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의 자유를 위한 험난한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그 길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시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유를 외치는 장이 될 수 있다. 1월 7일 밤 <남방주말>의 블로그가 강제로 폐쇄를 당했다. 이 사건은 유명 주간지의 명운(命運)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모든 네티즌과 애독자들의 분노를 샀다. 1월 8일 각 지역의 지지자들이 광저우(廣州)에 있는 남방매스컴그룹 사옥 앞에서 헌화, 연설, 노래, 토론의 방식으로 자발적 시민운동을 일으키면서 <남방주말>과 언론자유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오전 10시가 막 지나면서 그날 처음으로 헌화를 한 지지자가 나타났다. 하얀 국화를 들고 나온 송(宋) 선생은 <남방주말> 사옥 앞에 섰다. 그리고 주변 사무실을 배경 삼아 하얀 국화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하얀 국화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이듯이 그에게 <남방주말>은 자신이 추구했던 자유와 이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이 하얀 국화는 나 자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내가 이상으로 삼고 추구했던 자유의 가치들은 이미 죽어버렸다”며 애도를 표했다. 11시 전, 신문사 사옥 주변에 사람들이 그다지 모여들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 앞에 나와 헌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저우의 한 변호사는 헌화를 하면서“중국의 남방 지역은 언제나 개혁에 앞장섰으며 <남방주말>은 줄곧 개혁의 소리를 대변해 주었습니다. 지금 광동성의 공 산당 중앙선전부(廣東省委宣傳部門)가 개혁의 목소리를 차단하려고 하는데, 1978년부터 개혁개방의 유익을 맛본 시민들은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란샹제제(染香姐姐)’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성이 드디어 오후에‘말하기를 꺼리다(避言套)’라는 글씨를 쓴 마스크를 하고 나왔다. 그녀는 노란 국화를 한아름 안고서 현장에 있는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경찰이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사진 찍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를 수사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마스크를 벗으며“제가 마스크를 한 것은 경찰인 당신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광경을 지켜 본 주변의 남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때 그곳을 지나가던 중년의 한 남자는 란샹제제에게“제게 그 꽃 한 송이를 주십시오.”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꽃을 받아들고 모여든 사람들에게“우리가 왜 숨어서 얘기를 해야 합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면 그만인데, 저는중국시민, 뤄창(羅昌)입니다.”하고외쳤다.‘ 중국시민(中國公民)’ 이라는 그 한 마디가 우렁차게 퍼지면서 <남방주말> 사옥 주변의 좁은 인도는 한순간에 시민광장이 되었다. 사람들은“잘한다! 잘한다!”함성을 지르며 한 사람씩 차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예청장(葉澄江)이라는 중국시민입니다.”그는 시민들을 향하여 중국은 언론의 자유를 실현해야 하며, 시민들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마땅히 쟁취해야 한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인도에 서 있던 젊은 남자, 류쓰팡(劉四敦)은 청바지에 작은 배낭을 맨 채 피켓을 두 손으로 높이 치며들었다. 피켓에는“나는 <남방주말>의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시민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여기 나오는 것이 위험하다면서 강하게 만류하며 내 처자식 생각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딸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나는 내 딸아이가 나처럼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딸아이가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발표하는 사람들 근처에서 한 무리가 <동방의 진주(東方之珠)>, <국가(國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매년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 시위모임에서 반드시 부르는 <자유의 꽃(自由花)>이라는 노래 소리가 이곳 광저우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어서 우렁찬 국가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시민들이여!”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90後’의 젊은 세대들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힘찬 함성의 박수를 받았다. 광동 해양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우(吳)씨 성의 여학생은“<남방주말> 역시 단점은 있지만 다른 언론 매체에 비해 개방적이고 양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남방주말> 마저 강제로 폐간된다면 다른 언론 매체는 더 더욱 자유롭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주간지에 대한 지지 발언으로 언론자유에 대한 제 바람을 담아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옆에 기자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그 여학생에게“네 이름이 뭐니? 너는 두렵지 않니?”라고 물었다. 주변에 모인 많은 시민들은 이 여자아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언젠가는 그 여학생의 대담한 발언을‘정부 관계처’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여학생은 다시 그 여자아이한테 “네가 방금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두려웠던 건 사실이야. 내가 여기서 안전하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도 안전할 거라고 아무도 장담 못할 거야. 