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여름, 저는 산동성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산아 제한 시기에 이미 오빠가 있었기 때문에 벌금을 많이 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순간에 없어진 것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슬픔을 안고 어두운 날들을 지내면서 좋지 않는 점수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종교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모가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모가 믿는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캄캄한 밤, 기숙사에서 혼자 흐느꼈습니다. 십자가를 그리면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 후, 이모와 함께 가정교회에 참석하며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슬픔은 사라지고 제 삶은 기쁨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말씀을 갈망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너무 커서, 구원으로 인한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구원의 복음이 너무 진실하게 다가왔기에 나는 전도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죠! 그것이 바로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삶에서도 하나님은 돌아가신 저의 아빠보다 더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하늘 아버지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2006년 3월부터 시작한 한국유학생활은 올해 2월에 끝났습니다. 7년을 살면서 생활비가 없을 때도 많았고 기숙사비를 못 낸 적도 많았고 학비를 못 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굶지도 않았고 노숙하지도 않고 한 번도 휴학하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이 어려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더 성숙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예비해 두신 여러 지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늘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몰랐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랑의 하나님의 독생자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과 영화 을 통해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희생을 알았습니다. 피 묻은 얼굴, 무력한 모습, 온유한 눈빛, 무거운 십자가…… 손에 박힌 못이 내 마음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고통은 제가 느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그날,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얼굴도 뜨거웠지만 마음은 더 뜨거웠습니다.
점차 성장하는 어린 아이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저는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물론 저의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는 의미도 있고, 부모가 어린 아이를 키우시듯 하나님께서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는 뜻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우리 아빠는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만족시켜 주었는데…….”하면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인이 유모차에 타고 있으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도를 계속 들어주지 않으셨고, 들어주시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응답인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저의 욕심일 수도 있고 제게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저의 필요를 아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때부터 철없는 기도를 많이 안 드려도 아버지께서는 저의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처음 신학교를 가기로 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34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사실 저는 어떤 면에서 신학교 갈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중국에 계신 엄마는 신학교 가는 것을 반대하셨고 학비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편입을 위해 학교에서 요구하는 원서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는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주신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을 하나하나씩 극복해나갔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신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교회에서도 섬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 때는 정말로 많이 부족했죠. 교회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사랑과 인내 덕분에 조금씩 배워가며 성장하였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습니다.
비전을 향하여 중국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간은 유수와 같고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光時如水, 光陰似箭). 어느새 한국에 온지 7년이 지났고 그 가운데 5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한 5년은 제게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전도자 되고 싶은 그 마음, 그 꿈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할지? 일생 동안 그 꿈을 품고 주님의 길을 따라 가면 될까?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내가 정말 따라 갈 수 있을까?’하고 제 자신에게 참 많이 질문 했습니다. 점점 악해지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 12:24). 이 구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하였습니다. 제가 아직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아우카 부족을 선교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그토록 크게 다른 일이란 말인가? 후자는 전자의 논리적 귀결이 아닌가? 하나님을 위한 삶은 그 자체가 사도 바울의 말대로‘날마다’죽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목숨을 버릴 때 우리는 그것을 도로 얻는다.”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제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고 제게 힘이 됐습니다.
제 비전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지금 매일 나가서 전도하지는 않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고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 품에 부르실 그날까지 중국과 북한을 품고 기도하며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이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걷겠습니다.
麗麗 | 본지 중국어자료 담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