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한그루.JPG) 내가 만난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신 주, 영원토록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분은 늘 나와 함께하며 저를 돌보아주십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가는 것보다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방식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학교 생활은 바빴고, 사회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거리는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의심했습니다. 그럼에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2년 간 미친 듯이 일했지만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였고, 부모님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주위 친척들은 너희는 예수도 잘 믿는 가정인데 왜 그렇게 가난하냐며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더군다나 저의 몸도 아프다 보니 마음속에는 온통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힘든 우리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고,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에게도 나는 이제 더 이상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다녔습니다. 이런 저를 지켜보시며 상심하고 괴로워하시는 어머니를 뵙는 것이 힘들어서 주일마다 교회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웃기지만. 주중에는 '내 내음대로의 생활’을 하고, 주일에는 ‘영혼 없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의지가 아닌 반강제적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엄마의 소망’ 그 자체였기에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때의 제 모습을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온유하고, 성품이 고와 보였을지라도 저는 누구보다도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절망과 분노, 그리고 외로움으로 끊임없이 타락의 길로 향하던 저를.
바닥을 치고 있던 그때, 하나님께서는 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신학생을 통해 저의 마음을 만지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태국에 있는 한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성경통독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해할 수 있겠지요.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다닌 제가, 어떻게 성경 통독을 하러 태국까지 갈 수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사실 저 역시도 의심스러웠으니까요.
“아니 왜?”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제가 부모님께 태국 성경 통독 과정에 참가하려고 한다고 말씀 드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완강히 반대하셨습니다. 여자 혼자서 다른 나라에 가는 것 자체를 불안해 하셨고, 왜 굳이 돈을 들여가며 외국까지 가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태국에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반대를 하시던 부모님께서 갑자기 그들의 결정을 바꾸시고, 제가 태국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말 저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린 대사건 이었습니다. 이렇게 태국으로 출발 ∼∼
그것은 제가 처음으로 성경을 통독한 것이었고, 성인이 된 지금,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몇 주간, 저는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비록 성경통독 중에 여러 번 졸기도 했지만. 그리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았지만,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저를 만지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의 분노를 사라지게 해주셨고, 그 자리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남 몰래 흘리던 마음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넘치는 기쁨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지친 저의 마음을 그분 안으로 데리고 가셔서 회복시키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곳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들은 늘 밝은 미소를 띄우시며 겸손하게 섬기시고, 입에서는 항상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물질이라고는 일용할 양식뿐이었지만, 그 일용할 양식으로 인하여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그러한 선교사님들의 삶은 지금까지 물질 중심으로 살았던 저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물질을 탐하는 사람은 물질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없고, 풍족을 탐하는 사람도 이익으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없기에 이 모든 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태국에서의 짧은 시간,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선택해주셨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존재인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소유인, 사랑하는 딸이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저의 유익함을 위함이시며, 그분의 거룩함에 거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6절 말씀처럼.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저를 십자가 위에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느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성령 충만으로 거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팠던 제 과거의 삶에 왜 침묵으로 일관하셨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구원자이시며, 저의 반석이십니다. 그분은 저를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 주셨고, 그분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 한 걸음씩 인도하시리라 믿으며 저의 남은 인생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그분을 따르며,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연 | 중국어문선교회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