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Missional) 교회를 시작하면서 최근 생성되고 소멸되는 생태계적 선교구조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와 ‘선교적 교회’이다. 한국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변명할 겨를 없이 붙잡아야 할 단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교회가 조직화하고 모이는 구조로서의 교회가 강조되면서 궁극적으로 핵심을 상실한 구조들이 되어가고 있다. 선교적 교회가 개척되는 초기에 선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중의 하나는 ‘선교는 선교단체가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다. 이로 인해 지역교회는 선교에 무관심하거나 단지 재정적 지원만 하고 선교단체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물론 반대도 있다.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 이라는 태도다. 지역교회가 직접 선교의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전제는 맞지만 불균형이다. 지역교회는 선교의 모판이다. 모판에서부터 잘못된 벼들은 결국 추수 때까지 혹은 추수 후에도 길에다 말리는 등 실제로는 필요없는 일들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는 어느 농부의 지적처럼 선교적 교회가 모판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 결국 파송의 기능을 담당할 단체에서 불필요한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OIL(One In Love)공동체는 선교의 모판으로서의 교회를 구상하게 되었다.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구현에 이바지하며 지금의 자리에서부터 미전도 종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를 꿈꾸는 제자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재정의 90%를 선교비로 사용하며, 폐쇄적인 경계구조가 아닌 현장중심형 조직구조를 꿈꾸며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 구성원들은 대부분 유학생으로 구성된 지체들이었다. 이미 디아스포라로서 타문화를 경험해보았고 그 흩뿌려진(Diaspeire) 삶의 시작과 끝을 경험한 사람들이 원대한 꿈을 조금씩 꾸게 되었다. 이것이 OIL공동체의 시작이다.
선교적 교회의 오해 선교적(Missional) 교회? 선교만 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일까? 선교적 교회에 대한 최대의 오해는 바로 선교만 하는 교회라는 점이다.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선교적 교회는 아니다. 선교적 교회란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를 말한다. 큰 교회가 많은 재정과 인력을 동원해서 하는 그런 선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그런 액세서리가 아니다. 선교는 그 자체가 교회의 사명이며 교회의 DNA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선교적 교회를 논할 때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도피하거나 물러나는 일을 옹호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이 확연히 별개의 영역으로 갈라진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하나님 나라의 행위는 이 세상 속, 사회 활동의 경기장 한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색다른 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선수들은 특별한 규칙을 따른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은 사회가 당연시 하는 관례에 맞서며 때로는 지배문화의 본질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해하진 말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류에 항거하는 분파주의자는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이 새로운 방식의 사고와 삶을 일으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모습을 띨 뿐이다.
정확히 ‘하나님 나라’란 무엇일까? 대체로 성경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역동적인 통치 또는 다스림'이라고 생각한다. 이 통치는 영토나 특정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또 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매우 역동적이다. 항상 변하며, 퍼져 나가고, 자라난다. 그 나라는 하늘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나라, 지금 여기서 번성하는 그런 나라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진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단연 중심주제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주의화된 복음 안의 공동체성을 회복시키고, 사회성을 잃어버린 복음에 사회에 대한 비전을 회복시키며, 내세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고 있는 복음에 현실에 대한 책임을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살아가는 백성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회제도, 곧 정치, 종교, 경제제도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가운데 사용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야만 한다. 이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도전이며 두려움이다.
