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책: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 둥핑 지음 | 이준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05월 03일 출간 | 332쪽 | 정가 16,000
중국 자금성 남문 밖, 한 관리가 바지까지 내린 채 곤장을 맞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조정 관리로서 사람들 앞에서 곤장을 맞는다는 건 엄청난 치욕이자 인격 모독이었다. 그 관리는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옥에 갇힌다. 다행히 살아남아 유배지로 향하게 되지만, 가는 길 내내 자객이 따라붙어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 불행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관리가 바로 중국 역사에서 위인으로 손꼽히는 왕양명이다. 그는 입바른 말로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 유근의 심기를 거슬러 그러한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이다. 말단 관리였던 왕양명은 정계를 어지럽히고 백성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환관의 전횡과 횡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다가 곤장형에 처해지고 감옥에 갇힌 후 급기야 귀주 용장으로 귀양살이까지 떠나게 된다. 용장으로 향하는 길에 자객에게 쫓기던 왕양명은 기지를 발휘한다. 〈절명시〉를 짓고 자살로 위장해 강으로 뛰어든 후 추격을 따돌린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용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곳은 척박한 땅인 데다 생활 여건도 열악했다. 그럼에도 그는 ‘양명 동굴’에 기거하며 학문 연구를 계속해나갔고, 서원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왕양명은 현실을 등진 채 학문에만 심취한 선비는 아니었다. 그는 애민 정신을 가진 관료였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용장에서 사는 소수민족 주민들을 돌보았다. 유배 생활을 백성들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살피는 기회로 삼아 불합리한 조세 제도를 해결하는 등 불편을 해소했다. 그리고 주거 환경이나 낡은 풍습을 개선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발전시킨다.
이 책은 양명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왕양명의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소설처럼 쉽게 풀어냈다. 지금까지 나온 왕양명에 관한 책 중에 왕양명의 생애에 관해 가장 일상적이고 인간적으로 접근해 서술했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흔히 사상가로 알고 있는 왕양명은 사실 많은 전쟁터를 누빈 군사 전략가이자 백성의 삶을 돌보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왕양명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치밀하게 파헤치면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한다. 순자를 읽다: 유가를 중국 사상의 주류로 만든 순자를 공부하는 첫걸음 (고전강의 14) 양자오 지음 |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9년 05월 14일 출간 | 184쪽 | 종거 12,000원
오늘날 《순자》는 흔히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를 비롯해 동양 고전을 어느 정도 관심 있게 살펴봐 온 사람 가운데서도 《순자》를 읽은 사람 찾기는 쉽지 않지요. 그의 철학은 줄곧 성악설이라는 단어로만 설명되어 왔습니다. 맹자의 성선설을 이야기할 때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으레 그러려니 여기는 유가의 견해들을 살펴보면 사실 순자에서 비롯된 부분이 맹자에서 비롯된 부분보다 더 많습니다. 사상적 내용과 표현 형식면에서 후대에 수립된 유가 전통에 끼친 영향력도 맹자보다 순자가 더 클 겁니다. 왜 순자는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명백히 순자에게서 비롯된 사상임에도 왜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양자오 선생은 고전을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꾸준히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관점을 유지해 순자와 그의 사상을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해석해 냅니다. 200년간 지속된 전국시대 후기, 진나라의 통일이 가까워 오던 시대에 본분과 실용을 중시한 순자는 유가를 시대에 맞는 맥락으로 유연하게 변모시켜 급변하는 사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튼튼한 체질로 만들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진 유가 내 다른 문파를 신랄히 공격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예와 법의 절대적인 구분을 제거하고 유가와 법가 사이의 차이도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법가와 혼동되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지요. 그래서 당시에는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후대 유가 전통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고전을 역사 속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양자오 선생의 견해는 이 책 《순자를 읽다》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이 책은 순자가 어떤 시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혀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는지를 일러줌으로써 순자사상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게 하고 순자에게 공정한 평가를 돌려줍니다.
