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5월 4일, 베이징의 학생들은 일본의 중국 침략에 항의하는 데모를 일으킵니다. 이 데모는 중국 민중의 애국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중국을 신문화 운동의 거센 물결 속에 휘몰아 넣었습니다. 5·4운동의 표어는 ‘데모크라시(Democracy)와 사이언스(Science)’ 였지요.
신문화(新文化)운동은 처음에는 유교사상을 비판하였지만, 차차 기독교 쪽으로 화살을 겨누게 됩니다. 신문화 운동을 주도한 단체 가운데 하나가 소년중국학회인데, 이 단체는 처음에는 종교신앙이 있는 사람의 입회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어 종교 토론회가 열렸고, 결국은 종교신앙이 있는 사람도 입회할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신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중국의 지식인들이 종교신앙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이 여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신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중국의 지식인들은 기독교는 일종의 조직적인 종교로서, 자아수정을 하지 않고는 현대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으며, 국가와 사회건설에 유익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없으면 새로운 중국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견해를 같이 하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기독교를 반대하는 ‘비기운동(非基運動=반기독교운동)’으로 이어지면서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났을 때 중국인들은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新时代开始了!)”며 환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군벌(軍閥) 혼전상태(混戰狀態)에 빠지면서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신해혁명에 걸었던 기대가 무산된 것이 5·4운동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사회주의 정권이 이끄는 ‘신중국(新中國)’에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물질적 풍요가 해답이 아닌 것을 중국은 최근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원하는 해답을 기독교가 제시할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중국의 한 노 목사님이 제게 ‘바로 그것이 현대 중국 교회를 부흥시키고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라고 속삭이듯 말한 것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중국에는 역(逆) 5·4운동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야말로 현대 중국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919년에 한국에서 일어나 3·1운동은 중국의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영적 부흥이 중국에 대해 더 큰 도전이 되어 역(逆) 5·4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5월을 맞이합니다.
유관지/ 본지 발행인 · 목양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