어차피 우린 한 번은 죽게 돼있어. 그 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해.”라는 말을 남겼다. 그 옆에서 메모를 계속하던 그 여자아이는 기자가 아니라, 광저우 중산대 학교 언론홍보디자인학과(中山大學傳播設計學院) 학생이었다. 그녀는 어느 NGO단체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남방매스컴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나왔다. 몇몇 직원은 조용히 발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사옥 앞에 놓인 국화꽃과 장미꽃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여학생 세 명이 꽃을 들고 있었다. 그중 교복을 입은 두 명은 화남사범대부속중고등학교(華南師范大學附屬中學)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남방주말>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그들의 행동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 왜“헌화하러 왔니?”라고 묻자 그중에 한 학생이“다 아시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기자에게 나중에 커서 언론 매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고, 마지막 학생은“우리는 모두 중국시민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저녁 무렵, 마스크를 한 어떤 여자아이가 <남방주말> 사옥 앞에 도착했다. 그녀의 손에는 새해에 발간한 <남방주말>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잡지를 높이 흔들며 쳐들었다. 주간지 첫 페이지에는 그녀가 직접 쓴‘자유’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닉네임을 공민카러(公民賓樂)라고 밝혔다. 누군가 그녀에게“학생도 <남방주말>의 애독자인가요?”라고 묻자 그녀는“실은 저는 <남방주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해 팡저우쯔(方舟子)가 작가 한한(韓寒)의 작품이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대필한 것이라고 비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한한 작가가 거짓말했다는 증거들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남방주말>은 무조건 한한 작가를 비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이곳에 <남방주말>의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언론의 자유 지지를 반대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중 나이가 꽤나 들어 보이는 남자가“그 어떤 언론 매체라도 자유는 반드시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국가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당신네들이 외치는 언론의 자유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외치는 그런 자유가 아니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러한 찬물 끼얹는 발언은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사람들은 이 두 명의 남자는 분명 정부에서 고용한 앞잡이고 정부에서 보낸 방해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망언을 쏟아낸 나이든 남자는 본인이 누구인지 기자에게 밝히기를 꺼려했다. 단지 닉네임이‘사회주의이등병’(社會主義小兵)이라고만 말한 이 남자와 바링허우(80後), 주링허우(90後)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닉네임이 사회주의이등병인 남자가 말하기를‘인터넷 사이트 신랑(新浪)에서는 발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여우즈샹(烏有之鄕)이라는 사이트에서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운영하는 50여 곳의 사이트도 폐쇄를 당했다고 했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이 말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지 물었지만 그 남자는 질문을 회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어서 그 나이든 남자는 젊은이들에게“너희들이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구. 우리의 언론이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설마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거냐?”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쟁취하려는 언론의 자유는 중국시민 모두의 언론의 자유입니다.”라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나이든 남자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를‘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아닌‘국무원 언론 매체 사무실’에서 그들의 사이트를 폐쇄시키라고 했다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날 오후 이 남자와 함께 온‘마따우청공(馬到成功)’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 노인은 <남방주말>은‘매국노 언론 매체’ 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늦은 밤인데도“우리는 공산당을 지지한다. 우리는 마오(毛思想)사상을 지지한다. 우리는 매국노 언론 매체 탄압을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고 두 명의 남녀가 왔다. 그들이 오자마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다른한편에서는<남방주말>을옹호하는피켓을들고나왔다.“ 우리는<남방주말>을 아끼고 보호하자. 우리의 양심으로 <남방주말>을 지지하자.”삽시간에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격분한 시민이‘매국노 언론 매체’라고 적힌 피켓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자, 피켓을 들고 있던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에 사람들이 그를 뜯어 말렸다. 그리고 청년들은“이성을 찾자! 이성을 찾자! 이성! 이성! 이성!!”을 연신 외쳐댔다. 피켓이 땅에 떨어진 그 남자는 잠시 군중에서 물러났다가 금세 다시 나타났다. 그는 용감하게 기자에게 자신의 실명을 밝혔다. 주변 사람들이 어째서 <남방주말>이 매국노 언론 매체라고 욕하는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본인의 주장만을 되풀이 했다.
