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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20 통권 68호     필자 : 박종숙 프린트   이메일 
[한국인이 본 중국인]
2천 원짜리 머리 염색

우리나라에서 미용실 하면 미용사의 웃는 낯과 씩씩한 태도, 그리고 깨끗하고 향낸 나는 분위기가 떠오른다. 비록 어떤 미장원에서는 미용사를 헤어디자이너라 하여 그 앞에 가면 손님이 되레 주죽이 들고 또 어떤 미용실에서는 미용사가 원장이 되어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보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미용실에서 손님은 거의 여왕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베이징의 한 미용실은 서울의 미용실과는 사뭇 달랐다.
안으로 커튼이 쳐져 있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한족엔 캉(중국식 온돌)이 있고 이발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의자가 셋 있는데, 30대로 보이는 미용사가 거의 발목까지 오는 좀 바랜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 50대 여성의 머리에 파마를 하고 있었다. 미용사 앞에는 열심히 파마용 종이를 건네주는 조수치고는 나이가 좀 많은 듯한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고, 그 외에도 바닥을 쓸고 있는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열두어 살쯤으로 보였다. 모두들 나를 주시하는 가운데 내가 ‘란파(染髮: 머리 염색)’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미용사가 웃으면서 빈 의자를 가리키며 좀 기다리라 했다.

손님인 50대 여성이 고집스러운 눈초리로 힐끔거렸고, 바닥을 쓸던 아이는 줄곧 빤히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 아이는 멀리서 빤히 쳐다보다 못해 아예 가까이 와서 내 주위를 얼쩡거렸다. 짧은 머리여서인지 선 머슴애 같은 인상의 그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샐쭉 웃는 게 영락없이 천진한 시골 소녀였다. 내가 웃으면서 “안녕!”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고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중국엔 뭐하러 왔느냐 등등.

나도 질세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쓰촨(四川)에서 왔단다.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으니 친척 언니도 도와줄 겸 미용 기술을 배우러 온 지 한 달 되었단다. 손님인 50대 여성뿐만 아니라 보조를 맡은 여성과 미용사까지도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지 불쑥 내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대학교수라고 하니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국의 미용실에서라면 부러운 반응을 보였을 텐데 그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과연 중국에서는 교수 같은 지식인보다 택시기사 같은 노동자가 계급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더 낫기는 나은가 보았다.

파마를 말고 잇는 50대 여성은 좀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목이 아프다, 한쪽에 파마약이 더 묻었다, 덜 묻었다, 파마 클립이 너무 올라갔다, 내려갔다 등등 연신 불평을 해댔고 미용사는 때로는 퉁명스럽게 때로는 웃어가며 잽싸게 손을 움직였다. 미용사의 지시로 어린 조수가 나를 세숫대야 쪽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난로에 데워 물은 따뜻했으나 잿물 냄새가 물씬 나는 커다란 빨랫비누로 사정없이 머리를 비벼대는 통에 좀 당황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종용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데 대여섯 살쯤 된 한 남자이이가 울면서 들어왔다. 파마를 끝낸 미용사가 큰소리로 나무라자 아이는 막무가내로 더욱 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미용사가 느닷없이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미용사를 거들던 50대 여인이 쫓아가 말리며 이 둘을 떼어놓았고 어린 조수도 달려가 아이를 감싸며 달랬다. 미용사는 여전히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손님은 시간이 없다고 성화를 부려 미용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건기 캡을 씌우는데 이번에는 전기가 나갔단다.

미용사는 짚이는 데가 있다는 듯 밖으로 나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어디를 갔는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전기 나간 캡을 쓴 채로 손임은 계속 투덜거렸다. 한참 만에 돌아온 미용사는 옆집 아주머니가 전기 제품을 쓰다가 합선이 되었다면서 지난주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지난주에도 그랬다며 씩씩거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 듯 미용사가 웃는 낯으로 와서 염색을 시작했다. 한 오 분쯤 검은 약을 바르고 빗고 또다시 바르고 빗은 후 탁탁 털어 앞치마로 쓱 닦더니 미용사는 또다시 모두를 남겨두고 밖으로 났다.

심심했던 나는 쓰촨 소녀를 불러 말을 걸었다. 비디오를 보니까 쓰촨에는 허구헌날 풀만 뜯어먹고 사는 남자가 있다는데 너도 나물을 좋아하느냐, 쓰촨 사람들은 매운 고춧가루를 좋아한다는데 너도 좋아하느냐, 또 옛날 쓰촨 사람들은 인사할 때 “안녕하세?” 하지 않고 “밥 먹었어요?”라고 했다는데 알고 있느냐 등등. 소녀는 대체로 내 말에 긍정하면서 해맑게 웃고 또 웃었다.

