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지 15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들은 량전잉(梁振英)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香港特別行政區行政長官)이 부임하기가 무섭게 ‘물러나라’는 시위를 일으켰다. 이것은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이제도(一國兩制)’ 하의 10대 갈등에 시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불꽃축제가 빅토리아 항을 물들인 7월 1일 저녁, 홍콩은 중국 반환 15주년을 기념해 23분 내에 총 5만 여개의 폭죽을 터뜨리면서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에 수만 명의 ‘7.1시위’ 행렬이 속속히 홍콩 중심지에 위치한 톈마지앤(添馬艦)의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다. ‘량전잉 물러가라’ 라는 불만 섞인 시위 소리와 폭죽 소리가 한데 뒤엉켜 불협화음의 ‘7.1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시위행렬은 시 중심가인 헤네시에서 골든벨 거리를 지나 정부종합청사로 진입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적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홍콩 공산정권을 향해 ‘NO’ 라고 주장했다. 또한 ‘리왕양 열사여, 영원하라’는 정치적인 호소를 하기도 했다. 유기농 채소 과일 판매상과 대기업이 부동산 시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반대했으며 동물보호와 홍콩 현지 농산물보호, 길거리 상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주주간은 이 모든 것이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이제도에 따른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이 갈등들에는 ▲ 대기업이 부동산 시장을 독점하는 일과 사회정의 실현 ▲ 빈부격차 심화와 도시경쟁력 ▲ 홍콩시민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중국공산당 독재정권과의 갈등 ▲ 자유인권법 체제와 베이징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23가지의 법 조항을 발표하는 일 ▲ 6.4톈안먼 사태에 대한 정치적 결론을 시정할 것을 촉구하는 것과 중국 정부의 역사적 책임 회피 ▲ 중국에서 권익을 옹호하는 것을 지지하는 일과 중국의 법 체제 퇴보 ▲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 vs 중국인 이라는 신분을 동일 시 하는 것 ?▲산업의 과도기와 정부 개입에 대한 갈등 ▲ 녹색운동과 경제발전에 대한 갈등 ▲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 등이다. 아래 몇 가지 갈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대기업 부동산 시장 독점 vs 사회정의 실현 대기업의 부동산독점은 이미 홍콩의 유행어가 되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역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하였다. 중산층의 구매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대기업들의 폭리를 초래하였으며 홍콩의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주거환경의 수준도 악화시켰다. 이 때문에 홍콩의 중산층은 중국, 대만, 홍콩보다 더 낮은 주거환경에 처하게 하였다. 또 근래에 홍콩으로 오는 중국의 부동산 투기꾼들로 인해 부동산 수요가 치솟았고 부동산 가격도 지속적으로 치솟고 있다. 올해 가격은 더욱이 역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홍콩중원부동산 가격지수에 따르면 10년 내에 이미 3배 가까이 올랐기에 이는 젊은이들에게 집장만은 그림의 떡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부동산독점은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대명사가 되었다.
홍콩 사회는 줄곧 부동산 가격이 높았다. 국민들은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야 했다. 이 때문에 도시경쟁력을 더욱 부추겨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만들어 냈다. 량전잉은 지난해 초 총선 참가 전부터 이미 위에서 지적한 문제에 대해 반박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을 유인하는 미끼에 대한 이론을 질타를 하면서 그러한 이론은 반드시 전제가 있어야 하며, 만일 홍당무를 손이 전혀 닫지 않는 곳에 걸어 놓으면 그것에 대한 매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량전잉은 홍콩 부동산 가격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민생사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공주택 건설의 조속한 시행을 확실히 밝혔으며 국제적으로 악명을 남긴 쪽방(?房)을 개선하고자 했다.
