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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28 통권 143호     필자 : 조영배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복음의 섬 제주, 중국인 사역
성서 제주어 번역작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어 성서 번역의 배경

성서의 제주어(제주방언) 번역은 언어적 근본(또는 표준이나 준거)을 추구하는 근본주의적 사고를 벗어나고자 하는 몇몇 깨어있는 신학자(목회자)와 기독교문화와 제주문화의 만남을 시도하고자 했던 선각자들에 의하여 시도된 바 있고, 또한 지금도 이러한 번역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실천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성서의 제주어(방언) 번역은 일찍이 1981년 제주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던 전병호 목사(제주복음교회)에 의하여 기획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이 「마가복음」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그 신학적, 문화적,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새롭게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21세기종교문화연구소]에서 추진해 왔다. 그리고 2012년 9월부터 체계적으로 성서의 제주어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관련자들과 논의하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통합, 기장, 감리교단 등에서도 번역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재정적 문제와 여러 학술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던 차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한원씨의 기획으로 강명주씨가 번역한 「제주마가복음」이 나온 것이다. 물론 신학적, 문화적 학술출판물로서 정식 등록된 도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 귀한 출판물은 또 다시 성서의 제주어 번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성서의 제주어 번역에 관한 시도와 관심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왔으나 성서 전체의 제주어 번역 그것도 신학적, 문화적, 학술적 연구를 토대로 한 정식출판물로서의 제주어 성서 번역작업은 사실 여러 이유로 지연되어 오던 터였다. 그러나 대한예수교(통합측) 제주노회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특별위원회를 두어 성서의 제주어 번역작업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제주어 성서 번역작업의 크나 큰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어 번역 성서들

• 제주향토문화연구소 편, 「제주방언성경 마가복음」, 보이스사, 1981.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이 눈에 띤다. ◈ 옮긴이를 ‘제주향토문화연구소편’이라고 하고 있을 뿐, 번역자 또는 번역그룹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 후기에 석주명(石宙明)이 연구한 제주방언의 특성을 요약정리하고 있다 ◈ 후기에 제주언어와 문화에 대한 다섯 가지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 후기에 제주어에 대한 세 가지 문제점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세 번째로 기독교적 선교적 차원에서 제주방언으로 된 성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따라서 이 책은 ‘제주민의 올바른 정신함양을 위한 기독교복음화 운동이 시급한 때’이므로 그 일환으로 제주 방언으로 된 성서(마가복음)의 번역을 하고 있다고 그 목적을 밝히면서, 첫째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하나님 말씀으로 보존하고 지켜나가자는 의도’와 둘째 ‘제주의 기독교 복음선교에 작은 보탬을 이루고자 함’에 이 책 간행 목적이 있다고 하고 있다 ◈ 후기에 이 번역은 공동번역(한글)을 토대로 하고 있다 ◈ 후기를 쓴 사람이 제주향토문화연구소장 및 제주복음교회 목사인 전병호라고 밝히고 있다 ◈ 한국적 삽화의 저자를 녹전 강용택 선생이라고 밝히고 있다 ◈ 제주어 표기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 성서 용어, 신학적 용어 등의 번역상의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 진성기 역, 「제주도 방언 성경 마가복음」, 제주민속연구소, 1992.
이 책의 번역 내용은‘제주향토문화연구소편, 「제주방언성경 마가복음」’과 그 내용과 편집 및 삽화가 동일하다. 다만 다음 두 가지 점이 다르다. ◈ 번역자가 진성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 ‘제주향토문화연구소편 「제주방언성경 마가복음」(보이스사, 1981)을 만들 때, 실질적으로 마가복음을 제주방언으로 번역한 사람이 진성기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 후기 내용도 사실상 동일하나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삭제되어 있다.

• 강명주 역, 이한원 기획, 「제주마가복음」, 참(아래아)씰제주어사(아래아)랑회, 2012.
이 책은 이한원 기획 및 편집, 강명주 번역, 양성실 성경적 감수로 만들어졌다. 번역자인 강명주의 번역 후기를 보면 종교적인 부분을 제주어로 바꾸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 책이 후세들에게 제주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고 한 점을 통해 제주어의 보존과 전승에 큰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한원은 기획 및 편집 의도를 ‘잊혀져가는 제주어의 보전 + 전도의 도구 = 제주 사(아래아)랑 성경’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으나, 두 가지 곧 제주어의 보전과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제주어 성경을 전도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성경적 감수를 한 양성실 전도사는 이 책이 제주어의 정체성과 자존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위의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이 눈에 띈다.  ◈ 번역 기준이 된 한글성서가 기존의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이 아닌 다른 번역본(「우리말 성경」)이다 ◈ 그런데 번역대상으로 제시된 한글본과 번역된 제주어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아마 제시된 한글본과 또 다른 판본(아마 공동번역 개정판)을 번역자가 혼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점이 다소 혼란을 일으킨다.

