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통한 중국선교, 즉 페이스북이 미래 중국선교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글을 한편 써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필자는 마침 중국에 있었다. 최근 필자의 ‘페이스북’ 활동이 활발한 것을 보고 필진으로 선택한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중국은 ‘페이스북’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된다고 하더라도 아주 잠시 한시적으로 될 뿐 제대로 활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필자가 있는 지역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담당간사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페이스북’이 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미래 문서선교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창의적 접근지역들이 ‘페이스북’사용을 제한해 놓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카스’(카카오 스토리)나‘카톡’(카카오톡)으로는 가능하다고 했더니, 그럼‘카스’와‘카톡’을 통한 문서선교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필자의 ‘카스’, ‘카톡’러브 스토리를 공개해 보기로 하였다.
선교 소통의 새로운 세계를 연 스마트폰 터치폰을 쓰던 내 손에 들어온 아이폰 4S. 아이 폰을 가지고 다니면, 카메라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일반 카메라의 화상도가 500만 화소인데 비해 아이폰 4S의 화상도는 800만 화소나 되기 때문에 사진이 정말 선명하게 잘 찍힌다. 예전에는 보통 놀러갈 때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생활 가운데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은 수필을 쓰는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사진을 찍어 두면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현장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필요하다면 동영상도 촬영할 수 있어서 생일파티나 공원에서 열리는 음악회 등, 중요한 회의의 장면 등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들을 수도 있다. 더욱이 스마트 폰은 셀카(자기 자신을 스스로 찍는 것)로 자신을 쉽게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현장 어디서나 가족에게 지인에게 보내줄 수 있다. 문자만 보내던 예전의 핸드폰에 비해 소통에 있어서 훨씬 생생한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마치 상대방이 함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보고 싶은 사람들을 인터넷만 연결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아이폰의 ‘페이스타임’ 기능 또한 대단히 신선하다. 전화를 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화상을 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페이스 타임’ 기능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를 보고 싶을 때도 그리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 주고 있다.
‘카스’로 열어가는 선교문학세계 스마트폰 어플 가운데 ‘카카오 스토리’가 있다. 일명 ‘카스’는 나만의 ‘특별한 글방’이다. 언제든지 글을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글을 써서 올릴 수가 있다. 또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을 때 사진과 함께 올려두면 된다. 그러면 카카오 스토리로 친구를 맺은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수시로 들어와서 내가 올린 글을 읽고 댓글도 달아 주고 "좋아요, 기뻐요, 멋져요, 슬퍼요, 힘내요" 등의 표시를 해 줌으로 내 글을 읽고 느낀 감정 표시를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카친(카카오친구)을 맺은 다른 사람들의 소식도 볼 수 있다. 필자의 아이폰 카카오스토리의 ‘내 스토리’에는 그동안 정성들여 쓴 선교수필과 선교 큐티가 124개 정도 사진과 함께 올려져 있다. 한권의 책이 될 만한 분량이다. 또 특별한 기념일이나, 선교소식, 콘퍼런스의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글을 쓸 때는 대부분 당시 찍었던 사진이나 연관된 내용의 사진을 함께 올려 독자에게 당시의 현장성을 느끼게 해 준다.
특별히 선교사인 필자는 선교의 활동상황이나 소식들도 ‘카스’에 올린다. 물론 제한지역의 소식들을 모두 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선교소식이나 필자의 정황 등은 글로 써서 카스에 올려두면, 독자들이 기도후원자일 경우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오는 선교편지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기도해 줄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소식이 궁금해질 때 ‘카카오 스토리’에서 언제든지 그 사람의 소식을 알 수 있다. 또 서로 댓글을 남겨 소통한다. 필자는 매일 큐티 묵상을 해서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카카오 스토리’는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어 너무 긴 문장을 쓰면 글이 잘려지기 때문에 적절한 분량으로 글을 써야 한다.
