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것으로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선교사인 사도 바울이 감옥 안팎의 여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에 눌리거나 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보다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고백이며 선포이다. 바울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다. 비록 몸은 감옥에 매여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복음, 십자가에 매여 사는 일에 죽음을 불사하는 결연(決然)함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자신의 인격이나 삶이나 육신에 돌아오는 그 어떤 것들도 개의치 아니하고 오직 십자가에만 집중하고 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만 그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일에만 생명을 걸고 전념하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자세는, 이 시대에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사 모두가 집중하고 따라야 할 원리이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의 침체현상과 선교의 정체 내지는 후퇴” 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그저 방법론적이거나 결과론적인 접근을 선행해서는 안 된다. 그에 앞서 우리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근거한 성경적 선교의 의미와 원리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원리와 방법이 나타나 있다. 21세기의 한국교회와 선교의 많은 부분이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인간중심과 인간위주로 집중되고 있다. 인간들의 계획과 비전, 그리고 계산에 근거하여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를 성경에 근거하여 점검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본고에서는 문제 해결의 방법론적 접근보다는 교회의 존재 중심이요, 선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함으로서 선교의 기본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고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도 외쳐야할 바울의 외침과 고백 바울의 고백 중에 나타나는 “그러면 무엇이뇨?”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은 투기와 분쟁,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할 목적으로 다가오는 다툼의 마음과 겉모양 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를 갖는다. 시기, 분쟁, 순전치 못한 다툼, 불순한 동기로 행동하는 전도자들도 좋다는 말이다. 바울 자신이 쓸개 없는 인간처럼 보일만큼 그 모든 것들을 다 품어내고 온 몸으로 다 받아낼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바울은 “그러면 무엇이뇨?”의 자문(自問)에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라는 자답(自答)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의 선교사적 삶의 방향은 그 자신에게 향하여 있지 않다.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듯이 그의 삶과 사역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가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전파되어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에 고정되어 있다. 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걸고 이렇게 고백한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
오늘날 선교는 끝없이 외향적이다. 동시에 자신의 업적과 체면과 성공, 자신의 명성과 편안함에 집중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이뇨?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나는 이로써 기뻐하고 기뻐하노라” 라고 고백하고 외치기에 우리는 너무 많이 교회와 선교사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영광으로 집중되어 있고, 방향을 틀기에는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선교의 중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핵심가치가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고, 모든 민족에게 마음이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전파의 장애물과 기뻐해야 할 진정한 이유 오늘날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위협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일까? 퓨포럼(Pew Forum on Religion)의 통계가 우리에게 아주 많은 점들을 심각하게 시사하고 있다. 통계에따르면, 복음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세속주의이다. 이어서 소비지상주의, 섹스, 폭력, 문화, 신학노선, 호화로운 생활방식, 성윤리, 종교 박해 그리고 천주교, 이슬람 순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볼 때, 인간 중심의 사상과 문화, 목표 등이 복음 전파에 큰 장애물 임을 알 수 있다. 인간 중심의 가치들은 오히려 이슬람이나 종교 박해보다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의 여러 요소들이 보여 주는 인간 중심의 문제가 우리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我)” 중심적이고, 나의 명예와 유익을 추구하는 일에 분주하다. 이런 사람들의 기쁨의 이유는 그리스도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에서 기인(起因)하지 않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선교에 있어, 교회는 교회대로 명분과 명성을 추구하고, 선교사는 선교사대로 편안함과 업적을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선교활동의 목표가 내게 돌아올 유익과 교회에게 돌아갈 명분에 귀착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뇨?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는 바울의 고백과 외침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선교현장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사역은 끊임없이 그리스도 지향적이어야 한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열방에게로 전파되고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선교사역의 유일한 기쁨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바울의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는 말은 현재와 미래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많은 괴로움과 불편함과 불안감이 뒤덮고 있는 현재의 매임 중에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리스도가 존귀케 될 그 사실 때문에 기뻐하리라는 것이다. 그의 현재도, 미래도 그리스도에게로 귀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미치는 어떤 불이익이나 비방, 심지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는 것이나 손발이 착고에 차여 감옥에 매이는 것조차도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 앞에서는 문제 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사도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에 대한 격한 감정과 불쾌한 감정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보다 더 크고 더 절대적인 것 사도 바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에게로 향했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악한 감정을 몰아내기에 충분히 강력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요 “복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괴로운 생각들, 불쾌한 마음, 분노의 마음을 넘어 그리스도 예수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원리 바울서신서 전반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선교원리를 생각해보자. 그 선교원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다. 이 원리의 핵심에는 다메섹 사건-바울의 생애와 선교사역의 결정적 사건이 되는-에서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자이며, 메시아와 하나님 아들로서의 예수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하는 사랑의 실천이며, 그 사랑의 결정체는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회심한 바울은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면, 예수 이름이 만방에 알려진다면, 바울 자신이 받는 고난과 불편함, 비방과 죽음까지도 우수마발(牛?馬勃)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원리이다.
바울의 선교사역 중 최고의 핵심가치는 선교사나 파송국에 돌아오는 찬사에 있지 않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증거 되는 것에 있다. Sending Body나 Goer도, Sodality나 Modality도, Senior missionary나 Junior missionary도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원리를 회복하여야 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인간적인 동기와 자기 자신, 또는 공동체 중심의 선교행보를 멈추어야 한다. 선교를 계량화(計量化)하여 영광을 취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심들을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고 버려야한다. 2011년 12월 말 현재 23,331명1)에 달하는 선교사들과 이들을 파송하고 기도와 물질로 동참하고 있는 한국교회, 선교단체, 모든 성도들은 이 원리를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이 원리가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열정이 다시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령께 순종하는 선교원리 바울의 선교에 있어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원리를 일관되게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성령께 순종하는 원리”였다. 바울은 성령의 지시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사역했다. 바울에게 성령은 바울의 회심 속에 역사한 성령, 바울을 불러 이방인의 증인으로 삼으신 성령, 안디옥교회의 선교사 파송 속에 역사한 성령, 예루살렘 종교회의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 바울에게 유럽선교를 지시하는 성령으로서 바울의 전 선교사역 가운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셨다. 성령께서 바울로 하여금 전 선교사역 가운데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붙드시고 인도하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뇨?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님, 즉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이다. 성령 하나님께 전심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하심(딤후 3:16-17)에 매순간 민감하게 순종함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물질과 인맥과 기술 등을 의지하고 내세운다면, 그 결과를 자신이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임을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하라 성경적인 선교를 위하여,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와 명분을 중시하는 가시적, 전시(展示) 위주의 선교의 위험성이 우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思考)를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교기관의 미성숙과 선교지도자의 비전문성, 교회의 결과 지향적인 선교의 태도는 우리의 선교가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는 일에 여전히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선교의 제2부흥기를 꿈꾼다면, 2만 명이 넘게 파송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수없는 타종교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지속적인 선교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부단한 노력과 연구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선교가 프로젝트화 되는 것에 대하여 부단히 조심하며, 선교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통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생명을 변화시키는 일” 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역 중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명예욕과 물질의 유혹, 타인에게 군림하고 싶은 식민주의적 우월감과 선교의 결과에 대한 공로주의를 극복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자. 또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고하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도록 하자.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이 우리의 심령과 입술에 날마다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것으로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김 아모스 | 빌리온선교회 한국본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