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복음의 빚 일반적으로 회사들은 대차대조표 작성을 통하여서 회사 경영 규모와 상황을 파악한다. 대차대조표에는 자산의 증가와 자산의 감소, 부채의 증가와 부채의 감소 그리고 자본의 증가와 자본의 감소 등의 계정이 있다. 부채는 줄어들고 자산은 늘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다 같다. 빚 없이 살아야 할 것 같은 우리에게 오히려 부채가 있음을 아는가?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복음에“빚진 자”즉 부채가 있는 자이다. “복음의 빚”에 대한 바울의 심정과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고 싶다.
“복음”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분명하다.“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또한 그의“복음”에 대한 태도 또한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각오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에 매인 자요,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여기고, 복음 전하는 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로 알고 산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을“빚”이라는, 듣기에도 부담스러운 강력한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자신을 “그 복음”에 대하여 상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채무자”로 고백한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복음 전하는 일은 부득불 할 일이며,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에게 화(禍)가 미치는 일로 선포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바울은, 그의 서신서 곳곳에서 자신을“그리스도 예수의 종”이요, 복음의 “종”노릇하는 자요,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종”이 된 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한다. 동시에 자신이 종이 된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분명한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복음의 종인 바울이 최고의 핵심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무엇인가? 주인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영혼을 얻고자 함이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바울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명예, 불이익과 관계없이 오직 주인 삼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에 기뻐하고 집중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상관없이 자기중심적 삶을 사는 사람들과는 그 중심점이 다르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그리스도에게로 내어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그의 생애에 이루고자 하는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그 복음”으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라고 담대히 고백한다.
선교학자들이 소위 상황화를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본문이기도 한 고린도전서 9장 20-22절에서 바울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 “유대인들에게서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복음의 능력으로 한 영혼이라도 더 얻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불교권 사람이든, 이슬람권 사람이든 구원 얻기를 바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충만하다. 그의 생의 목표가 철저하게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여러 시대, 문화, 정치 상황과 형편을 초월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멸망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눈물어린 심정이 그의 생애 전반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이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불러내신 -주인 되신-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목적과 동일한 것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바울의 생의 목표는 철저하게 주인의 뜻에 부합되고 있다. 부르심의 목적에 맞게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고민과 갈등 속에서도 묵묵히 십자가만 바라보며, 빚을 갚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걸음을 내딛는다. 생애에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 얻는 백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 민족 저 민족에게서 주를 찬미하는 주의 자녀들이 구름 같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것이며, 주의 피 값으로 사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나날이 커지는 빚 갚는 기쁨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는 복음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참 자유롭다. 부담이 없다는 말이다. 관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에게는 “빚진 자”의 태도도, 심정도 없다. 최고의 가치를 그리스도에게 두지 않는다. 생애의 목표는 이 땅의 것으로 가득하다. 주인 되신 주님의 뜻은 언제나 차선이 되고 자신의 뜻이 주인의 뜻보다 우선이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기쁨을 맛본지는 오래되었고, 세상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목사들이 그러하고, 성도가 그러하고 총체적으로 한국교회가 그러하다. 오히려 예측불허의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세간에 노출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감히 입을 열어“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지경이 되었다. 울고 싶고, 숨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믿음과 확신은 변함이 없다.
그러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는 말씀으로 복음 전파의 열정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한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모든 정치적, 문화적, 시대적 상황을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되어야 할 일이다. 기독교 역사 이래 복음전파자들이 환영받은 적은 없다. 어느 시대에 누가 복음전파자들을 현수막 들고 환영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믿음과 담대함과 열정이 우리의 신앙과 교회 가운데서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복음에 대하여“채무자”의 심정을 가져야겠다. 빚을 다 갚기까지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지 못하는 빚진 자의 삶을 살아, 우리 인생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가 감소되어야겠다. 입을 것 다 입고, 먹을 것 다 먹고, 놀 것 다 놀고, 쓸 것 다 쓰고 빚을 갚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경건의 훈련의 결과이며 우리로 하여금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는 소망을 주신다. 다시금 우리 한국교회가 말씀과 진리로 각성하고, 성령의 은혜로 힘을 얻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을 열어“예수가 주라고 가르치고 전파하기”를 기도한다. 이 일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약 6,000~8,000의 미전도 종족 지역에 가서도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과 절대적 명령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종이 되고자 했던 복음 전도에 대한 바울의 열정이 우리 몸에 덧입혀지기를 원한다.
한국교회가 거룩함과 경건을 회복해 다시금 부흥을 맛 볼 수 있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 전파하는 일이 탄력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진행되기를……. 주께서 그렇게 행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사모 할 뿐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김아모스 | 빌리온선교회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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