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지난호보기
2016.6.1 통권 166호     필자 : 西瓜(수박)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2)

60년 만에 먹는 안동 간 고등어
중국의 한 시골교회에서 저녁 집회를 마치고 성도님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하다가 고향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이라고 했더니 일흔이 넘으신 권사님 한분이 자기도 안동에서 9살까지 살다가 어른들을 따라서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안동 이야기를 하니깐 안동 간 고등어가 생각난다면서 먹어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3개월 후 그 시골교회를 다시 가게 됐는데 간 고등어 한 상자를 사 가지고 들어갔다. 주일 점심시간에 정말 오랜 만에 안동 간 고등어를 숯불에 구워서 서로서로 나눠 먹었다. 권사님은 옛날 그 맛 그대로라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안동 찜닭

국가와 민족을 위한 신년기도회를 지난 10년 동안 진행해왔다.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1200명이 이 신년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 기도회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은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부산의 포도나무 사역자들과 함께 신년리더십캠프를 열었다. 사역자들이 3일째 되는 날 아이들에게 안동 찜닭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 안동 찜닭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재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들은 차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도시에 가서 재료를 사왔다. 눈이 펄펄 내리는 야외에서 까잔(가마솥)을 걸어놓고 찜닭을 만들었다. 사역자들은 어떻게 이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냐며 놀랐다. 난 속으로 ‘우리는 안동 찜닭은 아니지만 캠프 때마다 100명이 훨씬 넘는 아이들의 밥도 직접 해 먹였는데, 뭐’ 하고 중얼거렸다.


김치, 김치, 김치

한국에서 중·고등부 겨울수련회를 할 때였다. 수련회 때마다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이 식사봉사를 하기 위해 따라 오신다. 하지만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이 문제가 되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이번에는 봉사자들은 한 사람도 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교사들한테 이런 상황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교사들은 밥 하고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내가 밥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르치는 일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여전도회에서 해 준 밑반찬과 김치를 가지고 캠프장으로 올라갔다.  


식사를 할 때는 조별로 자율배식을 하게 했다. 한 사람이라도 반찬을 남기면 그 조는 다음 식사를 굶어야 했고, 조원들 중에 요절을 외우지 못하는 조원이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없었고, 한 사람이 밥을 안 먹으면 조원 전체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식사 규율이 제법 엄격했다.  


세끼를 먹었을 뿐인데 가지고 온 밑반찬이 거의 동이 나고 김치만 남게 됐다. 교회 여전도회 회장한테 김치 세 양동이만 더 보내 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여전도회 회장이 우리 아들은 김치를 못 먹는데 다른 반찬은 있느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김치만 보내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둘째 날 저녁에 전도사님이 김치를 가지고 왔다. 그날 저녁부터 김치는 일식 삼찬의 고정이 됐다. 김치, 김치볶음, 깍두기, 김치국, 등등. 밥을 받으러 온 아이들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배는 고프고, 안 먹으면 다른 친구도 굶어야 하고, 많은 아이들이 밥도 조금, 김치도 조금씩 가지고 갔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저녁 집회를 마치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러 주방에 갔는데 덩치 큰 녀석들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목사님 먹을 것 없어요?” 라고 물었다. “밥 볶아 줄까?” 했더니 “예”라고 합창을 했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서 큰 솥에 한 솥 가득 볶으면서 한 녀석한테 들어가서 먹고 싶은 친구들을 불러 오라고 했더니 거의 모든 녀석들이 다 왔다. 그 후 여덟 끼를 김치로 해결하고 금요일 오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전도회 회장의 아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 김치는?” “너 김치 안 먹잖아?” “아냐!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데….”  


밥을 5시간이나 걸려서 먹으면 강의는 언제 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근로자 수련회를 2박 3일 동안 진행할 때의 일이다. 외국인근로자들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슬림들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놀게 하고 저녁 시간에 강의를 하기로 했다. 첫날 모두 빙 둘러 앉아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는 목사라고 했다. 굳이 목사라고 밝혔는데도 모두들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좀 이르다 싶은 5시에 저녁상이 차려졌는데, 설날상차림이라 그런지 푸짐했다. 그런데 시작된 식사 시간은 끝날 줄을 몰랐다. 내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자 예수 믿는 친구를 재촉했다.  


