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의 만남 내가 처음 한국인을 접한 것은 1988년, 중국 동북지방의 한 자그마한 도시 교회에서였다. 당시 중국 복음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님들의 멋진 모습이 오늘날 오직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하는 나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1992년, 연변과학기술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한국인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교양있고 헌신적인 교수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민족(韩民族)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회사 베이징사무소에서 3년 근무하면서 각양각색의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지금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인격적인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에는 권위있고 명예있는 목사 등 유명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한국인에 대한 깊은 절망에 빠진 적도 있다.
1998년, 나는 직장과 가족, 친구들을 비롯한 중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의 모여대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현재 3년째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작년 7월 중국 선교사인 한국인과 결혼하여 다시 중국에 돌아가 사역할 것을 기대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결혼하기 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남편덕분에 지금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점차 새로워지고 있다. 3년 동안의 한국 생활과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 그 밖의 여러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오늘 나는 중국인이라기보다 한민족의 입장에서 한국인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내가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매력을 느낀 점은 바로 이 세 단어에 있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만큼 예절 바른 한국인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사소한 일에도 아낌없이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너무 당황했고 거북했다. ’이 사람 나한테 관심 있나?’ 중국에서는 이 말이 남녀 간에 사랑을 확인할 때만 쓰이는 말인데, 알고보니 한국에서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는 말임을 알았다. 서로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한국인이 부럽게 생각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조금씩 그런 표현들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한국인 남편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사랑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아마 근 1년동안의 결혼생활에서 남편으로부터 들은 ‘사랑해’라는 고백이, 지난 28년간 들은 것의 몇 배는 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을 주는지∙∙∙. 이제는 나도 매일같이 남편의 이런 고백을 듣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기분이 든다. 비록 나는 아직도 잘 표현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또한 아주 작은 도움을 받고서도 미소짓는 얼굴로 건네는 말, “고마워요!”. 나는 상대방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너무 좋아하면서 감사의 표현을 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도 고개 숙여 “미안해요!”라고 사과의 표시를 하는 한국인들, 참 보기 좋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듣기에는 너무 좋은데 중국인의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약속 내가 처음 약속에 대한 개념을 배운 것은 연변과학기술대학의 한국인 교수님들께로부터이다. 약속시간은 철저히 지킬 것, 그리고 윗사람과 만날 때는 예의상 5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 것. 워낙 시간 개념이 없는 중국인에게는 그보다 더 맞는 말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 약속에 관한 개념이 철저히 몸에 베이도록 노력했고, 그러한 훈련은 졸업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수님들과 직장인들이 이처럼 철저하게 시간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이 그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중국에서 본 한국인과 한국에 와서 본 한국인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5분, 10분 늦어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길이 너무 막혀서…”라는 핑계를 댈 때가 많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교회 내, 즉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모임을 하자고 약속하고서 막상 장소에 나가면,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30분이 지났는데도 모임을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가끔씩은 내가 장소와 날짜를 잘못 기억했나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한국어에 대한 생각 한국에서의 유학생활 3년 동안 공부하면서 또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어가 지니는 어휘의 부족이다. 90년대 전반까지의 책을 찾아보면 한국인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한자가 수두룩하고, 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수많은 책이나 자료들, 나아가 신문이나 TV 등 곳곳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가 많이 쓰인 것을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5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켜온 우리 조상들이 매우 존경스럽다. 그리고 한국의 자원 사정상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이 한국의 주된 생존 수단이기 때문에, 가장 경제성이 있는 나라와 특별한 친분을 강조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 곡절 많은 역사 속에서도 강한 의지를 갖고 꿋꿋이 살아온 민족이 아니던가!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더욱 넓게 전파되고, 더욱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한국어를 더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 경제나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선진국의 새 지식들을 배우는 것은 좋으나 그것들을 다시 한국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풍부한 한국어를 개발하여, 한국을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로, 외국을 논할 때도 한국어로, 그 어느 나라의 문화를 논하든지 손색이 없는 풍부한 언어를 개발했으면 한다. 국내 대학들이 서로 명문대학이라고 경쟁하는 것보다는, 서로 힘을 합쳐 이런 부분에서 보완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어 문화를 더욱 새롭고 풍부하게 만들어 나감으로써, 앞으로 또 다른 반만 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한민족의 역사를 자신 있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눈치 살피기 한국인은 평생 남의 안색을 살피며 산다고 한다. 어릴 때는 부모와 집안 어른의 안색을 살펴야 하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선생님의 안색을, 직장에 들어가서는 선배와 상사의 안색을 살피면서 살아간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은 환갑을 넘어서도 윗사람의 안색을 살피면서 공천을 제대로 받을지 걱정을 하고, 그리고 좀 황당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목사의 안색을 살피게 된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눈치 살피기는 하나의 문화로 존재하였고, 상황에 따라서는 눈치가 하나의 예의범절의 미덕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치 살피기의 긍정적인 모습 또한 이제는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동안 너무나 눈치를 중요시하는 문화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탓인지, 어느새 조그마한 예의범절 따위는 무시하는 모습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신세대들은 다른 사람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무슨 상관이야’ 식의 무례한 행동들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리는 핸드폰 받기, 심지어 도서관이나 수업시간에도 핸드폰을 받는 대학생들, 조용한 기숙사 복도에서 슬리퍼를 소리나게 끌며 지나가는 학생들, 수업시간이 다 되었다고 교수님께 “그만해요”라고 당당하게 소리지르는 학생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부딪혀도, 뒤에서 남의 발을 밟고도 내 갈 길만 바쁘다는 식으로 그냥 지나치는 젊은이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자는 것과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가 갈 만한 일에 대해서는 눈치 빠르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약점에 대해서는 무던하게 눈감아 줄 수 있는 한국인이기를 바란다.
중국인이 아닌 한민족으로서 중국을 한두 번 다녀온 사람은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중국인은 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중국인은 더 눈치가 없으면서, 더 표현을 안 하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내가 남편과도 자주 대화하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기보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생각했고, 진심으로 우리 한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교포(조선족)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리 혼란을 겪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한국의 무궁한 발전과 희망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끝으로, 여러모로 중국 교포들에게 알게 모르게 사랑의 손길을 내민 한국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직 미숙한 생각과 표현으로 혹시 중국 교포들이 여러분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주었다면 그들을 대신하여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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