예)
[쉬운말 성경] 막 1:2절,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내가 네 앞에 내 심부름꾼을 보낼 것이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제주어 번역] 막 1:2절, 예언자(아래아) 이사야이 글에“이제 니가 놈을 느보단 먼(아래아)첨 보내염시메 그 사름이 느 갈 질을 먼(아래아)저 닦아 놓으랜” 하(아래아)멍
[공동개정판] 막1:2절,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이제 내가 일꾼을 너보다 먼저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놓으리라.” 하였고, ◈ 제주어 표기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제주어보존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번역자의 역량을 감안하면, 이 책에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 일정한 제주어 표기기준을 전제로 번역을 실시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 성서용어, 신학적 용어 등의 번역상의 기준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은 제주어 번역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하여 제주문화와 기독교문화의 융복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번역의 필요성과 목적
성서의 제주어 번역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점이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목적에 따라 성서의 신학적 해석과 제주어 번역의 정확성과 면밀성, 그리고 학술적 근거 등에 많은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제주어 번역에는 다음 몇 가지 목적이 있다.

• 기독교와 제주 문화 융복합의 제주어 번역
기독교 신앙을 헬라 문화 속에서 받아들이는 경우와 라틴문화 속에서 받아들이는 경우에 둘 사이에는 자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른 바 ‘때와 곳’의 차이는 아무리 동일한(?) 신앙교리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교리적 뉘앙스의 차이와 그 실천적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브라이즘 속에서 잉태된 초기 기독교 문화가 이미 헬레니즘의 영향 속에 있었고, 그러한 초기 기독교 문화는 로마 라틴 문화를 만나고, 로마 중세 문화는 또 다시 플라톤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하여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이라는 기독교의 사상적 틀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중세 기독교 사상과 문화는 라틴중심주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하였지만, 종교개혁을 통하여 각 민족별로 자국의 문화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적인 배경의 기독교 문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그 후 전 세계 비서구권의 여러 민족들 역시 각각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기독교 문화를 수용하여 서로 융복합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융복합과정을 거치고 있다 할 것이다. 어떤 교단에서는 의도적 융복합을 위해 애쓰고 있는가 하면, 어떤 교단에서는 한국 문화의의 융합을 배척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기독교 교단도 결국 유입된 경로의 기독교 문화(신앙)와 받아들인 경로의 한국 문화(신앙)가 서로 융복합을 이루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한국 문화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기 이전에 이미 서로 만나 융합과정을 거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 척 또는 이를 거부하는 신앙을 고수하는 교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학술적으로 보면 해석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제주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제주도에도 한국 문화에 배타적인 교회들이 아직도 있다. 자신들이 이미 제주 문화 속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의도적으로 제주 문화(언어는 문화 요소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다)와 융합시키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선교일지 모른다.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이 일찍이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된다.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 정신이다”라고 개탄한 바가 있는데, 유입 종교와 한국 문화의 융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잘 지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융복합의 기본은 해석학적 철학자인 가다머가 말했듯이 ‘인식의 토대인 자국의 문화’ 위에 ‘인식의 대상인 다른 문화’를 융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인식의 토대인 한국 문화’를 거꾸로 ‘인식의 대상’으로 놓고, ‘인식의 대상인 기독교 문화’를 또한 거꾸로 ‘인식의 토대’로 놓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기독교인의 이중적 사고체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즉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남에게 보이려고 애쓰는, 그리고 끝내는 자신마저도 그 이중성을 이중성이 아닌 것으로 속이고 있는 사고체계를 가진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한국의 기독교가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보면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능동적으로 기독교와 제주 문화의 융복합을 의도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면 어떤 형태로든 융복합은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그러한 융복합을 매우 의도적이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형성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문화(또는 제주 문화)와 따로 노는 기독교가 아니라 한국 문화(또는 제주 문화)와 하나로 융복합되어, 신채호 선생이 한 말을 응용하자면, ‘예수의 제주가 아니라, 제주의 예수’를 이 제주 사회에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가다머 식으로 말하자면, ‘인식의 토대로서의 제주’ 위에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를 융복합 시키는 데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원적 관계주의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으로서의 제주어 번역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21세기에 ‘표준어’라는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표준어라는 말 대신 ‘서울말’이, 그리고 방언(方言) 또는 사투리라는 말 대신 ‘제주어’,‘ 호남어’,‘ 평양말’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철학 사상의 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이후 중세를 거쳐 21세기 전반까지는 겉모양은 바뀌었어도 많은 사상들이 일종의‘중심주의’와 닿아 있었다. ‘이데아 중심주의’, ‘신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 등의 말은 모두 20세기 전반까지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말들이다.
  이러한 사상의 배경 아래, 라틴어 성서 중심주의, 라틴 음악 중심주의, 라틴식 예배전례 중심주의가 배태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문화적으로 보면, 이러한 라틴 문화 중심주의를 벗어나고자 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라틴 문화 중심주의가 다른 여러 문화 위에 군림하는 이른 바 ‘일원적 중심주의’를 배격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라틴어 성경만이 거룩한 언어의 성서가 아니라, 독일어 성서도, 영어 성서도,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 성서도 모두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한 언어의 성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기독교 음악 역시 라틴 문화에 의한 이른 바 ‘콘트라풍탈(Contrapuntal) 음악’만이 거룩한 음악이 아니라, 독일 민속 음악을 토대로 한코랄도, 영국 민속 음악을 토대로 한 찬송가(Hymn)도, 나아가서 한국 민속 음악을 토대로 한 국악 찬송도 모두 아름답고 거룩한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보면 한국어 성서(이른바 표준어를 근간으로 한 성서)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일원적 중심주의’적인 성서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특정한 번역본만이 ‘참’이고 다른 번역본은 마치 ‘거짓’인 양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라틴어 성서가 유일한 거룩한 언어의 성서일 수 없듯이, 표준어(서울말)를 근간으로 한 한국어 성서가 한국의 유일한 성서이거나 또는 한국의 표준이나 중심이 되는 성서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어 성서는 매우 필요하다. 