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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1 통권 138호     필자 : 정야고보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틈새전략, 중국 비거주선교
비거주선교사가 말하는 비거주선교의 실제

필자의 나이 53살, 목회생활 23년 되던 해, 국내 목회를 일찍 마무리하고 선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선교지는 목회 중 자주 드나들며 강의 사역을 했던 나라로 마음을 정하고 기도했다. 막상 선교지로 나가게 되었을 때, 나는 비거주선교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아내와 다 자란 딸이 국내에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소속노회와 선교단체는 비거주 형태로 사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어느덧 5년이 지난 지금은, ‘선교 초년생’의 티를 벗고, 선교사다운 선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거주선교사란?
한국선교훈련원(kriM)의 선교용어에 보니“비거주선교사(NRM: Nonresidential Missionary)란 선교사의 입국을 제한하는 민감한 지역에 있는 어느 종족이나 도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지역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지만 거주하지는 않는 선교사를 말한다. 보통 비거주선교사는 사업가, 학생, 관광객 등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그 지역에 출입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어떤 선교사가 출국하여 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교사 가족이 사역지 외부에 거주하고 선교사는 현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사역하는 형태라면, 이는 넓은 의미에서 비거주선교이고 그런 선교사를 비거주선교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파송교회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면 비거주선교의 개념이 많이 달라진다. 선교사 가정이 어떤 국가로 출국하여 그곳에 살면서 사역하면 일반적인 선교사의 범주 안에 든다. 그리고 선교사가 가족을 국내에 둔 채로 정기적으로 출국하여 사역하고 돌아온다면 비거주선교사로 보게 될 것이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 비거주선교사이다. 목회를 조금 일찍 은퇴하고 다소 늦었다 싶은 나이에 선교사가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는 중국선교에 있어서 필자와 같은 형태로 일하는 비거주선교사가 더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거주선교사도 선교사다
예전에 한 목사님이 내게 선교지가 어디냐고 물어 온 적이 있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비거주선교사로 ○○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사역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은“그럼 프리랜서(free-lancer)이시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기분이 약간 상해서“나일론선교사지요”라고 까칠하게 대답했다. 내 마음속에는 소위‘나일론선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해보니 마음먹기에 따라 열심히 목회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농땡이를 치면서 할 수도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충 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선교사 가운데도 명함만 선교사이지 실제로 선교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비거주선교사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지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비거주 형태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사역을 잘 할 수도 있고, 사역을 대충해도 될 것 같은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이 선교사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구분하여야 한다. 만약 자신이 선교사 신분이라면 선교사답게 자신을 잘 관리하며 확실하게 사역해야할 것이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선교사 신분을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 단추는 현지어 공부
선교사가 되는 첫 단추는 선교사 훈련과정을 제대로 밟는 것이며, 선교사 훈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지어 공부이다. 당연히 비거주선교사도 현지어 공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지어 공부는 다른 언어를 가진 영혼들을 접촉하고, 또 그 영혼들을 얻기를 위하여 내가 치러야 할 대가이다. 이런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영혼을 얻으려고 달려든다면 굉장한 자가당착이 될 것이다. 

53살에 선교사가 된 필자 역시 현지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필자가 소속된 단체는 현지에 선교사훈련원을 두고 있어서 훈련원에서의 1년간은 현지적응과 현지어 학습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현지어를 공부하는 나에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너무 늦게 나왔네요.”,“ 길 찾아다닐 수 있는 정도만 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현지어로 설교와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현지어 공부는 순탄하게 진행되어 지금은 부족하나마 통역 없이 사역하고 있다. 

당연히 외국어 공부는 어렵고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러나 힘들다고 현지어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믿음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또 지금까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현지어 공부에도 은혜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당장 외우는 것은 머리 좋은 사람에게 뒤쳐질 것이다. 그러나 언어란 공부하면 할수록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언어란 것이 머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못 당하게 된다. 1-2년 정도의 단기간 공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5년이고 10년이고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공부한다면 더 좋은 언어를 구사하며 사역할 수 있을 것이다.