중국 근현대사 강의: 중국근현대사학회 강의총서 1 중국근현대사학회 엮음, 배경한·정혜중·최진규·조병한·김형종·강명희·박상수·손준식·유용태·정문상·백승욱·안치영·조영남·백영서 지음 | 한울아카데미 | 2019년 05월 17일 출간 | 408쪽 | 정가 25,000원
2000년경 이후 한국 학계에 등장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아시아 담론’은 근현대 시기가 일국사로 서술되기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일국사라는 관점이 지니는 배타성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책 역시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라는 흐름 속에서 전개된 중국사를 서술했다. 1부 ‘중화제국의 동요와 자강운동’에서는 18세기 후반 이후 중국의 상황을 산업혁명 이래 전개되고 있던 구미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과 그 연장선에서 설명했고, 중화체제의 와해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를 내우외환에 대응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설명하며 함께 다루었다. 2부 ‘중화민국의 성립과 전개’에서는 오족공화 문제를 중국과 주변의 관계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서술했다. 또한 1910년대 이후 본격화하고 있던 일본의 중국 침략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5·4 운동의 등장 과정을 설명했으며, 나아가 세계혁명을 목표로 삼았던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영향 아래 진행된 국민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알아보았다. 이어서192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고 있던 둥베이·화베이 지방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그에 대한 저항을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난징 정부 시대 10년을 다루었으며,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다룬 대목에서는 전체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전개된 일본의 대외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의 진전, 미국의 참전 등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3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전개’에서는 국공내전의 국제적 관련성과 냉전으로의 발전 과정, 냉전체제 속에서의 중국과 주변 지역(특히 한국, 북한과 베트남)과의 관련 문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중국과 소련 간의 대립 등을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1980년대 이후 전개된 개혁·개방의 진행 과정과 강대국 중국의 부상, 향후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한 전망과 관련해서도 동아시아나 세계와의 연관성을 기본적인 설명 틀로 삼고자 했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05월 14일 출간 | 328쪽 | 정가 14,000원
역사는 음식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생한 입체감을 더하게 된다. 중국 황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에 난데없이 호떡이 등장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756년 안녹산이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피란길에 나선 현종과 양귀비는 허기를 달래고자 양국충이 사다 바친 호떡을 먹었다. 왜 하필 호떡이었을까? 호떡의 뿌리는 서역의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이라는 밀가루 빵인데,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호떡이 전해지면서 중원의 상류층에는 오랫동안 호떡 열풍이 불었고 한나라 제12대 황제인 영제는 매일 호떡만 먹다시피 하고 살았다. 호떡이 길거리 간식이 아니라 상류층의 별미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열린 이후 서역의 문명과 문화가 중원보다 앞섰거나 최소한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이 책은 절대적으로 중국의 역사만을 잘라내어 마치 모든 문물이 중국을 기점으로 세계로 퍼졌다는 중국 중심주의 세계관을 지양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2장에는 소주, 후추 고구마 등 중국의 국경을 넘나든 음식들을 통해 당시 세계정세와 정치, 경제, 문화 교류의 역사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일례로 15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대항해 시대 개막은 향신료 무역이 직접적인 동기였고 그 중심에는 후추가 있었다. 중국에서도 후추가 서양 못지않게 귀하고 비싼 것은 마찬가지였고 후추에 열광했던 것 역시 서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도 15세기에 후추를 찾아 대항해를 떠났고 그 결과 후추를 비롯한 대량의 향신료를 확보했다. 후추 덕분에 건국 초기의 명나라는 안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후추로 인한 권력다툼 때문에 명나라가 쇠약해졌다. 후추가 중국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1971년,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밀 협상을 통해 화해와 수교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식사 자리에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 덕이 컸다. 팽팽한 긴장과 줄다리기 속에 깨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협상이 점심 식사를 기점으로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미국 특사 헨리 키신저에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며 베이징 오리구이를 먹는 법과 유래에 관해 설명하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다.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 모두의 직장이자 생활 터전이었던 자금성의 낮과 밤 왕이차오 지음 | 유소영 옮김 | 사계절 | 2019년 05월 03일 출간 | 232쪽 | 정가 16,800원
“안남에서 장인을 선발하여 경성의 공사를 담당하게 하라.” 《명태종실록》 영락 5년(1407) 2월의 기사에 따르면 황제는 안남총병관에게 안남(지금의 베트남) 일대에서 건축에 능한 장인을 징발하여 북경으로 보내라고 명했다. 이후 영락 1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만 7,000명의 건축 장인이 북경으로 올라오니, 이들이 주축이 되어 쌓은 성이 바로 명청 양대의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이다. 영락제는 남쪽 먼 곳에서 북방의 수도로 올라온 장인들에게 의복과 집 등 생활에 필요한 일체를 지원하여 그들이 새로운 터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금성 공사가 끝난 뒤 아예 궁에 입궁하여 태감(환관)이 되었다. 이들은 ‘교지태감’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명나라의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
《자금성의 보통 사람들》은 이처럼 역사 기록 속에서 황제나 명신의 활약이 아니라 궁궐의 일상을 보조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자금성을 직장으로 삼고 일하며 삶을 영위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준다. 지난 10여 년간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에서 《명청내각대고(明淸內閣大庫)》에 기록된 당대의 공문서를 연구한 지은이는 산더미처럼 쌓인 사료 속에서 역사를 견고하게 지탱해온 민중의 삶을 발견하고 거기에 주목했다. 당대의 《명청내각대고》 등 사료에 남은 민간에 관한 서술은 주로 자금성 궁인과 북경 백성들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내용이다. 궁중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환관과 궁녀,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금성 안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수위병, 향불을 사르며 이웃을 치료하다 여우 귀신으로 모함을 받은 여성, 황명이 담긴 문서를 각지로 호송하다 사고를 당한 역참 마부 등의 일화를 전하는 이 책은 거대한 역사의 무대 뒤를 부지런히 오간 무명씨들의 삶으로 독자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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