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협력선교’의 출발 에덴동산의 창조섭리요, 하나님 자신의 존재양식이요, 우리의 존재 즉, 몸의 구성 원리는 바로 연합이다. 협력과 동역은 지난 십여 년 이상 세계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택하신 다음 열 두 제 자들, 몇몇 여인들과 함께 전도하셨고 제자들을 전도인, 선교사로 파송하실 때 둘씩 짝을 지어 협력하며 전도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 역시 항상 누군가와 동역 하며 선교했다. 1885년 부활절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먼저 상륙하려고 하지 않고 두 번째로 상륙하려고 서로 다투었다고 한다. 1등만 기억하려는 세상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는 연합하고 협력할 때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섬기기 위함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막 10:45).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물질과 프로젝트 위주의 선교를 지양하고 현지인들과 같이 되고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현지인들을 섬기는‘성육신적’삶의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항상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과 자기의 종 된 것을 전파했다고 고백했다(고후 4:5). 알마타의 S선교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J선 교사는 그러한 섬김의 사역을 해 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입을 통한 복음 선포와 함께 손과 발을 통한 실천적 선교에 힘써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 안에서도‘테레사들’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협력을 위해 요구되는 변화들 선교에 있어 협력과 동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자세가 변해야 한다. 세계를 정복대상으로 볼 때 세계선교에 있어 협력과 동역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세계화는 세계를 무력으로 하거나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복대상으로 보는 정책이나 자세가 아니다. 세계를 섬김의 대상이요,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화 시대의 세계선교는 특히 북한이나 모슬렘 등을 정복대상이 아닌 섬기며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만약 북한이나 모슬렘 등을 정복 대상으로 본다면 그것은 선교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십자군 전쟁이다.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사야, 요나 등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폭 넓은 눈과 마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시는 말씀이 이사야 19장 23-25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이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높고 넓은 생각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는 열정이 뜨겁다고 할지라도 북한을 미워하고 일본을 질투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무시하는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동북아시아 선교의 협력은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북한,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연접하고 있는 곳에서 이사야 19장 23-25절을 읽으며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느껴보려고 애를 쓴 일이 있다. 예전에 필자는 그들을 품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북한을, 일본을, 중국을, 러시아를 품고 기도한다. 선교적 전망이 어둡고 선교적 열매가 보이지 않는 모슬렘권선교의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그들을 품고 오늘도 기도한다.
둘째, 선교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자세가 변해야 한다. 선교지는 문화, 가치관, 생활습관이 많이 다르다. 부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지닐 수도 있다. 마음에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현지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지배하려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저들을 섬김의 대상으로보다는 정복의 대상으로, 하나의 노획물과 전리품으로 볼 수도 있다. 구약의 예들을 내세우며 그와 같은 자세를 정당화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선교에 있어서 협력과 동역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필자는 선교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대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품은 한 선교사의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은 일이 있다. 그는 중앙아시아 알마타에서 사역하던 S선교사이다. 그는다투지 않고 현지인들을 품고 섬기는 자세로 선교에 임했다. 때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속이 상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한번은 자기가 그렇게도 신임하던 고려인 신자 한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떠났다. 그 고려인 신자는 교회를 떠나갈 때 S선교사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을 했다. 그가 떠난 후 고려인 교인 50여 명이 모두 함께 다른 교회로 갔다. S선교사는 너무나 속이 상해서 산에 올라가 고함을 지르며 울면서도 화를 내거나 전혀 비방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 고려인 신자가 갔던 다른 교회의 한인목사의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고려인 신자는 다시 S선교사에게로 돌아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S선교사는 그를 향해 자기에게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다고 만류하며 그를 따뜻하게 다시 맞아 들였다. 50여 명의 신자들도 다시 돌아왔다. S선교사는 또한 현지인들과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사역에 임했다. S선교사는《아바이의 잠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카자흐어와 한국어를 병행하여《아바이의 잠언》을 출판했다. 한인선교사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중에 S선교사는 카자흐스탄 국무총리 의 감사증서를 받았다. 그 증서는 비자발급을 비롯한 모든 일에 신용증서 역할을 했다.
