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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통권 135호     필자 : 김광성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시진핑 시대와 중국교회 전망
시진핑 시대 이후의 중국 종교 정책 전망

후진타오(胡錦濤)를 위시한 4세대 지도부의 10년 집권이 마무리되고 시진핑(習近平)을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하는 중국 5세대 최고지도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중국의 권력이양은 다소 복잡한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전 세계가 중국 새 지도부를 주목하는 가운데 중국 내 8,200만 명의 공산당원 가운데 선발된 2,270명의 대표와 장쩌민 전 주석, 주룽지 전 총리 등 특별 초청된 중국의 정치원로 57명이 참석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2012년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에서 표결을 통해 276명(중앙위원 205명, 후보위원 171명)의 중앙위원과 중앙기율검사위원 130명을 선출했다. 전국대표대회가 끝난 후 중국공산당은 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1중전회로 간칭하며, 중앙위원 205명, 후보위원 171명, 중앙기율검사위원 130명으로 구성됨)를 열고 시진핑 총서기를 포함한 7명의 상무위원(최고 지도부)과 25명의 정치국 위원을 선출했다. 특히 시신핑, 리커창(李克强), 왕치산(王岐山), 류윈산(?云山), 장가오리(?高?), 장더장(?德江), 위정성(?正?) 등 7인으로 구성된 18기 정치국 상무위원은 중국의 정치제제에 따라 2013년 3월부터 국가주석과 국무원 총리, 전인대 상무위원장, 정협 주석 등 정부의 요직을 나누어 맡게 된다. 이로써 2013년 3월 개최될 전인대에서 출범할 5세대 중국 정부의 밑그림도 완성된 셈이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이날 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도 선출되었다. 당권과 군권을 동시에 장악한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권력자로서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시진핑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권력이양 구조
금번 중국공산당의 권력이양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예상했던 대로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고 차기 정부의 국무총리 예정자인 리커창이 7인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2013년 3월에 개최되는 체제가 완성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권력다툼으로 인한 큰 진통을 겪었다는 것이 중국의 권력이양 과정을 지켜본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중국의 정치구조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기반으로 한다. 마오쩌동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1세대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시대에는 최고 지도자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체제였다. 문화대혁명의 혼란이 끝난 후 1978년 덩샤오핑이 정치권력에 복귀한 이래 정치체제가 제도화되면서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1982년 제12차부터 5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왔다. 특히 혁명 1세대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 중국공산당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장쩌민의 제3세대가 덩샤오핑으로부터 이양 받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 등 주요 정치계파가 형성되었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국가권력의 파벌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당내 민주화가 부단히 진행되면서 중국공산당은 철저하게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당 지도부 선출과정에 민주추천 제도를 도입하고 지도부의 임용 연령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당내 민주화 정책은 오히려 계파간 균형유지를 위한 각 계파간의 권력투쟁을 보다 치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보가 철저하게 통제되는 중국이기에 시진핑의 제5세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18대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회가 9명에서 7명으로 축소되고, 17차 당 대회 직전까지 유력한 상위위원 후보였던 보시라이나 리위엔차오(李源潮)가 5년의 와신상담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마하고, 후진타오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리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한꺼번에 이양하는 등 계파 간 처절한 권력투쟁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마치 기업이사회처럼 서로의 지분을 가지고 각자의 영향력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일리가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재해석과 종교 정책의 관계
중국공산당이 새로운 권력체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계파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국가권력의 분배나 기득권의 확보 이외에도 공산당 일당독재의 근거가 되는 국가의 통치 이념에 대한 계파 간 충돌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필자는 장기간 중국의 종교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종교 정책은 중 국정부의 행정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중국공산당의 지도이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계 언론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부가 10년 만에 교체되는 중국공산당 제18자 전국대표대회(18대)를 앞두고 중국공산당이 정치개혁을 위해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동 사상을 당헌에서 삭제할 것이라고 관측하였다.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구조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나이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제제에서 서열로 본다면 중국공산당이 국가체제의 최고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당헌(章程)과 중국 헌법과의 관계 역시 공산당 당헌이 정치 이념 서열에서 우위에 있다. 당헌이 개정되면 이에 따라 중국 헌법이 개정되는 추세이다. 이는 중국의 입법, 사법, 행정의 근거가 중국공산당 당헌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공산당이 초법적인 권력을 가지고 국가 통치체제의 정점에 있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이 당이 제정한 국가통치방침을 근거로 제정되고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공산당의 행정 구조를 보면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와 중앙위원회가 최고 권력기관이다. 