한참 만에 돌아온 미용사는 연신 툴툴거리다가 이번에는 자신을 거들어주었던 또 다른 50대 여인을  앉히고 파마를 말기 시작했다. 전혀 재근하지 않고 주수처럼 미용사를 거들던 그 여성도 사실은 미용실에 머리하러 온 손님이었던 것이다. 결코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미인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기 캡을 쓴 인상을 쓰고 있는 여성이 조형적으로 따지자면 더 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미는 이 여성에게는 분명 또 다른 아름다움과 향내가 풍겼다.

마침내 전기 캡에 붉은 불이 켜지고 50대 여인의 불평소리도 차츰 줄어들었다. 나는 여전히 숱 없는 머리칼을 두피에 바짝 붙이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앉아 있었고, 미용사의 아들도 캉 위에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어 모든 게 평화로웠다. 전기 캡을 쓴 여인은 꾸벅꾸벅 졸고 미용사는 편안한 얼굴로 파마를 말고, 어느새 두 시간 반이 흘러버린 시계를 보고 나또한 스르르 눈이 감기는 순간 신경질적인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전기 캡을 쓴 여인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사실 나도 짜증이 났다. 한국의 소도시에서도 오래 걸려야 한 시간이면 끝날 염색을 세 시간 넘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없었다. 미용실 안이 새삼스럽게 더욱 지저분해 보였다.

그때였다. 옆자리의 여인을 보니 아무 동요 없는 얼굴로 편안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억지로 꾸민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찌그러진 거울을 보면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이따금 고개를 돌려 밖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차츰 가라앉았다. 10여 분쯤 흘렀을까. 전기는 다시 들어오고 결국 전기 캡에서 해방된 여자는 마지막 머리 손질을 받고 여전히 인상을 펴지 않은 채 파마한 머리가 조금 이상하고 서비스가 엉망이라서 미용비를 깎아야겠다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지폐를 미용사 손바닥에 탁 소리가 나게 놓고 당당하게 미용실을 열고 어둑한 바깥으로 사라졌다. 순삭간의 일이었다. 잠시 손바닥을 들여다보던 미용사는 그동안 참았던 분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여자가 파마 비용은 반값만 주고 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린 조수도 미용사의 손바닥에 놓인 돈을 쳐다본 후 뜨악한 표정으로 여인이 사라진 쪽을 쳐다보았고 나 또한 반값을 치르고도 그렇게 당당하게 나간 그 여인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우습기도 했다.

슬쩍 시계를 보니 이미 세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마침내 미용사는 도 한 번 거친 빨랫비누로 내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를 해주었다. 마치 옻칠을 한 듯 까맣게 번들거리는 머리칼,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아니라 촌스럽게(?) 새까만 머리카락이었다. 아무러면 어떠냐.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얼스콰이(20위안)’를 주고 드디어 네 시간 만에 미용실을 나왔다. 팁은 고사하고 미용비를 깎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용사는 반면에 미소를 띠고 감격해 하며 “환잉짜이라이(또 오세요)”라고 했다. 아직도 파마를 말고 있는 50대 여성과는 눈으로 작별을 고하고 쓰촨에서 온 어린 조수에게는 손을 흔들어준 뒤 나는 속이 시원했다.

네 시간의 감금(?)에서 풀려난 것이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혼자 웃고 또 웃었다. 서울에서는 2만 원도 더 드는 염색을 단돈 2천원에 했으니 횡재한 기분도 들었다(실제로 그 염색한 머리는 장장 6개월 이상 까맣게 지속되었고 가려움증 같은 부작용도 전혀 없었다).

듣기로는 당시에도 베이징의 호텔 미용실에서는 한국 돈으로 2만 원을 호가하는 염색과 파마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나날이 자본주의 색채가 짙어지는 지금이야 베이징 골목길의 미용실도 우리네처럼 수준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때 묻은 하얀 앞치마를 입은 미용사도, 난로에 물을 데워 빨랫비누로 손님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문지르는 일도, 무엇보다도 파마하는 중에 전기가 몇 번씩이나 나가 미용사가 소리를 지르며 왔다 갔다 하는 사태도 더 이상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에 걸친 반우파운동과  문화혁명이라는 살벌한 청춘기를 보냈으면서도 끝없이 편안하고 따뜻한 눈빛을 지니고 있던 그 50대 아주머니와 쓰촨의 풀 내가 물신 나던 어린 소녀의 해맑은 미소가, 아리를 때리는 미용사의 지친 얼굴과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던 또 한 사람의 50대 연인의 찡그린 얼굴과 함께 지금도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출처 | 「짜오! 차이나」, 해냄출판사.
박종숙 | 호서대 인문학부 중국어 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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