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하는 일에는 모든 안팎의 이해관계를 다 고려하고, 그 후에 실행할 때는 모든 안팎의 이해관계를 다 끊어내라 - 채근담 -
토론의 힘, 토론의 짐 토론을 힘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토론을 짐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토론이 힘이든 짐이든 이미 우리 생활에서 토론은 일상 깊숙이 진행 중이고, 그 유익과 피곤함은 각자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달려있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위한 TV토론이 한참 진행 중이다. 물론 서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경청의 태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들이다. 이런 방송토론들은 국정의 업그레이드와 정치진보를 위해 의견을 좁혀나가기 보다는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이 난무하다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TV토론 사회자는 ‘오늘날 토론문화에는 소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탕만이 남아있다’며 일갈한 적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소통의 단절로 인한 불통의 모습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모든 소통의 결과물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상쇄시키고 있다. 서로가 극단으로 치닫는 형국에서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바빠 중간에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물론 모든 쟁점은 두부 자르듯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이등분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오히려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을 가려내어 적절히 섞은 회색인이 되는 방법이 있음을 인정하고, 내 것으로 상대를 덮을 것이 아니라 상대 것 중에 내가 취할 것이 없는가를 살피는 것이 토론의 목적이자 지혜이다. 관점의 갈등과 대립은 어느 사회,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해결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처음은 어렵겠지만 서로가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먼저 한 발 물러서서 상대의 관점에서 유익을 얻고자 자세를 취한다면 토론과 소통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토론 문화의 새장 ‘멍크 디베이트’ 피터 멍크(Peter Munk·85)는 캐나다의 금광 재벌이다. 그가 세운 캐나다 오리아 재단이 지난 2008년부터 연2회에 걸쳐 글로벌 토론회를 주최해오고 있다. 이름 하여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이다. 토론의 방식은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세계적인 이슈에 대해 찬반양론의 입장을 토론 배틀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매회 마다 세계최정상급 논객들을 섭외하여 출연시키고 있다. 토론의 승패는 2시간동안 진행되는 토론 후에 청중에게 주제와 관련한 0X형식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이 토론을 방청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수의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한 장당 25-90달러에 달하는 표는 늘 일찌감치 매진되고 있다. 아울러 이 토론회는 영국의 공영 BBC와 미국 방송사에서도 생중계할 정도로 해마다 국제적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2011년 6월 1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7차 ‘디베이트’가 열렸다. 토론의 주제는 ‘21세기는 중국의 것일까?’였다. 이날의 토론자로는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과 중국 칭화대학 교수 데이비드 리가 한 팀을 이루어 ‘21세기는 중국의 것일까’의 주제에 찬성하는 논지를 폈고, 상대 쪽 패널에는 전 미국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와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가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렇게 2시간여 진행된 모든 토론의 녹취내용과 각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데이비드 리, 헨리 키신저)의 인터뷰를 모두 한 권의 책으로 담아 출판된 책이 바로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라는 책이다. 한울아카데미에서 출간된 본서는 기존의 서적들이 주로 문어체 중심의 눈읽기를 강조한 것에 반해, 4인의 토론내용을 그대로 옮긴 구어체의 표현양식이기에 귀로 읽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21세기는 중국의 것일까? 그럼 이제부터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네 사람의 논지와 반론을 살펴보자. 먼저 역사학자 퍼거슨은 지난 인류역사 중에 19세기와 20세기를 제외하면 “스무 번의 세기 가운데 열여덟 번의 세기에서 중국은 2위와 차이를 보이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잠시 최근의 2백 년 동안 주춤거렸을 뿐 다시 중국은 21세기에 과거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27쪽) 그의 논지의 핵심은 중국의 잘함보다는 미국의 못함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미국의 경제력의 추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빠르게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도덕적 추락임을 지적한다. 즉 중국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며, 완만한 성장을 이루어도 미국의 쇠락으로 헤게모니를 쥘 수 있다는 논지이다.