예수님이 일곱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귀하게 여겼고 남편 다섯을 두었던 수가성 여인을 귀하게 보셨던 것처럼 우리도 선교지에서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한다.
셋째, 동역자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세계선교에 있어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맡겨진 사역만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함께 하고 있는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며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선교사역에 지나친 열정을 다 쏟아 붓다가 그만 동역자들을 귀하게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나에게 동역자들을 붙여 주시고 현지의 사역자들을 일으켜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혼자서 사역을 한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동역자들과 함께 일했고 그가 떠날 때는 현지 사역자들에게 그 사역을 이양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예수님의 방침이다.
나는 선교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며 따듯하게 바라보면서 협력선교를 이루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로 블라디보스토크를 꼽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J 선교사가 주도적으로 사역하는 신학교가 있다. 현지인을 양성하는 이 신학교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역하는 다양한 교단 소속의 한인선교사들이 아름다운 협력을 이루고 있다. 구세군을 비롯한 다양한 교단과 단체에 속한 여러 선교사들이 신학교 사역을 함께 협력하며 각 선교사의 사역을 서로 격려하며 돕고 있다. 어느 선교사가 교회당을 건축할 때 다른 교단에 속한 선교사들이 교회당 건축헌금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구소련 각지에서 사역하는 한인선교사들은 이제 현지인들을 많이 양육하여 내일의 사역자들로 키우고 있으며 그들과 아름다운 동역을 시작하고 있다. 모스크바 미르교회의 현지인사역자들은 기도, 말씀, 전도에 전심전력하며 담임목사인 H선교사와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현지인사역자들을 양성하여 현지사역을 주도하도록 격려하여야 할 때이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현지 사역자들을 현지 교회의 지도자들로 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선교사들은 선교의 동역자들은 물론 현지인동역자들을 귀하게 보며 격려하는 따듯한 마음과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할 때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경륜을 막을 수도 있다. 동역자들을 귀하게 보며 격려하는 너그러운 마음과 눈을 가질 때 선교의 협력과 동역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이다.
넷째,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협력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선교사 자신이다. 그것은 선교에 있어서 뿐 아니라 목회와 모든 사역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기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와 반대로 자기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협력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국교회 분열의 원인을“한국교회가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우상화한 것이다.”라고 어느 원로목회자가 진단한 적이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것 같다. 대형교회의 목회자일수록 더욱 더 그런 경향을 보인다. 이런 한국교회의 모습이 선교지에서도 종종 보이곤 한다. 결국 협력이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또한 역사적 안목과 유기적 연계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 하며 협력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초문화적 경험과 민주주의적 삶의 경험이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라 하겠다. 자기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바라보는 겸허한 태도와 자기 자신을 구속사의 한 점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왜곡하며 교회분열을 조장한 고린도교회를 책망하면서 목회자 또는 선교사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변화를 촉구했다. 먼저 자기 자신을 극도로 낮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린도교회가 각각 자기의 지도자들을높이며그들을추종하려고했을때바울은이렇게그들을질책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며 바울은 무슨 물건이뇨?”바울은 일부러 멸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중성명사를 사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아볼로나 바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조금 내려가서는 자기를 가리켜‘만물의 찌끼’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자기 자신을 바울처럼 극도로 비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협력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낮게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사도 바울은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여기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한 점을 차지하는 중요한 도구와 그릇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체의 비유를 즐겨 사용하면서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간다고 말했다.
다섯째,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자세에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는 10년 전(1991년) 일본 시오바라에서 개최된 제3회 일본전도대회에서 사역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협력과 동역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곳에 모였던 1200여 명의 일본 지도자들에게한말을여기옮기면다음과같다.“ 오늘밤우리들은‘인간적’또는‘문화적’이야기를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하나님’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야기와 그분의 명령을 듣기 원합니다. 그날 밤 나의 호소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왔다. 일본을 미워하던 나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이야기를 함께 듣자고 호소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눈물과 화해와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셨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복음주의 교회들과 한국복음주의 교회들 간의 협력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나는 자주 말한다. 우리가 잘났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옳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선교와 목회에 있어서 협력과 동역을 이루어야 할 근거와 이유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23).