서울말 성서가 아름다운 성서이듯이, 제주말 성서도 아름다운 성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제주 사람들이 제주 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오로지 서울말 성서만을 가지고 기독교 신앙을 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일원적 중심주의’를 고착시키는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일원적 중심주의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다원적 관계주의 기독교 신앙으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여전히 서울 표준어 성서가 중심이지만 제주어 성서도 보조적인 어떤 이유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제주어 성서 번역을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은 여전히 19세기적인 중심주의와 동일자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일원적 표준이나 일원적 근본 또는 중심주의를 수정하기 위한,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큰 걸음을 내딛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 제주 문화의 보존 및 전승 차원의 제주어 번역
성서의 제주어 번역작업은 당연히 제주어를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제주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세대’뿐만 아니라 어린 세대 또는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 이른 바‘제주의 기독교’를 경험하게 하고, 그들에게 ‘제주의 기독교’를 통하여 ‘제주 문화’를‘인식의 대상’에서 ‘인식의 토대’로 바꾸도록 하는 데 제주어 성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서의 제주어 번역이 ‘제주어를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먼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제주어 성서 속의 제주어가 제주도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제주어인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제주어 성서] 속의 제주어가 제주어로서의 어떤 논리성과 정확성, 그리고 학술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상의 두 가지 점은 신학자나 목회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다. 때문에 신학적인 또는 문화적인 목적과 함께 이러한 목적을 동시에 가진다면,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매우 학술적이면서 동시에 제주도민들의 보편적인 기능성에 부합되는 번역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 선교목적으로서의 성서의 제주어 번역
기독교단체 또는 기독교신자가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고자 할 때, 기독교선교 차원에서 번역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1세기라는 시대적 이념과 기독교선교 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감안할 때,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는 것이 과연 기독교선교에 얼마만한 효용성이 있을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배타적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선교를 위한 목적이라면, 도리어 이러한 번역작업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만일 배타적 근본주의 신앙을 토대로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제주어 성서 번역을 하는 것이라면, 그 정당성과 적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공존의 선교라면, 이를 돕는 한 문서로서의 제주어 성서는 제주도민들에게 기독교의 참 모습을 전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문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네 가지 관점에서 성서의 제주어 번역작업의 필요성과 목적을 정리해 보았는데, 발표자의 견해로는 ◈ 기독교와 제주 문화를 의도적이면서 능동적으로 융복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목적 ◈ 제주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다원적 관계주의 기독교 신앙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 ◈ 제주 문화의 보존 및 전승을 위해서도 이 작업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물론 이 문제는 다른 학술적, 문화적, 행정적 차원에서도 다양한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 다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목적으로 하는 제주어 번역작업은, ‘21세기에 있어서의 선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바람직한 선교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부분에서 번역상의 왜곡과 신학적 왜곡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번역대상의 문제
번역작업이란 번역대상의 언어, 번역자 그리고 번역하고자 하는 언어의 연계작업이다. 따라서 번역자는 번역대상의 언어와 번역하고자 하는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서의 제주어 번역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히브리 성서(이른 바 구약성서)를 제주어로, 헬라 성서(이른 바 신약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성서의 제주어 번역작업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번역의 주체(번역자)들이 히브리어(성서 히브리어)와 헬라어(성서 헬라어)에 얼마나 능통하며, 동시에 제주어에 얼마나 능통한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서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문화적인 배경과 제주어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문화적인 배경에도 능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서 제주어 번역사업은 우선적으로, 원어(히브리어, 헬라어)를 제주어로 번역할 것인가(또는 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과연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되짚어야 한다. 만일 원어 성서를 제주어로 직접 번역하기가 어렵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앞에서 살펴 본 두 가지 경우(제주향토문화연구소 편과 참(아래아)씰제주사(아래아)랑회)에는 각각 한국어 번역본(특정 판본)을 제주어로 번역했다. 본 사업의 경우에도 현실적 대안으로 한국어 번역본을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특정의 번역본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할 것인지, 아니면 번역본들을 종합하여 수정된(성서 번역의 오류 부분 등을 수정) 새로운 한글 번역본을 만든 후, 제주어로 번역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한국어 번역본 성서를 제주어로 번역하고자 할 때에는 한국어 번역본이 얼마만큼 원어 성서에 충실히 번역되었는가를 묻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하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번역, 문장이 서로 꼬여있는 번역, 원어의 뉘앙스나 의미가 충실하지 못한 번역 등을 찾아내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작업만 하더라도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제주도에도 히브리어나 헬라어에 정통한 목회자들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이 분들이 목회현장을 소홀히 하면서 번역 일에 전념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번역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어 성서를 번역대상의 기준으로 한다. ◈ 한국어 성서 중 어떤 번역본으로 할 것인지, 또는 번역본들을 종합하거나 조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번역의 주체들(번역자들, 번역위원들)이 여러 논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번역본들을 종합하거나 조정할 경우에는 별도의 한국어 번역본을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술적인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 ◈ 특정 번역본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잘못 번역되었거나 어색한 번역 부분들을 사전에 수정할 필요가 있다. ◈ 한국어 성서의 번역내용의 정확성을 점검하기 위하여, 원어 성서(히브리어, 헬라어)와, 영어 성서(어떤 번역본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번역본을 참고할 것인지를 논의한 후에)를 참고한다.

