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강좌.jpg) 산촌의 가을 저녁
빈산에 새로 비 내린 후 저물녘 완연한 가을 날씨라.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맑은 샘물이 돌 위로 흘러가네. 대숲 길로 빨래하는 여인들 수런대며 돌아가고 연잎을 흔들며 고깃배 내려간다네. 봄꽃들이야 멋대로 다 졌어도 나는 야 이 산중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려네.
空山新雨後,天氣晚來秋。 明月松間照,清泉石上流。 竹喧歸浣女,蓮動下渔舟。 隨意春芳歇,王孫自可留。
1 暝(명): 어둡다. 해가 지다. 2 空山(공산):빈산. 가을산이나 겨울산을 가리킨다. 3 天氣(천기): 날씨. 4 晩來(만래): 저녁 무렵. 5 竹喧(죽훤): 대나무 숲길이 시끌벅적하다. 빨래하고 돌아가는 여인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대나무 숲길이 소란스럽다는 말이다. 6 浣(완): 빨래하다. 7 蓮動(연동): 연잎이 흔들리다. 이 구절은 고깃배가 지나가면서 연잎이 흔들리는 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8 隨意(수의): 제 멋대로. 9 春芳(춘방): 봄꽃. 10 歇(헐): 그치다. 쉬다. 여기서는 꽃이 졌다는 말이다. 11 王孫(왕손): 원래는 귀족의 자제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산중에 은거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활용되었다. 여기서는 왕유 자신을 가리킨다. 12 可留(가류): 머물 수 있다. 머물 만하다.
서기 755년 발발한 안록산의 난 이후로 세상만사에 흥미를 잃은 왕유는 허명뿐인 상서우승(尙書右丞) 벼슬을 조정에 걸어놓고 대부분의 시간을 망천(輞川) 별장이 있는 종남산에서 보냈다. 이른바 ‘반관반은(半官半隱)’인데 기실 조정에 있을 때조차도 마음이 산중을 헤매고 있었으니 ‘반관’이랄 수도 없었다. ‘일관구은(一官九隱)’이라 해야 할까?
젊은 시절 뛰어난 재주와 방자한 패기로 가없는 청운의 꿈을 좇던 그가 자연으로 눈을 돌린 것은 30세 무렵 부인을 잃은 뒤부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있던 그를 보듬어 위로해준 것은 바로 자연이었다. 왕유는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산수시를 썼으며 자연이 빚어놓은 그림을 보고 문인화를 그렸다. 그렇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의 마음의 병도 차츰 나아져갔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범양 절도사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관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장안 도성을 함락시켰으며 수많은 조정 대신들을 포로로 잡은 뒤 자신의 조정에서 벼슬할 것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왕유 역시 명망이 높았던 탓에 위관(僞官) 직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이 일은 결국 왕유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난리가 평정된 후 조정은 내란 부역죄라는 중대한 범죄 혐의로 왕유를 옥에 가두었고 왕유의 목숨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당시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상당한 실권을 가지고 있던 동생 왕진(王縉)이 황제에게 간절히 호소하였고, 또 왕유가 포로로 있을 당시 임금을 그리워하며 시를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극형은 면할 수 있었다. 벼슬이 강등된 것으로 죽음의 그물을 벗어난 왕유는 진절머리를 치며 종남산 자연의 품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늙어 가매 오로지 고요함만을 좋아하느니 세상만사 아무런 관심도 없어라 스스로 돌아보매 내게 무슨 재주가 있으랴 그저 옛 숲으로 돌아가는 일만 있을 뿐
晚年惟好靜,萬事不關心。 自顧無長策,空知返舊林。 <장소부에게 화답하다(酬張少府)> 중
그가 돌아온 옛 숲, 젊은 시절 아내를 잃고 극한 상심에 젖어 위태로운 날을 보내던 시절에 그를 안고 어르던 어머니의 품 같던 그 옛 숲에 왕유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절룩이며 다시 돌아온 것이다. 마침 숲은 여름 더위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시절이었다. 왕유가 도착한 삼일 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대청마루에서 비 오는 종남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왕유는 스스로 산이 되어 비를 맞는다. 스스로 무욕의 빈산이 되어 하늘의 새 비를 맞으며 지난날의 얼룩을 닦는다. 이윽고 저물녘 비가 개이고 동쪽으로 말간 산달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달과 함께 의젓한 소나무가 찾아와 사립문을 밀고 들어온다. 버선발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더니 오호라 어찌 이 둘 뿐이랴! 그 뒤로 푸른 돌 위로 흘러가는 맑은 시냇물이 그윽한 음성으로 왕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지 않는가! 이 맑고 숭고한 벗들에 둘러싸여 나와 너의 경계를 잊고 물아일체의 기쁨을 누리고 있던 왕유의 귓가에 환청처럼 아득한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아가 보니, 달과 소나무를 데리고, 맑은 물과 푸른 돌을 데리고 나아가보니, 그 소리는 동구 밖으로 이어지는 대숲 길에서 들리는 빨래하고 돌아오는 산촌 여인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거친 노동으로 그을린 그녀들의 얼굴은 달빛으로 하얗게 분을 바른 듯 아름답고 순수했으며, 투박한 음성으로 부르는 그녀들의 노래는 대숲에 부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고 정감이 넘쳤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의 몸을 섞어 풀어내는 이 황홀한 연출에 왕유의 심장이 고동쳤다. “이곳에 인생의 진실한 의미가 있으나 그것을 표현할 말을 잊었다(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는 도연명의 구절이 바로 이런 것인가! 감정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돌연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우승 어른, 달빛이 좋습니다. 거기 그렇게 서계시니 마치 달빛 아래 노니는 신선 같습니다 그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산 아래 포구에 사는 우계(愚溪) 선생이 조그만 고깃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인사한 것이다.
