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하나님 교회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은 어렸을 때 마을 교회에 외할머니와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린 일이다. 외할머니는 젊었을 때 전족을 하시다 해방 후 풀었기 때문에 걸음 폭이 넓지 않았다. 외할머니와 손을 잡고 집 마당을 나와 층계를 내려가고 여러 길을 돌아 부서진 기와 벽돌 옥탑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고르지 못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또 어떤 사람은 계속 한 쪽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교회였다. 외할머니는 본인이 믿는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하셨다. 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고 그저 외할머니께 이끌려서 갔다 돌아올 뿐이었다.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작은 체구의 외할머니가 지팡이를 의지하여 양쪽 팔꿈치를 창가에 기대어 돋보기를 끼고 성경에 빽빽이 적힌 작은 글씨를 보며 중얼거리시는 장면이다. 나는 자주 외할머니를 놀렸다. “할머니 글자 아세요? 알아보실 수는 있으세요?”외할머니께서는 매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다가가 할머니를 안으면서 말했다.“ 할머니 말해보세요 그렇게 매일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아세요?”외할머니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얘,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먹고 마실 수 있고 약 안 먹고 주사도 안 맞는데 그게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 일이니!”주님께 감사하다고? 왜 주님께 감사해야 되는 거지? 나는 오늘에서야 이 질문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할머니께서는 가장 소박한 말 한 마디로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우리집 식탁 옆 벽 위에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성경구절이 붙어 있었다. 나는 후에 어머니께 외할머니가 저 글자들을 다 아셨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외할머니가 아는 글자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고 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97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 마을에는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노인의 시신을 아들 집 마당에 7일 동안 모시고 사람들이 와서 추모하는 풍습이 있다. 40도가 넘는 더위에도 추모객들이 끊이지 않고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더위에도 시신에서는 조금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이고 말했다. 어르신은 참 좋으신 분이라고. 젊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시더니 본인이 갈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이렇게 깨끗하게 가신다고 말이다. 매장하던 날,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 무덤을 감쌌다. 외할머니는 주님의 은혜와 복을 입으시고 가장 기쁜 곳인 천국으로 가셨다.
처음으로 부르심을 듣다 내 친구 중에 모두에게 존경받는‘선생’이 있었다. 노신(魯迅) 선생은 이‘선생’을‘글방 선생’, 즉‘박학다식한 사람’가리키는 스승의 의미이기도 했다. 2003년 사스가 지나간 어느 날, 그 선생은 나를 데리고 한 집회에 참석했다. 사스가 한창인데 집회라니 좀 미심쩍었지만 존경하는 스승과 좋은 친구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집회의 열기가 확 느껴졌다. 이‘선생’이 말씀을 자주 전하고 환영받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몇 십 명씩 손을 잡고 원을 만들며 함께 찬송을 했다. 나도 그 속에 섞여서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호응도 하고 입가엔 직업적인 미소를 띠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한곡 한곡이 맑은 샘물이 되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맑고 투명한 그 곡들은 내 맘을 유쾌하게 했다. 그것들은 마치 내 생명의 가장 원시적인 선율 같이 느껴졌다. 멜로디와 가사도 몰랐던 곡들인데도 어느 순간 익숙하게 들렸다. 나는 따라 부르면서 목이 메이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이성을 잃게 만들다니!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내 자신을 더 이상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카펫 아래로 구멍을 뚫고 들어가거나 이 현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낯선 곳에 나를 데려 와 난감하게 만든 이‘선생’이 원망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선생에게 기대어 울고 싶기도 했다. 여전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람들은 내 어깨를 도닥거려 주었고 휴지를 가져다주기도 했으며 나를 안아주기도 했다.
