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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2 통권 132호     필자 : 이하나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끄시는 대로

만만디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가 머물렀던 동안은 늘 빠른 속도로 변화했던 곳, 중국. 건물 색 때문인지 먼지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도시 전체에는 칙칙하고, 우중충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서 내게는 밝고, 산뜻한 색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7년 여 만에 한국에서 살게 되니, 비좁은 땅이어도 정이 간다. 하늘도 참 맑다. 언제부터 서울이 이렇게 공기 좋은 곳이었던가. 도심의 자동차 매연조차 깨끗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뀐 건 거리의 상점 간판만이 아니었다. 버스노선과 정류장은 너무 복잡해서 알고 싶지도 않다. 아는 사람이 다 어디로 사라진 느낌이다. 또 여기서도 이방인 같다.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것은 믿음의 친구들과 어디서나 늘 함께 계시는 하나님뿐이시다. 중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려하니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이끄셨던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온다.

하나님의 버릇없는 딸
내 나이가 20대 중반에 들어선 80년대 중반은 중국어 공부를 막 시작한 의미 있는 해이다. 이때 나는 모 선교단체에서 주관하는 방한 중국인들을 일대일 양육하는 기회가 주어져서 양육의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94년, 30대에 접어들었기에 나는 그해 초부터 결혼과 진로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작정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모 선교단체에 가서 일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고 확실한 증거도 보여주셨다. 하지만 돌아 나온 길로 다시 가라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내 인생에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너무 속상해서 몸져 누워버렸다. 이제까지 의지하고 믿었던 좋으신 하나님이 이때부터 점점 받아들이기 힘든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예상되었던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 해가 끝나갈 무렵 그 선교단체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의 사역은 기쁠 때 보다는 속 뒤집힐 때가 더 많아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일 년만 하다가 빨리 결혼해서 이 세계를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왔으니 내 의지로는 못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사무실에서는 일보다도 동역자들과의 관계와 재정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많았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억울하고, 이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왜 나를 여기로 보내셨냐고 눈 감고 조용히 하나님께 따졌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하셨고, 때로는 성경 몇 장 몇 절까지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기쁘게 순종하지 못했다. 그래서 툭하면, ‘하나님, 이것이 어찌 저를 사랑하시는 건가요?’ 하며 하나님께 거침없이 되물었다. 다행히 하나님은 내가 조금씩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그저 이해가 안 되어서 모르겠다고 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따르기 힘든 것뿐이다. 이렇게 늘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미성숙한 내가 문제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가르치시는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억지를 부리고, 이상한 논리를 펴서 나를 압제하고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알게 하셔서 바로 회개하게 하시고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행사 때마다 여러 사람들을 통해 내게 헌신을 더욱 요구하셨다. “빨리 현장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았지만 우여 곡절 끝에 떠밀려서 중국 땅을 밟기까지는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낯선 곳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는 왜 이곳에 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중국에 살면서 내가 중국 사람들과 그나마 의사소통이 된다는 게 놀라웠고, 내가 이것저것 포기하면 그다지 돈이 많이 들지 않아도 중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중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오래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편안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정서적, 영적으로 강했던 적이 없었기에 외국인이 되어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야한다는 게 자신 없었다. 안식년이었지만 중국 땅에 어렵게 몸살을 치르며 들어왔는데, 지금 나가면 순수하게 내 의지로 결단해서 또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기다리는 사무실로 가지 않았다. ‘그래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보자’는 마음이 200%였다. 일단 북경에서 여전히 자신 없는 중국어부터 공부하려 하다가 S시에 잠시 들렀다. 여러 가지 일로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또 어디론가 짐을 싸서 이동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그냥 그곳에 머물렀다. 몇 군데의 임시거처를 거쳐 드디어 원룸을 구했다. 드디어 독립생활이 시작됐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서 홀가분하면서도 외로웠다. 지난 시절의 어려움이 떠올라 매일 밤마다 울기만 했다. 공부를 핑계 삼아 한국 드라마 DVD를 보면서 하루 종일 방에 콕 쳐 박혀 지내며 시간을 보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은 내게 주의를 주셨다. 그러면 한동안 눈치껏 큐티를 열심히 한다. 시시때때로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는 것 같아 나는 힘들어 했다. 나를 ‘주의 능력의 용사’ 라고 격려하시고, 외롭다고 칭얼대면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고백하라고 하셨다. 3년 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6개월 동안 다그치시더니 언니의 질병을 고쳐주셨다. 당시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는 참으로 이질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중국에서의 사역도 생활도 모두 내겐 없었던 그림이었고, 혼자 간다는 막연한 두려움 외엔 무엇이 어려움일지도 몰랐다. 몇몇 한국인 사역자들은 후원교회도 없이 왔다고 걱정해주며, 돌아가라고까지 했다. ‘하나님 소속’이란 것 하나만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주님은 “나 만으로 안 되겠니?” 라고 하시며 나를 다독여 주셨다. 그렇게 7년 동안 여러 모양으로 현장에 머물게 하셨고, 중국인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들을 허락하셨다. 이것이 바로 예전에 예수님께서 나를 안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도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
현지 중국인교회를 개척하신 분을 돕는다고 있었지만, 나는 별로 기여한 일이 없었다. 그저 ‘중국인들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일’이 나의 목표였다. 평일에는 뉴스를 보고, 날씨를 확인하고, 가끔 신문 사 보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산보하거나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중국인들이 청하면 놀러가서 그 동네 구경하고 공원가고 그들의 친구의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과 교제하는 것뿐이었다. 환경은 온통 중국식이라 내게 편한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들이 성의를 다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생각에 너무 고마웠다. 한편, 상인들이나 이름 모를 택시 기사들한테는 가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환영해주고, 궁금한 게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이사 갈 때마다 챙겨주고, 수시로 전화해주고, 생활 정보도 알려주며 천천히 중국 생활에 적응해 갔다.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중국인들의 고민과 갈등은 우리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특히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오해로 부부 사이가 깨어지고,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던 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 기도에 대해 나누면서 미래의 삶으로 새롭게 나아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삶의 길에서 다른 문제를 각각 안고 있었지만, 기도제목을 나눔으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연합을 실현하고 ‘교회됨’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받았던 형제자매들이 후에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 스타일로 살아보겠다고 김치 대신 단무지를 먹으며 한국 음식과 멀어지리라 결심했다. 그즈음 알게 된 중국 자매들이 내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커다란 그릇과 배추를 사가지고 찾아왔다. 인터넷에서 짤막한 지식을 겨우 알아내서 생전 처음으로 함께 김치도 담그고, 간단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내가 중국인들 집에 가면 또 중국 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배우고 수다를 떤다. 그렇게 일상과 함께 기도제목도 나누고 친구가 되어갔다. 할 일은 많은데, 나의 한계 때문에 무릎 꿇을 때가 많아서 괴로웠지만, 서로 친해지기에 목표를 두었더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때로 나의 부족함 때문에 좌절할 때도 하나님은 위로와 소망의 음성을 들려주시니 감사했고, 중국인들을 통해서 위로와 격려를 받게 하신 것도 감사했다.