“아! 우계 선생, 오늘은 많이 늦으셨네요. 고기 많이 잡으셨습니까?”
“고기요? 고기는 못 잡고 달빛만 잡아 가득 싣고 돌아갑니다~”
“하아~그것도 좋지요. 돌아가서 그 달빛 잘 요리해서 맛있게 드십시오.”
“그러지요. 고기가 잡히는 날에는 고기를 굽고, 달빛이 잡히는 날에는 달빛을 굽고, 고기도 잡고 달빛도 잡은 날에는 달빛 고기 매운탕을 끓이고~”
“하하, 창랑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수 물이 탁하면 발을 씻을 것이요, 옛 어부가 불렀던 이 창랑가보다 더 근사한 말인 것 같소! 달빛 고기매운탕 끓이는 날에 한 번 불러주시오.”
우계는 하하 웃고는 고깃배를 저어 떠나갔다. 연밥이 영글어 가는 연못에 가득 쌓인 달빛을 헤치며 웅얼웅얼 뱃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어부 우계 선생은 세상을 피해 살고 있는 은자다. 언젠가 강기슭에서 땔감을 줍던 그를 만나 노닥거리던 적이 있었다. 그는 유학(儒學)은 물론이고 불학(佛學)과 도학(道學)에도 이해가 깊었다. 뱃노래를 부르며 달빛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왕유에게 까마득한 옛날 시인 굴원이 은자 어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굴원이 쫓겨나 강과 호수를 떠돌며 물가에서 걸으며 시를 읊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몸은 비쩍 말랐다. 어부가 보고는 물었다.
어부: 그대는 조정의 고관인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째서 여기까지 오셨소?
굴원: 온 세상이 탁하고 나만 홀로 맑으며, 모두가 취해있건만 나 홀로 깨어있어 결국 이렇게 쫓겨났다오.
어부: 성인은 사물에 매어있지 않으며 세상과 함께 옮겨가는 법이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당신도 그 탁한 물에 뛰어들어 함께 물결을 휘젓고 난리를 치면 될 것이요, 모두가 술에 취했다면 당신도 그 술지게미라도 먹고 값싼 막걸리라도 마시며 어울리면 되지, 어째서 생각을 깊게 하고 행동을 고상하게 해서 스스로 쫓겨나도록 만들었단 말이오?
굴원: 새로 머리를 감으면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하고, 새로 목욕을 하게 되면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 법이오.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그럴 바엔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낫소. 어떻게 순결한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저어 떠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어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다네.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된다네.
어부는 결국 떠나갔고 다시는 굴원과 대화하지 않았다. 왕유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들었다. 책상에는 엊그제 도착한 장소부(張少簿)의 편지글이 뜯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보지 않아도 알만한 것이었다. 종남산에 은거하듯 살고 있는 왕유의 생활을 탐탁치 않아하는 그가 적극적 출사를 재촉하는 내용일 것이다. 이전에 그가 왕유에게 시를 보내 인간세상의 궁하고 통하는 도리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잘 나가면 온 세상을 아울러 구하고(達則兼濟天下), 궁하게 되면 자신의 몸을 홀로 잘 보양한다(窮則獨善其身)”는 맹자의 이야기야 궁통의 도리로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대도 그가 이 궁통의 도리를 왕유에게 묻는 까닭은 물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독선기신’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조정에 나아가 군주를 섬기고 백성을 구제할 때라는 것이다. 한가롭게 자연 속에서 청풍이니 명월이니 하며 희롱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왕유의 재주에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는 장소부로서는 그럴 만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왕유가 조정으로부터 얻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를 치료하고 감화하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심오한지 몰랐다. 그래서 왕유는 그때 그에게 보내는 답시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대 궁통의 도리를 묻는구료/깊은 포구에 들려오는 어부의 노래 소리를 듣게나. ” (君問窮通理, 漁歌入浦深.)
그런데 이 시를 쓴 왕유의 뜻을 못 알아들었는지 장소부는 그 뒤에도 안부를 묻는 편지 끝에 항상 왕유의 적극적인 출사를 권하곤 했다. 이번에도 개봉해서 확인하니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번 글에서 장소부는 <초은사(招隱士)>라는 초사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왕유를 산중에서 불러내고 있었다.
“은자 노닐며 돌아오지 않고/봄풀만 무성하게 자라났도다/은자여 돌아오라/산중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러니.”(王孫游兮不歸,春草生兮萋萋。王孫兮歸來,山中兮不可久留.)
편지글을 내려놓고 창 너머 바라보니 밝은 달은 벌써 산등성이 가까이로 높이 솟아있고 어디선가 달빛에 잠이 깬 산새의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왕유는 붓을 들어 장소부에게 보낼 시를 한 수 쓰기 시작했다.
空山新雨後 빈산에 새로 비 내린 후
天氣晚來秋 저물녘 완연한 가을 날씨라.
明月松間照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清泉石上流 맑은 샘물이 돌 위로 흘러가네.
竹喧歸浣女 대숲 길로 빨래하는 여인들 수런대며 돌아가고
蓮動下渔舟 연잎을 흔들며 고깃배 내려간다네.
隨意春芳歇 봄꽃들이야 멋대로 다 졌어도
王孫自可留 나는 야 이 산중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려네.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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