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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31 통권 127호     필자 : 김종남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나도 선교사다!
선교사를 섬기는 "한국인 선교사" 이야기

선교사가 될 것이라는 들뜬 마음으로 아주 젊은 나이에 한국성서대학교 선교학과에서 공부하던 중이던 96년 봄, 한국인 선교사의 간사였던 후배로부터 후원요청을 받은 것이 월간「한국인 선교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천진난만한 아프리카 선교현장의 어린이들 사진으로 표현된 선교에로의 초대는 참으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첫 만남 이후 「한국인 선교사」의 홍보맨이 되었고, 97년 어느 날 월간지를 발송하는 작업에 차량봉사로 시작해 한 발 더 깊이「한국인 선교사」의 가족이 되었다. 전임 편집장님이 선교사 파송으로 해외로 가시면서 지금은 편집장이란 직책으로「한국인 선교사」를 섬기기 시작한 것이 벌써 11년이 되었다.

「한국인 선교사」의 탄생
아프리카 보츠와나 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조성수 선교사님은 보츠와나 정부로부터 장기임대를 받은 3만 여 평의 광활한 대지위에 한국에서 공수한 장비들로 직접 벽돌을 찍고, 시설을 하여‘그루터기 보츠와나 직업훈련원’을 개원한 후 과로와 풍토병으로 일시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하고 보니 방 한 칸 없고 설상가상으로 후원도 점차 줄어 아픈 몸을 견뎌내며 노동시장에 나가 두 아이들의 양육과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이 회복되었고‘동소문교회’를 설립하여 개척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열심을 다해 전도를 하고 목양에 전념 할수록 조성수 목사의 마음에는‘나는 선교사다! 나는 선교사로 부름 받았다. 비록 여기서 목회를 하고 있어도 선교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생겨났다.

 - ‘선교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과 기도를 하던 중 조성수 선교사 당신이 보츠와나 건축 현장에서 한국에서 가져갔던 신문지를 낡아 없어질 때까지 읽으며 외로움을 달래던 것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고, 같은 처지의 선교사님들에게 한글로 된 선교 월간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보시도록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셨다. 또한 귀국하여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게 되고 선교보고를 하면서 선교현장의 사진이나 자료들이 분실되고 훼손되는 경험에 착안하여 선교현장의 삶과 사역에 대한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선교사와 한국교회의 역사로 기록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맴도는 생각들이 기도로써 명료화 되었고, 1995년 2월 선교전문 월간지로서「한국인 선교사」 창간호(3월호)를 발행하게 됨으로 선교전문 월간지「한국인 선교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선교
그해 5월 창간예배를 드리고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거룩한 지상명령인‘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는 말씀을 바탕으로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 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일상적 삶으로서의 선교 생활화를 퍼뜨리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첫 사역이 아프리카 단기선교 프로그램이었다. 매월 「한국인 선교사」를 발행하기 위한 안정된 후원시스템을 위하여 금융결제원에서‘지로자동이체’승인을 받아 시작된 1,000원의 평생 후원회원은 오늘날까지「한국인 선교사」가 매월 발행되는데 주춧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가 귀국하여 거처할 곳이 없는 현실적 대안을 위한 쉴터(안식관) 마련을 위한‘열린 찬양선교단 음악회’개최와 조성수 선교사의 미국 순회 집회 후원금, 그리고 회원들의 후원 등이 결실을 맺어 인천 구월동과 서울에 쉴터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인 선교사」사역도 자리를 잡아갈 즈음인 99년 조성수 선교사는 해외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러스텐버그’로 선교사역을 나가게 된다. 이를 계기로 성결대 총장이시던 성기호 박사께서 발행인으로 취임하게 된다.

