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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2 통권 139호     필자 : 추리번(邱立本) · 장쉰(江迅)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홍콩 도서전시회에서 비밀을 폭로한 리좡(李莊)

리좡 사건
2009년 총칭시(重慶市) 조직폭력배 중 주 혐의자 공강모(傾剛模)가 기소되었는데, 그의 담당 변호사가 리좡이었다(그는 1961년에 허베이성 스자좡(河北石家庄)에서 태어나서 지금은 베이징에서 살고 있다). 현지 검찰청에서는 변호인 측인 리좡 변호사가 피고 공씨와 증인을 매수해서 위증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피고인이 경찰조사 중에 고문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그 후 검찰청은 변호인이 증거인멸, 위조 및 증언을 방해했다는 죄명으로 리좡을 기소했다. 이 형사사건을 가리켜‘리좡 위증 사건’(李莊僞證案) 또는 ‘리좡 사건’(李莊案) 이라고 한다. 

중국 매체들에 보도된 이 사안은 법 제도, 사법독립과 법 절차 분쟁, 변호사의 직업윤리와 개인 권리, 금전적 결탁과 부정부패에 관한 것으로, 매체들의 ‘통고’(通稿)와 사건 내막의 논쟁은 중국 사회, 특히 법조계에 노론이 일어나게 했다. 

이 사건은 2009년 연말에서 2010년 연초에 1심과 2심을 거쳤고 리좡은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2011년 4월에 다시 나머지 범죄행위에 대한 심의를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가 취소되었다. 리좡은 2011년 6월 11일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리좡은 베이징 캉다(康達) 변호사 사무실의 멤버이고 전문 변호사이다. 

보시라이(薄熙來)와 왕리쥔(王立軍)의 적수인 리좡 변호사는 올 여름 천신만고 끝에 홍콩 도서전시회에 참석했다. 그는 강연 중에 총칭 조직폭력배 검거 사건에 대한 비밀보따리를 풀어냈다. 그는‘리좡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李莊案眞相), 가제라는 자서전을 썼다. 그가 보시라이와 왕리쥔에게 당해서 548일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과정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는 옥중에서 암호로 된 일기를 썼으며 총칭 조직폭력배 검거 사건의 내막도 기록했다. 

홍콩을 강타한 무더위 가운데서도 1년에 한 번 열리는 홍콩 도서전시회를 개막했다. 이 가운데 베일에 싸인 강사가 도서전시회 전날 조용히 홍콩에 도착했다. 이번 강의는 4개월 동안 비공개로 사전에 기획한 것이었다. 리좡을 초청한 홍콩 출판사측은 걱정을 했다. 일단 사전에 기밀이 세어 나가면 그의 홍콩행은 저지당하고 책 출판도 어려울 것이었다. 이 베일에 가린 강사는 바로 변호사 리좡이었다. 그는 도서전시회에서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보시라이와 왕리쥔의 비리를 들추어냈다. 이는 개인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법 제도를 위한 것이다. 총칭 조직폭력배 사건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 개혁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상이다. 