공산당 전당대회 격인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의 최고 의결기관일 뿐 아니라 국가의 최고 의결기관 역할도 한다.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중국공산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헌이 수정된다. 1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18차 당 대회에서는 관측과는 달리 당헌의 대폭적인 수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당의 지도이념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동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에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이 추가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중국공산당 당헌이 중국 정부의 향후 정책수립과 시행의 지침이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5세대 지도부는 일단 개혁보다는 체제안정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제5세대가 출범하면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중국 종교 정책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공산당 종교 정책의 변화역사
일반적으로 중국의 종교 정책은 정치지도자에 따라 변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오쩌동의 1세대, 덩샤오핑의 2세대, 장쩌민의 3세대, 후진타오의 4세대가 실시한 종교 정책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도 중국의 종교 정책에 대한 기존의 논문에서 이와 같은 견해에 동의하였다. 아울러 이를 근거로 중국의 종교 정책이 변화해온 역사를 여러 차례 기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임 국가종교국 국장인 왕쭤안(王作安)의 저서 <중국의 종교문제와 종교 정책> 한국어판 출판을 위해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리에 대해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는 유물주의와 무신론을 근간으로 한다. 반면에 종교는 유심주의와 유신론이 그 바탕이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중국에서 종교는 존재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종교는 이념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중국이 종교문제를 언급하고 종교 정책을 실시한다는 사실이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상식적으로 사회주의 중국에는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서구국가가 중국의 종교자유정책 실시의 진정성에 대해 미심쩍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신봉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종교관은 종교자연소멸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계급사회와 비과학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종교를 만들어 이용하였고, 또한 종교는 비과학적인 인류의 무지로 인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완성되면 계급제도가 사라지고 비과학적인 무지함도 극복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존재하는 종교는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종교관이다.

중국의 종교 정책은 마르크스주의를 중국 사회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초기에 중국공산당은 통일전선전략을 기반으로 비교적 온건한 종교 정책을 시행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내전을 통해 중국국민당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요인은 일반적으로 중국국민당의 심각한 부정부패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레닌주의를 계승하여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본 마오쩌동의 공산주의 혁명이론은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인 홍군이 민중들에게 절대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시행함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도 하나의 중요한 승리 요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울러 일본과의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 국민당과 휴전하고 공동 항일전선을 이룩하는 국공합작을 시행하는 등 중국공산당은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으로 통일전선전략을 철저하게 시행하였다. 

건국 초기 중국공산당의 종교이론은 국가체제의 확립을 위해서 종교계 인사를 포함한 사회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통치전략을 수립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소비에트공화국 건립, 항일전쟁과 내전 시기를 거치면서 정권장악과 사회주의 실천을 위해 종교 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소비에트공화국 헌법을 분석해 보면 중국공산당은 종교자유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개혁을 전제로 한 통일전선전략적 협력을 구상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체제개혁과 제도혁신을 통해 국론 통합작업에 착수한다. 중국교회는 새로운 중국에 부합하도록 개혁해야 했다. 종교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일관되게 통일전선전략을 근거로 국가가 종교를 제도적으로 장악하는 종교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마오쩌동이 사회주의를 제도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국가 목표를 무산계급 사회주의 건설에 두고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좌편향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962년 중국공산당 제8기 10중전회는 마오쩌동의 계급투쟁을 뒷받침하면서 자산계급의 부활을 방지하는데 주력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종교문제를 계급투쟁 논리로 해결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종교는 착취계급의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무자비한 종교비판이 진행되었다. 1965년에 중국공산당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조직, 사상을 정화하는 사청운동(四???)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종교소멸을 시도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이념을 좌편향적으로 해석하여 실천한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에는 ‘종교는 착취계급의 도구이므로 계급투쟁을 통해 종교문제를 처리한다’는 종교소멸정책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종교 정책 자체가 부정되면서 중국공산당 내부의 모든 종교행정부서는 폐쇄되었고 각 지역의 종교단체의 활동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로써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초기 그나마 국가체제에 순응하며 어렵게 생존하던 중국교회는 더 이상 공식적인 종교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개혁개방과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 변화