‘카카오 스토리’는 ‘카카오톡’과 함께 ‘페이스북’을 제한하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제한 지역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종종 중국에 있는 지인들이나 선교사들이 필자의 ‘카스’에 들어와서 필자의 글을 읽고 답글을 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스마트폰의 ‘카스’를 적극 활용하여 좋은 교제의 장을 마련하고 선교적 내용들을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적 내용들이 노출될까 보아 노심초사하는 창의적 접근지역이나 제한지역의 선교사들은 가능한 한 간접적인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선교문학’ 형태로 선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는 비제한지역의 선교사들에게는 더욱 좋은 선교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카톡’을 통한 문서 선교 필자는 오랫동안 문서선교의 도구로 ‘카톡’을 사용해 왔다. 필자의 ‘카톡’ 친구는 이제 천명을 넘는다. ‘페북’은 최근 몇 개월 열심히 했지만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것이 ‘카톡’이고 지금도 여전히 ‘카톡’을 애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분들이 ‘페이스북’에 가입을 하지 않았거나 가입을 했어도 활용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선교소식’과 ‘선교문학 수필’에 관련된 글을‘카톡’을 통해서 보낸다. 작년에는 40일 동안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큐티묵상을 해서 ‘카톡’으로 카친(카카오톡 친구)들에게 보내주기도 했었다. 거의 500여 명에 가까운 카친들에게 큐티묵상을 카톡으로 배달했다. 단체 카톡으로 설정해서 그룹으로 묶어서 보내주면 간단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룹에 묶인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그룹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답글 내용을 다 받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 큰 민폐가 아니다. 그래서 정성껏 한 사람 한사람에게 일일이 복사해서 보내준다.‘ 카톡’ 친구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카톡 ’친구가 많다보니 500여 명 정도에게 보내려면, ‘카톡’을 보내주는 시간만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가까이 드는 작업이 된다. 큐티묵상을 한 뒤, 글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옮겨 쓰고 난후, 한 사람씩 복사해서 보내주는 일은 대단한 집중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카톡’보내는 그 짧은 시간을 필자는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짧게나마 축복기도를 하면서 보내준다. 받는 사람은 아마 이런 정성이 들어간 다는 것을 대부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선교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힘들게 느껴본 적은 없다. 종종 ‘큐티묵상’이나 ‘큐티설교’를 통해서 또 ‘선교수필’을 통해서 자신에게 고민이던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받을 때, 그동안 수고했던 일들은 눈 녹는 것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카톡’으로 선교소식을 나누는 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중국에 들어갔을 때는 ‘카톡’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페북’이 전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페북’을 위주로 선교소식과 선교수필을 나누었지만 중국에 있는 동안은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든 문서 전달은 오직‘카톡’을 의지해서 했다. ‘카톡’의 장점은 긴 문장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스’는 일정한 분량을 넘기면 글자가 잘리지만, ‘카톡’은 긴 문장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카톡’의 또 다른 장점은 비용이 전혀 안 든다는 것이다 문자는 약정한 금액이 초과되면 비용을 지불하지만 ‘카톡’은 전적으로 무료이기 때문에 ‘카톡’을 통해서 얼마든지 많은 사람에게 문서전달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아는 지인들에게는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카톡’을 다운로드 받으라고 권한다. 휴대전화에 ‘카톡’이 도착하면 ‘카톡~'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는데, 필자의 귀에는 그 소리가 ‘반가운 소식 왔어’라고 들린다. 그렇다고 필자가‘카톡’중독은 아니다. 