변호사 리좡은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이다. 그와 교제를 나눈 사람들은 모두 이 점에 공감한다. 그는 일에 있어서 완벽함을 추구하며 심지어 까다롭기까지 하다. 본인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며 절대 흐지부지하지 않는 매우 유능한 변호사이다. 이런 면모 때문에 사건 중에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썩어빠진 공권력과 맞설 때 권력도 투옥된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승리를 쟁취했다. 그가 총칭 조직폭력배 검거 사건 때문에 겪은 우여곡절에 대해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는 뒤틀린 체제의 희생자였다. 사건을 맡은 변호인인 그도 고문을 당했다. 리좡은 법 제도의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짓밟힌 최전선에 나서서 베이징에서 총칭까지 적진에 직접 들어가 중국의 법 제도와 맞섰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고통을 견뎌내며 불가능한 시기에 손을 써서 반전을 이루어냈다. 그에게는 법률에 대한 지식과 삶에 대한 끈질긴 통찰력이 있다. 리좡은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장악하고 있는 총칭의 정치 법률 기관에 호되게 당했다. 그러나 그는 교묘하게 죄지은 척 가장하면서 훗날 역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그는 1심에서 갑자기 죄를 인정해서 세간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실력을 감추었고 당국이 위법한 증거도 기록했다. 그는‘리좡 사건 시즌2’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반격의 기회와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몬테크리스토 백작’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그는 세월을 적이 아닌 벗으로 여기고 부정적인 일을 긍정적 자세로 풀어가며, 어떤 공격 앞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움이 클수록 맞서 싸울 용기가 더 솟아나와 큰 반전을 맛보게 되었다. 그런데 리좡 사건의 의의는 리좡 개인의 명예회복에 있기보다는 중국 법치의 구속에 있다. 총칭 공권력의 불법과 권력남용은 중국 정치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권력을 견제하는 정치 시스템, 자유언론매체, 법 절차 가운데 정의의 결핍은 결국 절대적 권력의 절대적인 부패를 초래했다. 총칭 조직폭력배 검거 사건은 마지막에 국면이 전환되었고, 그것은 다른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리좡 변호사는 체포되고 감금된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그런데 교도관이 그가 쓴 일기를 수색했기 때문에 그 후로 본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로 일기를 썼다. 그는 출소할 때 일기를 갖고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옥중일기의 상당 부분을 빼내 올 수 있게 되어 그 원고들이 지금의 자서전을 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재판 받을 때 취조와 기소당할 때, 체포당할 때 일들과 매일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을 모두 일기장에 기록했어요. 옥살이를 하면 부족한 것이 많지만 시간만은 충분해요. 그래서 난 그 시간에 일기 쓰는 것 외에 산문도 시도 쓰기 시작했는데, 심심할 때는 이전에 쓴 시를 꺼내 보면서 무료함도 달래고 꽤 재미있게 보냈어요. 그런데 구치소에서 나올 때 내가 갖고 있던 종이는 다 몰수하고 심지어 팬티도 벗겨서 온 몸을 수색하는 거예요. 종이로 쓴 쪽지 하나도 가져 나갈 수 없어요.”라고 고백했다. 리좡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기억력에 감탄을 자아낸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는 또“내겐 또 다른 특기가 있는데 내가 쓴 글이 몇 글자든 간에 다 기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 글을 누군가 조그만 수정을 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어요.”했다. 