비거주선교사에게 중요한 점
첫째, 사역을 위해 가족의 동의가 중요하다. 필자가 처음 현지로 나가 선교사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꿈에 아내가 연거푸 나타나 이혼을 선언하고 나를 떠나는 꿈을 꾸었다. 당연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도 그런 마음이 없는지라 웃고 지나갔던 적이 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꿈으로 투영되었던 것 같다. 자주 가정을 떠나 외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선교사 본인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가족들에게도 많이 힘든 일이다. 만일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면 선교사 생활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격려해 준다면 비거주선교사에게는 더없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둘째, 선교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선교사가 되어 사역해 보니, 선교단체에 가입은 필수라고 느껴졌다. 선배선교사들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는 나의 사역을 수월하고 빠르게 한다. 필자도 어느 날 돌아보니 앞서온 선교사들이 깔아놓은 철길 위로 나의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 그들이 만들어 놓은 훈련원, 그들이 세워 둔 많은 현지인 동역자들……. 정말 초창기 선교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짐작이 갔다. 그래서 선교사가 선교단체에 가입하면 철길을 다시 깔 필요가 없고, 이미 만들어진 철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혹시 부족하다고 느끼면 이미 만들어진 철길에서 조금 더 연장하면 될 것이다. 

셋째, 한 두 지역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비거주선교사는 현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비거주선교사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분산 사역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렵다. 예전에 신학교 사역을 주 사역으로 하는 비거주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가족을 미국에 두고 매년 10개월 정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10년 넘게 사역하고 있었다. 그분이 하루는 강의를 하는데 통역이 너무 엉터리로 해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미 10년 이상 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현지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분의 사역지가 여러 국가가 되다 보니, 어느 한 나라 언어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다. 차라리 선교사님이 어느 한 나라를 정하고,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그 한 나라에만 사역을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넷째, 현지에서 도와줄 동역자가 필요하다. 필자는 지난 2년간 한 곳에서 미니 기독교도서관 설립과 제자훈련 사역을 병행했다. 물론 비거주 사역이어서 자주 출국하는 형태로 사역하였다. 현지에는 내가 믿고 의지할만한 현지인 동역자가 있어서 나와 현지인 사이를 연결시켜 주었다. 비록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현지인이었지만, 나의 사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2년간의 사역이 끝나고, 지금은 작은 신학대학원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강의할 교수들을 찾아야 하고, 또 후원자를 구하여 신학교 운영비도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편 현지에서는 학생들을 관리하며 학교를 운영해야 하므로 동역자가 현지에 있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 동역자가 현지에 있어서, 나는 나대로 동역자는 동역자대로 신학교 사역을 분담하여 하고 있다. 비거주선교사는 현지에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사역하기 어렵다. 신학교 출강은 강의만 잘 준비해서 가면 되기에 비교적 쉬운 편이다. 그러나 많은 사역이 현지인이나 현지 선교사의 도움 없이 혼자 진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섯째,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사역한다면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는 탁월함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23년 목회경력의 목사였으므로 현지 신학교 강의를 하며, 현지 목회자를 도와주는 일에 적합했다. 국내에서 현지로 목사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열었고, 나 자신도 강의에 나섰다.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 지난 23년간의 설교자료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현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주일 낮 설교 수준의 강의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새로운 신학 서적을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
언젠가 어떤 목사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그 부부가 불고기집을 개업하는 날이었다. 그분들은 떡집을 해오다가 또 하나의 식당을 개업한 것이다. 그분들은 교단파송 선교사라고 했다.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파송한 교단이나 그분들 자신은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분들이 선교사의 딱지를 떼고 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결국 주님 앞에 서게 된다. 그때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기 위하여 오늘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일도 많다. 목회자의 길을 나선 사람이나 선교사의 길을 나선 사람은 세상 성공과는 멀어져야 한다. 세상 성공을 원한다면 성직을 반납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거주선교 5년 동안, 이 길은 얼마든지 대충 갈 수도 있고 얼마든지 열심히 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나간 선교사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사역인지 하나님께 물어가며 전진한다면 후회 없는 선교사 인생이 될 것이다.


정야고보 | 빌리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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