홍콩에서는 부동산 매입에 대한 또 다른 허황된 생각이 있다. 집을 사게 되면 본인도 그 즉시 부유층 인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착각하고, 처음 내 집을 마련하면 “차를 타게 되었다(上車).” 라고 표현한다. 집값이 오른 만큼 본인의 자산도 더욱더 올라가서 다시 다른 집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사회적 지위도 상승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홍콩대학교 경제학과 왕위지앤(王于漸) 교수는 지난해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만큼 집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빈부 격차가 날로 심각하게 크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빈부격차 vs 도시경쟁력 홍콩의 빈부격차가 날로 더 악화 되어가고 있다. 홍콩 정부부처에서 6월 중 발표한 지니계수(Gini coefficient: 계층 간 소득분배가 얼마나 공평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사회 빈부격차를 반영)는 40년 이래 최고 수치인 0.537였다. 2006년에 비해 0.004%가 올랐으며 유로위기에 처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남미의 멕시코와 칠레보다 더 높은 빈부격차의 비율을 보였다.
홍콩의 빈곤 인구수는 대폭 늘어나서 126만 명이 되었다. 부유한 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산층이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럭비공 모양의 사회구조가 점차 표주박 모양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빈부의 양극화현상이 사회 유동층인 중산층을 점점 잠식해 버리는 상황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 그에 따라 임대료도 덩달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올해 초 민주협의회당 주석인 펑지앤지(馮檢基)는 홍콩특별 행정구 행정장관 총선 출마 때 “홍콩은 사회발전의 교차로에서 갈 길을 잃어 버렸다.” 라고 말했다. 홍콩 빈민층은 닭장 같은 집(籠屋)에 살고 있으며, 홍콩의 쪽방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량전잉은 홍콩의 이 추한 모습을 개선할 뜻을 밝혔다. 그는 근래에 서민층을 방문해서 빈부격차의 문제에 가장 주목하고 있고, 전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 임기 때에 최저임금법을 통과시킨 이후에 최저시급제법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약속했다.
6.4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 vs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중국 23년 전 민주 열사를 비밀리에 구출해 낸 ‘황새작전’에서부터 18만 인파의 빅토리아 공원 촛불시위까지, 6.4톈안먼 사태를 기억할 때 중국인은 홍콩이라는 도시를 배제 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 6.4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 재조명의 요구가 금지당했을 때, 민주화 시위에 관여한 모든 인물들은 23년 동안 지속적으로 박해를 당했다. 홍콩이라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공간은 중국 6.4톈안먼 사태에 대한 기억의 장소이자 역사 재조명을 중국 정부에게 촉구할 수 있는 전초기지가 되었다. 후진타오(胡錦濤)는 완차이(灣仔)의 하얏트 호텔의 창가에 서서 ‘억울하다’(?) 라는 피켓을 든 시위 민중들의 모습을 봤을 때, 그가 홍콩 기자에게 6.4톈안먼 사태에 대해 취재 받았을 때, 컨벤션 센터에서 강연을 했을 때, 시민당(公民黨)의 쩡지앤차오(曾健超)에게 ‘6.4 톈안먼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라고 도전 받았을 때, 6.4톈안먼 사태와 홍콩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이 또한 그가 지도하는 중국공산당의 홍콩 통치에 대한 합법성이 도전받고 있는 까닭이다. 법치국가와 민주화 정신을 주장하는 홍콩으로서는 자기 백성을 도살하는 독재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과 일국이제도를 구실로 홍콩에서 주권행사 하는 것을 수용하기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6.4톈안먼 사태는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난처한 이슈다. 비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6.4톈안먼 사태의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지금까지 어떤 조치도 보이지 않고 있다. 리펑(李鵬)이 쓴 6.4톈안먼 일기나 천시통(陳希同)이 최근 출간한 대화록 모두 도시를 점령한 후 그 도시의 주민을 모두 죽인 ‘도성(屠城)’ 이라는 죄명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지금까지 국민에게 사죄해 본 적이 없는 공산당도 암암리에 역사 앞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음을 염려한다는 뜻이다. 그들 역시 6.4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조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회피할 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재조명할 경우 공산당 안에서 격렬한 반론을 일으켜 당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6.4톈안먼 사태는 정말 뜨거운 감자처럼 손대기 곤란해서 중국의 그 어떤 지도자든지 가급적 본인의 차지가 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 vs 중국인 이라는 신분을 동일 시 하는 것 7월 1일 오전,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청사 국기 게양식에 참석해서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와 홍콩특구의 깃발 쯔징치(紫荊旗)가 게양되고 있었을 때, 후진타오는 몇 시간 후에 홍콩시민들이 영국 식민지 시절의 깃발(港英旗幟)을 들고 있을 줄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홍콩 반환 15년 후에도 적지 않은 홍콩시민들이 여전히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비록 영국 여왕 통치하에서는 언론매체에서 그녀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 당시 총독 역시 오늘날의 량전잉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같이 공개적으로 “이 머저리야 당장 물러나라” 라는 욕설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자유를 맛 본 홍콩시민들에게 중국의 통치방식은 당연히 먹혀들지 않는다. 