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 집중강의 여름방학이 되면 비전트립으로 학생들과 함께 캄보디아의 캄퐁송, 프놈펜, 시하노크빌 등을 다녔다. 배를 타고 먼 시골과, 중국의 난징, 옌볜, 훈춘, 투먼 등도 다녔었다. 중국에서는 어린이 성경학교와 부모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곤 하였다. 주 대상은 재중 한인교회와 조선족교회 어린이, 그들 부모와 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비전트립 기간 동안에는 한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옆에서 보기만 해왔었는데, 직접 교육에 참여하면서 중국교회와 중국인들의 종교생활, 앞으로 중국선교에 대한 시각이 많이 새로워지게 되었다.
강의에서 다루는 내용은 아주 다양했다. 어린이 사역과 가정 사역에 관한 내용으로서 기독교 입장에서 본 태아교육, 잠언 22장 6절 말씀에 입각한 자녀교육의 성경적 원리, 태아에서부터 청년기까지 성경적 입장에서 본 자녀교육과 부모의 역할, 21세기 위기에 처한 자녀와 가족,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자녀와 부모를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경적 입장과 발달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 그 원리와 방법이었다. 강의는 PPT 자료를 모두 한글로 작성해 갔기 때문에 통역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허난성 사역자들을 위한 순회강연에서는 수강자를 위하여 크고 작은 제목들, 성경본문, 그림, 도표가 가능한 한 중국어로 화면에 뜨도록 번역을 시도했다.
한국이나 미국 등에서 온 외부 강사들의 일정이나 숙소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처럼 시간표를 조정할 수 없었다. 결국 교육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강사가 강의를 집중적으로 몰아서 할 수밖에 없으니 강의하는 사람이나 수강하는 학생들 모두 힘들었다. 실제로, 첫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총 27시간을 강의한 후에는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몸에 무리가 왔다. 그 다음 주 다른 기관에서는 더 이상 강의를 계속 할 수가 없는 상태가 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정을 차질 없이 마칠 수 있었다.
HK어린이 사역 전문아카데미 어린이 사역 전문아카데미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정도의 젊은 어린이 사역 지도자 양성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수강생들은 2년 동안 20여 명이 전원 합숙을 하는데, 수업과 숙식은 모두 무료이다. 이번에 만나고 온 학생들이 4기 수강생들로, 이들은 중국목회자의 자녀이거나 그들의 추천을 받고 온 학생들이다. 주말에는 시내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봉사를 하고, 주중에는 24시간 합숙생활을 한다. 이들을 위한 강의는 교회학교 지도자 양성 측면에서 이론과 실제를 겸하여 설명했다.
18세 이하의 자녀들은 종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중국의 정책은 참으로 우민정치가 아닐 수 없다. ‘종교는 미신이다.’라고 하면서 기독교교육의 효과와 그 필요성이 가장 요구되는 그 시기를 깡그리 뭉개버리고 비어둔 상태에서 오는 간격(gap)을 무슨 재주로 무엇으로, 어떻게 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란 이 시대의 자녀들은 어떤 생각 속에서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중국기독교 지도자들이나 기독교가정 부모들은 커다란 절벽에 부딪쳐 마음의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기독교가 개방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종교교육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공안(公安)들의 습격 때문에 외각 지역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중국 자국민들을 위한 종교교육은 자유로워 보였다.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종교교육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기에, 어린이집(Daycare center) 교사 양성기관처럼 운영하여 실제로 관련된 과목을 함께 하면서 주일학교 교사교육인 기독교교육을 실시한다. 어린이집 교사를 위한 교육은 주일학교 영유아부나 유치부, 어린이부를 지도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이론과 실제이며, 거기에 기독교교육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일반 유아교육과 기독교교육을 함께 병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기독교교육과 일반교육의 통합이 아닌 이분법적인 사고가 형성되도록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 이러한 교육기관을 운영한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한국선교사들은 이렇게 지혜롭게 활동하고 있다. 이 아카데미 책임자의 남편선교사님은 신학교를 운영하여 성인 사역자를 양성하고, 부인은 어린이 사역자를 양성한다. 중국의 공안들도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을 볼 때, 막무가내로 반대할 필요가 없음을 서서히 느끼며 알고도 모르는 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강의 중에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질문에 대한 피드백이 너무 없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중국에서는 학생들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전달한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질 뿐,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이나 확산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예, 아니오”의 대답만 나오게 하는 질문이 좋지 않다는 것과 무슨 대답이 나와도 좋다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에 대한 설명을 강조했다. 어린이를 지도할 사람들이 주입식으로 생각을 하고 암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얘기했다. 그 다음부터 학생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인가 자신을 표현하려 했고 질문도 대답도 아주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했다. 때로 어떤 주제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반드시 말하도록 해보기도 했다. 그들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그들이 처한 환경적 요소가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가정환경이나 교회의 형편과 사정, 그리고 주일학교의 황무함은 우리나라 1950년대에 비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미개척지와 같은 어린이 사역을 위해 수고 하는 이 아카데미 위에 놀라우신 우리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이 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또한 중국의 다음세대를 위한 복음 사역을 위해, 어린이 사역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이 아카데미에 더 많이 보내주시기를 기원한다.
L&H기술아카데미 기술학교는 15살에서 20살 정도의 청소년들에게 치과 기공기술을 가르친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교회의 추천을 받아서 오게 된다. 사춘기 청소년들이기에 자기성찰 측면을 강조하려 하였지만 학구열이 있는 학생들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온 가난한 가정, 결손가정, 장애가 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강의를 해 나가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 있다는 것 한 가지,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어서 강의를 계속해나갔다. 이 학교를 운영하시는 선교사님 내외분은 20여 년 전부터 중국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학과를 신설하여 베이징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청소년 사역을 해 오셨다. 그러나 학생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저학력이었고 가정상황, 경제적 여건은 상대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그랬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비전을 갖는 것 역시 어려웠다. 선교사님 내외는 학교를 세웠지만 정작 학생들이 공부에 무관심하고 무지하여 여러 학과를 모두 폐지하고 건물을 이전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현재는 치과 기공기술만을 가르쳐서 그들이 당장 사회에 나가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전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교도 합숙을 하며 전문 훈련을 한다. 이 학교는 학생들을 먹이고, 재우고 교육을 시키는데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로가 많다고 했다. 그들을 파송한 한국교회는 없어졌고, 후원교회도 없었다. 그러나 이 사역은 그만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특별한 학생을 한 명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중에 성령 하나님의 인도로 도움의 손길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데이비드’, 학교에서 지어준 그의 이름이다. 거동 시 다리를 절기도 하는 17세 소년 데이비드는 아직까지도 기저귀를 찬다. 괄약근의 문제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 변의나 요의를 느끼지 못해 언제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고칠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치료가 가능하다. 그가 사용하는 기저귀 값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사실을 듣고는 기저귀 값을 주지 않고는 올 수가 없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아버지는 결혼하기 전부터 정신질환이 있어서 병원치료와 함께 약물복용으로 고생을 했다. 지금도 약물복용 중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가 태아 때의 환경이 치명적인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정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이 간다. 데이비드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대인 관계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밝게 웃으며 동료들과 함께 할 정도로 좋아졌다. 낯선 사람인 내게도 좋은 반응을 보이며 수업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선교사님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헌신이 있었다. 이 학교 선교사님들은 이 학생들의 시골집까지 방문하여 그들의 생활을 살피며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고 있었다. “하나님, 데이비드를 좀 도와주소서. 그리고 사랑과 희망의 학교인 L&H기술아카데미와 학생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소서. 그들의 미래를 인도하소서.”
정갑순 |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