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광쉰 주교는 향년 98세로 지난 11월 22일 난징(南京)에서 소천하였다. 1915년 출생한 정 주교는 모태신앙으로 외할아버지가 영국성공회 신부, 어머니가 독실한 신자였다. 이로 인해 생후 4개월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중국의 공산화로 1952년에 없어진 상하이성요한대학을 1937년에 졸업했다. 이어 미국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연합신학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48년부터 1951년까지는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기독교학생동맹의 간사를 맡기도 했다.
1951년 귀국한 그는 2년 후 난징의 진링(金陵)연합신학교 총장을 맡았고 1955년에는 영국성공회로부터 중국성공회의 저장(浙江)교구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80년부터는 중국기독교협회 회장을 맡은 다음 중국성공회의 해산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 중국 특색의 기독교인 이른바 삼자교회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그는 지하교회의 신도들과 서방 세계 기독교계 인사들로부터 이단, 공산당에 협조하는 무늬만 기독교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기독교계에서는 정통 기독교 지도자로 승승장구했다. 부총리 급에 해당하는 정협(중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4기 연속 맡았으며, 2006년 8월에 열린 제8차 세계종교평화회의에서 명예주석에 추대되기도 하였다. 중국 삼자기독교계 지도자로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며, 그동안 수고하고 애쓴 딩광쉰 주교의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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