선교적 교회에 대한 대안적 접근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 수보다 지역교회가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을 섬기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역을 하는가보다 사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가를 점검해야만 한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를 목양하는가보다 교회 밖에서 얼마나 더 많이 섬기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아주 기초적이고 성경적이고 본질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성도를 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가보다 성도로 하여금 세상이 더욱 온전해지도록 돕는가로의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주변문화와 접촉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그 문화에 참여할 것인가, 얼마나 개인의 화평을 누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세상의 화평이 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이다.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으느냐보다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이 땅에 도래하게 할 것인가로의 의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생각해 보면 단순하지만 이것을 공동체 가운데 구현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 시대의 선교적 대안은 선교적 교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선교적 교회와 교회적 선교의 본질 회복 말장난 같지만 선교적 교회와 교회적 선교의 본질 회복을 다루는 데는 교회와 선교단체라는 이원화된 평행구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 구조는 과업중심 선교의 명백한 산물이다. 그런데 이 두 구조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연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회로부터 선교라는 본질을 분리함으로써 양자가 다 세속화의 길을 가게 된 데 있다. 오늘날 선교는 보다 총체적이며 본질적인 회복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선교적 교회란 교회라는 조직으로 행하는 어떤 선교 활동 이전에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선교적 마음을 이해하는 일과 그에 따라 선교적 삶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외부를 향해 복음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전환과 통합이 일어날 때 성령이 공동체적으로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와 교회적 선교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교회 공동체로부터 복음을 들어야 할 지역 공동체로의 연속선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이며 함께 회복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체적 사례(OIL교회) <사명선언문> OIL교회는 먼저 우리 자신들이 복음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을 가깝게는 이웃들에게, 멀리는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 이르기까지, 시간적으로는 지금부터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까지 나누려고 한다.
<핵심가치> 1. 우리는 생명의 말씀 때문에 여기 모였습니다(요 6:68). 2.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말씀대로 모였습니다(막8:34). 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외에는 아무 권세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삶을 살기 위하여 모였습니다(요 1:12). 4. 만유의 주인이신 주님만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OIL교회의 주인이심을 선포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행 10:36).
하나님의 통치는 말씀으로 확장된다 기독교는 철저히 말씀 중심이며 곧 선교 중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 확장되기 때문이다(막 4:14).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확장된다. 새로운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신앙고백하는 자들로 형성된다. 이들과 함께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이 ‘복음’은 철저히 선교중심적이다. 왜냐하면 복음 그 자체가 선교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 널리 퍼져야 하는 말씀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데 헌신하지 않은 채 복음에 헌신할 수 없다. 그래서 복음 중심이라는 말과 선교 중심이라는 말은 같다. 교회는 복음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존재한다. 교회는 예배와 교리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여기에서 무너지거나 양보하게 되면 ‘선교’는 여전히 행위 선교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선교 그 자체가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DNA처럼 심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선교하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출발선임을 분명히 한다. 동시에 교인 등록도 신중히 한다. 일종의 ‘교회회원권’ 이다. 바른 신앙고백을 통한 정회원제도가 선명해야 한다. 작지만 건강한 공동체, 그 건강성이 선교적 삶과 결부되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서로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도들 모두가 용서의 복음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며 일상의 삶을 누리는 모임으로 가려면 시간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길은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무엇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가? 열정도 아니고 사명도 아니며 순전한 의지도 아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이다. 이것이 개개인에게 적용된다면 공동체는 빠르게 성장해갈 것이다. ‘구원의 확신’, ‘기초교리교육’, ‘기독교 세계관’, ‘하나님 나라’, ‘귀납적 성경연구과정’ 등을 통해 성도 모두가 말씀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어 새로운 선교적 삶으로 첫걸음을 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려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2주제를 3-4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시간이 있고, 상호 질의응답 시간, 소그룹 모임 등으로 주제를 충분히 소화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 시간은 성도들이 완전한 진리를 경험하는 멋진 시간들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공동체’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신약에서 공동체를 의미하는 단어는 ‘코이노니아’ 인데 요즘은 다소 약화된 ‘친교’ 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코이노니아는 ‘공동의’, ‘나눔’, ‘참여’ 등과 같은 단어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성령의 공동체이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눈다(고전 1:9). 