그 뒤에는 현지에서 알게 된 목사님의 훈련 센터에서 가정교회 지도자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신생명, 신생활 교재로 성경공부를 했고, 성경 각권을 가르쳤다. 이들과 함께 할 때, 부산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Y시의 모 지역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그들의 지도자 자녀들 중심으로 한 여름 수련회에 통역도우미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주일학교 사역과 차세대 청년 지도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가정교회 장년지도자들이 5-6명이 연합하여 새롭게 도전하며 헌신한 것이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다 사장님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사모님들도 찬양 사역을 준비할 겸 여러 가지 좋은 악기를 구비하여 배우고 있었다. 연주 실력도 상당했고, 교회 발전과 영적 도약에 관심이 많았다. 그 사모님들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면서 대화가 된다고 나를 반겨주셨다. 함께 대화하고 기도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내가 머물던 숙소를 제공한 여 성도는 첫날 대화가 안 되는 젊은 청년들의 뒤처리에 힘들어 하다가 말 통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매일 저녁 나를 기다렸다. 잠들기 전까지 나를 앉혀놓고 집안 문제, 남편 문제를 내놓아 함께 기도하고 나서 너무 속 시원해 하고 기뻐했다. 헤어진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던지…….

이런 저런 만남 속에서 나도 그들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신뢰와 안정감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 가운데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믿음, 고백과 다짐들 그리고 풍성한 섬김 등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세워져간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삶의 예배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한 언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나를 용납해주었던 중국인들에게도 감사한다.


이하나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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