중국교회는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는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재해석의 결과로 본다. 개혁개방 시기의 중국신학은 마르크스주의 종교관의 재해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82년 중국공산당이 <중국 사회주의시기의 종교문제의 기본관점과 기본정책(我?社?主??期宗???的基本?点和基本政策)>을 발표하고 같은 해에 확정된 헌법 수정안에 종교의 자유가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종교소멸론이 강조된 극좌적 사회주의 노선으로부터 해방되어 탄압일변도의 종교 정책이 종교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978년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제도를 창조하였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국가 통치 이념의 근본적인 변혁을 의미한다. 마오쩌동이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통치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중국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작되었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정책이 결정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회주의를 마오쩌동이 ‘무산계급 사회주의 건설’로 해석한 것을 덩샤오핑이 ‘경제발전’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통일전선전술의 범위를 정치영역에서 사회영역까지 확대하였고 종교 세력을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탄력적인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전술한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마르크스주의 종교관의 기본원리를 국가통치의 현장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용납하기 어려운 종교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국의 종교문제는 대부분 민족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민족문제는 대부분 정치문제이기 때문에 항상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가 된다.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은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실시하는 국가 통치 전략이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종교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사회주의가 완성되면 종교가 스스로 소멸된다는 마르크스주의 종교자연소멸론이라는 이론이 실제 상황에서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민중들에게 납득시킬 것인가. 결국 중국공산당은 전통적인 통일전선전략의 범위에 종교를 포함시킴으로써 종교자유정책과 종교소멸의 정책적 모순을 해결하는 논리를 찾아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와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과학적 유물주의 세계관으로 종교적 유심주의 세계관을 극복하라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리로서 종교자유정책을 시행하는 논리적 모순을 그들은 종교문제가 최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단순논리로 극복한 것이다. 특히 현대중국의 사회주의는 장기적인 발전이 필요한 초급단계라고 분석한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초급단계 이론은 사회주의 종교관이 갖고 있는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는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중국공산당은 ‘정치적으로는 단결하고 신앙적으로는 서로 존중한다(政治上??合作, 信仰上互相尊重)’는 구호를 앞세워 종교계가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역사유물주의에 근거한 종교와 사회의 상호적응 이론이다. 중국공산당은 상호적응이론은 중국의 종교와 사회주의사회의 관계에 적용하여 중국 사회의 종교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신학적으로 확장되어 중국교회가 애국하고 법을 지키고 단결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신학을 가져야 한다는 신학적 명제가 되었다. 특히 종교의 긍정적 역할로 애국애교와 화해, 사회봉사,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한다. 결국 중국 종교 정책의 형성은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 종교관과 현대 중국사회의 현실을 실사구시적으로 재해석한 국가 통치 이념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은 중국의 종교 정책에 실천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종교자유정책은 사회주의 체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이념으로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현상적으로 종교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받아들여 제도적인 틀 안에서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종교 정책이 ‘종교가 사회주의에 적응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부정적인 사회현상인 종교는 결국 소멸할 것이라고 보는 사회주의 종교관은 종교의 존재를 이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 속에는 엄연히 종교가 존재한다.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유물론적 사유를 강조해온 사회주의 중국은 민중들에게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이론적 설명의 결과가 바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종교이론이요, 이를 근거로 발전한 것이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종교 정책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종교자유정책, 법을 근거로 하는 종교행정, 종교가 사회주의와 상호적응 하도록 인도하는 것, 철저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독립, 자주, 자율적인 종교)을 종교지도방침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종교자유정책, 법적인 종교행정, 종교의 독립성 등은 모두가 ‘상호적응’ 이론을 뒷받침하는 부차적인 것이다. 개혁개방을 계기로 중국의 사회주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상당부분 완성하였다. 사회주의 초급단계 이론이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 등이 중국 사회에서 이미 실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또한 개혁개방 정책은 장쩌민의 3세대와 후진타오의 4세대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계승되었고 또 적극적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지속하는 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종교 정책은 마르크스주의 종교관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이후 사회 변화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종교관을 가지고 전개될 것이다.