우리의 삶을 나누고(살전 2:8), 재산을 공유하며(행 4:32), 복음을 나눌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도 참여한다(고후 1:6-7; 벧전 4:13). 코이노니아의 실천을 본다. OIL교회의 주일모임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코이노니아다. 모든 구성원이 각자 조금씩 음식을 준비한다. 자발적인 모임으로 시작되어 지금 잘 정착되고 있다. 서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중에 의사를 전달한다. 서로가 적극적으로 반응해서 메뉴도 결정하고 음식의 양도 결정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찬의 연장으로 본다. 거룩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나눔의 의미를 실천하는 시간이다.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자를 찾는다. 주일예배 시간에 ‘정의를 위한기도지’(평화누리)를 통해 매주 매달 새롭게 전해지는 소식으로 고통 받고 고난 받는 이들을 품고 있다. 당연 재정적 필요도 함께 채우도록 하고 있다. 기독NGO를 지원하기도 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기도 한다. 선교적 공동체의 정체성을 ‘참여’에서 찾으려 노력하며, 말씀에 기초한 ‘공평’과 ‘정의’ 실현에 온 공동체가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동체의 핵심은 일상성이다 OIL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는 바로 ‘일상’ 이다. 자기 삶의 자리를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캠퍼스든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로 사는 것이 바로 ‘선교적 삶’ 이기 때문이다. OIL교회에서는 주중에 두 곳에서 직장인 사역이 진행된다. 모두 직장인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성장하여 예배가 진행되고 담당자가 세워지면서 리더모임 등 자발적 예배 공동체로 세워져가고 있다. 한 직장공동체는 5명 정도로 시작된 작은 기도모임이었지만 현 회사임원을 포함하여 40여 명이 참여하는 대형그룹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그룹은 예배와 나눔과 참여로 회사분위기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담은 아름다운 공동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 외에 신학대학원생 중심의 인문학 연구회, 개척교회 목회자를 주축으로 한 독서토론회 등 정례적 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OIL교회의 해외선교는 이 일상의 연장선이다. 물론 상시적으로 선교팀을 모집하고 기획하며 실무적 일을 하기도 하지만 자체 소그룹에서 활발히 선교를 이루어가도록 지원하는 체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송선교사들과 선교준비생들 모두 무엇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게 우선이며 나아가 그들 삶의 일상을 강하게 살아내는 선교사적 삶을 우선으로 교육받게 되어 있다.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되면 선교의 구체적 필요들을 부드럽게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선교사가 공동체 모임에 참석하고 자유롭게 누리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역을 들여다 보면 중국 캄티베트지역 리서치 사역과 인도네시아 미전도 종족 입양, 방글라데시에서의 원스토리 사역과 학교사역 등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정해가고 있다. 모두 교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선교적 삶과 선교 개척에 눈을 뜨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선교적 공동체이다 OIL교회의 선교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이 사명선언은 두 가지의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으로 인한 영광스러움(광채)을 누리는 것이고, 둘째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아직도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즉 ‘그 영광을 확산하는 것’이 OIL 교회의 선교사명이다.
선교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 이라고 이해한다. 이것은 복음과 그 복음의 결과로 누리는 삶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다. 복음은 결코 삶과 분리되지 않으며 분리될 수도 없다(일상성). 복음은 영원한 생명과 함께 하나님으로 인한 새 기쁨을 제공한다. 선교는 단지 우리가 믿는 교리적 내용을 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선교는 우리가 믿는 복음의 교리와 함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게 된 기쁨을 온 지구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선교는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과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대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아브라함이 복을 누리는 것이 전제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는다. 또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 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시 67:1) 라고 기도했던 것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그 복을 풍성하게 누리도록 간구함으로써 우리의 선교는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OIL교회는 성경적 선교를 지향하며, OIL교회의 성경적 선교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으로 인한 영광(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을 온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하는 것’ 이다.
나가며 ‘사과나무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사과나무다.’ 선교적 교회의 열매는 선교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선교적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식의 전환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야 할 가치 있는 길임을 모두가 기억하고 많은 동역자들이 생겨나기를, 복음에 이끌림 받는 공동체의 나눔이 살아있으며, 일상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선교적 교회와 선교적 삶이 많아지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권서인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