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교회 청년부 단기선교임은 2000년 7월 31일부터 10일까지 하얼빈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 사역을 하였다. 이번 선교여행은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준비한 보람을 느끼게 했고 기대 이상의 은혜를 경험한 놀라운 기회였다.
역사의 도시 하얼빈 하얼빈(哈爾濱)은 중국의 최북방에 위치한 헤이롱장(黑龍江)성의 성도(省都)이며, 동북 지방을 가로지르는 쏭허(松花)강 중류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하얼빈은 원래 쏭허강변의 자그마한 어촌이었는데, 19세기 말엽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여 청나라로부터 중국 동북지방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러시아가 이곳을 철도 건설의 기지로 삼으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약 5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곳에는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건물들이 많다.
하얼빈은 러시아 점령시대를 거쳐 1932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일본의 점령지가 되었는데, 이때 일본 광동군 731부대가 이곳에서 생체실험을 했었다. 당시 일제치하에서 우리 선조들은 하얼빈을 거점으로 독립투쟁을 벌였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도 바로 하얼빈 역이다. 그러나 지금 그 역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현재 하얼빈 역 주변은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과 노숙자들의 숙소가 되어 있었다. 자리와 처마만 있으면 빈틈없이 누워 있는 수많은 중국인들로 역은 꽉 차 있었다.
사모하던 첫 만남 새벽녘에 역에 도착한 우리 팀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외관상 다 무너져 가는듯한 한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8명은 다른 사역지로 떠나야 했다. 조금 있자 우리가 있는 장소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6개 처소교회에서 20여 명의 전도사님과 성도들이 왔는데, 어떤 이들은 하얼빈 시내에서 오기도 했지만 어젯밤 연락받고 지린(吉林)성에서 몇 시간이나 걸리는 기차를 타고 부랴부랴 온 이들도 있었다. 성경학습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모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한국교회에서 청년들이 율동을 가르쳐준다고 하니까 이렇게 모여든 것이었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와서 말씀을 가르치고 처소교회를 방문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청년들이 이렇게 오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사역은 한마디로 부흥회 인도였다. 율동이 있는 찬양을 가르치고 또 율동도 함께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얼마나 기ㅃ하며 찬양하고 율동을 배웠는지 모른다. 매시간 새롭게 가르치는 곡들은 조선족 중학생 자매에 의해 모두 중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이후에는 성경공부 시간이 이어졌다.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까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으며 필기하였다. 한족 성도들을 위해서 한쪽에선 조선족 전도사님들이 통역을 하였다. 이 집회에 참석한 한족 성도 중 9살짜리 딸을 데리고 나온 내과의사 자매님이 한 분 있었다. 이웃의 전도를 받고 믿은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집회가 있다고 하니까 병원 일도 마다하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이 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처소교회를 위해 자기 병원을 예배장소로 내주었다고 한다. 우리가 찬양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워하며 찬양하는지, 중국어와 같은 발음인 주나 예수란 단어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그분의 찬양과 기도 속에는 주님을 향한 간절함과 사모함이 가득했다. 통역을 통해 듣는 한 말씀 한 말씀을 ‘아멘’, ‘아멘’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듣고 있었다.
2박 3일 간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동안 우리는 중국 성도님들과 무척 가까워졌다. 조별로 나누어서 찬양대회를 갖고, 풍선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동물 만드는 시간도 가지면서 금방 친해졌다. 남자 성도님들과는 팔씨름 한번 했더니 서로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인형극을 공연했는데,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였지만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단순하지만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 중국 성도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넣었을 인형극이었다.
언어는 달라도 영혼은 하나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 단기선교를 출발하기 전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심지어 도착한 이후에도, 옮길 수밖에 없는 현지 사정으로 인해 바뀌기까지 했다. 모일 때마다 사역지를 놓고 뜨겁게 기도해왔는데, 너무 자주 바꾸니 허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목적을 다시 붙잡았다.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중국 영혼을 살리며 교회를 부흥케 하며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보내 주시옵소서.’
새롭게 구성된 2차 사역팀은 다시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P시로 갔다. 역에 내리자마자 받은 인상은 공기가 참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에서 공해로 찌들었던 폐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자전거에 리어카를 연결해서 만든 삼륜차를 타고 가면서, 벌써 저 멀리 초가지붕 위로 붉은 태양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덜컹거리는 삼륜차는 비포장 도로 위를 달렸지만, 첫눈에 반할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임을 느꼈다. 도착한 예배당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안방이었다. 손바닥만한 방에서 20여 명의 성도들이 빼곡이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초가집 처소교회 안방에 못 들어간 중년의 남자 성도들이 바지를 걷고 부엌 바닥에 자그마한 의자를 깔고 앉아 예배드리는 광경이이다.
이 지역에서는 부부가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초가집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부인은 다른 예배당에서 한족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주일이면 한족과 조선족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교제하면서 느낀 것은, 이들 성도들이 너무나도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찬양을 드리다 기쁘면 온 몸으로 찬양을 드리고, 은혜 받으면 눈물을 흘린다. 성도들은 성심성의껏 한국에서 온 우리를 섬겨주었다. 주방장인 남편을 데리고 와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집에 초청하여 만두 파티를 열어 주기도 했다. 한 성도는 자기 집 목욕탕에서 때를 밀게 해주었다. 비록 샤워꼭지 하나밖에 없는 목욕탕이었지만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교회에는 주일학교가 있었는데, 우리가 함게 한 이 날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우리 팀의 한 자매는 중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화장실 어디예요?” 정도 밖에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새 중국 아이들과 함께 ‘수건돌리기’를 하며 즐겁게 어울렸다. 오후에는 인형극을 했는데, 중국어 통역으로 인형극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인형극은 어린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내용에 몰입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통역까지 하느라 평소보다 거의 2배의 시간이 걸렸고, 무대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형제자매들은 팔이 떨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육체의 한계를 이겨냈다. 저녁 집회를 마치고 헤어질 때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을 남긴 채 성도들과 작별을 고했다. 마지막으로 떠날 때 기차역까지 마중 나온 성도들에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들의 마음과 섬김에 오히려 우리가 감격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준 것 없이 받기만 하고, 섬기려고 갔으나 섬김만 받고 왔으니 말이다. 아쉬움 & 그리움 하나님은 단기선교 여행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많은 은혜를 부으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동이를 가져온 종들이 기적을 보았던 것처럼, 나는 이 사역에 동참함을 통행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은혜를 누렸다. 구로나 아쉬움 없이 모든 걸 쏟아 붓고 오자는 심정이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짧은 기간의 사역이 현지교회의 급격한 부흥을 이루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도 단기선교에 참여한 이들이 먼저 은혜를 받는 기회요, 현지교회 성도들도 충만한 성령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단기선교를 통한 중보기도 동역자가 계속해서 생긴다면 중국 복음화의 길도 멀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중국 13억의 인구가 하나님을 믿는 날들을 소망하며 우리는 이 전도행진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백성균 | 신학생, 성현교회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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