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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통권 140호     필자 : 김성곤 프린트   이메일 
[한시 강좌]
왕유의 <送元二使安西> (上)

渭城朝雨吩輕塵(위성조우읍경진),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위성에 아침 비가 먼지를 적시니,
객사의 버들은 새로 푸르구나.
그대 권하노니 술 한 잔 더하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한 벗이 없으려니.

주석
1 渭城(위성) - 지명. 섬서성 서안 서북쪽에 있는 도시로, 진(秦)이 도읍했던 함양(咸陽)이다. 옛날 서역으로 나서자면 이곳을 지나야 했다.
2 吩(읍) - 젖다. 적시다.
3 客舍(객사) - 여관.
4 陽關(양관) - 서역에 설치한 관문 이름. 감숙성 돈황(敦煌) 서북쪽에 있다.

이 시는 왕유가 안서(지금의 신강 쿠처, 庫車)에 사신으로 가는 벗 원이(元二)를 전송하면서 지은 송별시이다(원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이(二)’는 같은 형제 항렬에서 두 번째라는 뜻이다). 이 시는 장구한 중국문학사에 명멸했던 수없이 많은 송별시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안록산의 난이 막 평정된 후였다(안록산 난 이전으로 보는 설도 있다). 난은 끝났지만 당조(唐朝)는 전쟁의 후유증을 크게 앓고 있었다. 중원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서북 변방을 지키던 병력의 상당부분을 소모했기 때문에 변방의 경계가 극도로 허술해져 서북방의 강력한 이민족인 토번의 침략이 거듭되었고, 또 중앙권력이 약해지자 그 틈을 타고 지방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란이 이어져 가뜩이나 허약해진 당 왕조를 도리깨질하고 있었다. 이렇게 정국이 불안하고 사회가 혼란한 시절에 원이는 안서 먼 곳으로 사신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안서로 가자면 장안 서북쪽에 있던 위성(渭城)을 지나야했는데, 이 위성은 일찍이 진나라가 수도로 삼았던 함양(咸陽)이다. 왕유는 위성까지 원이를 배웅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장안 대안탑 거리에서 만난 원이는 거듭된 송별연에서의 음주 탓인지 피로가 얼굴에 가득한 모습이었다. “어제도 전별 자리가 있었는가? 몰골이 말이 아니구만!”원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말도 마시게. 어젠 파교(秧橋)까지 갔다네.”“파교라면 장안에서 동쪽으로 십리길이 넘을 텐데 거기까지 가서 송별연을 했다고? 서쪽으로 가야할 자네를 동쪽에서 전송하는 건 또 뭔가?”“글쎄 말이야. 친구 녀석들이 전별연은 꼭 파교에서 해야 된다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네. 마침 안서로 출발하기까지는 시간도 여유가 있고 해서 유람삼아 갔었네.”파교는 장안성 동쪽을 흘러가는 위수의 지류인 파수(秧水)에 세워진 다리인데, 그 근처에 한나라 문제의 침릉이 있어 파릉(秧陵)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곳 파교는 장안 동쪽으로 먼 길을 떠나는 객을 전송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파교 부근에는 특히 버들이 많이 심겨있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버들가지를 꺾어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며 석별의 정을 표하였다. 그래서 이 다리를‘애간장 끊어지는 다리’라는 뜻의‘단장교(斷腸橋)’로 부르기도 했고, ‘사랑이 끝나는 다리’라는 뜻의‘정진교(情盡橋)’로 부르기도 했다. 버들솜이 날리는 늦봄에는 그 모습이 마치 눈이 펄펄 날리는듯 하다고 해서‘파교풍설(秧橋風雪)’이라는 말까지 생겨 관중팔경(關中八景)의 하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허허 감성이 풍부하신 그 친구들 덕에 제대로 갖춘 전별연을 하셨겠구만!”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한 친구가 청아한 목소리로 이별 노래를 부르는데, 최근 유행하는 이백의‘절양류(折楊柳)’가 아니겠는가. 전별연을 위해 단단히 준비를 했더라니까!”

垂楊拂綠水(수양불록수),녹수를 스치는 수양버들
搖艶東風年(요염동풍년)。봄바람에 요염하게 흔들리는 시절
花明玉關雪(화명옥관설), 꽃은 옥문관의 눈처럼 희고
葉暖金鎖烟(엽난금창연)。잎은 창가의 안개처럼 따스하여라
美人結長想(미인결장상),미인은 긴 그리움에 매여
對此心凄然(대차심처연)。봄날 이 경치에 마음 슬퍼지누나
攀條折春色(반조절춘색),잡아당겨 춘색을 한 가지 꺾어
遠寄龍庭前(원기룡정전)。임 계신 먼 서역으로 부친다네

