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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5 통권 136호     필자 : 꾸오이쥔(郭易君)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중국의 도시 가정교회가 당면한 도전

디킨스의 말과 같이 우리는 지금 가장 좋은 시대이자, 가장 나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세계화 과정이 점점 빨라짐에 따라 새로운 도시 가정교회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동시에 도시의 일부 가정교회들은 점차 활기를 잃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는 분열되기도 한다. 때문에 도시의 가정교회가 당면한 도전들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의지하여 이 도전에 맞서나가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역자의 사명일 것이다.

중국의 도시 가정교회에서의 강대상이란 가정교회 사역자가 주일 및 기타 시간에 말씀을 증거하고 나누는 곳을 가리킨다. 대사전《사해(辭海)》의 해석에 따르면 ‘도전’은 ‘상대방을 자극하여 그로 하여금 응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도전이란 교회 강대상 내외부의 문제나 위기를 가리킨다. 필자는 현재 중국교회가 당면한 도전들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내부적 도전
말씀은 교회건설의 기초가 되며 강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룩한 곳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성경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동시에 삶으로 자신이 전한 바를 증명해내야 한다. 도시교회는 20여 년 간 발전해 오면서 설교자의 소양과 설교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1. 사역자 과부하의 심각한 상황
도시 신흥교회 신자 중 1세대 기독교인과 청년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실지적인 목양 수요가 커진 반면 사역자의 비율은 이들에 비해 낮고, 잘 훈련된 사역자가 부족한 실정으로 일반 형제자매가 평신도 사역자로서 설교를 도맡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것이 사역자와 성도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각한 수급 불균형 문제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매일 수십 통의 전화, 개인 상담, 심방, 설교, 전도 사역 등으로 지쳐버리고 이러한 과부하 현상은 신체적 소진과 영적 소진으로 나타나게 된다.

첫 번째는, 대부분 신체적 소진 상태에 놓여있다. 추수할 곳은 너무나 넓고, 감당해야 할 사역은 너무나 많다. 또한 집회 장소들이 분산되어 있어서 동분서주하게 된다. 또한 운동 시간 부족으로 체력이 저하되며, 정치적 환경과 보안 문제로 사역자는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 외에 호적제도와 가정교회의 불합법성으로 인해 가정교회 사역자는 의료보험이나 사회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많은 일꾼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 사역자들의 헌신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이들이 나날이 초췌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두 번째는, 심각한 영적 소진 상태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영적 전쟁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 계열의 기도원이나 수양원, 신학원 등과 같은 인프라와 보호막이 되어주는 영적 멘토가 너무나 부족하다. 다시 말해 전쟁터에서 병사가 치료, 훈련, 보급을 받고 재정비할 수 있는 곳이 부재인 것과 같다. 게다가 안식년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많은 목자들은 영적인 인풋 없이 아웃풋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영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중보 기도와 후원이 절실하다.

2. 사역자의 가정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위기
아담과 하와 때부터 지금까지, 가정은 오래된 전쟁터이며 내부에서 가장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요새였다. 겉보기에는 사역이 잘 돌아가고 있다 해도, 사역자의 가정이 공격을 받으면 이 모든 사역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국의 도시교회는 발전 초기의 유년기나 소년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사역자 가정에 특별한 보호와 관심을 줌으로써 사단이 틈 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현재 도시교회 사역자의 가정에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위기가 존재한다. 

