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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5 통권 136호     필자 : 김성곤 프린트   이메일 
[한시 강좌]
王維의 <종남별업(終南別業)>

王維의 <종남별업(終南別業)>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하였거니
늦은 나이에야 종남산 자락에 집을 지었네
흥이 나면 매번 홀로 나서느니
이 유쾌한 일이야 그저 나만 알 뿐이라
걷다가 걷다가 물길 끊어지는 곳
앉아서 바라보는 하늘엔 구름이 피어나고
우연히 숲 노인을 만나면
담소하느라 돌아갈 것도 잊는다네

 

中歲頗好道(중세파호도),
晩家南山滿(만가남산수).
興來每獨往(흥래매독왕),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
行到水窮處(행도수궁처),
坐看雲起時(좌간운기시).
偶然値林馬(우연치림수),
談笑無還期(담소무환기).

주석
1 中歲(중세) - 중년 頗(파) - 자못, 제법 好道(호도) - 도를 좋아하다
2 晩(만) - 늦게, 늦은 나이에 家(가) - 집을 짓다
南山(남산) - 왕유가 은거하며 살던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킨다   滿(수) - 가장자리
3 興來(흥래) - 흥이 일다, 흥이 나다 每(매) - 매번   獨往(독왕) - 혼자 산길을 나선다는 말이다
4 勝事(승사) - 즐거운 일, 유쾌한 일   空(공) - 그저, 부질없이   自知(자지) - 나 스스로만이 알 뿐이다, 남들은 모른다는 말이다.
5 水窮處(수궁처) - 물이 끝나는 곳. 이 구절은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물길이 끝나는 곳까지 이르렀다는 말이다.
6 坐看(좌간) - 앉아서 바라보다 雲起(운기) - 구름이 피어나다   時(시) - 여기서는 앞 구‘處’에 맞춰 대를 이루기 위해 쓴 것으로 별도로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7 値(치) - 만나다 林馬(임수) - 숲에 사는 노인. 은자(隱者)를 가리킨다.
8 無還期(무환기) - 돌아갈 기약이 없다. 숲에 사는 은자를 만나 담소를 나누느라 집에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 시는 만년에 종남산 자락에 별장을 지어 살던 왕유가 자연 속에 노니는 벅찬 기쁨을 적은 것이다. 왕유는 상서우승(尙書右丞)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하였지만 자연에 대한 애호가 남달라서‘반사반은(半仕半隱)’, 즉 반은 벼슬하고 반은 은거하는 생활을 견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 구절에서‘중년부터 도를 좋아하였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도는 불교를 가리킨다. 왕유는‘시불(詩佛)’의 칭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불교에 대한 신심이 독실한 시인이었다. 물론 왕유가 이렇게 불교의 도에 경도된 것은 황제 주변의 간신배들이 권력을 전횡하는 부패한 세상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된 면이 강하다. 부패한 세상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그 부패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도 당시 지식인 들이 취한 나름대로의 소극적인 저항의 몸짓이었다.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조정에는 간신들과 무능력자들만 가득하고, 산속에, 물가에, 재야에 현자와 능자가 많다는 것은 나라가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비린내 진동하고 악취가 가득한 세상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 왕유는 거의 같은 시기에 쓴 것으로 보이는 <장소부에게 화답하다(酬張少府)>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년에 오직 고요함을 좋아하였느니
인간 만사에 관심이 없다네
스스로 돌아보매 뾰족한 수가 없어
그저 옛 숲으로 돌아갈 뿐이네
솔바람 불어 허리띠를 풀고
산 달은 거문고 타는 사람 비추네
그대 궁통의 이치를 묻는가
어부의 노래소리 포구에 깊이 들려온다네
晩年惟好靜,萬事不關心。
自雇无長策,空知返舊林。
松風吹解帶,山月照彈琴。
君問窮通理,漁歌入浦深。

인간 만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인지, 스스로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만사에 관심을 끊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시인은 세상의 명리(名利)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고요함(靜)’을 추구하기 위해‘옛 숲(舊林)’으로 돌아간다. 옛 숲은 고향이요, 자연이다. 또한 무엇인가 일이 꼬이고 뒤틀어지고 엉켜서 엉망이 되었을 때 다시 돌이켜보는 처음 자리, 즉 초심이요 첫사랑일 수도 있다. 기억해두자. 스스로 돌아보아 아무런‘장책’이 없을 때, 그때는 우리의‘옛 숲’이 우리를 부르는 때라는 것을! 

처음 시로 다시 돌아가자. 둘째 구의‘남산 자락(南山滿)’은 바로 시인이 돌아간 옛 숲이다. 남산은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의 남쪽에 있는 큰 산 종남산이다. 그 종남산 자락에‘망천별서(輞川別墅)’라는 별장을 짓고 왕유는 자연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곳에서의 삶은 세상에서 입은 상처에 대한 치료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갈 삶에 대한 모색이다. 그가 노는 꼴을 들여다 보자. 3구에서‘흥이 일면 매번 혼자 간다’고 한 말에서의‘흥(興)’이 바로 옛 숲에서의 그의 삶을 개괄한다. 매사 흥을 따라 사는 것이다. 어떤 강요도 억압도 의무도 명령도 없다. 그저 만사 흥을 따라서 걷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한다. 흥이 일면 가고 흥이 사라지면 돌아가는, 이른바‘승흥이행(乘興而行), 흥진이반(興盡而返)’이 아닌가. 