번역의 주체
번역을 누가할 것인가?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이면서도 복잡한 문제이다. 성서의 제주어 번역을 위해서는 우선 성서와 이스라엘 문화에 능통한 신학자(또는 목회자)와 제주어와 제주 문화에 능통한 제주 문화학자들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에 능통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신학자 또는 목회자의 경우에도 제주도 내에 있는 분으로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서울 등지에 있는 분들을 포함시킬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제주어나 제주 문화와 관련된 제주 문화학자들의 경우에는 다행스럽게 제주도 내에 이와 관련된 학자들이 여럿 있지만, 이 또한 다른 지역에 있는 학자들을 포함시킬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성서의 제주어 번역작업은 사실 오랜 시일과 많은 예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방대한 사업이다. 때문에 신학자(또는 목회자)가 되었든 제주 문화학자가 되었든 간에 이 사업에 번역의 주체로 과연 누가 선뜻 참여할 것인지, 참여한다면 어떤 학자들이 참여해 줄 것 인지가 이 사업의 성공여부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발표자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 제주도 내에 있는 목회자 중에서 신학 부분을 담당할 위원을 선정한다 ◈ 제주도 내에 있는 제주 문화학자 중에서 제주어 번역을 담당할 위원을 위촉한다 ◈ 제주도 내에 있는 제주어 기능보유자 중에서 제주어 번역의 적용의 적확성을 자문할 자문위원을 위촉한다 ◈ 필요한 경우, 제주도 외의 신학자 또는 제주 문화학자 중에서 자문위원을 위촉할 수 있다.
 
사실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제주어 번역의 학술적 타당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주어 또는 제주 문화 전문가들 중에서 누가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이 번역작업에 참여해 줄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해진다. 발제자가 실제로 동료교수, 후학들을 접촉해본 결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매우 중요하고 의의 있는 사업’이라고 하면서도, 혹시 직접 참여할 의향이 없는가? 라는 질문에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답하였다. 때문에 제주어 번역 전문가들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에, 어떻게 학술적 타당성을 확보할 것인지를 추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 성서의 제주어 번역 방향성 제시를 위해 마련된‘제주어 성서 번역 세미나’가 통합노회 제주어성서번역위원회(위원장 서성환 목사) 주최로 지난 3월 20일에 제주사랑하는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조영배 목사님의 글을 요약 정리하여 싣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영배 | 제주대 교수, 21세기종교문화연구소장, 강정생명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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