첫째, 가장 고독한 역할인 사모(師母)이다. 문화적으로 남존여비 사상과 교회의 잘못된 사모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사모를 헬퍼로 여기거나 심지어 사모의 역할을 간과해 버린다. 그러나 사모가 감당해야 할 사역은 너무나도 많다.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남편을 섬겨야 하고, 또한 교회의 미혼 혹은 기혼 자매들을 돕고 상담하는 일을 한다. 마치 선지자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말한 것처럼 많은 사모들이 묵묵히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다 해도 하나님께서 사모에게 주신 직분은 ‘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사모에 대한 장기적인 억압과 냉대는 사모를 우울하게 만들고 남편의 사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사역자 스스로 아내를 잘 섬기고 존중해야 하며, 교회 차원에서도 사모를 외롭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모는 사역자와 함께 덤으로 오는 존재가 아닌, 모두가 존중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잠재적 위험이 있는 자녀 문제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경건한 사역자의 자녀라고 해서 반드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니다. 의인의 후손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인이 아니며, 단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알게 될 기회가 더 많을 뿐이다. 자녀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예를 들어, 엘리의 두 아들(삼상 2:12-26),사무엘의 두 아들(삼상 8:1-3)이 있다. 먼저 사역자의 자녀는 교회 안에서 주목을 받는다는 점에서 시험에 들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사역자의 자녀다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역자 스스로가 가정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본이 되지 못할 때 자녀들은 쉽게 시험에 들고 판단하게 된다. 또한, 사역자의 자녀는 종종 부모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대부분 사역자는 막중한 교회사역에 치여 자녀와 함께 있을 시간을 갖지 못해 자녀에게 감정의 빚을 지게 된다. 필자는 예전에 한 사역자의 자녀에게 커서 사역자가 되고 싶은지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그렇게 고생한 걸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한 아이의 대답이 반드시 대표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사역자들이 자녀교육에 있어서 자녀와의 약속을 지키고, 자녀를 사랑하며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하며 스스로 본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외부적 도전
도시의 가정교회는 내부적인 도전뿐만 아니라 심각한 외부적인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뉴에이지 운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켰다. 세속주의와 다원주의가 뒤따르고 번영신학과 이단들도 거들었다. 전통문화와 인기영합주의도 합세했다. 교회의 강대상은 성도의 경건생활에 있어서 거룩을 지키며 이러한 세상적인 흐름과 도전에도 용감히 응할 것을 가르치고 이것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1. 이단이 진리를 혼란케 하고 교회를 파괴함
최근 몇 년, 도시교회 가운데 이단들의 활동이 만연해 있다. 대량의 가라지가 자라나 많은 영혼들을 빼앗아갔다. 이단은 크게 세 가지 큰 특징을 나타내며 발전했다. 첫째, 시장과 긴밀히 연합한다. 예를 들어, 헬스클럽에 들어가 있는 요가나 ‘통일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통일교가 있다. 둘째, 고학력자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한다는 점이다. ‘예수청년단’은 중국의 유명한 다섯 개의 대학을 겨냥하여 전도한다. 셋째, 이단에 넘어간 ‘해외유학생’들이 중국에 와서 무리를 이루게 된다. 

현재 중국의 이단은 주로 세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첫째,구미(歐美)에서 건너온 이단이다. 현재, 미국에서 나온 이단으로는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교’로써 지식층과 중산층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미 지역에서 이미 이단으로 판명이 난 두 이단은 중국 전통교회에 침투해 교인들을 빼앗거나 포교하는 방식으로 수를 늘려간다. 캐나다에서 건너온 이단으로는 토론토블레싱(토론토 축복)이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캐나다에서 중국에 건너온 이단 가운데 극단적인 은사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미래의 재림,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극도로 강조하며, 환상을 보고 방언기도를 부추기며 아무데서나  안수를 준다. 이들은 가정교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둘째, 중국 내에서 자생한 이단이다. 중국에서 자생한 이단으로는 ‘동방번개’, ‘제자회/문도회’, ‘삼반하인(삼반복인)’, ‘영영교’, ‘냉수교’, ‘호함파’, ‘세움/부름 받은 왕( 피립왕)’ 등이 있다. 이러한 이단들이 농촌교회와 도시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지만 지식층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적다. 이단에 공격을 받았던 교회는 장기간의 목양과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다. 정저우 북부에 위치한 한 삼자교회의 경우 구역모임이 이단 ‘동방번개’로 인한 피해를 입었는데 교회 실세에게 뇌물을 주고, 여자나 돈으로 리더를 유혹하며, 따르지 않는 자는 겁을 주거나 협박하는 등 강온양책을 병행하여 목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이단은 모든 선의 원수이며 멸망의 동족이기에 강대상에 설 때 더욱 방비하여 이단의 엉터리 가르침을 막아야 한다.

셋째, 한국에서 온 이단도 성행하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은 중국교회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너온 이단들이 중국교회에 미친 악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대도시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이단은 ‘예수청년회’, ‘마가의 다락방’, ‘만민중앙교회’,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 ‘박태선의 천부교’ 등이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이단으로 판명 난 후 중국으로 가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돈을 빼앗는 등 극악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2. ‘열심당‘ 과 ‘성공학’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어떠한 찌꺼기도 남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과 같아서 어떠한 어둠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금과 같아서 어떠한 불순물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길과 발람의 길은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길과 출세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현재 가정교회 강대상은 ‘열심당’과 ‘성공학’이라는 두 개의 적 앞에 놓여있다.