홍콩시민에게 어찌하여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사실 다소 복잡한 심경이라고 했다. 또한 대부분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마음에 차라리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를 즐기는 것이며 그 시절에 나름대로 특권을 누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 시절 양호했던 사회질서와 사람들이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법치 환경이 그립다고 했다. 또한 어떤 이들은 그 시절에는 부동산 가격이 매우 안정적이었기에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영국 식민시절의 깃발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대학교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본인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9% 이하로 떨어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규모든 소규모든 군중의 모임은 정부가 모두 무력으로 진압을 하고 있으며, 식품안전 문제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국제적인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홍콩시민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홍콩 사람으로 남길 원하지 않겠는가?
젊은 세대 vs 기성세대 젊은이들이 시위에 나선다는 것은 대게 그 도시나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혁명시절의 중국, 60년대의 동유럽 모두가 그랬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여러 가지의 요구를 들고 수많은 인파속에서 시위행렬에 가담했다. 그들 가운데는 명문대를 졸업하고서도 취업이 어려운 졸업생들과 도저히 그들의 능력으로 살 수 없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반대하는 남녀 커플들, 중국 반환 15년 동안 여러 가지 금융위기로 인한 홍콩 산업문제를 제기하려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 유명한 국제도시 홍콩은 젊은이들이 더 밝은 미래와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점점 차단해 버렸다. 젊은이들의 형편이 부모 세대보다 더 열악한 현상이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부모가 먹여 살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종종 이력서를 넣어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이내 포기해 버리고 다시 현실과 동떨어진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 버린다. 비록 시대의 젊은이들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방황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겪는 방황을 정부가 다 해결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홍콩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다.
후진타오는 7월 1일 량전잉의 취임식에서 량 정부에 대해 여러 가지 공약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민심을 살피면서 적극적으로 민생 문제와 홍콩 사회의 여러 가지 갈등들을 해결할 것이다.”였다. 이는 베이징 정부에서도 홍콩특구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사회갈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량은 취임 이후 빈곤퇴치위원회와 경제발전위원회, 금융발전전담반을 설립했고 여러 부처의 관원들과 홍콩특구 의원들과 함께 홍콩시민들에게 다가가서 소통의 길을 찾고 적극적으로 그 갈등들을 해결하려 했다. 그를 잘 아는 정치, 상업 분야에 있는 인사들은 그가 충분히 홍콩이 직면하고 있는 10대 갈등들- 대기업 부동산독점 문제, 홍콩산업의 과도기, 환경보호정책 등- 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뜻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6.4톈안먼 사태와 리왕양 사건 그리고 법제도와 정치 또한 23조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에 대해서는 중국공산당과 나라의 체제개혁에 대한 심층문제 등은 량의 능력, 권한 밖의 문제이다. 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홍콩과 중국 내의 개혁인사들의 협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중국의 18대 정당회의 이후로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기존 체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홍콩시민사회와 NGO 단체 그리고 홍콩언론매체가 모두 힘을 모으면 량전잉과 베이징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홍콩경제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자유와 법치, 정의실현의 사회를 꿈꾸는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전 세계 14억의 중국인과 7만 명의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출처 | 亞洲周刊 第二十六卷 第二十八期(2012年7月15日) 번역 | 차이나 · 본지 번역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