「한국인 선교사」의 사역 원칙을 소개하면, 선교사 취재는 첫째, 선교사로서의 소속교회와 파송기관 등 선교사로서의 신분이 확실한 분이어야 한다. 둘째, 원주민 선교를 하시는 분이어야 한다. 셋째, TV 등 유명 매스컴에 소개되지 않은 분이어야 한다. 넷째, 인터뷰 후에도 사실 검증을 다시 한 후 기사화 한다 등이 있다. 이것보다 보다 큰 원칙은 선교현장에 기자를 파송하여 1-2개월 밀착취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필자는 2000년 페루의 원주민 선교지, 2002년 남아공 등 아프리카 선교지, 2003년 1월『라오스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 라오스대회』, 2005년 필리핀, 2010년 말레이시아‘오랑어슬리’현지 취재 등을 시도하여 현장취재의 중요성과 역동성을 전하였으나,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정기적인 취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밖에 보편화되지 않은 선교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전파하고 퍼뜨리되 그 사역이 일반화되면「한국인 선교사」와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종료하는 것인데, 이 원칙에 입각하여 2002년 제7차 아프리카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독립하여 선교사 멤버케어와  분리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선교잔치와 선교카페
2005년 1월 월간「한국인 선교사」100호가 발행되었고, 1회 선교잔치가 기획되어 6~7개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진료, 행복음악회, 음식잔치, 찬양집회, 볼링· 탁구대회, 선교사 간의 교제시간 등의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선교사 잔치는 이제껏 한국교회에서 볼 수 없었던 선교사 멤버케어 프로그램을 선보이게 되었다. 특히 MK(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진행하여 선교사님들과 MK 모두에게 열광적인(?) 호응이 있었다. 금년 제 6회 선교잔치는‘가족! 선교의 힘입니다’라는 주제로 강원도 영월에서 1박 2일 코스를 진행하여 또 다른 선교 케어 패러다임을 선보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선교카페」는 빼 놓을 수 없는 사역 중 하나이다. 매월 둘째주 화요일 오후 7-9시에「한국인 선교사」사무실에서 열리는「선교카페」는 15명 내외의 선교 관심자들이 모여 초대된 선교사의 선교현장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또한 선교사님들을 위한 뜨거운 기도, 그리고 함께 나누는 저녁만찬은 독특한 선교 사랑방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매년 12월에는 몇 분의 선교사님들을 초청해「선교카페」에서 작은 음악회로 아름다운 송년의 밤을 보내게 된다.

1995년 시작된「한국인 선교사」총괄적‘멤버케어’는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해 가며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귀한 사역에 우리 공동체가 사용되었음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멀리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매달 배달되는「한국인 선교사」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며 본부 사무실로 찾아와 격려해 주시는 선교사님들과의 만남도 즐거운 일이고, 쉴터를 구하지 못해 몇 번씩 짐을 싸야 했던 선교사님이 장기간 계시면서 아이들 학교까지 보낼 수 있어서 기뻐하시는 모습, 건강검진 서비스를 받으시고 나서 암이란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하는 가족들과 의료진의 간청을 뿌리치고 남은 시간 선교에 더욱 헌신하겠다며 선교현장으로 달려가신 선교사님의 거룩한 뒷모습, 이혼의 위기에 처한 선교사 부부가 선교잔치를 통해 회복된 모습, 선교잔치의‘찬양집회’와‘행복음악회’를 통하여 치유되었노라고 두 팔을 높이 들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시던 모습, 항상 섬기고 베푸는 일만 하다가 이렇게 푸짐한 선물을 받으니 주일학교 때의 달란트 시장에 참석한 것 같다며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시던 선교사님, 절망과 좌절의 순간들을 내려놓으시고 눈물로 함께 기도하시던 선교카페에서의 선교사님과의 짧은 만남 등 잊을 수 없는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나가는 말
「한국인 선교사」에서는 선교사의 사역을 세밀하게 구분한다. 첫째는‘나가는’선교이다. 이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선교라 할 수 있다. 둘째는‘보내는’선교이다. 보내는 선교는 선교 후원헌금과 동역기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좀 더 세분한다. 선교사님이 안식년 또는 기타의 사유로 일시 귀국했을 경우, 선교사를 섬기는 멤버케어이다. 입국 전 선교지에서 쉴터 예약을 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약속된 날 입국하시면 공항에 마중을 나가 쉴터 등 선교사님 가족이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이다. 핸드폰 개통, 후원병원들을 통한 건강검진과 진료, 선교보고 교회 연결, 선교잔치 등의 회복프로그램, 마지막으로 출국하실 때 공항까지 차량으로 배웅해 드리는 총괄 섬김을 말한다. 셋째, 돌아오게 하는 선교이다. 한국의 선교적 정서는‘선교지에서 뼈를 묻으십시오!’하는 것이다. 그것도 귀한 것이지만 선교지에서의 사역이 성공적이거나, 혹은 어려움을 당해도 언제든지 평안한 마음으로 귀국하실 수 있도록 격려의 통로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한 사역으로‘은퇴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익힌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 경제적 환경 등에 대한 통달한 지식과 체득된 경험들이 국가적 유익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선교사역의 블루오션이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선교사로서 헌신된 신임 선교사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파송 받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즉 선교동원과 선교 동력을 발생하게 하는 강력하고도 원천적인 힘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중도 귀국해야 했던 한 선교사의 아픔에서 출발된「한국인 선교사」는 한국 선교역사에서 멤버케어의 효시가 되었고, 지금도 조심스레 진행되고 있다. 20,000명의 선교사 시대가 열렸고, 초기 선교사님들이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한국인 선교사」의 사역은 멤버케어의 또 다른 영역인「돌아오게 하는 선교사 사역」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분들의 동참으로 은퇴하시는 선교사님들은 물론 중도 귀국하시는 선교사님들까지도 환영을 받으며 평안히 귀국하시고, 은퇴 이후 더욱 창조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선교사‘은퇴마을’이 조성되기를 원한다. 함께 힘을 모아 성숙되고 세련된 선교문화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김종남│「한국인 선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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