첫째, ‘민주자유여신’을 경계하라. 시몬과 다대오는 모두 열심당원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 그들은 넓은 길 가기를 포기했다. 십자가의 길은 로마 정부의 길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의 길은 희생의 길이었고, 자기를 버리는 길이었고, 사람을 구하는 길이었다. 현재 도시 가정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역사적 원으로 인해 23년 전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삶의 핵심적인 사건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핵심 사건은 ‘십자가 사건’이어야 한다. 위앤(?) 목사가 한 “땅을 잃고 하늘을 얻었다.”라는 말은 정말 옳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이상을 ‘민주’나 ‘자유’로 삼는 것은 크게 비난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신(神)’이 아니며 세상의 학문이고 정치적 개념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개념이라 해도 모두 사상누각일 뿐이며, 거짓의 극치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 이것은 중국 가정교회가 뚫고 나가야 할 안개이다. 교회는 ‘열심당’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며, 아무리 큰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봐야 한다.

둘째,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케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공학’은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 연구를 통하여, 성공하는 법칙을 배워 공명과 이익을 얻게 한다는 학설이다. 기독교 신앙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공은 신앙의 부산물일 수 있으나 신앙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성공학이 무서운 것은 이생에서의 부를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데 있다.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라고 한 예레미야의 말과 같다. 국내의 다단계조직은 ‘성공학’의 전달자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독교의 ‘간증’, ‘설교’, ‘찬송’을 모두 배운다. 단지 그리스도와 돈의 위치를 바꾸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르며 재신(맘몬)을 섬길 뿐이다. 이는 결국 사람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끈다. 교회 내의 ‘어떻게 성공하는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어떻게 지도자가 되는가’ 등과 유사한 가르침이나 서적을 경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하에 성공학의 방법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과 교회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이단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3. ‘소비주의’와 ‘성개방’ 조류를 경계하라
어렵고 불합리한 이 세대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소비주의’와 ‘성개방’으로 표출된다. 70년대의 무신론교육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허하게 했고, 사람들은 산송장이 되어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다. 서양의 패스트푸드문화는 ‘값싼 복음(본회퍼의 의견에 따르면 소위 값싼 복음은 바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을 선포하지 않는 복음이다. 쉽게 남에게 영생을 승낙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생명의 대속을 선포하지 않는 것은 서구복음운동의 소극적인 영향중의 하나이다.)과 뒤섞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슈퍼마켓과 같다. 헌금 몇 푼이면 몇 시간 즐길 수 있다. 또 어떤 교회들은 클럽과 같다. ‘거룩’은 추구하지 않고 도둑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첫째, 교회의 ‘소비주의’를 경계하라. 서방의 교회 모델이 중국 가정교회에 뿌리내리면서 몇몇 교회들은 목사 초빙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제도 때문에 일부 목사들은 설교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자는 등의 설교를 겁내기 시작했다. 좋은 목자가 아니라 ‘도우미’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설교가 ‘일종의 소비’라면, 그 목사는 설교에 출연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많은 열린교회들과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교회의 교인들처럼 설교나 교회규율이 자신에게 손해라고 여겨지면 그 교회를 떠나 더 편한 교회를 선택한다.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만약 몇몇 크리스천들처럼 교회를 슈퍼마켓 고르듯이 한다면 베드로가 책망한 마술사 시몬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강대상은 소비하려고 있는 곳이 아니며, 장로나 집사의 것도 아니다. 성도의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강대상에 선 자는 하나님을 대신해 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딤후 2:15).

둘째, 교회의 ‘음란’을 경계하라. 중앙기관 간행물《구시≫(求是)의 자매지《시아오캉≫(小康)이 2012년 4월 7일에 개재한 글 “중국인의 성건강에 대한 감상(中國人性健康感受)” 에 따르면 혼전 성관계를 가진 중국인이 71.4%에 달한다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주님을 믿기 전에 혼전 성관계를 경험했거나, 오랜 기간 음란물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한 후에도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80, 90년대생 성도들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인터넷의 보급과 아이폰 등의 통신 수단의 유행으로 인해 눈으로 범하는 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쇠사슬과 지옥은 함께 있다’고 했다. 지금 강대상의 거룩이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교회가 거룩을 설교하지 않고, 규율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도둑의 소굴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공의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거룩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다(벧후 1:16)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뜻을 정하여 거룩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교회가 이 문제를 대할 때에는 결코 숨기거나 덮으려 하면 안 된다. 사람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미움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장 좋은 시대이기도 하고 가장 나쁜 시대이기도 하다.” 어떤 시대도 지금처럼 쉽게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시대, 쉽게 사단을 따를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인간은 정보화, 세계화, 현대화의 흐름에 휩쓸리어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생명의 길은 물길을 거슬러 전진하는 길이고, 육체와 세상, 사단과 싸우는 길이다. 강대상에 서는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는 장군과 같다. 오직 십자가 순수한 복음만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다.




출처 | ≪敎會≫ 第35期
번역 | 서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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