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1.jpg) 2014년 10월 8일 국내에서 개봉한 《5일의 마중》은 장이머우(张艺谋) 감독과 여배우 공리(巩俐)가 《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 2006)이후 7년 만에 재회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장이머우는 《붉은 수수밭》(红高粱, 1988)으로 중국 최초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중국의 5세대 감독의 대표이고. 궁리는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1992)로 중국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5일의 마중》은 2014년 칸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았고,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14년 12월 30일 제6회 마카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의 영예를 차지하였고 2015년 2월 20일 설날 특집으로 KBS1 TV에서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재미 화교 여성 작가인 옌거링(严歌苓)의 소설 《루판옌스(陆犯焉识)》을 각색하였는데 중국어 제목은 ‘귀래(归来)’로 귀가, 귀향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출세가도를 달렸던 장이머우는 《5일의 마중》을 통해 기존의 상업영화를 추구하는 것에서 예술영화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고, 여배우 공리는 중년에서 노년까지의 중후하고 원숙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옌거링의 소설 《루판옌스》 이 영화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억압받던 상하이 지식인 루옌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아픔을 전달하는 상흔문학이다. 원작자 옌거링은 재미 여성 작가이며 그녀의 조부인 옌언춘(严恩春)은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샤먼대학(厦门大学)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서북 지역에서 20년 간 투옥되었고 시국에 비관하여 자살하였다. 옌거링은 영화속의 루옌스이라는 캐릭터에 조부의 험난했던 삶을 투영하였다. 문화대혁명은 10년간(1966-1976)에 걸쳐 추진된 사상 문화 혁명운동으로 홍위병들이 전통적인 가치와 자본주의 사상을 배격하였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에 종결되면서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중국의 사회와 문화 전반에 잔재로 남아있다. 장이머우 감독은 옌거링의 《루판옌스(陆犯焉识)》 소설 후반부의 스무 페이지 정도를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의 기나긴 서사를 삭제하였고 정치적인 색채를 가능한 최소화하여 연출하였다. ‘3년 후’, ‘20년’, ‘오랜 세월 이후’와 같은 자막을 사용하여 자세한 역사적인 사실과 정치적 시선을 가급적 회피하면서 역사의 기억을 더듬었고 한 개인의 가정사에 초점을 맞추어 기억속의 어두운 터널을 흑백 톤으로 탐색하였다.
가족 해체와 단절된 관계 1930년에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이 성립되어 여성 공산당원의 혁명이야기를 현대화한 《경극 양판희》(京剧 样板戏)로 제작되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발레극으로도 공연하였다. 총과 수류탄을 들고 행진하며 춤추는 단단(丹丹 张慧雯 분)은 발레극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에서 주인공을 맡아 유명 발레리나가 되기를 바랐지만, 교수였던 아버지 루옌스(陆焉识, 陈道明 분)가 반동분자로 몰려 서북 지역 황무지로 노동교화에 끌려갔다가 잠적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로 인해 자신이 연루될까 불안해 하였다. 당 지도위원은 단단에게 아버지가 돌아오면 신고하라고 협박하는 동시에 재능이 있지만 자신의 출신성분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아버지를 밀고하면 발레극에서 주인공을 맡게 해준다고 회유하였다. 어느 날 집 복도에서 단단은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를 밀고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만나지 말라고 강요하였다.
루옌스는 이웃의 시선을 피해 기차역 고가교에서 만나자는 메모를 아내가 사는 집 문턱 아래에다 슬며시 밀어 넣었다. 펑완위(冯婉瑜, 巩俐 분)는 도주한 남편이 기본적인 생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되어 찐빵과 침낭을 준비하였다. 루옌스는 기차역 다리 밑에서 남의 눈을 피해 쪼그려 앉아 길바닥에 고인 빗물에 수건을 적시어 까만 얼굴을 닦아내며 아내와의 재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내와 약속한 시간이 되자 남편은 다리 밑에 숨어 있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큰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펑완위는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여 다가가려고 했지만 경찰들이 쫓아오는 것을 목격하고 남편한테 당장 도망가라고 소리쳤지만 결국 잡혀 연행되었고, 펑완위는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잡혀가는 남편에게 달려가다가 피 흘리며 쓰러졌다.
단단은 아버지를 밀고했지만 출신성분이 문제가 되어 발레극에서 말단 역할을 맡아 무대 안쪽 끝에서 약간의 손짓만 하게 된다. 펑완위는 딸이 남편을 밀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단단을 집에서 내쫓아 관계를 단절하였고 단단은 발레를 그만두고 방직 여공으로 취직하여 회사 기숙사에서 사는 참담한 신세가 되었다. 그 당시는 부모가 죄를 지어도 고발하면 안 된다는 공자의 전통 유가적 윤리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단단은 죄인의 딸이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족사진에서 아버지 모습을 전부 가위로 오려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당시에는 암울한 시대상과 정치적인 폐해로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균열이 가고 사람끼리 서로를 의심하고 오해하였다.