밤 10시, 드디어 밥상을 물린 뒤 강의를 시작했다. 첫 강의에서는 키르기스스탄 지도 퍼즐 맞추기를 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위성지도사진 200여 장을 다운로드해서 다시 포토샵으로 1m20cm × 1m50cm 크기의 대형 퍼즐 지도를 만들었다.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작은 것을 통해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나라의 온전한 지도를 보았으며, 그렇게 큰 지도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위성지도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퍼즐을 다 맞춘 뒤에는 키르기스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 현실에 대해 새벽 1시까지 강의를 했다. 그리고 1시부터 2시까지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속으로 다음날 저녁 식사는 좀 일찍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밤 10시가 돼 끝났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밤 10시에 강의를 시작해 새벽 두 시까지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둘째 날 낮 시간에 함께 썰매를 타고 족구를 하면서도 나를 사장님, 사장님 하고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시간에는 캠프 기간 동안에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라고 했을 때 그들 모두가 사장님이 아닌 목사님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목사님이라는 소리가 그렇게 감격스럽게 다가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위 바위 보 비빔밥

중국인학생들로 구성된 무용선교팀을 데리고 한 시골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였다. 5시에 저녁을 먹고 6시에 집회를 시작해서 9시가 조금 넘어 모든 집회가 끝이 났다. 아이들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엄청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한 집사님에게 큰 양푼에 밥을 비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밥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함성을 질러 됐다. 식사기도를 마치자 아이들은 내가 먼저 숟가락을 들기를 기다렸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이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기는 사람이 한 숟가락씩 먹기로 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모두가 좋다고 함성을 질렀다.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어떤 때는 두 사람이, 어떤 때는 다섯 사람이, 또 어떤 때는 한 사람이, 또 어떤 때는 일곱 사람이…. 그렇게 열 번을 넘게 지나갔는데 현지 지도교사가 단 한 번도 이기지를 못했다. 드디어 열두 번째 그 교사 혼자서 이겼다. 그러자 교사는 집사님에게 대접 하나를 달라고 하더니 숟가락을 눕혀서 양푼에 대고 양푼을 그릇 위에 눕혀서 한 숟가락을 덜면서 ‘이것도 한 숟가락 맞지?’ 했다. 아이들은 ‘반칙’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 그 밥처럼 맛있는 밥을 먹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뭘 해줄까

그 아이들을 데리고 또 다른 교회에 갔다. 오후 집회를 마치고 저녁 집회를 위해 아이들이 춤 연습을 했는데 한 권사님이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뭘 해줄까?’ 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특별한 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권사님은 그러면 깻국을 해 줄게 라고 하시더니 방앗간에 가서 들깨를 갈아왔다. 그리고 쌀가루를 이겨서 경단을 만들고 그것을 삶아서 들깨국에 넣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먹는 것인데도 맛있다고 두 그릇 세 그릇을 뚝딱 했다. 


그 다음 교회에서도 두 번째 날 오후에 집사님이 ‘뭐 해줄까?’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역시 ‘특별한 거요.’라고 대답했다. 집사님은 그럼 느릅쟁이 국수를 해 주겠다고 하셨다. 밀가루에 느릅나무 가루를 넣고 반죽을 해서 물이 끓는 가마솥 위에 국수틀을 올려놓고 그 속에 반죽한 것을 넣고 힘껏 눌렀다. 국수가 밑으로 빠져나와 끓는 물속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마냥 신기하게 지켜봤다. 그렇게 끓인 국수를 그릇에 담아 나눠 먹는 맛은 아이들의 마음을 완전 사로잡았다.  


한국 사람은 이거 안 먹는데

한 도시에서 연합교사강습회를 할 때였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시골교회 집회를 가셨다가 점심을 우리와 같이 하기 위해 급히 돌아오셨다. 회의실에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점심상이 다 차려졌다. 양탕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양탕에는 고수(샹차이)가 놓여서 나왔는데 내 양탕에는 고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 나는 고수를 안 주냐고 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이거 안 먹는다고 해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잘 먹는다고 했더니 담임목사님은 ‘중국 사람인 모양이네요’ 라며 좋아하셨다. 


사실 음식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이제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그들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그들은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고 우리는 그 음식을 통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전혀 먹어본 적이 없는 향료가 첨가되었을 땐 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없다면 그들의 마음속으로, 나아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들은 그 음식을 우리가 먹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살펴보기 위해 그 음식을 대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현지인들이 먹고 마시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고 함께 삶과 믿음의 깊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 西瓜(수박) | 순회선교사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