옛날 산음(지금의 절강성 소흥)에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셋째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살았다. 한밤중 눈이 그치고 달빛이 사방을 환히 비추자 휘지가 흥이 일어 홀로 달빛 아래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조리고 있었는데, 홀연 섬땅(지금의 절강성 승현)에 살고 있는 멋진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어졌다. 곧바로 작은 배를 준비해 이백 리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밤이 거의 다할 무렵에 비로소 대안도의 집 앞까지 이르렀는데 휘지가 돌연 배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휘지가 말하였다. “본시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꼭 대안도를 만날 것이 무에 있으랴!”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흥’에 따라 사는 옛 숲에서의‘유쾌한 삶의 재미(勝事)’를 모른다. ‘그저 나만 알 뿐인(空自知)’일이다. 흥이 일어 집을 나서 숲길을 걷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간다. 맑은 물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보니 마음조차 한없이 맑아진 듯하다. 내가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된 듯, 경계가 허물어진 황홀한 순간 물길이 끝났다. 어, 이제 무얼하지? 에이, 고민할 것 뭐 있어? 그냥 털썩 바위에 앉았다. 명랑한 새소리가 찾아오고 상큼한 숲의 향기가 덮쳐온다. 솔바람이 지나가다 날보고 다가와 손을 내밀어 내 허리춤에 묶인 허리띠를 헐렁 풀어버린다.(<장소부에게 화답하다> ‘松風吹解帶’) 하, 좋다! 모든 묶인 것으로부터의 자유! 멀리 하늘을 보니 내 꼴을 내려다 보던 구름이 빙그레 웃으며 유유자적 한가롭게 떠간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지나가던 숲에 살던 노인이 물아일체의 흔연한 기쁨에 젖어있는 나를 발견하고는말을걸어온다.“ 아니, 거기서혼자뭐하는거요?”“왜요? 제가좀이상한가요?”“아니, 당신 모습이 마치 마른 나무인 것 같기도 하고, 고요한 바위인 것 같기도 하고, 얼이 좀 빠져있는 것도 같기도 하고…”허어, 이 노인네, 장자의 ‘좌망(坐忘)’의 경지를 말하고 있구만. 숲에 사는 은자가 틀림없으렷다. “노인께서는 남곽자기의‘나는 나를 잊었다(吾喪我)’는 말씀을 들어보셨습니까? 제가 잠시 그런 경지를 맛보았던 것 같습니다.”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는다.“ 글쎄올시다. 나는 그저 하늘의 퉁소 소리만 들으며 지낼 뿐이니 남곽인지 북곽인지 하는 사람 따윈 모른다오.”하아, 역시나! 하늘의 퉁소는 바로 장자에 서 말하는‘천뢰(天郞)’다. 오직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 자신의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인만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인이시로군요!”내가 감탄의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은 어린애의 해맑은 얼굴이 되어 나뭇가지를 들어 땅을 치며 노래한다.

해와 달과 어깨동무
우주를 끼어 차고
모두와 하나가 된다네
모든 것 혼잡한 대로 그냥 두고
낮은 자리 높은 자리 관심 없다네
사람들 빠릇빠릇
성인은 어리숙
만년 세월 온갖 일
오로지 완벽의 순박함 그대로
모든 것들이 모두 그러함 그대로
그리하여 서로가 감싸안는다네
<장자 - 제물론> 중에서

노인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도 한 곡 빼어들었다.

홀로 그윽한 죽림에 앉아
거문고를 타다가 길게 휘파람도 분다네
아무도 모르는 깊은 숲
밝은 달이 찾아와 나를 비춘다네
왕유의 <죽리관>

“자네, 거문고도 타시는가?”노인이 반색하며 묻는다.
“예, 조금 만지작거리는 정도입니다.”
“호오, 그래? 그럼 내일 거문고 안고 한 번 더 오시는 게 어떠신가? 내가 산 중에서 담근 맛좋은 머루주 한 동이 준비함세.”
“허어, 벌써 입에 침이 도는군요!”

노인을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 말간 산달이 떠서 소나무 사이로 조용히 내가 돌아가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아, 오래된 옛 숲에 사는 이 즐거움이여!

뾰족한 대책이 없는 고단한 삶에 지쳤을 때 우리의 옛 숲으로 돌아가자. 한동안 조용히 그 숲에 기대어 살자. 숲이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를 이끌어 가도록, 그 숲이 손잡아 이끄는 대로 우리를 맡기어 살자. 마음에 들려주는 음성을 따라 가라 하면 가고 앉으라 하면 앉고 거기서 쉬어라 하면 쉬자. 그러다 보면 내가 숲이 되고 내가 물이 되고 내가 구름이 되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깊은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누군가 그대에게 세상의 이치를 물을 때, 궁하고 통하는 세상의 이치를 물을 때, 그때 산중의 은자처럼, 포구의 어부처럼 유유자적 여유롭게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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