선각자 열 명이 나타날 수 있다면 선교에 있어서 협력은 가능한가? 아니, 한국교회의 협력과 연합은 가능한가? 대부분의 언론인들이나 교계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협력이나 연합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진단한다. 정진경 목사님은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일치와 연합을 저해하는 두 가지 요소를 지적했다. 첫째는 지도자들의 사욕이요 둘째는 개교회주의 또는 집단주의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 일치와 연합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성령이 역사 해야 하고 선각자들이 희생적으로, 실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 다른 지도자들을 자기보다 높이며 겸손해질 때 진정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일치와 협력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부언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선각자 열 명이 나타날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협력과 연합은 조금씩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의 협력과 연합의 가능성을 어둡게 보면서도 선교에 있어서 협력의 가능성은 조금 더 밝게 보고 싶다. 윗물이 흐려도 아랫물이 맑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비유가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순수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보다는 더 쉽게 협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그네들이 고향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초문화적 경험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좁은 한반도 안에 앉아서 영남이 어떻고 호남이 어떻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협력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오직 기도의 무릎을 꿇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맡기신 일을 이루어가는 선교사들이 교회나 교단이라는 조직체에 매어 있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다. 고난과 박해와 역경을 몸으로 체험하는 사람들이 고난과 박해와 역경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더 쉽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협력을 이룰 수 있다. 너무 이상적인 말을 했는지 모른다. 아니다. 지금 선교지 곳곳에서 선교의 협력이 이전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선교의 협력이 보다 잘 이루어지기 를 바란다.
12년 전에 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싶다. 지금, 한국교회와 선교현장에‘연합과 협력’의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연합과 협력’그리고 ‘화해와 평화’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고 비전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금년‘새해의 소원과 기도’다섯 가지를 정했는데 마지막 소원과 기도가‘화해와 평화’이다. 부족한 사람의 새해의 소원과 기도제목을 소개하므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첫째로, 회개와 참회의 은혜를 받으면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버림과 성결의 은혜를 받으면서, 버림과 성결을 몸에 지니면서 살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받으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넷째로, 섬김과 봉사의 은혜를 받으면서, 섬김과 봉사를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다섯째로, 화해와 평화의 은혜를 받으면서, 화해와 평화를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부끄러운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기를 소원하며 간구합니다!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북한 동포를 불쌍히 여기시고 중국과 세계의 모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간구합니다!
필자 주 원고청탁을 받은 후 우연히 12년 전인 2001년『중국을주께로』9·10월호에 기고 한 글을 발견하고 아주 반가웠다. 그 글의 제목은‘누가 선교할 수 있을까?’였다. 나는 그때‘선교는 사람이다’라는 명제 아래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자질과 특성을 지닌 사람이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나 만나서 친해질 수 있는 사람 둘째, 누구나 만나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셋째,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람 넷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겸손한 사람 다섯째, 문화적 민감성, 수용성, 적응성을 지닌 사람 여섯째, 현지인들을 인정하고 높이고 세워줄 수 있는 사람 일곱째, 나그네 의식을 가진 욕심이 없는 사람” 12년 전에 선교할 수 있는 사람의 자질과 특성에 대해 아주 중요하고 올바른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이어서‘연합과 협력의 선교’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다.
협력과 동역은 현대 선교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역사적 안목과 초문화적 경험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선교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다. 나는 선교에있어서 협력과 동역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다음과 같은 사역에 참여했고 다음과 같은 글들을 발표했다. 1) 한국동반자선교협의회 창립(1988. 1. 18) 초대총무 2) (미주)한인세계선교대회 개최(1988. 7. 25-30, 시카고) 준비위원 3)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창립(1990. 6. 25) 창립회원 4) Cooperation and Partnership in Missions (선교의 협력과 파트너십) AMC (아시아선교대회, 1990. 8. 27-31) 주제 강연 5) Principles of Two-Third World Mission Partnership Consultation on Partnership for World Mission (세계복음화를 위한 파트너십 협의회, 1991. 5. 9-11, 시카고) 주제 강연 6) “일본교회와의 사역의 협력”, 제3회 일본전도대회 (1991. 6. 4-6, 시오바 라) 주제 강연 7) “한국교회와 연합운동”「한국교회 쟁점진단」(1998, 규장)
김명혁 | 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