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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23 통권 130호     필자 : 김영철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세월신투(岁月神偷)》
달관(達觀)적 기억의 선택,

《세월신투(岁月神偷)》(2010)를 제작한 뤄치루이(罗启锐Alex, Law K.Y.) 감독은 홍콩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취득하였고, 유명한 홍콩 뉴웨이브 여성감독인 쉬안화(许鞍华)의 조감독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아내 장완팅(张婉婷)과 함께 제작한《가을동화(秋天的童话)》,《송가황조(宋家皇朝)》,《유리의 성(?璃之城)》은 한국관객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뤄치루이 감독이 아내 장완팅과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세월신투》는 제29회 홍콩 금상장(金像奖)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극본상, 음악상 등을 휩쓸었고, 제6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신세대 수정곰 작품상을 받았다. 

《세월신투》에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식민지인 홍콩의 빈민가에 거주하는 뤄씨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는 뤄 감독의 부모를 소재로 한 자전적 영화이다. 뤄씨 일가에는 연로하신 할머니, 구두를 만드는 아버지(罗先生), 뛰어난 화술로 판매를 잘하는 어머니(罗太太), 귀족학교의 모범생인 16살의 큰아들(罗进一)과 천방지축이고 개구쟁이인 8살의 작은아들(罗进二)이 살고 있다.

식민지 경험과 영어교육열
뇌물을 탐내는 부패한 영국인 경찰은 평소 보호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고 뤄씨 일가의 어머니는 수시로 그에게 선물을 바치곤 한다. 영국 경찰은 뤄씨 일가의 영문표기는 law가 아니라 low로 해야 한다고 조롱하면서 막내아들에게 영어를 잘해야 출세한다고 강조하며 알파벳을 거꾸로 암기해 보라고 요구한다.

식민지 사회에서 홍콩인의 교육열은 뜨거웠고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 유창한 영어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큰아들 뤄진이는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영어로 수업하는 귀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모범생이지만 ‘1등만이 승자이고, 2,3등은 패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버지는 작은아들 뤄진얼(??二)이 학교에 다녀오면 오늘 배운 내용을 물어본다. 질문은 그저 형식에 그친다. 무지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속이는 대답에 속아 넘어가기 일쑤이다. 장남이 첫사랑에 실연당하고 병에 걸려 성적이 떨어져 기대에 못 미치자, 아버지는 큰아들과 커다란 갈등을 겪는다.

이주와 본토 
1949년 전후에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1984년에 뤄 감독은 아내 장완팅과 함께《불법이민(非法移民)》을 제작하여 1980년대 불법이민자의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뤄씨 형제는 다락방에 기거하였는데, 다락은 베이징(北京)이고 아래층은 난하이(南海)라고 말해 ‘이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최근 전 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중화권 영화는 본토화의 경향이 농후한 편인데《세월신투》는 대만 영화《멍쟈(艋胛)》(2010)처럼 본토화를 표방하며 홍콩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여 대만의《하이쟈오 7번지(海角七号)》라는 평가를 받았다. 막내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펑바오바오(冯宝宝)인데 그녀는 1950-60년대에 활약했던 광동 지역의 아역배우이다. 

뤄씨 가족은 큰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콩은 대륙과의 이질화를 겪으며 국가와 민족의식이 소원해지고, 경제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서방화가 점차 가속화 되었다.  

최근에 제작한《엽문2》,《크로싱 헤네시(月满轩尼诗)》같은 홍콩 영화에서는 이주문제를  조명했지만, 《톈쉐이웨이의 밤과 안개(天水围的夜与雾)》(2009)처럼 중국을 ‘타자’로 보고 홍콩을 ‘자아’로 보는 문제에 대한 성찰이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8인: 최후의 결사단(十月围城)》은 2011년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홍콩이 신해혁명 때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어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   

뤄 감독의 아내 장완팅이 홍콩의 반환시기였던 1997년에 제작한《송가황조》는 중국과 공산정권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전달하는 선전적 경향이 농후한데, 이는 당시 해외이민이 성행하는 등 홍콩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홍콩 사람들은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동시에 기대하지만, 현재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중국 정부의 인식의 변화가 관건이며, 이는 선거를 통해 실현가능하리라 본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채택하고 있는 홍콩은 중국식 권위주의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인권에 대한 정치적 관심 정도도 놓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홍콩의 변화를 대만도 주목하고 있다.

