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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 통권 133호     필자 : 한해빈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사역과 마음관리]
다양한 감정들의 의미

우리는 마음관리를 위해 우리가 매일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살펴보는 중에 있다. 감정은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고, 그 가운데 핵심감정이란 것이 있다. 이 핵심감정은 학자마다 정의하는 것이 다르지만 결국 몇 가지로 종합된다. 즉 두려움, 분노, 외로움, 슬픔, 수치심이다. 이제 핵심감정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두려움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위험을 피해서 안전한 장소와 환경을 찾는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을 느껴 광야로 도망했다. 그런데 다윗이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사울 왕의 궁전에 있었다면 아마도 생명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다윗은 자신이 사울 왕과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아주 정확하고 온전했으며, 다윗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적절히 사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와 반석이 되심으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갔다. 이렇듯 두려움은 우리에게 위험을 감지하게 하고 건강한 반응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가도록 인도한다. 궁극적으로 안전한 하나님에게로 가서 보호를 받도록 한다. 이것이야 말로 두려움이란 감정에 대한 건강한 반응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낄 때에 머리를 구덩이에 박고 단지 위험한 상황을 보지 않으면 그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자포자기하는 방법은 위험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위험에 빠지게 할 뿐이다. 또 다른 건강하지 않은 방법은 두려움을 직면하지 못하고 도피하는 방법이다.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결국 두려움으로 인해 중독되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낄 때에 그것에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노
우리는 공격이 올 때 분노의 감정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자신의 신체, 신념, 가까운 사람들이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분노라는 감정을 통해 보호하려고 한다. 인류 최초로 분노를 표현한 사람은 가인이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5),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은 것을 알고 심히 분노한다. 가인은 자신이 거절 당했다는 생각으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노하는 것이다. 가인이 느낀 감정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가인은 자신이 왜 분노하는지 하나님께 말로 표현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분노의 감정을 잘못 사용한 결과 살인이라는 그릇된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만약 지금 내가 분노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지? 나는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지?’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공격을 당한다고 느낄 때, 자신이 작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노를 통해 자신을 원래의 자신보다 더 크게 보이고자 한다. 

우리는 분노를 느끼고 있는 두 형제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분노를 느끼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가정과 자신을 파괴했다. 다른 한 사람은 분노가 언어 폭력으로 나타나 가족을 힘들게 하고 관계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먼저는 두 형제가 술을 먹지 않게 하고 폭언을 하지 않도록 권고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생활 가운데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접근은 두 형제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어느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는지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자신이 분노하는 감정을 이해해 갈수록 점점 더 분노를 다룰수 있는 사람이 된다. 분노의 감정을 없애거나 분노의 결과로 나타난 행위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도록 돕고 건강하게 말이나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생산적인 활동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관리해 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슬픔
자신에게 가치있고 의미있는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다.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를 잃거나 헤어지면 슬픔을 느낀다. 또한 더 이상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경우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경우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나 익숙한 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슬픔을 느낀다. 이런 상실을 경험할 경우 사람은 슬픔을 느끼고 애통하게 된다. 이런 애통은 상실에 대한 아픔을 감정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란 감정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에서 슬픔의 감정을 경험한 사람으로 한나가 있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더라”(삼상 1:8), 한나는 자신이 아들이 없음을 인하여 슬퍼하며울며 먹지 아니함을 보게 된다. 한나는 아들을 잃은 것으로부터 오는 비통함이 아니라 아들을 가질 수 없음으로 인해 온 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께 자신의 슬픔을 토로해 내는 것으로 자신의 애통을 표현해 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한나의 슬픔을 들으시고 아들을 주심으로 위로하여 주신다. 모든 사람이 한나처럼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나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애통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슬픔의 감정을 통해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지으신 바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슬픔은 사람으로 더욱 성숙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실의 슬픔을 경험할 때 건강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상실로 인한 깊은 슬픔을 경험한다면 먼저 애통과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을 잃어 버림으로 인해 느끼는 비통함을 표현해 내야 한다. 글과 말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슬픔과 상실로 인한 분노들을 울음과 함께 표현해 내는 것이다. 즉 충분히 상실의 아픔을 울음으로 표현해 내도록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런 애통을 표현해 내는 과정을 애도라고 한다. 충분한 애통과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충분한 애통과 애도의 시간 없이 너무 빨리 기쁨의 감정으로 옮겨 간다면 해결되지 않은 슬픔의 감정으로 인해 장기간 슬픔이 그의 삶을 붙들게 된다.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거나 부모를 잃는 상실의 아픈 경험을 한다. 하지만 사역 때문에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냥 가슴에 묻어 두고 사역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실의 슬픔을 건강하게 떠나보내지 못함으로 인해 슬픔의 감정이 계속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해결되지 않은 슬픔은 장래에 우울증으로도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상실의 아픔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충분히 애통과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잃어버린다. 그때에 백성은 모세를 위해 30일을 애곡하도록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30일 동안 애곡함을 통해 모세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준비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실로 인한 슬픔을 느끼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슬픔을 통해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셨다. 또한 슬픔을 느끼면 그것을 애통하는 애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위해 그분 앞에 나아오기를 기대하신다. 

외로움
외로움은 친밀함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우리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한다. 사람은 외로움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관계와 소속감을 추구하게 되고,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관계를 통해 자신의 소속감을 찾는다. 만약 사람이 고독함을 느끼지 못하고 소속감을 갖지 못한다면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것을 아셨지만 그를 찾아 오셔서 대화하시기를 원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하나님이 물으시고 아담이 대답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하와와 대화하셨다. 이렇듯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고독함을 느낀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최소한 둘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은 외로움이란 감정에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관계의 정형적인 모습은 부부의 관계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사람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다시 부부라는 관계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재창조해 가고 친밀함의 정도를 심화시켜 간다. 만일 마음이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면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관계를 맺고 있다면 친밀감을 느끼는 인격적인 교제가 있는 것인지 단지 형식적인 만남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수치심
수치심이란 감정은 자신의 한계를 말해준다. 이 수치심은 사람이 범죄한 후에 느꼈던 감정이다. 범죄로 인해 자신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며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수치심이란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적인 자아 사이의 간격을 느낌으로 생기는 감정이다. 이 수치심은 건강한 수치심과 해로운 수치심으로 나뉜다. 건강한 수치심은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게 한다. 하지만 해로운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하고 수치스럽게 여기게 하기 때문에 아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해로운 수치심은 두려움과 함께 사람이 범죄한 이후에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이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에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아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존재 자체에 대한 고통스런 감정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모든 죄인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수치심이란 감정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감정에 묶여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수치심의 감정 가운데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려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죽 옷을 입혀 주시기 전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수치심을 덮을 수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수치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수치심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을 피해 숨고 자신을 가리려 한다. 내가 무엇인가로부터 숨고 특별히 방어하려는 성향이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수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자신의 방법으로 수치심을 가려보려고 노력한다. 대분의 사람이 완벽주의, 돈, 명예 그리고 권력 등으로 자신의 수치심을 가려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수치심을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자신을 수치심에 묶이게 한다. 이렇게 수치심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 약물, 일 등에 중독 되도록 한다. 결국 건강한 삶 보다는 자신을 파괴하는 중독적인 삶을 살게 한다.  

우리는 핵심감정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생활 가운데 감정을 느껴보고 그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런 감정을 느껴보고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에 익숙해 졌다면 왜 그 감정을 느끼는지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풍성하게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한해빈 | 대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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