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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 통권 133호     필자 : 민한식, 황숙정 프린트   이메일 
[한중부부인터뷰]
새벽기도로 통하는 부부


민한식 선교사님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이고, 사모님은 전형적인 대만 여자이다. 
부르신 곳인 대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며 지금도 변함없이 새벽기도로 통하는 잉꼬부부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족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가족은 저와 황숙정 사모와 민성도, 성방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두 분의 만남과 교제, 결혼 과정에 대해 듣고 싶어요.
▶ 저는 1980년에 외국어대학교 중국어학과에 입학했어요. 1학년 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던 중 주님이 선교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1988년에 목회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대만 중화복음신학교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학년 학생 중에 시골 처녀처럼 순박하게 생긴 여학생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 여학생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황숙정 사모입니다. 당시 결혼은 저의 가정에서는 의외로 큰 반대가 없었습니다. 막내였기 때문에 까닭으로 너그럽게 봐주셨어요. 하지만 사모 집 측에서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특히 장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장인과 장모님께서 한국에 여러 번 가보셨는데 장모님은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살갑게 대해 주지 못한다고 느끼신 것이죠. 또한 목사님이셨던 장인 어르신이 교제했던 한국 남자들 대부분 목회자였어요. 한국 목사님들이 사모님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장모님의 눈에는 달갑지 않았고, 이해가 안 되니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딸이 그런 한국 남자와 결혼 한다니  마음이 놓일리가 없으셨겠죠. 하지만 장인어르신께서 저희 결혼을 적극 지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천국 백성인데 무슨 한국사람, 대만사람을 따지느냐”고 하시면서 저희의 결혼을 찬성해 주셨습니다.

결혼 전에는 결혼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셨는지요? 지금은 어떤 목적이 이끄는 대로 살고 계신지요?
▶ 결혼 전에도 결혼의 목적은 선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것으로 생각했었어요. 신학교에 다닐 당시 사모와 교제하면서 중국 대륙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했죠. 중국 대륙이든, 다른 나라이든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선교하러 나갈 것이라고 고백했죠. 그때 나와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사모는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고 화답을 해 주었죠. 사모도 신학 공부를 하기 전 전도 개척 사역을 하는 선교단체 사역자로 섬겼었어요. 결혼 후 대만 현지 교회의 초청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목회사역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결혼의 목적은 변함이 없으며, 결혼 전의 그 목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제는 연륜이 쌓여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시겠지만, 신혼시절 문화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연륜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있다면?
▶ 사실 결혼 생활 중에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 보다 우리 두 사람의 성장 과정, 가정 배경의 차이로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들은 생활고로 바쁜 나머지 자녀들 교육에 별로 신경 쓸 틈이 없으셨어요. 그런데 사모는 전통적으로 4대째 예수를 믿는 가정에서 자라 난거죠. 아버지가 목회자시고 친척들 중에도 목회자와 신학자가 많은 그런 가정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어요. 이렇게 두 사람의 성장 배경이 완전히 달랐죠. 게다가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다른 습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모의 인내가 정말 컸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그런 가정에서 자라난 반면, 사모는 자상한 아버지 밑에서 자녀들이 자기 소리를 많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대하던 그런 방식으로 사모를 대하려고 했죠. 그러나 사모는 장인 어르신이 자기에게 대해주던 정겨운 태도로 대해 주기를 원했죠. 저의 무의식에는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존재고, 여자는 무시해도 되는 그런 사람으로 세뇌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 표현을 하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가정이기도 했었죠. 결혼 후 여러 번 ‘같이 걷는 것’ 때문에 싸웠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는 항상 앞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사모는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느라 힘든데(예전에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행 방식), 어떤 때는 한참 걷다가 사모가 생각나서 뒤 돌아보면 사모가 안보일 때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저 혼자만 횡단보도를 건넌 채 사모는 길 저 건너편에서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었지요.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신앙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다투고 힘들어 했어도 저희들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교회 목양의 사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다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언젠가는 극복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주님께 엎드렸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오는 어려움을 주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주시는 위로란……. 지금까지도 새벽기도는 어려움을 뛰어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새벽기도가 없었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눈앞이 아찔합니다. 정말 저희들 힘으로는 극복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대만에서 목회를 하시는데, 대만에서 목회하게 된 주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모님도 동일하게 대만에서 목회하기를 바라셨는지요?
▶ 대만에서 목회하게 된 주된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당시 대만 현지 교회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과 중국 대륙이 수교를 맺지 않았기에 중국으로 선교를 하러 가는 것도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데 대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대만에서 목회하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물론 목회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지만, 저나 사모나 목회의 어려움을 거의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고 즐기면서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기에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은데도 대만 교인들은 저를 너무 잘 받아 주었고, 또 사모는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가 목회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에 목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응이 된 상태여서 목회하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하여 한국식 또는 대만식을 고집하시는지요? 자녀들은 부모님의 교육 방식에 만족하는지요? 자녀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는지요?
▶ 자녀교육에 대해서 한국식, 대만식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성장 과정 중에 부모님들의 가정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성장한 관계로 저도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성장할 때 한국어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거의 하지 못하여 자녀들이 성장할 때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또 대만 현지 학교를 다녔기에 한국어를 전혀 못했습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간섭이 거의 없이 공부하면서 원하는 대학도 졸업하고 대만에서의 신학교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졸업을 했기에 자녀들의 학업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사모는 자녀들의 학업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싶을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썼었습니다. 

자녀들은 중학교 때까지 대만에서 현지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부터는 한국의 부산 지구촌 고등학교(선교사 자녀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거의(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4개월 과정의 한국어 기초 수업을 받고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려니 자녀들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구촌 고등학교의 세심한 배려와 인도로 두 자녀들이 지금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중학교 졸업 후 저희들이랑 떨어져 지내는 관계로 충분한 대화를 하지는 못하고 있어 조금 아쉽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한국어가 한국 사람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이라든가 자기 정체성에 있어서 조금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대학진학 문제, 병역 문제, 앞으로 자녀들이 어디서 생활해야 하는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사전에 저희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학교를 옮겨 다니고 해서 자녀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국제결혼이지만 자녀 교육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한국어와 중국어, 나아가 영어까지 두루 익히게 하고, 앞으로 대학은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부모님들을 볼 때 참으로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 무엇보다도 같은 비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전이 같은지 확인을 하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부가 매일 서로 마주 보며 살면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부부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살면 서로를 항상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이나 다른 점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강한 마음의 준비, 내적인 상처의 치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희 부부들의 여러 가지 갈등과 다툼도 저희 내면의 상처, 그리고 저희 내면에 부모님들이 남겨놓으신 부부간의 생활 방식 등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매일 아침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고 그것이 매일의 습관이 된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매일 아침 주님의 손에서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모와는 상의도 없이 그냥 제 생각대로 적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급하게 써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다음 주 단기 선교와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쁜 관계로 사모와 같이 생각하면서 정리된 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것도 세심하지 못한 한국 남자의 핑계일까요?)




인터뷰 | 민한식·황숙정 부부
정리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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