시진핑의 제5세대 중국공산당 종교 정책 전망
일반적으로 큰 변혁이 없으면 시진핑의 제5세대는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다스리게 된다. 덩샤오핑을 계승한 장쩌민의 세 가지 대표 사상과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이 중국공산당의 당헌에 규정된 지도이념이다. 물론 예상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동 사상도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지도이념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해석과 적용이다. 이미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인정함으로써 과거 마오쩌동의 계급투쟁 중심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비록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동 사상이 향후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종교 정책의 우편향적 전개를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통치 이념은 민중의 공동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마오쩌동과 덩샤오핑이 모두 수용한 실사구시적 통치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통치이념을 완성하기 위한 통치전략은 실사구시 즉 이론과 현실의 조화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 행한 첫 연설에서 공부론(共富?)과 반부패(反腐?)를 역설했다. 그는 내외신 기자회견 연설에서 “확고부동한 자세로 공동부유의 길을 걸어갈 것”과 “일부 당원과 간부들의 부패와 관료주의, 형식주의 등은 온 힘을 다해 해결해야 하며, 당 전체가 반드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헌에는 ‘당 영도기관과 당원 영도간부, 그리고 특별히 주요 영도간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고 명시했다. 필자는 시진핑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선언과 공산당의 정책수립 근거가 될 당헌 수정 내용을 통해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의 향후 국가정책 변화방향을 근거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을 전망해 본다.

첫째, 시진핑의 5세대 정부는 국가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엄청난 국력신장을 이룩하였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한 지난 10년은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지난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중국은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폭발 직전까지 고조되었다. 현재 중국의 지니계수(소득의 분재 불균형을 나타내는 수치)는 0.55로 사회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0.6에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진타오는 집권 초기에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주장하면서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의 폐해를 극복할 공부론을 역설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개혁에 실패함으로써 그가 집권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시진핑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개방이었던 것처럼 시진핑의 불균형 해소정책 또한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개혁개방의 근거인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종교계를 아우르는 종교자유정책을 시행한다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시진핑의 5세대 정부는 경제적 불균형의 근원인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중국공산당 당헌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동 사상을 제외할 것이라는 관측은 향후 중국공산당이 경제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이념적 근거를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계급투쟁을 통해 봉건주의 지주계급을 타파하고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은 집권 60년 만에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에서 특권층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빈부격차로 대표되는 사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은 결국 정치개혁을 위한 포석이 될 것이다. 다만 이미 안정적 권력분배가 이루어진 중국공산당 내 각 계파의 세력균형을 통해 정권을 잡은 시진핑이 기득권과의 투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중국공산당은 파룬궁(法輪功)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 어떤 계층이나 분야에서도 공산당을 위협할 정치세력의 등장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분리 독립 문제나 위구르족의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사회주의체제의 국가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중국의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은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를 위해 존재하도록 ‘상호적응’ 이론에 따라 전개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종교가 정치세력화 하려는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진핑의 5세대 정부는 체제유지를 위해 중국공산당과 일반 백성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보다 강화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국가통치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이다. 개혁개방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재해석하여 계급투쟁을 생산수단 개혁으로 전환한 것이다. 경제개발을 통해 민중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 이념 자체를 얼마든지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태도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이념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이념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동 사상은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당헌에 기록되어 있는 핵심 지도사상이다. 사회주의는 선전과 교육을 통해 완성된 사회주의가 인류의 유일한 미래적 가치임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을 통치한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은 당원뿐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사회주의 이념의 가치체계를 교육함으로써 공산당 내부의 결속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사회 불균형, 공직자 부패 등 당면한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의 종교 정책은 여전히 종교계와 종교인들이 중국정부에 적극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김광성 | 주안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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