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여행의 마지막 오늘 아침 묵상은 사도행전 8장이었다.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 교회를 흩어지게 했다. 그것은 사마리아 지역의 복음부흥으로 이어지게 하는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순교자는 서북영공단이었다. 그들 가운데 순교자도 있었고 살아남은 자들 역시 모두가 순교자의 마음으로 평생 살아왔다. 우리 역시 순교가 필요한 시대에 순교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서북영공단의 비전은 핍박으로 인하여 잠시 휴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어날 때가 되었다.
이제 카스는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중국어로 시작하다는 뜻을 가진 카이스(開始[kāishǐ])가 카스(喀什 [Kāshí])와 발음이 비슷해서 인지 카스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비전인 것처럼 들렸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동역의 발걸음이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처럼 한족에서 위구르족으로 복음의 전파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실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하는 다음 행선지는 투무수커(图木舒克)라는 도시인데 이름도 조금은 생소한 도시였다. 신장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곳인지 우리 일행 가운데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그곳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쿠얼러에 있는 한 교회가 얼마 전에 이단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이번 걸음에 한번 둘려보고 현지교회의 필요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두 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싶은데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한 갈래는 투무수커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홍해로 가는 길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상의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홍해가 어떤 곳인지 한번 둘러보고 다시 투무수커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반대편인 왼쪽으로 돌려 안내판을 따라 홍해로 갔다. 차를 돌리긴 했으나 여기가 이스라엘도 아니고 애굽도 아닌데 홍해가 웬일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 다녔다. 잠시 후 오른편에 큰 주차장과 함께 고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공간에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안쪽에 계산대가 있는 것이 보였다.
계산대로 다가가니 직원 아가씨가 웃으며 “어서 오세요.”하며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는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는 관광단지라고 했다. 관광구역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첫 부분은 홍해라고 곳인데 바다와 같은 호수에 만들어진 방주 모양의 배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부분은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구역이었다. 일단 홍해가에 만들어진 방주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말에도 다른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이 들어가서 돌아보기로 했다. 매표소를 나오면서 관광단지 이름이 왜 홍해관광구역이냐고 물었더니 이 지역의 이름이 홍해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우리가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C형제가 또 뒤에서 매표소 여직원들에게 “아이싸 약시 큐르둠”, “아이싸 쉬스케 만구이 하야트”하며 큰소리로 자신의 어록을 반복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에 한번 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꼭 기억하세요. 그 말을 기억한다면 당신들에게 놀라운 생명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방주 앞쪽에는 홍해와 같은 큰 호수가 떡하니 누워있었다. 호수의 반대쪽에는 높은 산 하나가 시내산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있었을 것 같은 안개가 밑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방주가 아라랏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홍해가로 이동을 했나 하고 말을 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층에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방주에서 음식을 먹으며 노아의 삶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아서 우선 음식부터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층계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3층을 지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니 홍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갈대숲을 이룬 호수의 풍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던 홍해와 비슷했다. 호수의 규모도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제일 꼭대기 층에서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을 시작으로 춤추며 찬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에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셨던 비전을 이루는 일이 노아의 방주 같음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비전을 이루심이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일임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비전을 이루는 일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같음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홍해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잠하고 여호와의 일하심을 바랐던 것처럼 저희들도 여호와의 영광과 능력을 앙망하겠습니다. 