이에 대한 상대팀 자카리아의 반박은 세 가지 요인(경제적, 정치적, 지정학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경제적 요인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완만함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꺾일 것이며 그 후에는 중국 경제시스템에 내재해있는 거대한 비효율적 요소가 눈덩이처럼 커지며 경제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34쪽) 다음으로 중국은 경제 문제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도 큰 규모의 정치적 불안정이 나타남으로 외치(外治) 이전에 내치(內治)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상황임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었을 때 그들의 기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방침은 아직 중국이 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자국의 독식적인 부국강병의 모습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경쟁적 주변국들(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의해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하는데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36쪽)
4인의 토론자 중 유일한 중국계인 데이비드 리 칭화대학 교수는 21세기는 중국의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인 에너지, 사회-경제적 대안적 모형, 국제관계로 영향력을 주장한다. 또한 중국은 많은 나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계속해서 변화해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 변화의 지속은 중국 앞에 놓인 산더미만한 도전 앞에서도 새로운 실험적 대안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좋은 선례를 남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중국정치 제도의 선진적 변형을 말한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선택되는 방법이나 공적 결정들이 이뤄지는 방식은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더 세련되어졌습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오늘날의 공공 정책 결정자들이 인민의 의견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76쪽)
마지막 키신저는 21세기에 중국이 유력한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달리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중국의 지정학적 문제와 중국 내부의 문제로 인해 다른 강대국을 압도하는 유일한 패권국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전망하며 이렇게 토론의 방향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만약 저에게 우리의 논제를 재구성할 권한이 부여된다면 ‘21세기는 중국의 것일까’ 대신 ‘21세기에 중국이 좀 더 보편적인 국제 체제에 들어오도록 우리가 만들 수 있느냐’가 중심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5쪽) 아울러 키신저는 다음 10년 동안 경제발전에 걸맞은 정치 제도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씨름할 것임을 말하며, 역시 같은 편이었던 자카리아의 주장처럼 내부의 거대한 변화의 요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80쪽) 그런 전망가운데 헨리 키신저는 이미 자신의 최근 저서인 ‘중국이야기(On China)’ 에서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란 개념을 제시한 적 있다. 즉, 미중 관계는 제로섬 게임도, 파트너십도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진화해가는 관계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마지막 발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리의 이슈는 중국이 커질 것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중국은 분명히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슈는 두 가지입니다. 중국이 증대하는 능력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가 그 하나이고, 미국과 동맹국들이 새로운 국제 환경에 기꺼이 적응할 것이냐가 다른 하나입니다. 중국이 21세기를 지배할 것으로 보아야 할 이유를 저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21세기에 중국은 더 큰 역할을 하겠지요.” (95쪽)
이러한 네 명의 치열한 논쟁 후에 청중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토론이 시작되기 전의 청중 투표에서는 중국의 패권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각각 39%와 40%으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1%였다. 그러나 토론 후에는 ‘모르겠다’는 청중은 사라지고, 38%가 찬성표를 던졌고, 62%가 반대표를 던졌다. 자국의 문제 해결에 바쁜 중국은 21세기의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헨리 키신저와 자카리아 조가 이긴 것이다. 당시에 토론의 사회를 보았던 그리피스(TV 진행자이자 칼럼니스트)는 이번 토론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며 마무리 멘트를 올렸다. “이번 시즌에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치열한 논전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네 분 중에 누구라도 연단에 올라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강연하시는 것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디베이트에서처럼 지성과 지성이 훌륭한 언변으로써 자신이 믿는바를 제시하며 논전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습니다” (104쪽)
토론의 논제를 이끌며, 상대방의 주장을 여유있게 반박한 이날의 MVP는 단연 관록의 헨리 키신저이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했다. 중국은 경제적 대변화에 수반되는 정치적 적응이라는 대난제를 해결하는데 온 정신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없고, 오히려 다극체제하에서의 권력분점에 협력하는 것이 현명함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상대편의 주장을 듣고 ‘당신의 논지는 우리와 같소, 의자를 가지고 이쪽으로 건너오시오’라는 느긋함도 보여주었다.
다시 논쟁에서 대화로 책 전체가 구어체로 쓰였기에 읽기에 너무 수월했고, 판형도 아담하고, 내용도 길지 않아 이해에서 부담이 적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논지가 분명히 드러나기에 토론이나 대담형식으로 쓰인 책읽기의 유익함을 맛보았다. 종종 저녁 늦은 시간대의 토론을 챙겨 볼 때가 있다. 챙겨보는 이유는 세 가지 유익 때문이다. 첫째는 관련주제의 상반된 주장의 정확한 이해, 두 번째는 촌철살인들의 재미난 표현법들 그리고 마지막은 토론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진행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서를 통해서도 이 세 가지의 유익을 그대로 누릴 수 있었다. 청중들은 중국의 패권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에 더 많은 표를 주었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반대진영에 표를 던질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패권국가의 면모를 갖추어가면서도 패권주의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패권국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헨리 키신저의 표현대로 논지의 주제를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중국은 21세기의 패권국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중국은 21세기의 어떠한 패권국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로 이슈를 바꾸어야 한다. 국내문제가 거대한 난제일 수도 있지만, 국내의 정치적 성숙의 욕구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의 맏형 역할의 추동력으로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근담의 한 경구가 생각난다. ‘결정하는 일에는 모든 안팎의 이해관계를 다 고려하고, 그 후에 실행할 때는 모든 안팎의 이해관계를 다 끊어내라’ 이번 주제의 토론이 결정하는 일과 실행하는 일에 있어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분명한 것은 승자의 논지는 한쪽으로 많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 멍크 디베이트는 끝이 났지만 진짜 실행을 위한 토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중국에 한 표를 던지며 중국 특유의 부드러운 문화 패권국가로서의 분전(奮戰)을 기대한다.
이관 | 前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