며칠 뒤 멜 깁슨 감독의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DVD가 생겼다. 어느 날 밤 혼자 집에 있기가 지루해서 DVD를 꺼냈다. ≪브레이브 하트≫의 주연이었던 천재배우가 감독을 한 영화는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나는 로마 군대와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골고다로 끌고 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 장면에서 목이 메여 큰 소리로 울었다.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나는 문자메시지를 그‘선생’과 미국에서 돌아온 크리스천 친구에게 보냈다. ‘ 오늘 나 영화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봤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서 도저히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 나 아무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낀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강한 힘이었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을 따라가고 싶어.’다음 날, 그들은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걸어 껑충껑충 뛰며 기뻐해주었다. 그 후 그‘선생’은 정말로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로 약속했다.
고통스러웠던 세월 2010년은 가장 마음이 아팠던 한 해였다. 나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께서 두 달 만에 모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친할머니께서는 항상 나를 당신의‘눈’이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 중 눈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외동딸이었고, 친할머니께서는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첫 출연료를 받을 때부터 매달 할머니께 용돈을 드렸다. 할머니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성취감을 누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돈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지 못해 조바심을 내셨다. 그럴 때마다‘할머니를 기쁘게 하시는 예수님이 있는데 왜 할머니는 예수님을 찾지 않으시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할머니는 내가 찾아뵌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 사실을 큰아버지께 알려드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큰어머니께서는 3개월 전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며칠 후, 30분 전까지도 통화를 했던 친구가 그날 새벽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열흘 동안 밥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이혼하셨다. 그 폭풍이 나의 삶을 뒤집어 놓았는데, 지금 또다시 연속해서 친척과 친구들을 잃으면서 나의 삶은 다시 한 번 붕괴되었다. 나는 매번 이렇게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왜 뼈 속 깊은 고통이 계속되며 무력한 마음을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힘겨운 시간동안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친척과 친구의 모습이 어른거려 매일 밤을 지새웠다.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을 직면하면서 내가 얼마나 작고 힘없는 존재인지 발견했다. 또한 무력감을 느꼈고 생명에 대한 공포가 생겨났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공포였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침범해 올 것 같았다. 혼자 있을 수가 없었고 차를 운전할 수도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심장이 떨렸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하려고 각종 자료들을 보내왔다. 엄마의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 때문에 나는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평온한 어조로 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낮이고 밤이고 내 영혼은 그저 갈 곳 없이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진실한 위로가 필요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다 사람들은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민 신청 최종 비준을 얻었고,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나를 마중 나온 언니는 그 다음 날 집회에 간다고 했다. 그 집회가 기독교집회인 것을 알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도 가겠다고 했다. 시차적응도 하기 전에 참석한 것이다.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주일에는 중국복음교회에 속한 교회에 갔다. 80세가 넘으신 장로님께서 기도를 인도하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오늘 한 자매가 막 이곳에 도착하여 우리 품으로 왔고 8월 8일 날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성도님들 모두 일어나셔서 이 자매를 위해 기도합시다!”그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랫동안 억압된 것들이 한 순간 폭발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한 자매 품에 안겨 큰 소리로 울었다. 그날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 품속에 안겼다. 진실한 위로에 따뜻함을 느꼈고 감동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자지 못했던 평온하고 깊은 잠을 잤다. 두 번째 주일에는 예배집회에 참석했다. 끝나고 장로님과 사모님이 내게 오셨다. 손을 맞잡은 순간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광대한 우주 가운데 지극히 작고 약한 나라는 존재는 괴로움으로 꽉 찼고 고난이 마음에 가득했다. 하소연도 중재도 할 수 없어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가슴 아픈 기억으로부터 나오게 해달라고. 나의 마음속에 있는 얼음을 녹여 깨끗하고 맑은 샘물이 흐르게 해달라고. 등불로 내 앞길을 밝혀달라고 말이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니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딸이에요!”창 밖에 따뜻한 빛이 두루 비추었다. 나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데려다 주실 것을 믿는다. 그곳은 우리 집이고 그곳에서 친척들을 만날 것이다. 그곳은 아름다운 꽃들로 눈부실 것이다.
글쓴이는 중앙희극학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이전에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의 MC를 맡았으며 현재는 밴쿠버에 거주 중.
출처 | ≪海外校園≫ 117期 번역 | 이복음·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