헌법을 낭독하면서 자유를 위해 싸우다 이 남자는 곧 떠나버렸다. 밤 9시가 넘어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한 중년 남성이 헌화와 편지 더미 속에서 하얀 책자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것은‘중화인민공화국헌법(中華人民共和國憲法)’ 이었다. 그는“우리 다같이 헌법35조를 낭독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동의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는 먼저 혼자 큰 소리로 헌법35조를 낭독했다. 그 후 1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를 따라 헌법35조를 큰 소리로 제창했다. 추운 겨울날 밤, 헌법35조가 말하는 시민의 권리가 <남방주말>의 희미한 네온사인 아래서 울려 퍼졌다.
남방시사매거진들이 당한 13년간의 정부 탄압일지
천쉰(陳珣)
2000년 1월: <남방주말(南方週末)>의 핵심인물인 편집장 장이핑(江藝平)씨가 이직 당함. 그 후 그는 <21세기신문(21世紀報系)>에서 일하게 됨.
2001년 5월: <남방주말>의‘장쥔(張君) 사건’보도로 대대적 탄압받음. 편집장 대리 쳰강(錢鋼)이 이직 당하고 부편집장인 천밍양(陳明洋)은 해고당함.
2003년 3월 13일: 창간한지 얼마 안 된 <21세기유니버설보도(21世紀環球報道)> 는 정간(停刊)당하고 장이핑은 다시 탄압을 받음.
2003년 3월: 남방도시신문(南方都市報) 최초로‘중국 내 사스 -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보도’로 편집장 청이중(程益中)은 좌천됨.
2003년 4월: <남방주말>은‘주롱지(朱熔基)특집보도’건으로 탄압을 받음. 이로인해 제 1000호의 발간을 하지 못하게 됨. 또한 광동성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의 처장인 장동밍(張東明)을 편집장으로 파견됨으로 인해 신문사의 많은 직원들은 사표를 제출함.
2003년 4월: <남방도시신문>에서‘쏜즈강(孫志剛) 사건’보도 이후 송환제도는 폐지됨. 그해 1월, <남방도시신문> 사장 위화펑(喩華峰)과 편집장 청이중 등 네 명은 광저우 사법부에서 경제범으로 체포되어 형을 언도 받음.
2005년 12월: 남방시사매거진들(南方報系)의 창간에 참여한 편집부 직원 양빈(楊斌)과 두 명의 편집기자인 쏜쉬에동(孫雪東), 리두어위(李多鈺)가 해고를 당함. 그 후 100여 명의 직원들이 파업 시위를 함.
2008년 4월: <남도주간(南都週刊)> 집필자 창핑(長平)은 <티베트의 실상과 민족정서에 대한 평론 (西藏:眞相與民族情緖)>을 발표한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인턴사원으로 쫓겨남.
2008년 12월: 장이핑은 또 권리를 박탈당하고 <남방도시신문>으로 이직을 당함.
2009년 11월: <남방주말>의‘미 오바마 대통령 인터뷰’가 정부 당국의 의심을 사서 그 내용이 완전 삭제당하고 잡지를 또 다시 발간하지 못하게 됨.
2011년 1월: 창핑이 남방언론매체그룹으로부터 해고를 당함.
2011년 3월: <남방주말>의 유명한 평론작가 샤오슈(笑蜀)는 남방언론매체그룹으로부터 제명당함.
2011년 9월: 중국 베이징 공산당 중앙선전부에서 <신경신문(新京報)>을 접수함.
2012년 5월: 퉈전(造震)이 광동성 중국공산당 선전부장으로 부임함. 남방시사매거진들 에 대해 규제감독을 강화함.
2013년 1월: <남방주말>에서‘새해발간사’사건이 터짐.
출처 | 亞洲週刊二十七卷三期(2013年1月20日) 번역 | 차이나·본지 번역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