고통 속에 지워진 기억 루옌스는 기차역에서 붙들려 3년의 옥고를 치르고 20년 만에 사상범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내는 그를 팡씨로 오해하여 집안에서 내쫓아 어쩔 수 없이 맞은편에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였다. 루옌스(陆焉识)의 ‘스(识)’는 ‘알다’라는 의미로 그가 아내에게 잊힌 사람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루옌스는 의사로부터 아내가 심인성 기억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게 위해 과거 부부가 함께 찍었던 앨범을 찾아보았지만 딸이 자신의 자신을 모두 오려낸 것을 발견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없이 루옌스는 친구 집에 사진을 빌리러 갔다가 친구의 아내로부터 친구가 자살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장이머우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때 줄곧 화려한 영상미에 집착했는데, 《5일의 마중》에서는 흑백을 사용하여 침울한 현실을 조명하였지만 가족 해체와 관계의 단절 속에서도 서로 이해하며 용서하여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였다.
루옌스는 아내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주며 자신을 밀고했던 딸을 용서하고 다시 함께 살라고 당부하여 극적으로 아내와 딸이 화해하게 되었다. 루옌스는 잠시나마 단단의 발레하는 모습을 보고 단란했던 과거를 되찾은 것 같았지만 침대에 잠든 펑완위에게 이불을 덮어주려고 할 때, 뜻밖에도 아내는 남편을 팡씨로 착각하여 제발 자신한테 나쁜 짓을 하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루옌스는 전에 팡사부가 국자로 아내를 구타했다는 딸의 말을 전해 듣고 며칠 후 복수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루옌스는 국자를 몸에 숨기고 팡씨의 집을 찾아갔는데 팡씨의 아내는 남편이 범인으로 잡혀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처량한 과부신세로 지낸다고 하소연하며 언제 남편을 풀어 줄 거냐고 따졌다. 암흑의 시대에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기억은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적, 문화적, 공공적인 성격을 내포한다. 어떤 대상을 지속적으로 기다리는 행위가 기억이라면, 망각은 의지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종종 망각을 사용한다. 기억 상실은 내면의 죄책감을 내려놓기 위한 자기방어의 본능을 충족시킨다. 영화는 차라리 심연의 망각을 선택하였다. 과거를 재현하고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펑완위는 심인성 기억장애에 걸려 선택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다. 남편이 20년 만에 돌아왔지만 가족의 심리적인 거리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아내 펑완위는 팡씨의 학대를 받았고 기차역에서 남편에게 달려가다가 머리를 다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해 기억상실이 유발되어 오랜 세월동안의 상흔에 대해 제대로 말로 다하지 못하는 정신적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버렸다.
루옌스는 아내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해 세 가지 장치를 마련하였다. 첫째, 루옌스는 사진을 통해서 아내의 기억을 회복시키려고 하였다. 펑완위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예전의 남편의 모습을 회상하고 자기 앞에 나타난 루옌스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사진속의 남편과 현재 자신 앞에 나타난 남편이 같은 사람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둘째, 아내가 남편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피아노를 고치려고 하자 루옌스는 피아노를 조율해주겠다고 찾아와 과거 자신이 연주했던 곡을 들려주자 펑완위는 계단에서 남편의 연주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안에 들어와 루옌스의 뒷모습을 보고 흥분하여 남편의 품에 안겼지만 불쑥 다시 남편을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셋째, 루옌스는 아내에게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소포로 보내고 시력이 약해진 아내를 위해 자신의 편지를 읽어주었다. 루옌스가 편지를 읽어줄 때 펑완위는 왠지 모르게 그에게 호감을 갖고 빠져들었다. 루옌스는 매일 남편의 편지를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각인되어 펑완위는 점점 마음의 평온을 찾았지만 루옌스는 그녀에게 타인으로 인식되는 것이 염려되어 편지를 읽어주는 것을 그만두려고 하였다. 루옌스는 자신이 집을 비웠던 오랜 세월동안 아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수치를 당하고 펑씨에게 학대받았던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더 이상 아내 곁에 다가가지 못했다. 펑완위는 매일 찾아오던 루옌스가 오지 않자 걱정하고 딸과 함께 남편이 사는 집에 병문안을 와서 만두와 설음식을 가져와 그가 빨리 쾌유하길 바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로 이어진다. 눈이 펑펑 오는 그날도 펑완위는 5일에 돌아온다는 남편의 편지를 믿고 백발에, 깊게 주름 패인 얼굴에 화장을 하고, 딸 단단은 아버지 이름을 쓴 팻말을 들고 루옌스는 펑완위를 자전거에 태워 기차역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다 빠져 나가고 철문은 굳게 닫혀졌지만 세 가족은 낙심하지 않고 함께 20년 전 집 떠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를 기다린다. 노년의 남편은 이제 더 이상 아내의 기억을 되찾아 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선한 이웃으로 그녀의 곁을 지켜주며 남편을 마중 나가는 그녀의 지극한 기다림에 동참하였다. 한국과 중국에는 아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어서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전설이 오랫동안 각지에서 전해지고 있다. 《5일의 마중》에서는 남편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시선에 회의를 느끼고 20년이라는 오랜 세월 속에 파묻혔던 깊은 상처와 고통은 어떤 노력으로도 회복이 어려운 점을 보여주었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강의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