단지 그만큼 필자가 ‘카톡’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선교를 도와준 고마운‘카톡’이야기 어느 날 밤에 공부를 하다가 평소에 잘 안 만나던 지인이 생각이 났다. 마침 선교에 관련된 아주 좋은 동영상을 다른 지인이 내게 보내온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동영상, 한번 감상해 보시지요.”라는 문구를 달아 동영상을 보내 주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그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교사님, 잠자다가 ‘카톡’ 소리에 깨었어요. 그런데 ‘카톡’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영상’이라고 보내셔서 잠이 다 달아났어요. ”하면서 웃는다. 필자는 “아, 미안해요 잠을 깨워서요. 그런데 집사님 생각이 갑자기 나면서 밤이 늦었지만 이 동영상을 꼭 보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은 전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선교사님, 제가 선교사님 선교하러 중국 가시고 그동안 선교비를 못 보냈는데, 그동안 선교비 10년 동안 못 보낸 것 회개하는 마음으로 몰아서 보내겠습니다. 계좌번호 좀 알려주세요. ”때마침 필자는 학비가 급하게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하나님은 참으로 신기한 방법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5월 필자는 중국에 들어가야 할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한국에 나오고부터 부쩍 감소한 선교비로 생활이 넉넉지가 않은 탓에 미루다가 6월이 되어서야 할 수 없이 항공권을 카드로 결제하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카드사로부터 160여 만 원을 갚으라는 문자가 날라 왔다. 난감했다. 몸은 중국에 있고 돈 없고. 그럴 때는 기도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200만 원만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카톡’으로 짧은 문장이 하나 날라 왔다. 한국에 있으면서 새벽기도회를 나가던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였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선교 차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왔다.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런 목사님으로부터 온 ‘카톡’의 내용은 “선교사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돈도 없으실 텐데...”가 전부였다. 필자는 “그냥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답신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이 안 되어 목사님은 한 성도님을 연결하여 300만 원을 선교비로 보내주셨다. 나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은 ‘카톡’도 이렇게 잘 이용하신다. 이런 일이 바로 ‘카톡’을 통해 일어난 가슴 따뜻한 선교사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카톡’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목사님에게 필자가 지은 ‘시’ 한 편과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주일 오후에 단기선교를 떠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차량 이동하시면서 보시겠거니 하면서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에 나가고 있던 딸에게서 ‘카톡’이 날라 왔다. “엄마, 엄마가 보낸 글이랑 사진이 대박이 났어.” 하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뭐가 어떻게 대박이 났다고 그래?”했다. 딸은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 답답했는지,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시’를 내게 보내왔다. 바로 필자가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 ‘카톡’으로 보내준 ‘시’와 사진이었다. 그 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목사님이 단기선교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저녁예배를 인도 했는데, 필자가 보낸 ‘카톡’을 받고 선교적 내용의 ‘시’였기에 성도들에게 예배시간에 사진은 화면에 띠우고 ‘시’는 그대로 낭독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참석해 있던 딸이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찍어 두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궁금해 할 것 같아 그 ‘시’를 소개하려 한다. 또 ‘시’를 쓰도록 동기를 부여했던 사진도 함께 올린다. 참고로 필자는 수필을 주로 쓰는 사람이지 ‘시’를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참작하면서 보시기길.