도심 주변인의 방황 
큰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지만 사실 변변한 어항이나 물고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여자 친구가 몸이 아파서 병문안을 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물고기 전문가여서 집안에 초대형 어항이 있었다. 출입문이 헷갈릴 정도로 넓은 호화주택에 사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와 연락을 끊어버린다. 어린 연인의 사랑은 크나큰 빈부 격차와 가난한 이의 질병으로 고비를 맞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홍콩 사회가 지닌 사회계층간의 현격한 빈부 격차는 연인 사이를 갈라놓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는 병원에서도 차별을 겪게 된다. 환자가 물을 달라고 하면 간호사는 들은 척도 안하고 돈을 내야만 물을 준다. 병원에서는 무엇이든 먼저 환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금전만능의 홍콩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뤄씨 형제는 평소에 다락방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공부한다. 영화 초반부에 8살의 막내가 어항을 머리에 쓰고 물고기 가게에서 자라를 몰래 훔쳐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신성한 장소에서조차도 도둑질을 감행한다. 훔치는 물건 또한 손오공 인형에서 영국 국기까지 다양하다. 가난한 아이의 호기심은 도둑질로 나타나고, 도심 속의 탐욕은 어린아이의 동심마저 삼켜버린다. 뤄 감독은 자전적 수필에서 대학시절 홍콩대학의 교기(校旗)나 실험실에 있는 교패를 훔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의로운 도적 뤄씨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머니는 영화관 입장표를 흥정하고 구두를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정마다 돈을 모아 월병을 예약 주문하기 때문에 뤄씨 일가는 한 사람당 월병을 반쪽만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막내가 월병 반 갑을 먹어버려서 이웃의 질책을 받는다. 가난으로 어린아이는 식욕마저 억제해야 했고, 막내는 학교에서 연예인 사인이 있는 사진을 팔며 일찌감치 경제적 자립을 배우게 된다.

가족애와 삶의 지혜
골목에서 이웃끼리 서로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정겹다. 남편이 아내의 발바닥을 안마해주고 예쁜 가죽신을 만들어주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아버지는 장남의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반지를 전당포에 저당 잡히고, 아내는 남편의 손가락의 반지 자국을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섬세한 영상이 돋보인다. 송가황조(1997)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는 딸 송경령이 손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딸의 옷고름에서 나온 실밥을 제거해주었다. 뤄 감독 부부는 영화에서 위대한 모성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가장인 아버지는 자식의 묘지를 가려줄 그늘을 만들기 위해 좁은 시내 옆의 나무 한 그루를 힘겹게 맨손으로 뽑는 과정에서 손에 피멍이 든다. 천방지축인 막내는 가진 것을 전부 병든 형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고통의 바다(苦海)에 던지면 고해가 채워져서 가족과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된다는 할머니의 말을 따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야광잔, 어항, 손오공, 영국 국기 등을 소리치며 바다에 던져, 개인의 욕망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소망했다. 영화 속에 격언이 종종 나오는데, “한 걸음은 불행이고 다른 한 걸음은 행복”, “지붕을 잘 돌봐야 비나 태양을 피할 수 있다” 등의 삶속의 지혜를 들려준다.

달관적 역사인식
영화 초반에 “변화(變幻)하는 생명 가운데 세월이 가장 큰 도둑” 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우주인 같은 어항을 쓴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의 흑백영상이 다큐멘터리로 펼쳐진다. 큰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물고기의 기억은 3초밖에 안되어 갔던 곳을 다시가도 새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낙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인간의 기억은 물고기보다 길어 그 안에 슬픔과 즐거움이 섞여있지만, 그럼에도 과거를 달관적으로 바라보길 희망했다. 

엔딩장면에 동생이 어머니와 함께 형의 묘지를 들러보고 하늘에 떠 있는 쌍무지개를 보며 영어 알파벳을 거꾸로 암기하는 법을 어머니에게 가르쳐준다. 영화는 이주, 식민지, 문화대혁명, 첫사랑, 가족, 빈부, 자연재해, 질병, 사망 등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세월은 사람을 빼앗아 갔지만 추억을 빼앗지는 못한다. 지난 세월 모자(母子)는 할머니, 아버지와 형을 잃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슬픔과 기쁨이 담긴 추억은 아름답다고 회고한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 현대 홍콩인의 고달픔이 묻어난다. 허무와 고통 속에 잠긴 중국인의 영혼이 예수님이 주신 평안과 위로로 회복되길 기도한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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