경화타임즈출판사(京華時報出版社) 주임은“리 변호사한테 점심에 뭘 먹었냐고 물어보면 잘 기억을 못 해도 법 조항에 대해 물어보면 막힘없이 줄줄 외우지요. 그는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책에 관해 그 어떤 독자가 트집을 잡더라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거짓으로 쓴 내용이 있다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 책을 내고 독자들에게 욕먹으면 곤란하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출소한 뒤로 그는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잡다한 일이 너무 많아서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여러 곳에서 재판하고 민사 소송하는 일반 시민들이 그를 찾았다. 총칭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누명을 벗겨달라고 그를 찾아왔다. 그가 하고 있는 본인의 상소 사건과 중앙정부와 각계 관료 기관 인사들이 그를 찾아와서 사건 전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 중에 최고 인민경찰청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2013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그때부터 전념해서 자서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 베이징학자들은 보시라이 사건의 재판과 판결로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이 얼마나 재치가 있는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과연 공평한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지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은 중국 각 중앙부처 지도자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정부당국에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중국공산당 고위 간부의 2세들 가운데 적지 않는 사람들이 시진핑에게 보시라이를 한번만 봐주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보시라이가 저지른 죄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고 한다. 정부당국이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러한 소문의 가능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베이징 이외의 언론매체는 보시라이 사건을 올 7, 8월 산동 지난시(濟南市) 중등인민 법원에서 재판한다고 보도했다. 연이어 7월 하순에서 8월 중순에 중국 고위 간부들이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기간에 그 사건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보시라이 사건은 아마도 올해 10월에 열리는 제18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회(中共十八屆三中全會) 이전인 8, 9월쯤에 최후에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다. 총칭 당국이 공산당을 높이고 추앙하며 조직폭력배를 검거했던 4년 동안 도대체 몇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 또 장애인으로 만들었는지, 몇 사람을 잡아들이고 또 풀어주고 구형을 하고 사형시켰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리좡 사건을 예로 들면 정부당국은 리좡 한 사람을 감옥에 쳐 넣기 위해 50여 명의 사람들을 마구 잡아 들였지만 그중에 정식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리좡 한 사람 뿐이었다. 2010년 2월 9일 리좡에게 형을 언도한 뒤 나머지 49명을 모두 석방시켰다. 그 사람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수개월 동안 감금당한 채 매달려서 구타를 당하고 강제로 죄를 실토하도록 고문을 당했다. 그중에 리좡의 조수인 마샤오쥔(馬曉軍) 변호사도 있었는데, 잠을 못 자게 한 뒤 강제로 리좡을 고발하게 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2013년 베이징 전국인민대회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그리고 총칭 인민대표단이 함께 국내의 언론매체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가 당국에게 총칭에서 공산당을 높이며 추앙하고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는 가운데 억울하게 당한 시민들에게 무슨 조치를 취했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때 총칭시위원회 서기인 쏜정차이(孫政才)는 본인은 이 질문을 답하기 곤란하다면서 장쉬안(張軒) 주임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장쉬안이 대답하기를“우리가 총칭에서 당을 높이고 추앙하고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던 중에 83개의 폭력조직을 검거했고 범법자만 1287명이나 검거했다. 만약에 그들의 가족이 항소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법적인 절차를 밟고 일을 처리해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리좡은 가족이 항소하면 억울함을 당한 피해자가 과연 누명을 벗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리좡은“내 경우는 가족이 항소하지 않고 내가 직접 했다. 가족이 항소하면 법적인 절차를 밟겠다는 정부당국은 피해자 본인이 직접 항소한다면 법적으로 해결해 줄 것인가? 나는 2011년 12월 12일, 투옥된 지 2년이나 되어 그때 이미 항소 했지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는 것인가? 형사 소송에 대한 원칙은 항소장을 받은 법원에서 한 달 내에 반드시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통보를 해야 한다. 한 달 내에 항소심을 처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2013년 지금까지 이미 19개월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정부당국에서 법적인 절차를 밟고 해결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들이 의거한 법은 어느 나라 법인가? 중국의 이러한 법 제도 하에 일반 시민들은 법을 잘 모른다 해도 납득이 가지만 판사인 당신들은 세상이 다 알고 주목하고 있는 리좡 사건에 대해 마땅히 철저하게 다루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리좡 사건은 근래 중국 사법 역사상 최단시간의 재판 기록을 세웠다. 18일 만에 수사, 심사 그리고 기소했으며 26일 동안 1심을 모두 끝냈다. 그때 당시 사법계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총칭스피드”라고 했다. 그 후 리좡은 총칭시 제2구치소와 난촨(南川)교도소에서 1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2011년 6월 11일, 복역을 다 마치고 출소했을 때 이 사건이 세간에 드러나므로 총칭의 공안당국, 검찰청 그리고 법원이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는 가운데 그 내막이 조금씩 수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2012년 왕리쥔이 성도(成都) 미국 영사관으로 모반하고 망명 신청하러 간 후, 보시라이의 아내인 구카이라이(穀開來)와 왕리쥔이 함께 도모해서 영국인 헤이우드를 살해한 사건과 그들의 비리 범죄 사실이 속속히 터져 나왔으며 이로써 리좡의 억울한 사간의 위력이 영향을 발휘한 것이다. 

리좡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보시라이 사건의 판결에 대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리좡 사건의 진실이 모두 드러나면 보시라이를 변호해 주는 세력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리좡 같은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 받을 수 있다면, 중국의 수많은 피고인들의 인권 문제도 보장될 것이며 중국의 법 제도는 비로소 희망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좡이 홍콩 도서전시회에서 강의한 가장 큰 의미이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이러한 사건에 대해 맘껏 토론하고‘말실수 했다는 이유로 정죄 당하지 않고’고문당하고 허위로 자백할 필요도 없이‘자살을 위장한 살인’도 없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이 모든 것이 홍콩이 지닌 중요한 점이다. 리좡이 홍콩 도서전시회에서 한 강의 내용의 숨은 뜻이다. “내게 홍콩을 준다면 난 이곳에서 중국의 법 제도를 제대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홍콩 도서전시회의 성공이자 또한 홍콩 자유언론 매체의 승리이기도 하다.


출처 | 亞洲週刊 2013年7月28日第27卷29期
번역 | 차이나 간사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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