네 속에 나 있음을(양동이 소녀) 양동이 속의 작은 천사 너의 눈빛은 무얼 원하는가 조그만 네 몸에서 나는 세계 속의 너를 본다. 작은 입술의 미소는 네가 전할 좋은 소식의 전조 양동이 안의 작은 소녀 아~ 네 속에 나 있음을
베트남 선교사의 페북에서 공유한 사진
‘시’작 Note 양동이 속에서 목욕하는 이 작은 원주민 소녀를 보았을 때 제게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언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시’의 제목인 “네 속에 나 있음을”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도 저 원주민 소녀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 원주민 소녀가 지금은 비록 어느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모든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한, 이 소녀의 미래는 밝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또한 이 소녀와 같은 원주민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있는 한, 이 어린 소녀의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페북’을 통한 세계인들과의 소통 위에 기술한 내용은 ‘카톡’을 통해서 일어났던 일이라면 ‘페북’을 통해서도 선교적 사건이 일어났다. ‘페북’에 올려 진 이 ‘시’와 사진을 보고서 미국의 LA에 있는 크리스천 월드 인터넷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 ‘시’와 사진이 너무 감동적인데 크리스천 월드 신문에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이다. 필자는 당연히 허락을 해주었다.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한국의 친구들만 대상으로 나누던 글이 이젠 세계의 친구들에게 소개 된다는데, 이 얼마나 고무적이고 감격적인 일인가. 그래서 정말 기뻤다. 나중에 크리스천 월드 신문사에서 기사화 한 필자의 ‘시’와 사진을 보내왔는데 제목을 ‘양동이 소녀’라고 바꿔서 실었다. 크리스천 월드 신문에 실린 그 내용을 보면서 필자는 소통의 중요성을 느꼈다. 선교는 소통이다. 기쁜 소식(복음)을 전해서 소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페북’에는 수많은 소그룹들이 있다. 필자도 선교관련 두 개의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나는 ‘나은혜의 선교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나은혜의 GMAN 선교교실’이다. ‘나은혜의 선교문학’은 필자가 한국교회의 선교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선교수필을 쓰면서 공개하고 있는 그룹이다. ‘나은혜의 GMAN 선교교실’은 인터넷 선교방송국인(GMAN)으로부터 방송강의를 요청받고 만들게 된 것인데, 그룹에 강의를 올려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카스’와 ‘카톡’이 주로 자기주도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자신이 글을 올리고 보내야 하기 때문에 훨씬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페북’은 그 관계망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친구로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되는 사람은 외국친구들도 만날 수가 있다. 필자에게도 친구하자며 Hello! 하면서 페친(페이스북 친구)요청을 하는 국제인들이 상당히 많다. 아마도 그들은 필자의 글은 읽을 수는 없지만, 열심히‘페북’에서 활동하는 모습, 개인 신상정보란에 기록된 필자의 영문 이력들, 그리고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의 신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친구 요청을 하는 것이라고 예측해 본다.
‘페북’에서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다 친구가 될 수 있다. 한 예로 장신대의 학장(현재는 총장)을 지내셨던 교수님도 ‘페북’에서 필자의 페친이 되었다. 이 분은 ‘페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페북’에 올려진 필자의 글을 읽고 팬이 되셨다. ‘페북’에서는 본인이 올린 글을 읽고 댓글을 꼬박꼬박 달아주는 사람이면 팬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페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냥 지나간다. 적극적인 사람은 like(좋아요)를 눌러주지만 아마도 더 많은 사람이 읽고도, 자신이 노출되는 것이 싫어서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올린 글을 읽고 꼬박꼬박 답글을 달아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페친이라면 그는 이미 팬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학장님이 답글을 달아 주실 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길게 달아 주신다.
그뿐 아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연결되는 것이 ‘페북’이다. 언젠가 필자는 해외에 살고 있는 집사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집사님은 페북을 하지 않아서 소식을 전하기가 어려워서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필자의 근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 ‘페북’을 하면서 이메일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소식을 보내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 자신은 ‘페북’을 안하는데 고등학생 딸이 ‘페북’을 해서 내 소식이 올라오면 엄마에게 말 해준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사용하고 있다는 ‘페북’은 전 세계를 말 그대로 지구촌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느 날 페친 신청이 들어와서 보면, 소식을 전하기 어려웠던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친구 선교사가 친구요청을 했다. 미국에서, 영국에서, 터키에서, 불가리아에서, 홍콩과 마카오와 인도네시아와 방콕과 러시아와 일본에서 어디든 페북이 열리는 지역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요청이 와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계정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채팅도 할 수 있어서 편지로 보내야 할 사연들을 개인적으로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지금까지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통해서 어떻게 선교적 소통을 했는지 극히 일부를 소개해 보았다. 필자의 소망은 앞으로 더 활발한 선교의 소통이 카스와 카톡, 페북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을 선교에 잘 활용하는 것 또한 현대 선교의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거대한 중국에 페이스북 소통이 자유로워질 때를 생각해 보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나은혜 | 선교사, 선교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