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관념에 의하면 남자, 여자 모두 어른이 되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성경의 가르침대로라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함께 멍에를 멜 수 없다. 그러나 자매들의 수가 형제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교회에서 연애와 결혼은 젊은 청년들이 어찌할 바 모르는 가장 현실적인 난제이다.
이번에 방문한 청년 집회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중국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연애와 결혼에 있어 얼마나 많은 가르침과 목회자들의 지도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그와 동시에 중국교회가 젊은 청년들의 데이트와 결혼에 대한, 목회적 차원에서의 양육과 지도의 결핍이라는 곤경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99년 11월 초, 필자와 몇몇 지체들은 선전(深圳)시의 한 삼자교회를 탐방했다. 류(劉)목사님과 사모님은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셨다. 이번에 우리들은 이 교회의 청년 집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 교회는 청년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날 밤 1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집회에 참석했다. 그것도 다 모인 숫자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중에 집회에 처음 온 청년들만 10여 명 되었다. 사모님 말씀에 따르면, 매번 청년집회 때마다 10여 명이 새로 와서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집회는 “결혼과 연애”를 주제로 이루어 졌는데, 청년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집회는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처음 30분은 찬양과 기도, 이후 40분은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약 1시간 동안 결혼과 연애에 대한 주제토론이 진행되었다.
집회가 시작되자 모두들 매우 진지한 자세로 몰입하였다. 찬양시간에 단상에서 지휘하는 형제는 물론, 함께 찬양하는 단상 아래 형제 자매들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들은 지난 주에 배운 찬양을 연습한 다음 새로운 찬양을 배웠다.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기도 후에 설교에 은사가 있는 한 자매가 나와서 열매에 관한 성경본문을 읽고 말씀을 나누었다. 그녀의 나눔은 매우 풍성하고 조리가 있었다. 우리들은 그녀의 어투에서 그녀의 열정과 신앙에 대한 절박한 부담,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교회에 이런 열심있는 성도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곧이어 주제토론 시간을 가졌는데, 홍콩에서 온 목사님 두 분이 나와 각각 성도들이 지녀야 할 연애관과 결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원칙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였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매우 진지하게 경청했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청년들은 먼저 선전 기독교회 청년집회에서 주최하는 훈련과정을 마친 후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사를 향해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으며 강의에 대한 동감과 자신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시하였다. 그들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진리를 갈구했다. 마치 성경의 모든 진리를 다 흡수하는 스폰지 같이 느껴졌다. 목사님의 강의가 끝나자 대부분 쪽지에 질문을 적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할 줄은 몰랐다. 70여명이 질문서를 작성해 제출하였는데, 대부분 한 가지만이 아닌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적어냈다. 질문서 내용들도 모두 본인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절실한 문제들이었다. 그 내용들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가? ∙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죄악 ∙ 이혼과 재혼 ∙ 동거와 결혼증서 ∙ 추구와 기다림 ∙ 결혼 후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에게도 이혼과 재혼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수천 년이 지나도록 전통 중국 사회에서 한 여자는 한 평생 한 남자와만 살아야 된다는 사고는 결코 변하지 않은 채 뿌리깊게 이어져왔다. 그러나 현대 중국 사회가 급변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놀랍게 변하였다. 젊은이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이라는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홍콩 같은 곳에서 이런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도 홍콩 크리스천들은 이런 방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신앙서적 등 자료도 풍부하고, 교회내의 신앙 선배, 목회자, 전문가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서 가치관의 충돌에 직면하는 순박한 젊은 성도들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젊은이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던 눈빛이 기억난다. 심지어 집회가 끝난 후 목사님이 떠날 때까지 많은 형제 자매들이 목사님을 둘러싸고 연락처를 받아 적으며 수많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원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알고 순종하기를 갈급해 하는지, 그리고 모든 현실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기 원하는지를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면에 도움을 줄 자료의 결핍과 목자의 부족, 그리고 목자 자신도 이런 방면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데 문제가 있다. 성도들이 그릇된 길을 갈까 봐 염려되어, 아주 단순하게만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자들도 있다. 성도 자신이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이 있을 때만 연애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신중하고 안전하긴 하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들에게 허락하신 경험들 또한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연애와 결혼에 있어 어떻게 한 방법으로만 계속해 나갈 수 있겠는가? 또한 목자들이 이 방면에 대한 훈련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성도들을 지도하고 그들을 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양무리들의 이러한 필요를 직접 보면서 마음 속에 탄식과 감사가 동시에 나왔다.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양들이 삶 속에서 부딪히는 시대적인 충격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탄식했다. 하지만 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미 풍부한 것들을 허락하시고 줄 수 있는 자로 세워주심에 감사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힘을 다해 기도로 지체들의 필요를 기억하고, 우리들을 드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원한다.
출처 | “精迷大陸敎會”, 〈守 望中華〉 제5기, 福音證主協會 번역 | 곽숙 ∙ 중국어문선교회 협동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