‘절양류’는‘버들가지를 꺾다’는 뜻으로 군역을 위해 멀리 변방으로 나가 있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인들의 탄식의 노래이다. 한나라 때부터 줄곧 같은 제목하에 여러 작품들이 창작되어 이별의 노래로 활용되었다. 버들가지를 꺾어주는‘절류’의 행위는‘류(柳)’의 발음이 머무른다는 뜻의‘류(留)’와 같기 때문이다. 떠나지 말고 이곳에 머물러 달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객을 보내는 포구에 심겨진 수많은 버드나무들은 늘 가지를 꺾이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특히 파교의 버드나무들이 그랬다. 또 혹자는 어느 곳에 이식을 해도 잘 자라는 버드나무처럼 어디에 가든지 그곳에서 잘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버들솜 날리는 저문 봄날 파교에서 듣는 절양류라! ‘연년류색, 파릉상별(年年柳色, 秧陵傷別)’이라 하지 않았던가! 슬픈 이별을 위해 일부러 그곳 파교를 찾은 셈이로군. 그래 멋진‘절양류’를 선물 받았으니 자네도 근사한 유별시(留別詩) 한 수 남겼겠지.”유별시는 보내는 사람들이 써준 송별시에 답하여 떠나는 사람이 남은 사람들에게 써주는 시이다. 

“내 문재(文才)가 보잘 것 없지 않은가. 엉성하게 썼다가는 웃음을 살 것 같아서 차라리 이백의 유명한 유별시 <금릉주사유별(金陵酒肆留別)>을 대신 읊었다네.”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버들솜 바람에 날려 향기 가득한 주점
吳姬壓酒勸客嘗(오희압주권객상)。오나라 아가씨 술을 걸러 객에 권하고
金陵子弟來相送(금릉자제래상송), 금릉의 젊은이들 찾아와 전송하느라
欲行不行各盡觴(욕행불행각진상)。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모두 술잔을 비우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그대 저 동으로 흐르는 장강수에 물어보시게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석별의 마음 누가 더 길고 긴지를

“그 시는 마지막 두 구절이 기발하지 않은가? 석별의 정을 장강수에 견주었으니 과연 이백다운 멋진 표현이지. 마침 그곳 파교 아래로 동으로 흐르는 파수가 있었으니 참 적절한 인용이었군 그래.”

“이백의 유별시를 읊었더니 다른 친구가 냉큼 또 이백이 쓴 송별시 <송우인(送友人)>을 꺼내지 않았겠나. 마치 무슨 이백 시 낭송 경연장처럼 되어버렸다네. 하하…” 

“하긴 벗을 보내면서 <송우인>을 읊지 않을 수는 없지. 우리 함께 읊어보세나. 칭샨헝베이구어~”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청산은 북곽에 비껴있고
白水繞東城(백수요동성)。백수는 동성을 감돌아 흐르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이곳에서 한번 이별하면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그대는 만 리를 가는 외론 쑥대 신세
浮雲游子意(부운유자의), 뜬 구름은 가는 나그네의 마음이요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지는 노을은 보내는 벗의 정회라
揮手自玆去(휘수자자거), 손 흔들며 떠나가나니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홀로 가는 말이 쓸쓸히 우는구나

원이와 송별연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 일행은 벌써 한나라 때 왕들의 무덤이 죽 늘어서있는 오릉(五陵)을 지나고 있었다. 한고조의 장릉(長陵)에 올라서는“큰 바람이 일어 구름을 날리누나(大風起兮雲飛揚-고조의 <대풍가>)”라 호탕하게 외치기도 했고, 한 무제의 무릉(茂陵)을 찾아서는“젊음이 얼마런가 늙음을 어찌하리(少壯幾時兮奈老何-무제의 <추풍사>)”를 읊으며 늙어가는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진시황의 아방궁 옛터를 지날 때 쯤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황폐한 옛 궁궐터에는 봄풀만 무성히 자라 옛 자취를 더듬는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아득하게 하였다. 위성의 객사는 아방궁 옛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연이은 송별연에 피곤이 쌓였던지 원이는 저녁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골아 떨어졌다. 천둥 같은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왕유는 내일 송별연 자리에서 쓸 시를 구상하느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별한 시를 쓰고 싶었다. 근간에 나오는 송별시들은 하나같이 이별의 정한을 슬프게만 묘사한‘상별(傷別)’류요, 암울하게 넋을 녹이는‘소혼(消魂)’류들이 아닌가. 보내는 아쉬운 정을 표현하는 것이야 송별시에서 피할 수는 없겠지만 눈물과 탄식의 여성적인 정서만 가지고는 좋은 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에 지기만 있다면야 하늘 끝도 이웃이려니, 헤어지는 길에 아녀자처럼 눈물 뿌리지 말자(海內存知己, 天涯若比紐. 無爲在岐路, 兒女共霑巾.)”는 초당(初唐)의 젊은 천재시인 왕발(王勃)의 송별시가 특별히 환영을 받았던 것 아닌가. 극도로 불안한 이 시절에 먼 곳 서역으로 사신을 떠나는 원이에게는 특히 밝고 씩씩한 송별시가 필요할 것이다. 씩씩한 기상의 송별시를 생각하니 기상이 남달랐던 고적(高適)이란 시인의 <별동대(別董大)> 시가 떠오른다.

千里黃雲白日俉  천리 누런 구름에 해는 어둑한데
北風吹雁雪紛紛  북풍은 기러기에 불고 눈은 분분히 날린다
莫愁前路無知己  앞길에 벗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게
天下誰人不識君  천하에 누가 그대를 모르겠는가

- 하편에서 계속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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