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1.JPG) 대로에서 당나귀에 짐을 부리는 거리 풍경, 자전거에 리어카를 매어서 짐을 운송해 주는 나라. 그 나라에 우리 가족이 선교의 비전을 품고 왔다. 우리를 초청한 대학교에서 짐을 옮길 리어카를 불러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많지도 않은 캐리어며 짐들을 그 다섯 대의 리어카에 나누어 싣고는 우리더러 한 사람씩 리어카 한 대씩에 타야한다고. 혹 짐이 분실될까봐 짐을 지켜야 한다면서. 낯선 풍경이지만 참 재밌다. 이것은 선교사가 타문화권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번 호에서는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선교지 초창기시절에 옷 때문에 속상한 일이 꽤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봄이 되어서 남편이 입을 청바지를 하나 샀다. 그런데 바지 길이가 생각보다 너무 길었다. 옷 수선 가게가 시장 안에 있는 것을 보아 두었기에 청바지를 들고 갔다. 나는 바지 한쪽 길이를 접어서 표시해 주면서 양쪽을 똑같이 잘라서 감침질을 해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오라는 시간에 맞춰 찾으러 갔을 때, 나는 옷 수선하는 아주머니가 바지 길이를 고쳤다면서 내민 청바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바지의 양쪽 길이가 눈에 확 띄게 다른 것이 아닌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고. 내가 잘라 달라고 한 바지 길이는 긴 쪽이었고 짧은 쪽은 그 아주머니의 실수로 잘려나간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입고 다니느냐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을 했다. 한 쪽이 길면 긴 쪽을 짧은 쪽에 맞춰 잘라주면 되겠냐고. 그런데 문제는 바지 길이가 긴 쪽이 남편의 키에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쪽에 맞추어 잘라 버리면 바지가 깡똥해져서 보기가 싫어질 것이 분명했다. 선교지에 도착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가, 그렇다고 바지를 수선하고 이백 원(한화) 정도를 받는 그녀가 만원이 넘는 바지를 새것으로 사 줄 리도 만무했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짧은 쪽 바지 길이에 맞춰서 길이가 긴 쪽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속이 상했지만 다른 방법도 마땅히 없었기에 그렇게 했다. 잘못 수선된 청바지를 입은 남편은 다리 길이가 깡똥하고 짧아 보였다. 남편은 177센티의 적지 않은 키었지만 발목뼈에 닿을 정도의 그 짧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은 정말 볼품없었다. 당시는 보통은 구두뒤축을 살짝 덮을 정도의 바지 기장이 가장 보기 좋던 때였기에 더욱 그 짧아진 청바지는 보기에 민망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예의 없어 보이는 태도였다. 당시 그 옷을 수선한 아주머니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큰 실수를 하고도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 아주머니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바지가 짧으면 흙도 튀지 않고 좋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적어도 “미안합니다”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 당시 나는 그곳 사람들은 잘못을 해 놓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더 큰 소리치기가 일쑤였다. 그 아주머니의 실수로 짤막해진 청바지를 들고 집으로 와서는 남편에게 입혀보니 정말 발목의 복사뼈에 걸린 것이 꼭 당고바지 같고 우스웠다. 내가 이걸 입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어때, 뭐 누가 보나? 오히려 ‘현지인틱’ 하고 좋지 뭐” 라고 응대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선교지 생활을 하면서 나보다는 더 일찍 마음을 비운 것 같았다. 지난번 미용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미용사의 실수로 턱을 베여서 피가 줄줄 흘렀을 때도, 남편은 이 정도로 선교지 신고식 하는 건 약과라고 했을 정도니. 그래도 속상함을 풀지 못하고 투덜대는 나에게 남편은 덧붙여 말한다. “선교지에서 누가 볼 것도 아니고 바지가 짧다고 우스꽝스럽다고 할 사람은 이 땅에서는 아무도 없으니 괜찮아” 남편은 목사가 되기 전 한 때 십여 년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여자고등학교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불렸던 사람이었다. 양복이 잘 어울리는 남편은 넥타이만 바꿔 매도 새로운 멋이 풍기는 그런 멋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랬던 남편은 옷 입는 것에 대해서도 포기했다. 비교적 빠르게 현지 적응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한참 동안 발목까지 오는 짧은 청바지를 입은 남편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곤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시작된 선교지 생활은 우리를 얼마나 더 많이 변하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쉬곤 했었다. 그런 생각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가 문득 얼굴을 들어보니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의 우스꽝스러운 그 청바지를 뽐내듯이 입고서 말이다. ♣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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