 정치운동의 심각한 타격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파손되기까지 했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중국 기독교의 발전, 특히 농촌 지역에서의 발전을 ‘전통의 진공상태’라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진공상태’란 기독교가 전파되는 지역에 신앙적 전통이 결핍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전파될 때 항상 아무 것도 없는 제로상태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앙을 전하는 사람에게 세계적인 교리신학 및 신앙의 전통이 결핍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의 진공상태에서 발전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이단을 방어할 수 있는 방패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이단이 자생하기에 가장 좋은 토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개혁개방 이래 중국 교회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해외에서 들어온 사이비 이단들(여호와의 증언, 통일교, 몰몬교 등)이라기 보다 는, 중국 대륙에서 자생한 이단들이다. - 삼자교회 기관지 「 텐펑(天風)」지에 따르면, 靈靈敎, 重生派(全範圍敎會), 永生善道, 拉結敎, 被立王, 主神敎, 新能力主敎會, 義勇佈道團, 冷永敎, 門徒會, 曠野敎, 萬敎一派, 三班僕人, 東方閃電 등이다.
교리, 사회, 정치의 각각 다른 입장 「堅持眞理, 抵制異端(진리를 지키고, 이단을 저지하자)」라는 책에서 난징(南京)금릉협화신학원(金陵協和神學院)의 자오즈언(趙誌恩) 목사는 중국 내 이단들이 범하고 있는 다섯 가지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세계의 종말이 이미 도래했고, 예수는 이미 재림했다고 전한다. 2) 믿는 자와 불신자의 대립을 부추겨 공산당과 정부를 ‘마귀’, ‘사탄의 정권’이라고 전한다. 3) 삼자교회를 ‘음부(淫婦)’라고 욕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애국애교를 공격한다. 4) 한 개인을 ‘살아 있는 그리스도’며 ‘재림한 주예수’, ‘중국의 메시야’, ‘왕으로 세워진 자’라고 숭배하여 참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려고 한다. 5) 이들의 행동은 매우 치밀하고 은밀하다. 고통을 당하고 희생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오 목사가 제시한 다섯 가지 중 첫 번째와 네 번째는 교리상의 왜곡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나머지 세 가지는 삼자의 정치 및 사회질서에 대한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중국 내에서는 종종 이단과 사교를 통칭하여 ‘이단’이라고 하는데, 사교라는 것은 현존하는 정치,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의미이다. 전인대 상임위원회는 작년 말 사교를 공격하는 조례를 통가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 법률상 사교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이렇게 하여 중국의 상황에서 이단과 ‘기독교의 깃발을 내건 사교’는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결과를 낳았다.
교회사의 맥락에서 볼 때, 이단은 근본적으로 교리상의 오류의 여부와 관련되어 판단할 문제인데, 현대 중국 교회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정치적 요소가 첨가되어 ‘사교’의 개념에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단들은(어떤 것들은 교리적으로 명실상부한 이단이지만, 어떤 것은 ‘극단’일 따름이다)당국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그어놓은 한계선과 금지구역을 넘나들거나 도전하기 마련이어서 정부의 단속을 받게 되었다. 당국의 입장은 사실 중국이 전통적으로 정치를 존중하고 종교를 가볍게 여기는 입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교회사는 우리들에게 이단의 출현과 성행은 ‘주류교회들이 아직 계산을 끝내지 않은 청구서’라고 알려 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통 교회가 진리를 올바로 가르치는 것만이 이단을 방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교회의 목사들은 신도들에 대한 훈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통의 기초 위에 이를 확립하면 이단사상 역시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로써 이 부분의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으로 종교사회학적인 각도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역시 이단의 토양은 사회 환경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80년대 이래로 중국 농촌사회에 각종 이단들이 난립하게 되었는가? 왜 대다수의 이단들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가?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운동이 농촌지역에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데는 반드시 사회적 원인이 있으며 이는 우리가 유의해야 할 두 번째 측면이다.
마지막으로 정교(政敎)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중국의 이단문제는 사교문제와 동시에 얽혀 있어 그 선이 분명하지 않다. 몇몇 이단들은 실제로 사회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교파들은 기독교 교리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 조직이 당국에서 인가한 애국종교 조직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가안전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제압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중국의 이단 문제는 결코 단순한 교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싱푸쩡/ 홍콩건도신학원(建道神學院)교수 출처/「전망중화(展望中華)」7기, 번역/ 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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