내가 말일에 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마음에 주신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오래전에 중국교회에게 주셨던 복음을 예루살렘까지 편만하게 전하는 비전이 우리가 본 환상이요 꿈이 됨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소서, 저희들의 두 눈으로 이 일이 성경통독 1000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불평 없이 원망 없이, 정죄 없이 온전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전하는 화평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신 지구종단기도회, 지구횡단기도회가 다시 시작됨으로 이 일의 시작이 되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의 두 날개로 날아오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저희들은 온전한 순종으로 동역하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소서, 더 많은 믿음의 지체들이 이 일에 헌신하게 하소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님 앞에 나오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 아커수(阿克蘇)는 몽골초원에서 이주해 온 민족의 후예들이 세운 유서 깊은 도시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카스에서 알게 된 서북영공단의 어르신 중 생존하신 두 분 중에 한 분이 여기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나 뵙고 갈 수 있나 싶어서였다. 어제 투무수커로 가는 길에 연락을 드렸더니 하루 일정이 다 정해졌으니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서북영공단의 어르신들은 거의 외부와 접촉을 끊고 살았다. 아마 오랜 세월 지나면서 받아온 여러 가지 핍박 때문에 혹시 후배들이 자신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아커수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하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우리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박물관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어서 박물관을 찾았다. 주로 또랑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랑은 당시 몽골 사막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의 언어에서 온 것이었다. 사실 또랑 문화의 진수는 우리가 앞으로 갈 쿠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고대 왕궁도 남아 있고 또 대부분의 문물은 쿠처 박물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아커수의 전통 음식을 먹으려고 박물관 뒤편에 있는 먹자골목을 찾아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나의 주님께”라는 찬양이었다. 찬양에 맞춰 한 목사님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20여 년 전에 거리에서 춤을 추면서 공연을 하던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르며 춤추는 것을 지켜보던 직원들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응원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일어나 직원들도 함께 춤출 것을 권했다. 남자 직원은 춤에 자신 없다며 뒤로 물러섰다. 두 명의 여자 직원은 기뻐하며 우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나이 지극한 여자분 한분이 올라오더니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노래와 춤은 위구르가 제일이지요, 여기서 중국어 노래와 춤만 추고 그치면 서운하지요”했다. 그 말에 우리는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위구르 노래와 춤 정말 좋죠!”했더니 그 자리에서 직원한테 음향설비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 사람은 이 식당의 사장님의 어머니였다. 잠시 뒤에 음향설치를 마치고 위구르 영상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위구르 직원에게 위구르 춤을 배워가며 즐겁게 추었다.
C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구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위구르 춤에 직원들이 감탄했다. C형제의 위구르 춤을 본 직원들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렇게 춤을 추고 있는데 사장님의 어머니가 어느 사이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아예 무도회를 열기라도 하겠다는 차림새로 나타났다. C형제는 춤을 추면서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아이싸 약시 큐르둠”, “아이싸 쉬스케 만구이 하야트 베레쉬”
춤을 추던 직원들은 그 말을 듣고 하늘로 날아 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나 놀라왔다. 위구르인의 식당에서 찬양과 춤을 추고 그들과 함께 아무런 장벽 없이 즐겁게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춤을 추고 즐기는 사이에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런데 아직도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앉아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와 함께 춤을 추었던 직원 하나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다가왔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더니 무엇인가를 공손히 건네줬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받아들면서 ”레헬멋“이라고 하면서 열어보라고 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위구르인들 전통의 검은색 모자가 들어있었다. 그 모자를 우리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모자 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 모자는 위구르인들이 가장 귀한 손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한족들 중에서 이런 모자를 선물로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받게 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평의 복음이다. 이제 신장에서 복음의 확장으로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의 모순이 해결될 것임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 일은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조금의 부족함 없이 2차, 3차, 계속적인 순회여행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고 꿈꾸며 우루무치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속보를 타고 여러 동역자들의 귀에 들려져 2차 여행을 도전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우리의 여행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의 선교여행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꿈과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는 일에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가는 길은 성경일천독과 지구종단, 지구횡단기도였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원망 없이 불평 없이, 정죄 없이 축복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예언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사와 징조를 나타내시며 그 일을 이루신다. ♧
♣ Mr. HAN | 중국선교사
【편집자 주】 이번 6월호로 ‘6박7일, 중국 신장 기도여행을 떠나다’를 마칩니다. 함께 기도하며 달려온 신장 지역, 그곳에 뿌려진 기도의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서 귀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글 써 주신 Mr. HAN과 기도여행에 동참해주신 독자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